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11-06 15:48:38

아겐 알루웨드 동굴



1. 개요2. 지리3. 로저 사망 사건
3.1. 사건 전개3.2. 탐사 시작3.3. 동행3.4. 죽음의 그림자3.5. 로저의 행방
4. 사건 이후5. 관련 문서

1. 개요

영국의 사우스 웨일스에 위치한 수중 동굴.

2. 지리

길이가 32.5km에 달하는 매우 깊고 복잡한 구조의 동굴로 입구부터 1,600m 구간의 좁고 구불구불한 길이 이어져있다. 이 구간은 사람이 겨우 드나들 정도로 비좁으며 해당 구간을 지나면 수중 동굴이 나온다. 여기서부턴 다이버용 장비를 구비해야하는데 내려갈수록 총 4개의 수중 동굴이 존재한다.

3. 로저 사망 사건

3.1. 사건 전개

웨일스에서 태어나고 자란 마틴(23세)과 로저(26세)는 프로 동굴 다이버였다. 그들은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동굴을 탐험하고 지도를 작성한 경력이 있는 베테랑 케이버들이었으며 탐험 경력만 10년 정도였다고 한다. 여러 번의 탐사를 통해 동굴들이 서로 연결되어있다는 사실도 검증했으며 사건 3년 전에는 다이빙을 시작하면서 수중 동굴로 탐험 영역을 확장했다.

그러던 1974년, 두 청년은 사우스 웨일스에 있는 수중 동굴인 아겐 알루웨드 동굴을 탐사하기로 계획한다. 2인 1조로 팀을 짜서 동굴의 지도를 완성하겠다는 목적이었는데 아겐 알루웨드 동굴은 호락호락한 장소가 아니었다. 이곳은 매우 비좁고 돌들이 울퉁불퉁 튀어나와있는 위험한 곳이었다. 게다가 그 길이만 해도 무려 1.6km 정도이니 이곳을 통과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체력이 소모된다. 이 앞에는 수중 동굴이 있어 산소탱크와 잠수복 등 다이빙용 장비를 구비해야해서 더욱 난관이다. 힘겹게 해당 구간을 지나면 1번 수중 통로(Sump 1)가 기다리고 있다. 여기는 길이가 76m 정도로 다이버 장비를 착용하고 이곳을 통과하면 물이 차지 않은 건조 공간이 나온다. 그 앞에는 또 다시 25m 길이의 수중 통로(Sump 2)가 나타난다. 그렇게 또 수중 통로를 지나 건조 공간이 나오며 반복되는 형태의 동굴이다. 여기까지는 순조로운 편이지만 문제는 3번 수중 통로(Sump 3). 이곳은 길이가 260m로 훨씬 길고 험한 코스로 여기서부턴 풀 스쿠버 장비로 무장해야한다. 이곳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동굴 전문가인 존 파커로 숙련된 그조차 3번 코스를 탐사하던 도중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끼고 복귀하였다. 다시 말해 3번 수중 통로 앞은 그 누구도 가보지 않은 미개척 구간, 즉 미지의 세계였다. 마틴과 로저는 3번 구간 너머 더욱 깊고 신비로운 것이 있을 것이라 믿었고 누구보다 먼저 발견하고픈 욕구가 생겨났다. 그렇게 1974년 5월, 두 남자는 아겐 알루웨드 동굴을 탐험하기 위한 일정을 잡았다.

