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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17년 2월 4일 |
평안북도 선천군 | |
사망 | 2008년 11월 8일 (향년 91세) |
서훈 |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 1977년 대통령 표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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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군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의 군인.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 표창) 수여.2. 생애
1917년 2월 4일 평안북도 선천군에서 태어났다. 중학교를 마치고 중국으로 건너가 1935년 중국중앙군관학교 제3분교에 입학했다. 1937년 임관 후 중국 중앙군 32집단 132소대장으로 서주대회전 등 중일전쟁에 참전하였다.1944년 중국군 대위로 근무 중 한국광복군의 김국주와 연결하여 광복군 제3지대장인 김학규를 방문해 광복군 활동에 협조하고, 중국군과의 유대 강화를 약속하였다. 김병학의 서주 학병 위안회 사건[1]을 지원하는 등, 적지로 가거나 제3지대 본부로 가는 광복군들을 중간에서 지원하는 역할을 하였다.
광복 후 고향으로 귀향했으나 북한 정권의 숙청을 피해 월남하였다. 월남 후 육군사관학교 5기를 졸업하고, 6.25 전쟁 초기 제1보병사단 11연대 1대대장으로 다부동 전투와 평양 탈환작전에서 활약했고, 을지무공훈장과 화랑무공훈장을 받았다.
휴전 후 1954년 대한석탄공사 광업소들이 연대 파업에 들어가자 육군지원단으로 영월파견관으로 석탄공사 정상화에 기여했다. 예편 후에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을 지냈고, 1977년 건국훈장 대통령 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2008년 11월 8일 91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3. 참고자료
독립유공자 공훈록독립운동사 제6권, 독립군 전투사(하), 412, 415쪽
장군이 이끌던 대한석탄공사
[1] 서주 지역에서 조선인 학병들을 위문하기 위해 일본군에서 주최한 행사 중에 조선인 학병들의 탈출을 도모한 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