너티 퍼티 동굴 Nutty Putty Cave | |
2004년 10월 촬영된 너티 퍼티 동굴 입구의 위성사진. | |
<colbgcolor=#363><colcolor=#fff> 위치 | 북위 40° 5′ 51″ 동경 112° 2′ 14″ |
소속 | 미국 유타주 |
형태 | 석회 동굴, 온수 동굴 |
발견 | 1960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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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너티 퍼티 동굴(Nutty Putty Cave)은 미국 유타주의 유타호(Utah Lake)[1] 인근에 위치한 온수 동굴(hydrothermal cave)이다. 1960년대 처음 발견된 이래 아마추어 탐사용 동굴로 지역 주민과 동굴 애호가들에게 유명해졌으나, 2009년 인명 사고가 발생하여 영구적으로 폐쇄되었다.2. 지리·지질
너티 퍼티 동굴은 석회 동굴로 동굴 내부는 곳곳에서 미온수가 용출되고 있어 항상 섭씨 12도 정도의 온도가 유지된다. 미국 국립 동굴 탐험 협회의 맷 폴슨(Matt Paulson)에 따르면 너티 퍼티 동굴은 심성(深成, hypogenic) 동굴로서,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물이 석회암을 침식하여 만들어지는 외성(外成, epigenic) 동굴과 달리 아래로부터 데워진 물이 차오른 뒤 이것이 광물을 침식하여 공동을 만들고 다시 빠져나간 것이다. 이러한 지형을 '열수 카르스트(hydrothermal karst)'라고 하며, 좁은 입구와 큰 중앙 공동, 그리고 다시 좁아지는 복잡한 구조를 만드는 것이 특징이다(너티 퍼티 동굴 정보). 2002년 촬영된 너티 퍼티 동굴의 내부 사진. 각각 '빅 슬라이드(좌)'와 '버스 커낼(우)'로 불리는 지형이다. (사진 링크, 링크 2, 링크 3, 링크 4) |
동굴 내벽은 점토질로 진흙밭이며, 동굴 생성물이나 서식하는 생물들에는 특기할 만한 것이 없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관광용 동굴은 아니며, 기본적인 장비를 갖추어야 하는 익스트림 레저 스포츠용 동굴이었다. 성인 남성이 간신히 지나갈 수 있을 만큼의 비좁은 통로로 악명을 떨쳤으며 이 때문에 동굴 탐험 전문가들의 명소가 되었다. 일반적인 관광 동굴과 달리 전문 케이빙(동굴 탐험) 경험이 없는 초심자는 아예 엄두를 못 낼 수준이었다고 한다.
위성 사진을 보면 주위에 동그란 모양으로 표시가 되어 있어 과거 아마추어 탐사가들이 방문했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지형상 굴곡이 많고 험한 지역에 위치해 있어 자동차로도 접근이 쉽지 않다. (산의 지도) 동굴 인근에서 유타호에 이르기까지 황무지로 사람이 사는 지역이 거의 없고, 가장 가까운 마을은 인구 3백여 명의 엘버타(Elberta)[2]로 15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3. 역사
1960년 데일 그린(Dale Green)에 의해 처음 조사된 이후 관광 및 연구용으로 사용되었다. 동굴의 이름 역시 데일 그린이 지었는데, 내부가 좁은데다 물이 흐르는 곳이라 방문하고 나면 진흙 범벅을 피할 수 없기에 이런 이름을 붙였다. 그린은 처음에는 동굴 이름을 '실리 퍼티(Silly Putty)'로 지으려고 했지만 후에 지금의 이름으로 결정했다고 한다.1993년 촬영된 너티 퍼티 동굴의 위성사진. 이미 입구 근처에 진입로가 만들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
너티 퍼티 동굴은 전성기에는 연간 25,000명이나 찾을 정도로 북적였다. 하지만 내부가 매우 협소하고 자연 동굴의 특성상 몇 차례 안전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2006년 만들어진 통계). 2009년 이전까지 일어난 끼임 등의 사고는 모두 탐험자 스스로 탈출에 성공하거나 구조되었지만, 이후 대학생 존 존스의 사망 사고가 발생하면서 추가 사고 예방 목적으로 콘크리트로 동굴 입구를 완전히 막아 놓았다. #
2015년 유튜브에 2005년 당시 이 동굴을 실제로 탐험한 영상 시리즈가 올라왔는데, 총 5편까지의 탐사 영상이 존재한다. 게시일과는 별개로 해당 영상 시리즈는 당연히 사망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촬영되었다. 이 중 4편 6분 30초 부근에 찍힌 구멍이 바로 사망 사고가 일어난 에드스 푸시(Ed's push) 구역으로 향하는 구멍이다. 재생 빈도를 보면 해당 부분만 유독 높은 것을 알 수 있다.[3]
같은해에 촬영된 영상이 2011년도에 유튜브에 업로드되었다. 해당 영상 속에는 어린아이들을 포함한 일가족이 이 동굴을 탐사하는 모습이 담겨있는데 영상을 보면 아이도 엎드려 기어가야할 정도로 매우 좁다. 몸집이 작은 아이들한테 협소한 공간은 특히나 위험하다.