3.2. 탐사 시작

동굴 앞에 도착한 마틴. 그런데 동행하기로 한 로저가 오지 않았다. 그는 여행 도중 무릎을 다쳐 재활중이었기에 마틴 혼자만 동굴로 입장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위험한 동굴을 혼자서 탐험한다는 것은 미친 짓이나 다름없었지만 3번 수중 통로 너머 세계를 개척하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던 마틴은 홀로 자신감에 차 1,600m 길이의 길을 탐험하기 시작한다. 몸을 비틀고 지나야하는 구간도 있어서 자칫 돌이 무너지거나 공기탱크로 인해 몸이 틈새에 끼어버릴 위험도 컸다. 2~3시간에 걸쳐 드디어 1번 수중 통로에 도착한 마틴. 계획대로 스쿠버 장비를 착용하고 1번 수중 통로를 시작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숙련자였던 그는 2번 수중통로까지 아무런 문제없이 통과한다. 드디어 대망의 마의 구간, 3번 수중 통로에 당도한 마틴. 그는 설레는 마음으로 그곳으로 다이빙한다. 존 파커가 해당 코스가 너무 길어서 도중에 돌아왔다는 정보만 들은 마틴은 이 구간이 얼마나 길게 이어져있는지 알지 못하였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3번 수중 통로 밖으로 나오는데 성공한다. 그곳엔 역시 물이 없는 건조구간이 있었다. 이곳은 길이 548m로 위아래로 지그재그로 뚫려있고 첫 번째 입구 구간처럼 바위들이 돌출되어있는 비좁고 험준한 구간이었다. 마틴은 드디어 미지의 세계에 첫 번째로 발을 들였다는 사실에 엄청난 희열을 느꼈다. 그는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며 성공을 만끽하며 탐험을 즐겼다. 그의 한 발자국마다 최초의 발자취였다. 신나게 모퉁이를 지나자 마틴은 깜짝 놀란다. 바로 수중 통로가 또 있었던 것이였다. 이 4번 수중 통로(Sump 4)에는 아무런 정보도 없었기에 그 길이를 알 수 없었다. 게다가 여기까지 오는데만 5시간이 걸렸다. 돌아가면 왕복 10시간에 공기탱크의 공기도 떨어졌을테니 마틴은 아쉬움을 뒤로 한채 다음을 기약하며 지상으로 복귀한다.

3.3. 동행

1974년 6월 15일 마틴과 로저는 아겐 알루웨드 동굴을 찾아왔다. 마틴에게 4번 수중 통로의 소식을 들은 로저는 설렘으로 가득찼고 둘은 그 너머에는 무엇이 존재하는지 기필코 알아내고 싶었다. 그렇게 2차 탐험이 시작되었다. 유경험자인 마틴의 리드로 순조롭게 탐험을 이어갔지만 처음 왔을때보다 탐사가 더욱 힘겨워졌다. 왜냐하면 인원이 한 명 더 늘어난 만큼 공기탱크를 더 들고와야했기 때문이다. 강철 소재로 만들어진 공기탱크의 무게는 개당 15kg. 그 외 다른 장비까지 포함하면 도합이 55kg 정도이다. 성인 여성 무게의 물건은 들고 1,600m의 좁은 길을 통과해야만 하니 육체적으로 매우 힘들었다. 공기탱크의 수량은 총 3개 하나는 1번부터 2번, 또 하나는 3번, 마지막 하나는 목표 구간인 4번 수중 통로를 탐사하는데 쓸 계획이었다. 복귀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둘은 역시나 1번부터 2번까지 예비 공기탱크를 이용해 순조롭게 통과했고 마의 3번 통로까지 클리어한다. 곧이어 548m의 지그재그 구간으로 나온 두 남자. 비좁고 울퉁불퉁한 공간에 부딪혀 공기탱크가 손상되어 공기가 새어나갈 것을 우려해 매우 조심스럽게 지나간다.무거운 공기탱크를 3개씩이나 짊어지고 오느라 지친 기색이였다. 그러나 여기까지 온 이상 이제와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말 한마디 없이 건조구간을 지나 드디어 목표 구간인 4번 수중 통로에 도착한다.

