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3-04 11:54:45

고종(조선에는 쿠데타가 필요해요)

1. 개요2. 작중 행적3. 평가4. 기타

1. 개요

조선에는 쿠데타가 필요해요의 등장인물.

원 역사의 고종 황제와 동일인물이다. 김시혁적대적 공생 관계인, 본작 핵심 반동 인물이자 사실상 제2주인공.

2. 작중 행적

노련한 일본 공사가 '약함을 이용할 줄 안다.'라며 치를 떨고 내각 구성원들 모두 경계할 정도로 음흉하고 위험한, 역사 속 고종을 그대로 구현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약하면 그대로 잡아 먹히는 제국주의 시대에 나라를 운영할 능력은 전무하나 권력을 쥐고, 유지하는 능력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노괴. 시간이 흐른 2부에서는 정세를 보는 안목마저 급격히 끌어올려 정말로 유능한 군주가 되어 간다.

1차 친위 쿠데타로 왕권도 강화했고 황제 즉위까지 했으며 의화단 운동 개입으로 세종 이후 가장 많은 영토를 확보한 군주라는 업적도 챙겼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원 역사를 능가하는 발암 행보를 벌여 독자들도 고종 언제 퇴장하냐며 난리를 쳤고 극동전쟁 개전 직전 일어난 2차 쿠데타로 실권을 사실상 전부 빼앗긴다. 그럼에도 황위는 지킨 덕에 언젠가 김시혁을 또 엿먹이려는 거 아니냐는 우려는 남아있었고 예상대로 되었다.

전제군주정이 당연했던 20세기 초반, 500년 전제군주국의 왕이 민중의 의사, 언론을 능수능란하게 움직여 막후에서 좌지우지 한다는 전위적 발상을 실현에 옮겼고, 이를 위해 역신이라며 치를 떨던 서재필과 그가 운영하는 독립신문을 참된 언론이라며 후원하는 짓도 마다하지 않았다. 조동윤이 밝혀낸 바에 의하면 김시혁의 위신을 떨어뜨리고 약점을 잡기 위해 몇달간 사생활을 캐고 다니기도 했는데 김시혁이 꼬투리 잡힐 짓을 전혀 하지 않아 헛물만 킨 적도 있다고.

극동전쟁 종전 이후 거의 10년 간 뒤에서 조장한 민의를 바탕으로 군부와 내각도 손댈 수 없는 거대한 정치적 압력을 자아내는 데 성공했고, 이를 활용해 중추원황국협회 일변도로 채우고, 황실경위원과 제국익문사, 국가헌병대를 기반으로 내각, 군부를 견제한다. 극동전쟁 승리를 이끌어낸 성과는 있으나 본질적으로 고종의 신하라는 데서 정당성을 얻는 내각과 군부는 간접적인 견제 이상은 하지 못하는 상태.

엄밀히 따지면 제2차 쿠데타 이후 정권을 장악한 테크노크라트들이 전후에도 비상 대권을 놓지 않은 탓이 크다. 황제의 신임에 기반한 내각인데도 황제를 배제한 채 국정을 주도하여 집권 정당성이 현저히 부족한 내각이기에, 실권을 상실했던 고종이 여론을 업고 공작을 지속하는 것만으로도 흔들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국가의 외교도 내각과 황실이 따로 전개하는 상황으로, 이로 인해 외교도 꼬여버려 러시아가 역으로 뤼순을 일본에 넘겨버리고 남만주를 유지하고 싶다면 파병하라는 요구를 해서 한국을 발칵 뒤집어 놓기에 이른다.

