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FA 월드컵 골든글러브 FIFA World Cup Golden Glove Award |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fff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수여된 골든글러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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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발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Glove라는 표현대로 FIFA 월드컵 대회에서 가장 훌륭한 기량을 선보인 골키퍼에게 수여되는 상으로서, 1990년 위암으로 사망한 불세출의 골키퍼 레프 야신을 기리기 위해서 1994년 야신상(FIFA World Cup Yashin Award)이라는 이름으로 제정되었다.2010년 FIFA 월드컵에서 상의 이름이 월드컵 공식 스폰 아디다스의 명칭을 빌어 아디다스 골든글러브로 공식 변경되었다.[1] 하지만, 명칭이 변경되었더라도 전 세계의 축구팬들은 여전히 골든글러브보다 암묵적으로 '야신상'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아마도 미국 할리우드의 골든 글로브상과 헷갈려서 그런 듯 하다.
다행히도 2019년부터 발롱도르를 선정하는 '프랑스 풋볼' 지에서 매년 최고의 활약을 보여준 골키퍼에게 수여하는 상으로 레프 야신의 이름을 붙이기로 결정한다. 이로서 가장 권위있는 골키퍼 상에 야신의 이름이 남게 되었다. 자세한 것은 트로페 야신 참조.
대회 선방률, 선방 횟수, 페널티킥 선방률[2] 등을 모두 고려해 가장 뛰어난 평을 받은 골키퍼에게 주어지는데, 1994년 월드컵에서 신들린 선방 쇼를 보여줬던 미셸 프뢰돔만이 16강에서 탈락했음에도 이 상을 수상했고, 2002년 녹슨 전차 취급받던 독일을 준우승까지 이끈 올리버 칸, 2018년 벨기에의 4강을 이끈 티보 쿠르투아까지 빼면 나머지 골키퍼들은 모두 우승 팀 수문장이 트로피를 차지했다.[3]
팀별로 보면 독일과 벨기에가 2회,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아르헨티나가 1회 수상으로 전통적으로 우수한 골키퍼들을 꾸준히 배출해낸 국가에서 주로 가져가는 편이다.[4]
공교롭게도 에밀리아노 마르티네스를 제외한 수상자 모두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과 맞붙은 적이 있다. 초대 프뢰돔은 1990 이탈리아 월드컵의 조별예선에서, 2대 바르테즈는 2006 FIFA 월드컵 독일의 조별 리그에서, 3대 칸은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4강전에서, 4대 부폰은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16강전에서, 5대 카시야스는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8강전에서, 6대 노이어는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조별 리그에서, 7대 쿠르투아는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조별 리그에서 만났었다. 이들 중 야신상을 수상한 대회에서 대한민국과 직접 대결한 선수는 올리버 칸뿐이다.[5]
골든글러브 트로피는 2014 FIFA 월드컵부터 수여하기 시작했고 그 이전 수상자는 시상식에서 따로 트로피를 받지 않았다.
2014년에는 골키퍼의 중요성이 다시 부각되었다.
2. 역대 수상자
연도 | 국적 | 이름 |
1994년 | 미셸 프뢰돔 Michel Preud'homme | |
1998년 | 파비앵 바르테즈 Fabien Barthez | |
2002년 | 올리버 칸 Oliver Kahn | |
2006년 | 잔루이지 부폰 Gianluigi Buffon | |
2010년 | 이케르 카시야스 Iker Casillas | |
2014년 | 마누엘 노이어 Manuel Neuer | |
2018년 | 티보 쿠르투아 Thibaut Courtois | |
2022년 | 에밀리아노 마르티네스 Emiliano Martinez |
3. 저주(?)
이 상을 받은 수상자는 차기 대회의 토너먼트 경기에 출전할 수 없다. 야신상의 이전의 최우수 골키퍼 상을 수상한 선수들을 포함해서 1950년 수상자를 제외하고는 해당 징크스가 예외없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6] 대부분 월드컵 디펜딩 챔피언 징크스와 연관이 있다.- 야신상 수상자
- 미셸 프뢰돔 : 1994년 미국 월드컵 야신상 수상 이후 다음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대표팀에서는 발탁되지 않았다.
- 파비앵 바르테즈 :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야신상 수상 이후에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는 조별예선에서 탈락의 수모를 겪게된다.
- 올리버 칸 : 2002년 한일 월드컵 야신상 수상 이후에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대회이전에도 부상이 너무 잦은 탓에 옌스 레만에게 주전 골키퍼 자리를 내주면서 최악의 월드컵을 보내긴 했지만 3-4위전에 출전해 상대 공격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슛을 멋지게 막아내는등 독일을 3위로 이끌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 잔루이지 부폰 : 2006년 독일 월드컵 야신상 수상 이후에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대회 도중 부상으로 이탈하고 이탈리아는 조별예선에서도 탈락한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재출전해서 열심히 활약했음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이케르 카시야스 :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야신상 수상 이후에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최악의 실수를 하면서 스페인의 조별예선 탈락의 일등공신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이 월드컵의 칠레전을 끝으로 본인의 국제대회 커리어가 완전히 끝장나버린 건 덤.[7] 부폰과 달리 순수 실력으로 몰락한 거라 더더욱 비참해져버렸다.