마틴과 로저는 처음으로 4번 수중 통로에 들어선다. 하지만 로저의 공기탱크는 마틴의 것보다 살짝 작아 로저는 위로 떠오르지만 마틴은 아래로 가라앉는다. 미개척 구간인 만큼 둘은 천천히 해당 코스를 조사하면서 나아간다. 그런데 그때 문제가 생겼다. 로저가 안면부에 통증을 호소하며 괴로워한다. 그는 하필 부비동염을 앓고 있었다. 깊은 수심에서 축농증은 위급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어 위험하다. 수압과 기압으로 안면부의 압력 조절이 안되면 극심한 안면 통증을 동반하며 심하면 출혈까지 일어날 수 있어 상황이 좋지 않았다. 세이프티 라인으로 공기량 체크를 하기 위해 릴에 감긴 라인을 이용해 30m마다 바위에 묶어두며 나아갔다. 120m 쯤 지났을 무렵 계속되는 안면통증에 로저는 라인이 끊어지는 실수를 하고 만다. 마틴은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라인을 재정비한 뒤 릴을 자신이 챙겨 라인에 거리 표식을 세기며 계속 라인을 이어갔다. 탐사를 이어가던 도중 150m에 다다랐다. 역사상 첫 발견이라는 업적을 달성하기 위해선 위험과 어려움을 무릅쓰고 한계를 넘어서 나아가야한다. 그러나.. 그들은 여기서 탐험을 멈췄어야했다. 이들은 가장 중요한 '그 법칙'을 어기고야 만다.

3.4. 죽음의 그림자

그 법칙은 다이빙을 할때 반드시 지켜야하는 1/3 법칙이다. 다이빙을 할때는 3분의 1의 산소는 탐험을 할때 사용하고 나머지 3분의 1은 복귀하는데 써야 한다. 마지막 3분의 1은 위급상황에서 비상용으로 사용해야하는 최후의 보루인 셈이다. 하지만 둘은 복귀하지 않고 계속 나아갔다. 그 어떤 것도 첫 발견이라는 설레임에 가득 찬 두 남자의 탐험을 막을 수 없었다. 앞으로 나아가는 마틴은 위쪽으로 향하는 오르막길 통로를 발견하게 된다. 마틴은 그곳으로 올라가면 아까 지나왔던 수중 통로처럼 건조 구간이 나올 것이라고 믿었다. 한 편, 뒤쳐진 로저는 안면통증으로 힘겹게 마틴의 뒤를 밟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앞장서던 마틴이 갑자기 로저 앞에 불쑥 튀어나온다. 마틴은 패닉에 빠져 로저에게 당장 돌아가라고 수신호를 보낸다. 뒤늦게 복귀하기 시작하던 로저도 앞으로 나아가면 건조공간이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그러나 그 앞은 예상과는 완전히 다른 곳이었다. 마틴이 건조 구간이라고 생각하던 그곳은 더 이상 길이 없는 막다른 길이었다. 마틴은 당황하며 다른 길을 찾아보았지만 그곳 역시 막혀있었다. 더 이상 길이 나오지 않아 동굴의 끝자락에 도달했다는 사실을 체감한 마틴은 서둘러 방향을 돌려 복귀하다가 마주친 로저에게 복귀 수신호를 보낸 것이었다.

극심한 통증으로 운동 능력이 심각하게 저하된 로저는 일그러진 얼굴로 복귀 중이었고, 마틴이 한참을 앞장서서 복귀 중이었다. 마틴은 예비 공기탱크를 교체했다. 이 공기탱크로 3번 수중 통로까지 다이빙을 해야하는데 불행 중 다행으로 그 정도의 산소량은 남아있었다. 조금이라도 막다른 길을 늦게 알아차렸다면 3번 구간에서 그대로 익사했을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다. 마틴은 로저도 예비탱크를 가지고 있었기에 무사히 복귀할 거라고 생각하며 4번 수중 통로 입구로 나와 장비를 벗고 숨을 고르며 로저가 복귀하기를 기다린다. 그러나 로저의 산소탱크가 마틴의 것보다 작았기에 산소량도 더 적어 로저는 서둘러서 물 밖으로 나와야한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로저는 돌아오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마틴의 걱정은 커져만 갔다. 30분이 지나도 4번 수중 통로의 수면은 물결이나 거품 없이 잔잔하기만 하다. 1시간이 경과되고, 로저는 이미 산소를 다 소모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서 마틴이 라인을 당겨서 로저의 복귀를 돕는다. 그러나 아무리 라인을 당겨도 아무런 힘과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았고, 조그만 힘에도 라인은 계속해서 당겨지며 끝내 라인의 끝 부분이 나온다. 그 끝에는 150m라는 표식만 덩그러니 달려있었고 로저의 흔적은 없었다. 위급상황이라 판단된 마틴은 동굴 밖으로 나가 구조요청을 하기로 한다. 산소량이 충분하지 않아서 로저가 있는 곳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로저의 산소는 전부 고갈되었을 거고, 또 다시 길고 긴 수중 통로와 건조 구간들을 지나 지상에 도달한 마틴은 경우의 수로 로저가 건조 구간이나 에어포켓을 발견해 명을 부지하고 있을 것이란 작은 희망을 품고 구조대를 부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당시엔 휴대전화 같은건 존재하지 않아서 구조대에 신고를 하는데 시간이 꽤나 지체되었다.

