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6-02 13:37:29

남러시아 정부

의용군(러시아)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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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러시아 정부
Government of South Russia
Правительство Юга России
Pravitel'stvo Yuga Rossii
파일:러시아 국기.svg 파일:1280px-Coat_of_arms_of_the_Kolchak_government_(unofficial).png
국기 국장
1918년 8월 31일 ~ 1920년 11월 16일
수도 노보로시스크, 세바스토폴
언어 러시아어
정치체제 군사독재
역사 • 남러시아군 총사령부 창설:
1918년 8월 31일
• 남러시아 정부 설립:
1920년 4월 16일
• 멸망: 1920년 11월 16일
지도
파일:Юг_россии.png
파일:1280px-Coat_of_arms_of_the_Kolchak_government_(unofficial).png

1. 개요2. 남러시아군 총사령부
2.1. 결성과 성장2.2. 몰락
3. 남러시아 정부

[clearfix]

1. 개요

러시아 내전 중에 수립된 백군 정권.

사실 엄밀히 말해 남러시아 정부란 1920년 3월 표트르 브란겔이 창설한 정부만을 지칭하며 1918년 8월 31일부터 남러시아 정부 창설 이전까지는 남러시아군 총사령부가 지역의 통치주체로 기능했다. 이 문서에서는 두 정권을 모두 서술하도록 한다.

2. 남러시아군 총사령부

2.1. 결성과 성장

남러시아군 총사령부는 남러시아군을 이끌던 미하일 알렉세예프가 창설했다. 남러시아군은 1차 쿠반 전역까지는 거점을 확보하지 못해[1] 통치 기구라는 것을 따로 꾸릴 형편이 못 되었지만 1차 쿠반 전역에서 얻은 인지도로 여러 백군들이 합류하며 세력을 불렸고 2차 쿠반 전역에서 예카테리노다르와 노보로시스크를 점령하며 거점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1918년 8월 31일, 알렉세예프는 점령한 지역에 대한 통치 행위를 위해 남러시아 총사령부를 조직했다. 남러시아군의 지휘 업무는 안톤 데니킨이 맡고 행정은 알렉세예프가 최고지도자라는 이름으로 전담하며 임무가 분할되었다.

문제는 10월 8일, 알렉세예프가 급사하면서 발생했다. 남러시아 총사령부의 최고지도자 자리가 공석이 되자 지휘관 데니킨이 이를 겸직하게 된다. 알렉세예프는 케렌스키 내각에서 참모총장을 지냈고 로마노프 왕조의 복고와 코르닐로프 쿠데타[2]를 반대하는 등 어느 정도 열린 인물이었고 독립을 원하는 카자크들과 타협해 자치안을 도출해내는 등 정치적인 감각이 있었지만 데니킨은 정치나 행정쪽에는 영 꽝이었고 반 볼셰비키라는 공통점 하나로만 묶인 군벌들의 연합체나 다름없던 남러시아군의 균열을 막을 수 없었다.

데니킨의 군대는 1919년 초까지 전투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고 여러 카자크 부족이나 구 러시아 제국군 잔당[3]등 여러 세력들을 흡수하며 백군 최대의 세력으로 성장했다. 남러시아 총사령부의 영토는 서로는 크림 반도, 동으로는 차리친, 남으로는 캅카스 북부에 이르렀다. 러시아 제국 해군흑해 함대가 합류해 해군까지 생겼다. 모스크바 공세 동안에는 남러시아를 벗어나 우크라이나를 거쳐 모스크바 턱밑까지 치고 나갔다. 문서 상단에서 이 시기의 영토를 볼 수 있다.

2.2. 몰락

남러시아 총사령부는 그 이름에서 보이듯이 정부라기에는 모자란 세력이었다. 정부로서의 역할은 시베리아의 러시아국이 가지고 있었지만 러시아 공화국의 계승을 주장하는 러시아국과 러시아 제국군의 후신인 남러시아 총사령부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알렉산드르 콜차크의 쿠데타 후에는 그나마 코드가 맞았지만 영토가 분리되어 있는 관계로 러시아국에 직접적인 명령을 받기보다는 명목상의 상하관계만을 가졌을 뿐이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표트르 크라스노프, 표트르 브란겔 등은 동쪽을 뚫어 러시아국에 완전히 합류할 것을 주장했지만 데니킨은 이를 거부하고 오히려 모스크바 공세를 감행했다.