그 외 2001년경에 촬영된 다섯 명의 어린 소년들과 보호자로 추정되는 성인 남성 두 명이 캠프 파이어를 즐길 겸 이 동굴을 탐험하는 영상이 유튜브에 업로드되었는데, 영상 속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모습이 존이 겪은 비극과는 완전히 대조되면서 훗날 끔찍한 사망사고가 일어날 동굴이라는 점이 소름끼친다는 반응이 올라왔다. 또한 아이들을 동굴로 데려간 남성들한테도 왜 어린이들을 이런 위험한 곳으로 데리고 온거냐는 비난섞인 댓글도 존재한다.
4. 내부 구조와 지형
[4] |
2003년 12월 기준 너티 퍼티 동굴의 구조도. 위에서 바라본 형태로, 길이 겹쳐진 구간은 위아래로 두 개의 길이 뚫린 공간이다. |
■ 지형이 불명확한 구간[5] 〓 보이스카우트 및 아마추어 탐험가의 일반적 탐험 코스 〓 존 존스가 이동한 코스 |
- Entrance(앤트런스): 동굴의 입구. 2009년 이전, 2009년 이후. 위에서 아래로 구멍에 몸을 넣어 들어가는 형태이다. 북쪽 경로로 가면 크릭 까지 이어지는 복잡하고 거친 구간이 있으며, 보통 탐험 코스로 쓰이는 동쪽 경로는 빅 슬라이드와 버스 커낼로 이어진다.
- The Slot(슬롯): 메이즈로 이어지는, 입구에서 북쪽 방향으로 뚫린 경로이다. 꽤나 복잡하고 이곳으로 들어가는 구멍이 상당히 좁다. 보통 슬롯을 통해 크랙까지 이어지는 북쪽 경로는 사용되지 않았다. 단순히 탐사(탐험)을 위해서는 너무나도 좁고 위험했기 때문.
- The Maze(메이즈): 말 그대로 미로 형식의 지형이 있는 통로이다. 좁은 복도와 수많은 방의 형태로 이루어져 있는 지형이라고 한다. 초기 지도상으로는 복잡한 통로들이 이리저리 꼬여 있으며 나중에 만들어진 지도에는 구조가 확실하지 않은 부분은 아예 생략하고 있다.
- The big room(빅 룸): 메이즈에서 이어지는 구간으로 갑자기 동굴 방이 등장하기 때문에 빅 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평범해 보이지만 내부가 험하기는 마찬가지고 구조가 확실하지 않은 미지의 통로와 구멍들이 많아 위험하긴 마찬가지다.
- The Helmet Eater(헬멧 이터): 좁은 구간으로 인해 헬멧이 자주 끼어 붙여진 이름이다. 사실상 너무나도 좁기 때문에 해당 구간 통행을 위해서 헬멧을 벗고 진입했다는 동굴 탐험가의 속설들이 있다.
- The crack(크랙): 너티 퍼티 동굴의 북쪽 끝. 버스 커낼 못지 않게 좁은 구간이며, 이 구간이 시작되는 구멍은 워낙 좁아서 헬멧 이터라는 이름이 붙었다. 초기에 작성된 지도에는 중간에 잠깐 넓은 방이 그려져 있으나 마지막으로 만들어진 지도에도 그냥 좁은 통로 하나만 표기되어 있을 정도로 구조가 불명확하다. 가장 끝 부분에는 '벨 록(bell rock)'이라는 바위가 있는데, 내리치면 안이 텅 빈 것처럼 소리가 울린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 Big Slide(빅 슬라이드): 동굴 내에서 가장 크고 넓은 경사구간. 로프를 사용하여 비교적 원만하게 내려갈 수 있어 '슬라이드(미끄럼틀)'라는 이름이 붙었다. 다른 구역들은 머리가 천장에 닿을 정도로 좁은 데 비해 이 지역은 점프도 할 수 있을 정도로 넓다. 고도를 기준으로 표현된 구조도에서는 이 부분이 동굴을 가장 깊이 내려가는 부분으로 기록되어 있다.
- Birth Canal(버스 커낼): 산도라는 뜻의 이름으로, 빅 슬라이드 구간이 끝난 후 갑자기 통로가 매우 좁아지며 방향이 꺾여 남쪽으로 바뀐다. 성인 남성 한 명이 기어서 겨우 통과할 수 있는 비좁고 긴 코스 구역이다. 이 구간의 끝자락에 두 개의 갈림길 구멍이 있는데 하나는 버스 커낼에서 가장 비좁은 구간이자 너티 퍼티 동굴 탐험 코스의 최종 코스인 밥스 푸쉬로 이어지고, 다른 하나는 그 악명 높은 에드스 푸쉬로 이어진다. 6배 배속 영상(2005년 촬영)
- Bobs Push(밥스 푸쉬): 버스 커낼에 진입해 남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나오는 두 개의 갈림길 구멍 중 하나가 이곳으로 이어진다. (탐험 가능한) 버스 커낼 구간 중에서도 가장 비좁은 곳으로 여길 통과하면 비교적 넓은 방이 나오며 이곳이 너티 퍼티 동굴 탐험 코스의 종착점이다.
이 방에는 비슷한 수준으로 비좁으면서 엄청나게 긴 에이올타 크롤 구간으로 가는 구멍과, 스카우트 이터로 이어지는 통과 불가능한 구멍이 있는데, 둘 다 들어가서는 안 되는 위험한 구간이다. 그나마 탐사가 되기라도 한 에이올타 크롤과 달리 스카우트 이터는 이름 그대로 실제로 보이스카우트 단원이 갇히는 사고가 발생했을 정도로 위험한 진입 불가 구간이다.