3.5. 로저의 행방

구조대가 출동하고 로저를 찾기 위한 수색대가 편성되어 동굴에 입장한다. 그러나 워낙에 깊고 험준한 동굴이었기에 구조대가 들어가는데만 5시간이나 소요되었다. 그러나 너무 깊은 곳에 로저가 고립된 탓에 구조대가 거기까지 도달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위험한 구조 작업이었다. 하지만.. 구조대원들도 자칫 로저와 같은 꼴을 당할 위험이 있어서 수색다는 철수하게 되고, 로저를 찾는데엔 실패하게 된다.

그로부터 7년 후인 1981년, 마틴은 그날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로저의 시신이라도 찾기 위해 다시 풀장비로 아겐 알루웨드 동굴로 발걸음을 옮긴다. 사고가 일어났던 4번 수중 통로의 150m 구간을 이 잡듯 샅샅이 뒤졌지만 로저의 흔적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로부터 5년 뒤에 이안 롤랜드와 줄리안 워커라는 탐험가들이 로저의 시신을 발견하게 된다. 사건발생 12년만의 일이었다. 사고 지점보다 더 깊은 220m 구간에서 로저가 싸늘한 주검이 된 채 발견되었다. 낮은 수온 탓에 시신의 부패가 심하지 않아 얼굴을 보고 로저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로저의 한 손에는 다이빙용 나이프, 다른 한 손은 레귤레이터를 움켜쥐고 있었다. 이를 미루어보아 로저가 예비 산소탱크를 교체하기 위해 몸을 틀다가 라인에 몸이 휘감겨 나이프로 라인을 잘라냈고, 그 과정에서 부유물이 발생해 시야가 차단되는 실트 아웃 현상이 일어나 방향 감각을 잃고 더 안쪽으로 들어가다가 산소 부족으로 익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4. 사건 이후

사건 이후로도 수많은 동굴 탐험가들이 아겐 알루웨드 동굴을 정복하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탐사를 지속해왔다. 그 결과 1987년에 4번 수중 통로의 270m 구간까지 탐험하는데 성공했다. 그곳에는 13년 전 마틴과 로저가 그토록 발견하기를 바라던 에어포켓이 존재했다. 이 공간을 끝으로 아겐 알루웨드 동굴의 새로운 길은 발견되지 않았고, 동굴 입구에는 자물쇠 문을 설치해 숙련되고 검증된 다이버들만 입장할 수 있도록 조치가 내려진다. 그리고 입구에는 로저를 추모하기 위한 명패가 새겨졌다.

그리고 로저의 시신은 끝내 회수되지 않았다. 3,000m 구간이라는 길고 위험한 동굴이였던 탓에 시신을 수습하는 것은 엄두가 나지 않았고, 당국은 부시맨의 홀처럼 2차 희생자가 나올 것을 우려해 로저의 시신을 그 자리에 그대로 두기로 결정한다. 5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로저의 시신은 그 자리에 아직도 남아있다.

5.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