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배경
이 프로그램은 우주왕복선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간단히 말하자면 승무원들의 구조를 위한 미션이다. 왜 구조를 강조하냐면, 이런 미션이 있었더라면 컬럼비아 호의 마지막 7인은 살릴 수 있었다는 아쉬움에 기인한 프로그램이기 때문. 다만 당시 업계 근무자의 회상에 따르면 이것도 현실적으로는 힘들었을 것이라 한다. 참고원래는 NASA도 우주왕복선이 사고로 대기권 재돌입을 할 수 없게 되는 사태를 충분히 예감하고 있었기에 온갖 기기묘묘한 대책들을 쏟아냈다. 셔틀을 한대 더 발사한다는 내용은 대체로 비슷했고, 미션 투 마스마냥 선으로 연결해서 질질 끌어온다던가 아폴로 시절의 기술을 다시 동원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비책이 완비되기까지는 너무나도 오래 걸리는 상황이었고, 결국 외양간 수리가 끝나기 전에 소는 도망가고 말았다. 셔틀 1대를 날려버리고 우주비행사 7인을 잃은 NASA는 높으신 분들과 여론의 다구리를 맞고 앞으로의 매 미션마다 구조대를 조직하게 되었다. 이른바 Launch on Demand(비상시 발사), Contingency Shuttle Crew Support(셔틀 승무원 긴급 지원) 등의 이름으로도 불리는 STS-300번대 미션이 계획된 것이다.
2. 구조대
그런데 이 구조대를 꾸리기에는 NASA의 셔틀이 꼴랑 셋 밖에 안 남은 것이 문제였다. NASA는 컬럼비아와 챌린저 를 잃은 후 유인 우주선을 디스커버리, 아틀란티스, 엔데버만을 보유하게 되었는데, 당장 직전 미션에 우주에 갔다 오고 오버홀에 가까운 정비를 진행하던 한 대, 지금 우주에서 죽어가는 한 대를 제외하면 유일하게 남게 되는 한 대는 자동으로 구조 미션을 준비하게 되는 셈이었다. 때문에 NASA의 엔지니어들과 테크니션들의 업무가 상당히 가중되었다. 이제 셔틀 한 대 준비로도 벅찬 것을 두 대나 동시에 발사 준비를 시켜야 했고, 한 대는 사람만 최대 11명씩 태우는 터무니없는 조건으로, 그것도 필요할 경우 즉시 발사대에 보낼 수 있게끔 완비해야 했다. 우주비행사들도 백업 팀 외에 구조대원들이 4명[1]씩 뽑혀서 온갖 괴상한 훈련을 받아야 했다. 그렇게 백방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과는 별개로, 컬럼비아의 그 발사와 마찬가지로 발사 도중에 문제가 발생한 팀을 구조할 다른 셔틀마저 똑같은 문제가 발생할지 모른다는 문제. 더욱이 천기누설에 가까운 철저한 기상예보로 날짜를 엄선하던 관례 역시 어떻게든 빠른 시일 내에 보내야 한다는 절박함 아래 무시되어 또 다른 참사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가령 얼어죽겠는데 우주 조난이 발생해서 빨리빨리 구조대 보내야 한다고 억지로 쐈다간...3. 조난당한 셔틀도 버텨야 한다!
구조대와는 별개로, 조난당한 셔틀도 그 자체가 어떻게든 우주에서 승무원을 살릴 때까지는 버틸 수 있어야 했다. 즉, ISS에의 도킹을 어떻게든 이뤄내거나 아니면 긴 시간 동안 승무원에게 충분한 산소를 공급할 수 있어야 했다.하지만 ISS도 열 몇 명을 상시 수용할 수는 없는 비좁은 곳이라 길어야 두 달이 지나면 산소가 부족해질 가능성[2]이 높았다. 게다가 ISS에 도달하지 못 할 정도의 초 저고도에서 공기 저항에 노출[3]될 경우도 대비해야 했다.
심지어는 셔틀의 구조 자체를 싹 뜯어고쳐서 EVA 없이도 구조할 수 있게끔 도킹 장치를 만들자는 주장도 나왔지만 원래 처음 발사되던 셔틀에 일부러 도킹 모듈을 태우기에는 자리가 없다. 그리고 20년 이상 묵은 물건에다 그런 마개조를 하느니 차라리 우주선을 싹 새로 개발하는게 훨씬 경제적이다. 그리고 이런 노후화 문제로 인해 실제로 NASA는 우주왕복선을 더 이상 개조하지 않고 전량 퇴역시킨 후 상업 승무원 수송 프로그램을 통해 민간기업의 우주선을 활용하는 식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동시에 NASA가 직접 개발하고 운용하는 오리온 다목적 유인 우주선은 우주왕복선이 담당하던 지구 저궤도 미션이 아닌, 우주왕복선이 닿을 수 없는 중~고고도, 심지어 달 등의 지구 외 천체를 위한 우주선이므로 목적이 다르다.