- Scout Eater(스카우트 이터): 보이스카우트 소년이 사고를 당했던 지역이기 때문에 스카우트 이터란 이름이 붙었다. 밥스 푸쉬를 거처 나온 종착점 방에서 에이올타 크롤로 이어지는 구멍 대신 다른 구멍을 들어가면 등장하는 접근 불가능한 구역이다. 이곳에 들어가다보면 두 갈래로 구멍이 또 나오는데 두 구멍 모두 사람이 들어갈 수 없다.
구조상 아마도 서쪽으로 가다 북으로 꺾어 에드스 푸쉬로 연결되는 것으로 추정되나 끝내 탐사되지는 못했다. 그나마 에드스 푸쉬와 달리 무한정 길이 좁아지는 깔때기 구조는 아니라서 조난당한 보이스카우트 소년은 구조될 수 있었으나, 어쨌든 들어가서는 안 되는 곳이다.
- Ed's Push(에드스 푸쉬): 존 존스가 사고를 당한 지역. 버스 커낼 끝자락의 두 갈림길에서 밥스 푸쉬로 향하는 구멍이 아닌 왼쪽의 구멍으로 들어가면 이곳으로 향하게 된다. 탐사가의 증언에 따르면 처음에는 밥스 푸쉬 이전 구간 수준의 넓이를 가진 통로가 있지만, 나중에는 내부 구조가 파악되지 않은 복잡한 미로 같은 구간이 나오며 40~60도 정도로 제법 완만한 내리막길이 계속 이어지다가 갑자기 각도가 80도 이상으로 꺾이는 구덩이가 나타난다. 이 통로는 사람이 손바닥을 넓게 펼쳤을 때 엄지와 새끼손가락이 천장과 바닥에 닿을 정도로 좁으며, 더 이상 들어가기 어려워 탐사가 진행되지 않았다고 한다.
한편, 이 구간의 명칭이 '존 에드워드 존스'의 애칭이기도 한 '에드(Ed)'를 따 그의 사고 이후 '사고가 발생한 구간'이라는 의미에서 이름붙여졌다는 낭설은 사실이 아니며, 구조 참가자인 브랜든 코왈리스가 그의 지도에서 밝혔듯 이미 존스의 방문 이전부터 지도에 'Ed's push'로 기록된 구간이었다. 따라서 이름이 겹치는 것은 단순한 우연이다. 그의 방문 전에 이 구간으로 향하는 통로가 알려져 있지 않았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
- The Aorta Crawl(에이올타 크롤): 버스 커낼의 종착점 방에서 스카우트 이터가 아닌 다른 구멍을 통해 이어지는 구간으로 밥스 푸쉬 혹은 그 이상으로 비좁은 통로가 엄청나게 길게 이어지는 구간이다. 끝 부분에서 갑자기 수직으로 꺾은 후 베인 엘리로 이어지기 때문에 심장의 대동맥(Aorta)을 연상시키는 구조라 하여 에이올타 크롤이라 이름이 붙었다.
- Vein Alley(베인 엘리): 에이올타 크롤에서 빠져 나오면 여러 개의 경로로 갈라지는데 이곳을 베인(혈관) 엘리라고 부른다. 에이올타 크롤 수준으로 비좁은 너티 퍼티 동굴의 (탐사된)최남단 구역으로 이 구간 이상으로는 진입할 수 없다. 에이올타 크롤을 어떻게 통과하며 탐사해 이곳까지 발견한 것인지가 의문일 정도로 위험하다. 초기 탐사 지도에는 버스 커낼의 끝인 밥스 푸쉬 직후의 종착점 방 이상으로 탐사되지 않았었다.
5. 사건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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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2009년 이전
가장 유명한 사건 이전에도 동굴 관광객이 끼이는 사고가 자주 일어났다(타임라인), (스크린샷). 최초 발견자인 데일 그린 역시 몇 번이나 동굴에서 끼인 적이 있다고 회상했는데, 그 가운데 하나는 존 존스가 사고를 당한 에드스 푸쉬 근처에서 일어났고, 친구의 도움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 1999년 7월 28일 17세인 크리스 헤일(Chris Hale)과 크리스 매로(Chris Marrow)가 수요일 아침 9시에 동굴에 들어갔고, 오전 10시 30분 버스 커낼에 약 12시간 동안 갇혔다. 오후 10시 30분 헤일이, 이 후 몇 시간 뒤인 7월 29일 매로도 구조되었다. 기사. 존 존스 사건이 일어나자 크리스 매로가 당시 사고를 회상했다.
- 2001년 3월 17일, 13살 보이스카우트 단원 2명이 약 4시간 동안 갇혔다가 구조되었다. 이들도 버스 커낼에 갇힌 것이라 착각했는지 당시 기사를 보면 버스 커낼에 갇혔다고 나오는 게 많다. 이후 이들이 갇힌 곳은 스카웃 이터라는 이름이 붙었다.
- 2004년 8월 20일, 16살 브록 클라크(Brock Clark)가 존 존스가 같힌 곳과 같은 에드스 푸쉬에 다리가 끼이고 몸이 반쯤 접힌 상태로 거꾸로 갇혔다가 14시간만에 구조되었다. 기사, 기사 2. 존 존스가 갇힌 곳에서 3m 정도 떨어져 있는 곳이었다. 그는 키 5피트 7인치(170.2 cm), 무게 140파운드(약 63.5kg)로 존 존스보다는 체구가 비교적 작았기 때문에 구조될 수 있었다. 링크
- 2004년 9월 4일, 23세 데이비드 크라우터(David Crowther)가 동굴에 잠시 갇혔다가 구조되었다.