동부전선 원정군이 김시혁 측근 지휘관들로 꾸려지자 이를 견제하기 위해 정적인 의친왕을 감찰관 명목으로 붙여 둘다 곤경에 빠트릴 궁리를 하면서도, 김시혁을 대신할 지휘관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으며 그의 능력이 자신에게 꼭 필요함을 알기에 김시혁을 숙청하자는 박제순의 건의는 일언지하에 잘라버린다. 오히려 김시혁을 원정군 사령관으로 추대하도록 여론을 조장했고, 원정 나간 뒤에는 군사 부분에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

헌법 제정을 떡밥으로 던져 내각과 중추원을 갈라치고 자기 편을 늘릴 계획을 수립 중이며, 전쟁으로 도시의 물가가 가파르게 상승하자 임오군란 이상의 대규모 소요 사태가 발생할 수 있음을 감지하고 유사시 강제로라도 유통망을 확대하기 위해, 더하여 한성을 자신의 친위 세력으로 둘러싸기 위해 헌병대의 규모를 확충하고 이를 기존 근위사단과 강습보병대 주둔지에 밀어넣는다. 내장원이 장악한 황무지 다수를 목장으로 개간하여 황실 차원에서 도시로의 육류 공급을 보장하려고 애쓰는 것은 덤.[1]

동부전선이 진행중에 한성에서 폭동이 발생하자 군의 힘을 빌리려는 이용익을 제어하고 헌병대와 경무청, 금화군 병력만 동원해 물대포와 둔기만으로 진압하게 한다. 한성에서 근황 세력의 파이를 늘린 김에 군부내 근황파을 더 키워주려고 호로군 무장해제에 동원시켰다가 무능한 근황파가 일을 키워서 막 귀환한 김시혁이 급히 수습하는 불쌍사가 발생하기도 했다.

서부전서 파병을 앞두고 전차 도입건으로 김시혁과 협의한 끝에 르노 전차 도입을 확정지었고 징병 문제로 어수선한 정국을 수습코자 삼남에서 만주 합이빈까지 순행길에 나선다. 순행길에 동행한 이용익과 향후 국가시책에 대한 논의를 주고받는데 토지 개혁의 필요성을 납득하고 점진적으로 지원해주기로 했으며 만주를 점령지가 아닌 온전한 제국의 강역으로 삼기위해선 대대적인 행정체제 개편과 800만에 달하는 만인들을 한국인으로 융화시켜야 한다는 이용익의 주장을 받아들이고 적극 추진한다.

한성에서 고위층 부인, 여식들을 중심으로 여성 참정권 시위가, 삼남에선 농민들의 형평 운동으로 시작된 참정권 시위가, 평양에선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과 처우 개선 요구를 최종적으로 참정권 요구에 도달해 시위가 발생하자 원래부터 황실에 반항적인 데다 여성 노동자들도 대거 포함된 탓에 수용시 체제를 완전히 갈아 엎게 될 가능성이 높은 평양의 참정권 시위는 각하,[2] 황실에 충성스럽고 인구가 많은 삼남의 형평 운동은 어차피 진짜 정치에 관심 있는 운동가는 한줌이니 내장원 환곡놀이의 중심이자 그간 방패막이로 써먹던 흥친왕을 처벌하고, 농협을 설립해 풍흉에 따라 곡가가 들쭉날쭉해지는 현상을 차단해 금융 자본을 확대하는 큼지막한 당근으로 무마시키고, 식자층으로 구성되어 가장 온건하며 황실의 후원을 받고 있어 상대적으로 황실에 친밀한 한양 여성 시위대의 요구는 받아들여 여성 참정권 운동을 계급으로 갈라쳐버리기로 한다.[3]

3. 평가

빙의 대상이 아니면 조기 리타이어 전개가 보통인 고종을 원래 역사에서 보여준 모습을 바탕으로 재구성해 민의를 바탕으로 독재하고 싶은 전제군주라는 골 때리는 조합으로 기존 대역에 없는, 그리고 엄청나게 빡치는 새로운 고종상을 제시하는 데 성공했다. 심지어는 현실의 21세기 선진국을 기준점으로 잡더라도, 작중 고종만큼 친대중적인 정치인은 드물다. 인품상으로는 원 역사보다 더 나빠졌지만 능력상으로는 원 역사보다 훨씬 유능해진 셈. 작중에서 묘사되는 고종의 정치질 능력은 원 역사의 고종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평이다.