이에 NASA는 ISS에 못 가면 ISS가 오도록 해야한다 라는 심정으로 ISS의 고도를 낮추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말로는 좋게 보이지만 실상은 매우 위험한 아이디어다. ISS의 고도를 낮출 수록 대기마찰이 더 강해지기 때문. 대기권과 우주가 칼 자르듯 구분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ISS의 본래 궤도에서도 대기마찰로 인해 꾸준히 고도를 잃고 있으며, 따라서 주기적으로 재가속해서 고도를 되돌려야 한다. 그런데 거기서 더 밑으로 내려온다면 자칫 잘못하다간 순식간에 유성이 되어 공중분해되어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허블 우주 망원경을 보수하는 등의 미션의 경우 더욱 답이 없다. 허블의 궤도는 일반적인 기준에서는 저고도에 속하지만, 우주왕복선의 입장에서는 그 고도까지 도달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4] 이 경우는 하단의 STS-400 단락 참조.
그 외에 어떻게든 오비터를 살려보자, 살리지는 못해도 안전하게 폐기하자[5]는 의도로 부란만이 성공했던 무인 비행을 계획하기도 했다. 그래서 이 시스템은 프로토타입이나마 비상시 써먹을 용도로 셔틀과 ISS에 상시 비치해놓기도 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실제로 써먹을 일은 없었다.
결국 이러한 일련의 구조 미션 준비로 인해 케네디 우주센터와 로켓 엔지니어들은 엄청난 혹사에 시달려야 했고 NASA의 재정지출 역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결국 NASA는 STS-134 엔데버를 마지막으로 우주왕복선 프로그램을 중단해야 했다. 그나마 STS-135 미션이 급조되긴 했지만, 이것도 엔데버의 구조용으로 완비해놨던 아틀란티스를 마지막으로 쏴보자고 의회에 눈물로 사정한 덕이다.
4. STS-125 / STS-400
문서 명칭인 STS-3xx의 명명법과는 어긋났지만, NASA가 컨스텔레이션 계획의 일환인 아레스 I의 테스트를 미루면서까지 진행했던, 셔틀 두 대를 나란히 발사대에 세워놓는 촌극이 벌어진 사건이다.2008년 9월의 케네디 우주센터. 앞쪽에 보이는 STS-125의 아틀란티스 오비터와 멀찌감치 보이는 구조선 엔데버가 케네디 우주센터에 세워졌다. 정작 STS-125는 허리케인이 들이닥치거나 허블의 다른 부분이 더 고장나는 등의 이유로 2009년 5월에야 발사할 수 있었고, 그 사이 엔데버는 이보다 일찍 LC-39A 발사대로 이동하여 STS-126을 뛰고 왔으며 STS-119 디스커버리도 ISS에 갔다왔다.
이 미션이 특히 까다로웠던 이유는 위와 같다. STS-125 아틀란티스는 허블 우주 망원경을 수리하러 갈 예정이었는데, ISS와 허블은 원체 상관없는 궤도를 돌다보니 셔틀 기동을 통한 랑데부는 도저히 불가능했다. 그래서 ISS로 대피할 수가 없으니 바로 셔틀을 쏘아올려서 승무원들을 구조해야 했다.
승무원 구조 시나리오. 흔히들 영화 등에서 묘사하는 것과 달리, 우주선에서 내려서 선외활동을 하는 것은 우주복 걸쳐입고 자동차 내리듯이 문 열고 나가면 되는 작업이 아니다. 선외활동용 우주복은 그 자체로 개인용 우주선에 준할 정도로 무겁고 커다란 물건이라 입고 시동을 거는 것 자체도 쉬운 일이 아니고, 에어록을 가동하는 것 역시 버튼 누르고 몇 초 대기하는 정도로 신속한 작업이 아니며, 진공에 노출되는 선외활동용 우주복 내의 기압을 1기압으로 맞추는 것은 여러 모로 위험하고 힘들기 때문에 0.3기압 수준으로 유지하기에 최소 몇 시간에 걸쳐 감압하는 과정이 없이는 잠수병으로 우주비행사가 크게 다칠 수 있다. 따라서 한 번의 EVA를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준비와 계획과 시간이 필요한데, 이를 수도 없이 반복하면서 구조대상 우주왕복선에 구조에 필요한 물품을 가져가고, 승무원을 구조해서 데려오고, 반드시 회수해야 하는 물건들도 가져오는 작업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는가? 게다가 STS-125 사령관 스콧 올트먼은 너무도 컸기 때문에 선외활동복을 맞춤형으로 따로 하나 더 만들었다. NASA도 돈 아까워서 썼던 우주복 한번이라도 더 쓰는 판인데 가뜩이나 비싼걸 특대형으로 하나 더 만들어야 했던 것이다.