5.2. 존 존스 사망 사고
버지니아에 있는 한 의과대학에 재학 중이던 존 에드워드 존스(1983년 1월 21일 ~ 2009년 11월 25일)는 아내 에밀리, 어린 딸 리지 등과 함께 2009년의 추수감사절을 맞아 휴식도 취하고 아내의 임신[6] 소식도 알릴 겸 해서 고향에 방문 중이었다. 기사어릴 때 아버지와 같이 동굴 탐험 활동을 한 경험이 있었던 존은, 추수감사절 이전에 세 살 터울의 동생 조시 및 다른 9명의 지인들과 함께 고향 근처의 너티 퍼티 동굴을 탐험해 보기로 했고, 11월 24일 오후 8시경 동굴에 들어가게 되었다. 여담으로 존은 너티 퍼티 동굴 탐험은 처음이었으나 존의 친구에게 동굴 탐험 자격증이 있었기에 별 다른 문제가 생길 거라곤 전혀 예상치 못했다고 한다.
동굴에 들어간지 약 한 시간이 지난 시점에서 탐험 중이던 존은 매우 작고 좁은 구멍을 발견하는데, 존은 이 구멍을 버스 커낼(Birth Canal)에서 밥스 푸쉬(Bob's push)로 이어지는 좁은 통로라고 착각하고 말았다.
너티 퍼티 동굴은 2009년까지 폐쇄되었던 적이 있는데, 16살 소년이 당한 사고 때문이었다고. 다행히 그 소년은 존보다 조금 덜 들어간 상태에서 갇혔으며, 180cm대 중반의 키(약 6피트)에 약 90kg(200파운드)의 건장한 체격이던 존과 달리 키 170cm에 체중 63kg 가량으로 비교적 체구가 작은 편이었던 관계로 14시간 가량이 소요된 고난도의 구출 작전 끝에 무사히 구조될 수 있었다.[7] 이때 동굴을 폐쇄했다면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지만, 당시 동굴은 몇 년간의 봉쇄 조치 외에는 아무런 대책이 취해지지 않았고, 결국 동굴이 다시 개장된 지 불과 6개월 만에 완전히 똑같은 장소에서 더 심각한 사고가 터지고 만 것이다.
구멍은 입구가 위에 있고 내부는 좁은 수직 구덩이의 형태였다. 안타깝게도 버스 커낼 자체가 매우 좁은 지형으로 유명했기에 존은 자신이 길을 잘못 들고 있는 줄도 몰랐을 가능성이 크다. 입구의 넓이가 18인치(45.72cm), 높이가 10인치(25.4cm) 정도밖에 안 되는, 아이가 들어가기에도 비좁은 구멍을 상체부터 밀어넣고 들어가던 존은 통로의 끝에 있는 수직으로 떨어지는 구멍에 발만 8인치(20.32cm)가량 남겨둔 상태로 물구나무 자세처럼 몸이 거꾸로 끼어버리고 말았다. 발을 제대로 움직일 수조차 없는 좁은 수직 구멍에 거꾸로 끼인 그는 당연히 스스로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그리고 공간이 워낙 좁은 탓에 끼어있는 상태만으로도 몸을 압박해왔고, 너무 좁은 지하공간이라 애초에 산소가 그렇게 많지도 않았으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온수 동굴인 만큼 물까지 계속 흘러 수증기가 생기는 최악의 환경이라 호흡까지 곤란해졌다.[8]
하필 이 구멍이 오르막으로 시작한다는 점 또한 비극이었다. 오르막이니 당연히 머리부터 들어가는데, 위아래로 이리저리 꺾이다 갑자기 수직굴이 나오면서 훅 빠지니 물구나무서는 자세로 끼게 되는 것. 만약 문제의 구멍이 내리막부터 시작했다면 발부터 들어갔을 테니 처음부터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거나 사고가 일어나더라도 호흡곤란 문제는 덜해 조금 더 오래 버틸 수 있었을 것이다.
존의 동생인 조시가 존을 발견하고 꺼내려고 노력해봤지만 통로가 너무 비좁은 탓에 제대로 당길 수조차 없었고 오히려 존은 미끄러져 더 깊고 약 8.5인치 정도로 좁은 곳에 끼어버리게 된다. 기사. 혼자서는 구출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조시는 서둘러 지인들과 함께 동굴을 빠져나가 911에 신고하였으며, 이때부터 존을 구하기 위한 본격적인 구조작업이 시작되었다. 동굴 구조 전문가들부터 존의 마음을 진정시켜 줄 정신과 의사까지 137명에 달하는 사람이 동원되었다.
우선 너무 협소한 곳이다 보니 체구가 작은(5피트 3인치, 약 160cm) 여성인 수지 모툴라(Susie Motola)[9]가 자신도 같이 끼이지 않도록 본인 발목에 밧줄을 묶고 11월 25일 오전 12시 30분에 먼저 도착한다. 다음 24시간 동안 구조대는 여러 방법을 시도하였는데 우선 구멍을 파고 들어가 주변부를 넓히고 꺼내는 방법은 존이 끼어 있는 부분의 암석질이 너무 단단하여 시간이 과도하게 소요될 것이라 판단되어 철회되었고, 폭발물을 사용할 경우 좁은 동굴 전체의 암반이 붕괴되거나 변형되는 등 2차 사고로 번질 위험성이 너무 커서 철회되었다. 결국 시도된 방법은 도르래를 설치해 다리부터 끌어내는 것이었는데, 안타깝게도 이 역시 치명적인 문제에 직면했다.