- 마누엘 노이어 :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야신상 수상 이후에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조별예선 꼴지로 탈락하는 수모를 겪게 된다. 더군다나 조별예선 마지막 상대가 대한민국이었는데 2실점을 헌납하여 패배, 독일 축구 사상 최초의 조 최하위로 탈락했다.[8]
- 티보 쿠르투아 :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야신상 수상 이후에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는 조별예선 첫경기에서는 PK 선방으로 팀승리를 이끄는데 공헌하는데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두 번째 경기 모로코전에서 2실점을 헌납하여 패배하였고 세번째 경기 크로아티아전에서는 여러번에 선방으로 고군분투를 했지만 팀을 조별예선에서 통과시키는데는 아쉽게도 실패했다. 다만 팀 스쿼드가 노쇠화가 되었고 주축 선수들도 부상으로 이탈하고 선수들 간의 불화설도 있었던 탓에 본인의 입장에서는 억울하고 운이 좋지 않았을 뿐이다.
- 야신상 이전 수상자
- 세르히오 고이코체아 :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수상 이후에 다음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는 루이스 이슬라스에 주전 골키퍼 자리를 내줬다.
- 장마리 파프 :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수상 이후에 다음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이 열리기 전 은퇴.
- 디노 조프 : 1982년 스페인 월드컵에서 수상 이후에 다음 1986년 멕시코 월드컵이 열리기 전 은퇴.
- 제프 마이어, 우발도 피욜 : 각각 1974년과 1978년 대회에서 우승과 베스트 골키퍼를 차지했지만 차기 대회에서는 2차 조별리그에 탈락.
- 라디슬라오 마수르키에비치 : 1970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수상 이후에 다음 1974년 서독 월드컵에서는 조별리그 탈락.
- 고든 뱅크스 :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수상 이후에 다음 1970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팀이 8강에 진출하였으나 뱅크스는 식중독으로 인해 다음 경기에 결장할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되었고 8강 상대였던 서독에게 3:2로 패하여 탈락하게 된다.[9]
- 빌리암 슈로이프 : 1962년 칠레 월드컵에서 수상 이후에 다음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본선 진출 실패.
- 해리 그레그 : 1958년 스웨덴 월드컵에서 수상 이후에 다음 1962년 칠레 월드컵 본선 진출 실패.
- 줄러 그로시치 :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서 수상 이후에 다음 58 스웨덴 월드컵에서 조별리그 탈락.
- 프란티셰크 플라니치카 : 193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수상 직후 선수 은퇴.[10]
- 리카르도 사모라 : 1934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수상 이후에 1938년 프랑스 월드컵이 열리기 전 은퇴.
- 엔리케 바예스테로스 : 1930년 우루과이 월드컵에서 수상 이후에 1934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우루과이가 참가 거부함.
- 예외
- 로케 마스폴리 : 1950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수상 이후에 1954년 스위스 대회에도 출전하여 4강 진출.
4. 관련 문서
[1]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선수의 이름을 딴 상을 고작 돈 하나 때문에 명칭을 바꿔서 논란이 굉장히 많았다.[2] 전부 동률이면 마지막으로 출전 시간을 적용한다.[3] 다만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의 경우 만약 결승전에서 승부차기까지 갔더라면 독일이 우승하더라도 세르히오 로메로가 야신상을 가져갈 확률이 높았다.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당시 이운재도 비슷한 경우다.[4] 월드클래스 골키퍼들이 쉬지 않고 배출된 독일이 두 차례 수상했고, 이탈리아와 스페인 역시 역사적으로 세계구급 골키퍼들이 꾸준히 나오는 국가다. 프랑스는 이들의 임팩트에는 못 미치지만 리그 정상급 수준의 골키퍼들은 꾸준히 배출하고 있다. 그나마 벨기에가 임팩트가 적은 편이긴 한데, 장마리 파프와 미셸 프뢰돔은 네임 밸류가 부족했을 뿐 월드클래스라고 하기에 손색 없는 실력이었고 프뢰돔 이후에는 그다지 특출난 재능이 나오지 않다가 티보 쿠르투아가 계보를 이어받았다.[5] 이 대회에서 대한민국은 칸, 부폰, 카시야스와 전부 맞붙었다. 이 외에도 예지 두덱, 브래드 프리델, 비토르 바이아 등과도 맞붙는 등, 2002 월드컵에서 대한민국과 만난 거의 모든 팀들이 골키퍼가 매우 강력했다.[6] 다만, 제프 마이어와 우발도 피욜의 경우는 해당 대회의 2라운드가 토너먼트가 아닌 조별리그로 치러진 탓이 있다.[7] 칠레전에서는 미출전, 그 이후 국제대회인 유로 2016에서는 선수 명단에만 이름을 올렸을 뿐 다비드 데 헤아한테 밀려서 단 한 번도 출전하지 못했다.[8] 결정적으로 2번째 실점을 할 당시 본인이 골대를 비워놓고 공격에 가담하다가 오히려 주세종에게 공을 뺏기고 손흥민에게 쐐기골을 내줬다.[9] 특히 실점한 세 골 모두 뱅크스 대신 출전한 피터 보네티의 아쉬운 경기력 때문에 나온 실점이었기에 잉글랜드로서는 정말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10] 애초에 제2차 세계 대전 때문에 차기 대회가 12년 뒤에나 열리게 되어 참가 자체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차기 월드컵이 열린 1950년도에는 46세였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