외교적으로도 다른 나라에게서 정부로서 인정받지 못했고[4] 총사령부 자신 역시 러시아에서 독립한 다른 국가들(캅카스, 발트, 핀란드, 우크라이나 등)을 인정하지 않아 연합전선은 고사하고 서로 전투가 벌어지기까지 했다.

결국 이 모든 요소가 겹치며 남러시아군은 한계에 다다랐고 1919년 겨울부터 레프 트로츠키의 군사 개혁, 네스토르 마흐노의 파르티잔 등으로 적군의 역공이 시작되었고 1920년 초에는 노보로시스크와 크림 반도만을 남기고 거의 모든 영토를 상실한다.

털리는 중이었던 콜차크가 러시아국의 최고지도자 자리를 데니킨에게 넘기겠다는 연락을 했지만 데니킨도 영혼까지 털리는 중이라 뭐라 응답하지 못했다. 1920년 1월 러시아국이 멸망하자 일단은 3월 16일에 노보로시스크에서 남러시아 정부(South Russian Government, Южнорусское Правительство, Južnorusskoe Pravitel'stvo)를 창설하나 뭘 해보지도 못하고 세묜 부됸니의 기병에 예카테리노다르(3월 17일), 노보로시스크(3월 26일)를 상실했다.

노보로시스크 상실 과정에서 영국 해군에서 노보로시스크에서 크림 반도로 수송선을 지원해 주자 병사들이 서로 먼저 배에 오르겠다고 서로 싸우며 깔아뭉개고 민간인, 말, 대포, 총기 따위는 버려두고 도망치는 추태가 벌어졌다. 이후 데니킨은 이 사건의 책임을 지고 총사령관직을 표트르 브란겔에게 이임하고 망명했다.

3. 남러시아 정부

브란겔은 4월 16일 세바스토폴에서 새롭게 남러시아 정부(Government of South Russia, Правительство Юга России, Pravitel'stvo Yuga Rossii)를 개칭했다. 브란겔은 데니킨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행정 업무는 알렉산드르 크리보셰인을 행정수반으로 맡기고 군사 업무에만 전념했다. 남은 영토는 크림반도 밖에 없었지만 소비에트-폴란드 전쟁을 틈타 8월 16일, 우크라이나 남부의 타우리다 지방을 수복했다.

하지만 이미 백군의 몰락은 막을 수 없었고 소비에트-폴란드 전쟁이 끝나자 남러시아군은 타우리다에서 궤멸했다. 11월 초 미하일 프룬제가 지휘하는 붉은 군대가 진격해왔고 11월 7일과 17일 사이에 페레코프 지협에 있는 남러시아군군 방어선을 돌파하여 점령한 후, 크림반도로 진격했다. 브란겔은 11월 16일에 떠나는 마지막 함대와 함께 146,000명의 사람들을 코스탄티니예로 대피시켰다. 브란겔의 함대라는 별칭이 붙은 이 함대는 노보로시스크에서의 추태와는 달리 질서정연하게 이루어졌다. 이 철수로, 유럽과 러시아에 남은 백군의 마지막 잔당이 패배하면서 남러시아 정부는 완전히 멸망한다.
[1] 이전의 지휘관이었던 라브르 코르닐로프가 거점을 확보하기 위해 예카테리노다르를 공격했으나 전사하며 실패했다.[2] 코르닐로프를 체포한 게 알렉세예프였고 둘은 죽을 때까지 화해하지 않았다.[3] 표트르 브란겔, 미하일 드로즈돕스키 등이 그 예시[4] 러시아국조차 거의 정부로 인정받지 못했으니 놀라운 일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