첫째는 해당 지형의 각도가 워낙 협소하고 괴상하여 단순히 당기기만 해서는 존을 꺼낼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일단 존은 통로에 들어가자마자 낀 것이 아니라 입구부터 시작해 거의 1시간은 기어가야 나오는[10] 이리저리 꼬인 개미굴의 끝자락에 위치한 수직 구멍에 끼어버린 것이었다. 거기다 워낙 지그재그 모양으로 꺾여있는 통로 때문에 구조대원이 장비를 들여오는 것조차 버거웠다.
어떤 조치를 취하는 것 자체가 힘든 것은 물론이고, 다리를 부러뜨리지 않는 이상 그냥 당겨서 꺼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다리보다 목숨이 중요하지 않나?' 싶겠지만 이미 존의 심장에 무리가 간 상태에서 존의 뼈를 인위적으로 부러뜨리거나 억지로 끄집어내려고 할 경우, 심장마비가 올 수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어떠한 결정을 선뜻 내리기가 매우 어려웠던 상황이었다.
그래도 일단 몸의 부담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도르래와 로프를 설치했고, 존의 몸을 약간이라도 위로 들어 올리는 데 성공했다. 비록 꺼내지는 못했지만 이 덕분에 물을 지급하고[11] 그가 있는 곳에 무전기를 설치해 의사소통이 가능해졌으며 정맥주사를 놓아 기력을 조금이라도 채워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또 여기서 두 번째 문제가 발생하고 마는데, 갑자기 도르래를 고정하는 볼트가 빠져버려 존이 원래 있던 자리보다 더 깊이 빠진 것이다. 단단하기 이를 데 없어 파낼 수도 없었던 입구 부위와는 달리, 그의 다리를 수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도르래를 장착한 부분은 하필이면 오랜 세월 물에 침식되어 강한 힘을 견디지 못하는 암석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천장의 높이가 너무 낮았던 탓에 존을 끌어올릴 때마다 발이 천장에 닿아 쉽사리 빼내기가 매우 힘들었다. 도르래가 빠진 후에도 구조대는 몇 번이나 비슷한 조치를 시도해보았으나 결국 똑같은 문제가 다시 발생할 뿐이었다.
다른 대안도 없는 상태에서 임시방편인 도르래마저 실패하면서, 구조대는 결국 구조가 불가능하다는 절망적인 결론에 도달한다. 망연자실하던 구조대는 존이 느낄 공포와 절망이라도 덜어줘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 다음 그에게 계속 말을 걸고 노래를 불러주고 그의 아내를 데려와 대화를 시키는 등 갖은 노력을 다했지만, 점점 희미해져 가던 존의 목소리는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다시는 들려오지 않았다.
결국 무리한 자세로 오랫동안 끼어 있던 것이 원인이 되어, 그는 호흡곤란과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의사가 동굴 안에 들어가 유일하게 볼 수 있는 부위인 그의 발을 통해 맥박이 뛰고 있는지 여부를 확인, 사망을 진단했다고 한다. 사망선고가 내려진 것은 사고 약 27시간 만인 11월 26일 오후 11시 52분이다. PDF(미국의 2009~2010년 동굴 사고 보고서).
존 존스의 죽음은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비극이었지만, 그의 시신을 꺼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위에서 나왔듯 그는 매우 좁은 개미굴의 끝에 위치하고 있었기에 시신을 빼내는 것조차 어려웠던 것이다. 구조대원들은 그의 시신을 수습하게 될 경우 더 많은 희생자가 발생할 것을 우려하여 존의 시체를 회수하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두기로 결정했다. 시신이 훼손되는 것을 감수하면서 강제로 꺼낸다면 뼈라도 회수할 수는 있겠지만 지나치게 협소하고 긴 통로에서 그런 작업을 하다간, 또 다른 사람(들)이 계속해서 존과 똑같은 꼴을 당하게 되어 부시맨의 홀처럼 이미 죽은 사람 구하려다가 새로 죽어나가는 사람을 또 만드는 참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 그렇게 너티 퍼티 동굴은 존의 무덤이 되어버렸다.
2024년, 구조 작업에 가장 마지막으로 참여하여 그의 임종을 지켜봤던 동굴 탐험가 브랜든 코왈리스(Brandon Kowallis)가 존이 빠졌던 위치에 대한 자세한 묘사와 함께 구조 당시의 상황에 대한 수기를 올렸다.(영어) 좀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그 역시 구조 작업에 참가한 사람 중 하나에 불과하다 보니 모르거나 불확실해 보이는 내용도 있고, 이에 따라 여러 가지 질문과 답변이 오갔다. 몇 가지 요약하자면
- 브랜든은 2004년에 갇혔다 구조된 브록 클라크가 에드스 푸시가 아니라 스카우터 이터에 갇혔다가 구조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어느 쪽이 잘못된 정보인지는 불명.
- 동굴의 최초 발견자인 데일 그린은 몇년 전 세상을 떠났다.
- 에드스 푸시가 존 에드워드 존스의 사고 이후 명명되었다는 것은 근거가 희박하다. 그 이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지도에서도 이런 이름이 표시된 지도가 다소 발견된다.