이런저런 변수들을 생각하면, 컬럼비아 사고 진상조사에서 짜낸 비상시의 구조 계획은 십수일만에 뚝딱 완성되었다지만, 현실에서 직접 실행하는 것은 엄두가 나지 않는 계획이다. 결국 당시의 션 오키프 NASA 국장은 이런 구조 계획이 필요한 허블 서비스 미션을 싹 백지화하였으나, 허블 우주 망원경을 잃을 수 없던 과학자들과 관계자들이 그 유명한 허블 울트라 딥 필드 사진을 공개하며 여론을 급반전시키고 NASA 수뇌부와 연방 의원들을 설득하였고, 결국 오키프 국장을 몰아내고 마지막 서비스 미션 펀딩을 받아냈다. 다만, 디스커버리와 엔데버, 아틀란티스의 로테이션도 빠듯한 와중에, 너무도 복잡하고 돌발변수가 많은 구조계획 그 자체와 더불어, 백지화와 여론 반전 등의 더더욱 많은 변수가 추가되며 현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허블 수리 외에도 이런 아스트랄한 훈련을 거쳐야 했던 STS-125 허블 수리팀원, 구조대원[6]들은 다행히 실전에서는 이런 스킬을 써먹을 필요가 없었다. 발사 직후부터 경고가 뜨면서 많은 이들이 식겁하긴 했지만[7] 실로 실행할 일이 없어서 다행인, 아폴로 13호와도 비교를 불허하는 전대미문의 구조 미션이자 셔틀 시대의 마지막[8]을 화끈하게 장식했을 희대의 대기획이다.
이 미션은 영화 그래비티의 모티브가 되었다. 하지만 이 미션의 개요에 상당부분 기반한 현실 반영 지적에서 알 수 있듯이 허블을 수리하다가 ISS로 도망가고 다시 톈궁으로 도망가는 등의 내용은 실제 가능성이 0에 수렴한다.
5. 관련 문서
[1] 사령관, 조종사, 그리고 EVA를 수행하며 조난당한 7인을 구조선으로 모셔올 미션 스페셜리스트 2인. 당연하지만 현역 최고의 베테랑 겸 에이스로만 엄선한 4인이다.[2] 2015년 현재는 산소 공급력이 좋아져서 이 문제는 해결된 듯 하다.[3] 그래비티에서 톈궁에 도착한 순간에 계속 공기 마찰이 일어나는 연출을 생각하면 된다. 당장에라도 지구로 떨어질 위기란 말.[4] 참고로 STS-31 허블 전개 미션이 셔틀 프로그램의 역사상 최고고도 미션이다. 결국 이런 非ISS 미션은 이후의 프로그램에서 전면 배제되었다. 명분이야 잡다한 일 대신 ISS 건설에 집중한다는 것이다.[5] 로스앤젤레스 같은 대도시 근처로 떨어지면 답이 없다. 어떻게든 태평양/대서양/인도양 망망대해에 떨궈야 피해가 적을 것이다.[6] 일단 엔데버는 STS-126 미션을 STS-125보다 반년 앞선 2008년 11월에 치르고 왔다. 정비는 마쳤지만 아직 두달 후의 STS-127에 필요한 설비를 집어넣진 않은 상태에서 꼭 필요한 로봇 팔이나 추가로 필요한 선외활동 우주복, 좌석 등 꼭 필요한 설비들만 추려서 부착하고 앞서 STS-126을 뛰고 왔던 승무원들 중 조종사 둘과 미션 스페셜리스트 둘만 대기시켰다.[7] 참고로 구조 미션이 실행에 옮겨지면서도 허블 수리는 여력이 닿는대로 최대한 진행할 예정이었다.[8] 이 경우 아틀란티스는 확실히 폐기된다. 우주왕복선 프로그램을 꼴랑 디스커버리와 엔데버 두 대만으로 진행할 수가 있을리가 없다. 그리고 셔틀이 망하니 ISS 건설도 좌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