자기 권력 확보에는 열심이나 막상 후대까지도 강력한 황권을 누려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고종의 특이점이다. 황실이 계속 강력한 권위를 갖기를 원했다면 군부와 민중의 지지세가 확실한 의친왕을 순종 다음으로 지명해야 했지만, 아무런 존재감 없는 영친왕을 후계로 밀겠다는 뜻을 꺾지 않으면서 이용익에게 자기 사후에는 김시혁과 발맞춰 만사를 진행하라 지시한다. 순종이나 영친왕이 제어 못할 게 뻔한 근황파 역시 자기가 죽기 전에는 정리해버릴 생각이었다. 권력을 누리는 건 자신까지고 후대들은 왕업을 이어가는 것으로 족하다 여긴다는 점에서 동시대 다른 전제군주들과는 확연히 차이를 보인다.

자기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애쓰는 방향성 자체는 변하지 않았고, 그러다보니 호로군 무장해제 과정에서 벌어진 소요 같은 실책을 말년에도 종종 저질렀지만 이건 김시혁과 이용익이 안팍에서 노력해 메워줄 수 있는 범위였다. 두 명신의 보조를 받으며 제한된 권력 내에서 활로를 찾은 것에 전념한 고종은 왕권 행사와 공적 이익이 불합치되던 1부의 허물을 벗고 국가의 이익과 자신의 이익을 같은 선상에 놓는데 성공했다. 권력 행사에 제동이 걸려 왕권인 사적 남용이 틀어막힌 게 전화위복이 된 것. 러시아의 니콜라이 2세처럼 절대권력이 주어졌다면 유능한 신하들이 제때 커버해주지 못 해 오히려 실팼을 가능성이 높다.[4]

1905년 극동 전쟁 때 삼남 지방에 일본이 200만에 달하는 인명을 학살했는데[5] 10년 뒤인 1910년대 후반에 삼남 도시와 농촌을 거의 다 복구시키는데 성공했다는 언급이 있다. 내장원이 대체 뭘 했길래 복구에 성공한 건지는 불명이나 이건 버스가 아니라 진짜 고종의 대업적이 맞다. 이외에도 극동전쟁의 여파로 기존 행정체계가 박살나서 23부제와 13도제를 섞어서 운용하다가 프랑스의 데파르트망을 참고해 행정구역을 만주까지 포함해서 전면 개편시키려는 시도를 하거나, 만주 편입으로 다민족제국화되면서 만주 일대의 만주족과 한족 분류를 통해 신해혁명 이전부터 터잡고 살던 만주 한족과 청조 멸망 이후에 유입된 한족을 갈라치기하려는 시도 등등[6] 정치적으로 능수능란한 모습을 보여 독자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1차 대전 이후 대한제국에 파시즘이 본격적으로 고개를 들면서 아예 대제의 풍모(...)가 있다고 자조하기도.[7]

작중에서도 고종이 정말 엄청나게 성장했다고 평가되는지 고종의 충신인 이용익조차 조금만 더 일찍 이랬으면 더 좋지않았을까 생각하며 씁쓸해하기도 한다.

4. 기타

본작의 주인공인 김시혁은 정치 감각이 떨어지는 군인형 주인공이다 보니 고종과 불편한 동거가 성립될 수 있었는데, 만약 군사뿐만 아니라 정치 감각까지 괴물 수준인 주인공이었으면 그런 거 없었을 거라는 게 정설이다.

극중에서 반동인물 위치에 있으면서도 지식인이 아닌 민간인들이나 외국인들 사이에선 이미지가 무척 좋은 편인데, 백성들 관점에서는 조선 왕조 역사상 가장 많은 영토를 새로 획득한 전승 군주에 영조의 재위 기록마저 넘어선 최장수 나랏님을 부정적으로 볼 이유가 없고, 외국인 시선에는 민권 향상에 적극적이고 서구 문물에도 전혀 배타적이지 않은 세련된 군주이기 때문이다.[8]