- 에드스 푸시는 존 존스가 들어가기 이전에 동굴 전문가가 탐사도 했고, 존재 자체는 확실히 알려져 있었다. 문제는 이 동굴 자체가 위험한 곳이기 때문에 동굴 전문 탐사가와 같이 가거나 더 훈련된 상태로 와야 했지만 이 곳을 탐사하기에 존 존스는 너무 미숙했다.
- 도르래를 이용한 구조가 실패한 이유가 볼트와 너트의 규격이 미미하게 맞지 않아서일 확률도 있다.
- 데일 그린이 본인도 존 존스가 빠진 것과 비슷한 구덩이에 빠진 적이 있지만 친구의 도움을 받아 빠져나왔고, 그 곳에 다시 가지 않았다는 기사가 있는데, 그곳이 에드스 푸시인지는 불명이다. 다만 데일 그린은 존 존스에 비해 체격이 작고 훈련되어 있기 때문에 같은 곳에 빠졌다가 나왔을 확률도 있다. 데일 그린이 이미 작고한 상태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확인은 어렵다.
- 만약 브랜든 자신이 같은 곳에 빠졌다면 바로 위 데일 그린의 이야기처럼 체격이 작고 훈련된 상태이기 때문에 빠져 나올 수는 있었겠지만 꽤나 힘들었을 것이라고 한다.
- 에드스 푸시의 입구를 폭파시켰다는 설도 있지만, 브랜든은 그런 이야기는 금시초문이고 동굴 입구를 콘크리트로 채웠다는 이야기만 들었다고 한다.
5.3. 영구 폐쇄
2022년 1월 촬영한 동굴 입구. 입구가 폐쇄되었으며, 희생자의 명패가 부착되어 있다. |
결국 유족 및 다른 관계자들은 시신 수습을 포기하고 동굴 자체를 폐쇄하는 쪽으로 합의했고, 동굴 입구는 2009년 12월 2일에 콘크리트로 영구 밀봉되었다. 동굴이 있는 곳은 사유지였는데, 이 사고에 충격을 받은 땅 주인은 처음에 동굴 입구를 다이너마이트로 파괴하려 했으나 주변인의 만류로 콘크리트로 밀봉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고 한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이곳은 앞으로도 영원히 열리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폐쇄된 입구에는 존 존스의 이야기를 담은 동판 비석이 설치되었다.
On November 25, 2009, our beloved John passed away at this site. He was a loving father, a kind husband, a loyal son and a true and cherished friend. Those who knew John best will remember his faith and his caring heart. Thank you John for showing us how to make eternity our covering and our rock and our salvation as we journey here on earth. We miss you and love you always.
2009년 11월 25일, 사랑하는 존이 여기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사랑 많은 아버지, 친절한 남편, 충성스러운 아들, 그리고 진실하고 소중한 친구였습니다. 존을 잘 알던 사람들은 그의 믿음과 따뜻한 마음을 기억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 여행을 하는 동안 영원을 우리의 덮개요 반석이요 구원으로 삼는 방법을 보여주신 존에게 감사를 드립니다.[12] 영원히 당신을 그리워하고 사랑합니다.
존을 끝까지 구하려고 노력한 구조대에게 감사를 전하는 비석도 함께 설치되어 있다. 링크2009년 11월 25일, 사랑하는 존이 여기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사랑 많은 아버지, 친절한 남편, 충성스러운 아들, 그리고 진실하고 소중한 친구였습니다. 존을 잘 알던 사람들은 그의 믿음과 따뜻한 마음을 기억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 여행을 하는 동안 영원을 우리의 덮개요 반석이요 구원으로 삼는 방법을 보여주신 존에게 감사를 드립니다.[12] 영원히 당신을 그리워하고 사랑합니다.
We express our heartfelt appreciation to the brave and selfless rescuers who worked tirelessly to free John. Your heroism will never be forgotten. We invite all who visit John's final resting place to enjoy and respect this sacred space.
-The Jones Family
우리는 존을 구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용감하고 이타적인 구조대원들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당신의 영웅적 행위는 절대 잊혀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존의 마지막 안식처를 방문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 신성한 장소를 즐기고 존중해주기를 요청합니다.
-존스 가족
개요 문단에 링크된 내부 지도를 보면 그가 들어간 곳은 에드스 푸쉬(Ed's Push) 근처라고 하는데, 옆의 버스 커낼(Birth Canal)을 그냥 지나치고 더 내려간 것이 사고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지만, 동굴 구조상 표지판을 설치하기도, 위험한 곳을 미리 막아두기도 어려웠을 것이니 어느 정도는 예견된 사고였다고 할 수 있고 실제로 그 전에 비슷한 사고가 여러 차례 있었으며 임시 폐쇄된 일까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이런 일이 발생할 때까지 영구 폐쇄가 미뤄진 것은 동굴 탐사를 즐기던 사람들의 반대가 있었기 때문. 결국 애먼 사람 한 명이 몇십 시간에 걸쳐 고통과 절망 속에 천천히 참혹한 죽음을 맞는 엄청난 대가를 치른 뒤에야 영구 폐쇄라는 결정이 내려질 수 있었다.[13]-The Jones Family
우리는 존을 구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용감하고 이타적인 구조대원들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당신의 영웅적 행위는 절대 잊혀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존의 마지막 안식처를 방문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 신성한 장소를 즐기고 존중해주기를 요청합니다.
