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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운

金炳雲
1814년(순조 14) 1월 18일 ~ 1877년(고종 14)

1. 개요2. 생애

1. 개요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신 안동 김씨[1], 자는 경평(景平), 호는 유정(柳汀).

2. 생애

1814년 1월 18일 아버지 김호근(金浩根, 1796. 1. 11 ~ 1861. 3. 14)과 어머니 우봉 이씨(1796 ~ 1869. 12. 9) 이광헌(李光憲)의 딸 사이의 두 아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인조좌의정을 지낸 김상헌의 9대손으로, 아버지 김호근은 음서로 세자익위사 세마(世子翊衛司洗馬:정9품)을 지냈으며, 조부 김봉순(金鳳淳, 1774. 8. 4 ~ 1816. 12. 15)은 1801년(순조 1) 식년시 진사시에 3등 33위로 입격하고 공조 정랑(工曹正郞:정5품)을 지냈다. 또한 증조부 김이안(金履安, 1722. 3. 27 ~ 1791. 5. 19)은 영조·정조 시기 이름난 학자로, 1759년(영조 35) 식년시 진사시에 1등 2위로 입격하고 세자시강원 찬선(世子侍講院贊善:정3품)에까지 올랐다. 외조부 이광헌은 1795년(정조 19) 식년시 생원시에 2등 13위로 입격하고 충주목사(牧使:정3품)를 지내다가 1814년 정시(庭試) 문과에 병과 7위로 급제하여 형조참판(刑曹參判:종2품)에까지 올랐다.

한편, 김병운은 1831년(순조 31) 식년시 생원시에 3등 31위로 입격하고, 1844년(헌종 10) 증광시 문과에 을과 5위로 급제하였다.

이후 1852년(철종 3)에 성균관 대사성(大司成:정3품)이 되었고, 1854년 이조 참의(吏曹參議:정3품)를 거쳐 1856년 부제조(副提調:정3품)에 임명되었다가 1858년 경기도 관찰사(종2품)에 부임했다. 1860년에 형조판서(정2품), 한성부 판윤(判尹:정2품), 공조판서(정2품), 이조판서(정2품) 등을 지냈고, 1863년에는 한성부 판윤에 재차 임명되었다가 사헌부 대사헌(大司憲:종2품)을 제수받았다.

저서로는 『유정수후록(柳汀隨後錄)』이 있다. 시호는 문정(文靖)[2]이다. 묘는 경기도 남양주시 이패동에 있으며, 전처 남양 홍씨(1812 ~ 1860. 7. 1) 홍경(洪坰)의 딸, 후처 평산 신씨(1840 ~ 1896. 12. 8) 신봉선(申鳳善)의 딸와 함께 안장되었다.


[1] 문정공파 24세 병(炳) 항렬.[2] 족보에 왜 이렇게 시호를 정했는지 기록되어 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근면하게 배우고 즐겨 묻는 것을 '문(文)'이라 하고, 너그럽고 즐겁게 살다가 삶을 마치는 것을 '정(靖)'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