맥심포 총성이 클래식보다 감미롭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밀덕후로서, 단순히 화력이나 크기만 보는 게 아니라 디자인의 유려함과 미감까지 살피는 미학있는(?) 밀덕이라 삐까번쩍한 장비나 전함, 열병식이라면 사족을 못 쓴다. 군사적 안목은 전무하나 이 밀덕 기질 덕분에 대한제국군의 신규 장비 도입은 쉽게 쉽게 되는지라 도움이 되긴 한다. 구식 파먼 복엽기를 뉴포르로 교체하려는 군부의 요청을 탁지부에서 예산 문제로 반려했을때 새 비행기를 보고 싶다는 욕망으로 끼어들어 내탕금을 제공해줬고 노급 전함에 꽂혀서 프랑스와 미국을 찔러보았으며 프랑스제 전차 도입도 주도하는 등 최소 장비 도입 측면에서는 최고의 도우미라 봐도 될 정도다. 원 역사에서도 신문물 애호 기질이 있었음을 생각하면 나름 고증이다.

원 역사처럼 커피애호가에 와플 같은 달달한 간식을 선호하는데 건강을 위해 양보할 생각은 없는지 환갑 넘어서 전국 순행이라는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는 와중에도 야식으로 설탕이 듬뿍 뿌려진 와플을 즐긴다.


[1] 민간의 설렁탕 가격 변동에 내재된 의미를 파악하고 기민하게 대응하는 모습은 바뀌는 시대에 적응 못하고 끌려 내려간 동시대 전제군주 누구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는 탁월한 면모로, 고종의 발암 행각에 치를 떨던 독자들조차 혼자 보법이 다르다며 혀를 내둘렀다.[2] 기존에는 연간 일정 금액 이상을 납부하거나, 병역을 마친 18세 이상 남성에게 중추원 의원 선거권을 부여했는데 노동자 여성에게 참정권을 주려면 병역 의무도, 납부 의무도 지지않는 자들에게 참정권이 부여되어 기존 체제를 완전히 뒤집어 엎어야 했다. 부유층 여식이기에 납부를 명분 삼아 참정권 부여가 가능한 한양 여성들과는 달랐다.[3] 신분제 사회는 인종보다도 신분이 우선이라 귀족 여성들은 자국 평민보다 외국인 귀족에 더 동질감을 느꼈다. 영국 여성 참정권 운동때도 상류층 여성들에게 참정권을 부여하자 노동 계급 여성들은 어찌되었든 만족하고 떨어져 나갔다.[4] 작품 외적으로는 1부와 달리 2부 시점으로 넘어가면 작중의 갈등, 문제 해결 구도가 1부와 많이 달라져서 고종까지 1부처럼 트롤링 캐릭터로 묘사하면 대한제국이 터져서 스토리 진행이 안 되기 때문에 고종의 행보가 달라진 것으로 추정된다.[5] 여러 정황 묘사를 보아 호왈이 아니라 진짜로 1~2개월 만에 200만 넘게 죽인 르완다 학살, 킬링필드에 비견되는 학살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와 별개로 일본과 이런저런 물자 교환이 있으며 원 역사처럼 1910년대 후반 부산부가 일본과의 무역으로 너무 커져 동래부를 역으로 먹었다는 언급이 있는 걸 보아 전후 원한과 별개로 무역은 한 듯하다.[6] 작중에서 만주 소재 만주족을 800만으로 설정했는데, 원 역사에서 당대 만주 거주 만주족은 100~200만 이내였다. 독자들은 800만 분류가 청 말기에 봉금령 무시하고 들어와 신해혁명 이전까지 만주에 터잡고 살던 한족들을 만주족으로 신분세탁하고 신해혁명 이후 유입되는 한족을 견제하는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 일부러 800만으로 분류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작중에서 고종이 만주족에게 '성을 내려준다'는 등의 여러 묘사를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는 부분.[7] 근현대 역사를 보면 혁명 세력이나 민주적으로 집권한 내각보다 구 왕실이 훨씬 유화적인 경우가 흔하다.[8] 민권 확대에 적극적인 이유는 간단하다. 도시가 아닌 지방에서는 고종 지지세가 압도적이니까. 설령 하루 아침에 대통령제 공화국으로 바뀌어도 황국협회 소속 후보로 출마해 압도적으로 당선 가능한 지지세라 민권이 확대되면 될수록 근황파가 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