-존스 가족
2018년에 위 비석이 누군가에 의한 총격으로 인해 훼손되는 사건이 있었다. 트윗[14] 이 사건을 두고 여러 말이 오고갔는데 동굴 탐험을 하던 이들 중 존을 두고 여기를 폐쇄되게 만든 멍청이라고 욕하는 등 고인드립성 악플을 달던 이들이 있었기에 이들이 벌인 짓인 것 같다는 말이 나왔다.
6. 매체
- The Last Descent(더 라스트 디센트, 마지막 하강): 해당 사망 사건이 2016년에 영화화되었다. 감독은 이삭 할라시마. 한국에는 수입되지 않았다. 예고편
7. 여담
- 2019년, 희생자의 이름을 본떠 해당 지역의 이름 역시 '존 존스 힐'이라고 명명되었다. 미국 문화에서는 사고지역에 사고 피해자의 이름을 붙이는 경우가 흔하다.[15]
- 사망자 존 존스의 아내는 큰 실의에 빠졌다가 이를 극복하고 자녀를 키우며 공부 및 사회활동을 이어가던 중, 남동생의 소개로 2012년 8월에 재혼해 굳건하게 삶을 이어가고 있다.
- 동굴의 최초 탐사자인 데일 그린은 2009년 사고 당시까지 생존해 있었는데 동굴 전체가 아닌 존 존스가 사망한 구간만 폐쇄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본인이 처음 발견하고 탐험했고 그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누렸던 동굴인 만큼 애착이 컸겠지만 한 남성이 소중한 생명을 잃은 대형 사고가 발생했으니 영구 폐쇄를 막는 건 무리수였을 것이다.[16]
- 위 사건 직후 공교롭게도 같은 유타 지역에서 미국의 가정 주부 수전 파월이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하는 바람에 살인범이 시신을 바로 이 동굴에 숨겼을 수도 있다는 추측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허무맹랑한 추측은 아니고, 용의자로 지목되던 남편 조시 파월(물론 KBL에서 뛰었던 농구선수 조쉬 파월과는 동명이인)이 이 동굴에 대한 정보를 검색한 흔적이 발견되었기 때문.
다만 이후 경찰 관계자들은 수전이 2009년 12월 6일까지 목격이 된 반면, 동굴 완전 폐쇄는 12월 2일에 이루어진 데다, 존의 사망 이후 동굴 폐쇄가 이루어질 때까지 해당 지역에 대한 경비도 이루어졌기 때문에 전혀 그럴 가능성이 없다며 일축하였다.
조시 파월은 사건 이후 계속해서 수사 선상에 올라 있었는데, 결국 2012년 자녀를 도끼로 잔인하게 살해하고 휘발유로 집에 불을 질러 자살하는 엽기적 사건을 벌이고, 공범으로 의심되던 형제 마이클까지 이듬해 자살하는 바람에 해당 사건의 정확한 진상은 알 수 없게 되어버렸고, 수전 파월도 여전히 공식적으로는 실종 상태이다. 경찰은 조시 파월이 수전을 살해하고 조시의 형제 마이클이 시체은닉을 도운 걸로 보고 있지만 수전의 사체 등 결정적인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기에 확실한 해결은 사실상 불가능해진 상태. - 존 존스는 이 일로 다윈상의 2009년 후보에 올랐는데, 수상이 이루어졌으면 논란이 되었을 수도 있다. 다윈상 자체의 논란은 차치하고 다윈상 스스로 내세우는 핵심 기준은 '전혀 납득되지 않는 이유로 벌인 바보 같은 일인지'의 여부인데, 너티 퍼티 동굴은 평범한 케이버들이 즐겨찾는 액티비티용 동굴이므로 해당 동굴 출입 자체를 바보짓으로 볼 것이 아니라면[17] 남은 건 지도상에 없는 지형을 알려진 지형으로 착각하여 들어간 실수 뿐인데 이것이 그렇게 비상식적인 일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들어가지 마시오"라고 명백히 막혀있는 곳을 뜯고 들어갔다면 모를까. 다윈상 사이트에 가보면 후보 선정이유로 해당 구역에 혼자 갔다는 것과 발부터 들어갔다는 점을 꼽고 있지만 후자는 사실과 다르며 전자는 동굴 자체는 일행과 함께 들어갔던데다 마지막 장소에 혼자 간 것이 다윈상을 받을 정도의 명백한 실수인지 의문이다. 실제로 이 사건은 2009년 투표에서 가장 낮은 표를 받았다. 아무튼 관련 피드백을 많이 받았는지 삭제 요청을 존중한다고 되어 있긴 한데, 해당 사이트에서는 이상하게도 2009년 리스트 페이지만 삭제되어 있는 상태다. 즉 다이렉트 링크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해당 페이지에 접근하기 어렵다는 것. 웹 아카이브 참고 결과 2022년 2월 이후에 삭제된 것으로 보이는데,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 시신을 조각조각 절단해서 수습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는 SNS발 가짜 뉴스로 사실이 아니다. 압하지야에 소재한 세계에서 가장 깊은 동굴인 베료브키나 동굴(Verëvkina Cave) 조난자 세르게이(2020년 11월 사망)의 이야기와 헷갈린 것으로 보인다.
- 피해자가 동굴에 낀 사진이라고 돌아다니는 사진들 중 구멍 밖으로 종아리 아랫부분만 보이는 사진[18]은 모두 거짓이거나 다른 사진이다. 존이 동굴에 낀 상황은 사진으로 찍힌 적이 없다. 구멍 자체가 원체 좁은 데다가 수직 구멍 직전에 45° 정도의 큰 경사까지 있어서 사진 찍기가 어려워 사진이 남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상황 자체는 그 사진과 비슷한 상황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어떤 사람의 얼굴이 빨갛고 어딘가에 낀 듯한 사진도 있는데, 장소는 스카웃 이터 부분으로 너티 퍼티 동굴이 맞지만 머리카락이 존 존스와 다르고 해당 인물은 동굴탐험가 Kory Kowallis이다.[19] 멀리 갈 것도 없이 이 사람은 애당초 웃으면서 사진찍고 있다. 이 사람도 해외에서 헷갈리거나 같은 너티 퍼티 동굴에서 사진을 찍어서 그런지 한 존 존스 사고 요약 영상에서는 썸네일로 나왔다.
- 존 존스의 시신은, 정황상 이제 약 [age(2009-05-25)]년의 시간이 지났기에 사실상 백골이 되었거나, 혹은 미라화가 되었을 수도 있다.
- 이 사고와 매우 유사한 사고로 Crooked Swamp Cave 사고가 있다. 이 쪽도 동굴의 특정 좁은 지점에 끼어버리고, 구조팀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제 시간내에 구출하지 못해 저체온증으로 사망하였다. 그래도 이 쪽은 시신은 수습했다.
8. 관련 문서
- 피크 동굴 사고
[1] 솔트레이크호와는 다른 호수이다.[2] 캐나다의 앨버타(Alberta)와는 다르다.[3] 영상 속 탐험가들도 미개척 구간이라는 걸 인지하고 있었는지 후레쉬로 비추기만 할 뿐 직접 들어가지는 않았다.[4] 1965년 기준 구조도, 2004년 기준 구조도[5] 2004년 기준으로는 많이 탐사되었다.[6] 사고가 일어난 후 태어나 유복자가 되었다. 이름은 그의 이름을 딴 존 존스 2세가 되었다.[7] 밑의 레딧 링크에서 바로 그 사고를 당한 소년의 형제라고 주장하는 인물이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데, 꽤나 끔찍하다. 그나마 목숨은 건진 그도 이후 정신적으로는 심각한 PTSD에 시달리며 성격이 크게 변했다고 한다. 신체적으로는 낙뢰에 맞은 사람의 다리처럼 젖산이 과도하게 축적되어 다리에 영구적인 신경 손상을 입었다는 것으로 보아 압좌증후군의 후유증에 시달리는 것 같은데 천만 다행히도 걷지 못하게 되는 참사는 면했다고 한다.[8] 끼인 자세도 몸에 큰 부담을 주고 있었다. 사람의 몸은 직립보행을 기준으로 진화해 왔기에, 일정 시간 이상 동안 물구나무 자세로 있을 경우 심혈관계에 큰 부담이 생긴다. 기사. 또한 눈에 압력이 가해져 안압이 높아지기 때문에 실명할 수 있고, 머리에 혈액이 고이다 터지면 뇌졸중이 일어날 수도 있다. 장기가 폐를 짓누르기 때문에 호흡곤란도 온다. 링크. 이 사건과 비슷한 사고가 2021년 5월 말 스페인의 스테고사우루스 조각상에서 일어났다.[9] 사진이 나오는 그 영상이 프랑스어권에서 만들어졌다.[10] 500m 정도로,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니지만 워낙 좁고 꼬인 통로라 소요 시간이 길다.[11] 물병을 줄 수는 없어서 물을 흘려보냈다고 한다.[12]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 경전 중 하나인 '값진 진주'에 있는 아브라함서 2:16의 내용을 인용하였다. 존과 아내 에밀리가 신자였기 때문. 관련 인터뷰[13] 동굴 탐험 애호가들로 구성된 페이스북 커뮤니티에서 폐쇄를 막아달라고 청원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14] 해당 트윗의 게시자는 물론 댓글을 단 사람들까지 비석 훼손범에게 분노를 표하고 있다.[15] 유사 사례로 옐로스톤 국립공원 간헐천 컨트리 투어에서 가이드가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으면 이 간헐천에 당신의 이름이 붙을 것이다라고 겁을 주는 경우가 있었다.[16] 사실 사망 사고가 발생해도 폐쇄까지는 가지 않는 동굴이 훨씬 많다. 진짜 문제는 이 동굴 자체가 너무 위험한 곳이 많다는 것이다. 상단에 언급된 존 존스 사망 사고 이전 5건은 언론에 알려진 것일 뿐 실제로는 훨씬 많은 끼임 사고가 이 동굴 내부 여기저기서 일어났다고 한다.[17] 이러면 사고 가능성이 있는 익스트림 레저를 즐기는 사람은 모두 다윈상 후보라는 뜻이 된다.[18] 이 중 날짜가 있는 사진(동그라미 친 사진 중 하나는 버스 커낼이 아니라 에이올타 크롤이다)도 있는데 해당 사진의 날짜(2009년 1월 1일)를 보면 해당 사건과 관련된 사진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다만 카메라 날짜설정을 하지 않을 경우 꼭 그 날짜에 찍었다고 볼 수만은 없다.) 해외에서도 이 사건 관련 글에서 돌아다닌다. 다만 해당 사진이 어쩌다가 유포된건지, 사진의 주인공은 누구인지 등의 여부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19] 존 존스의 구조 작업에 참가했던 브랜던과 성이 같고, 자신의 형제도 이 동굴에서 구조 작업을 한 적이 있다는 말로 봐서는 그 형제와 동일인물이거나 아니면 집안 자체에 동굴 탐험가가 많은 것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