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0px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
제1기갑기계화보병여단 | 제1기계화보병여단 | 제9기계화보병여단 | ||
제13기계화보병여단 | 제16기계화보병여단 | 제26기계화보병여단 | ||
제60기계화보병여단 | 제61기계화보병여단 | 제73기계화보병여단 | ||
※ 편제·직제·병과별 둘러보기: 육군의 편제 | ||||
독립여단 · 여단 | 해체된 독립여단 · 해체된 여단 |
제11기동사단의 예하부대 | |||||
제9기계화보병여단 | 제13기계화보병여단 | 제61기계화보병여단 | |||
포병여단 | |||||
※ 군 공통의 직할부대(본부근무대, 의무근무대 등)는 소속 부대 문단 참고 |
제61기계화보병여단 第六十一機械化步兵旅團 The 61st Mechanized Infantry Brigade | ||||||
'''ONE SHOT, ALL KILL!''' | ||||||
창설일 | 1952년 11월 8일(제58보병연대) 1953년 2월 7일(제61보병연대) 1981년(제61차량화보병연대) 1983년 6월 1일(제61기계화보병여단) | |||||
상징명칭 | 결전(決戰)부대 | |||||
소속 | 대한민국 육군 | |||||
상급부대 | 제11기동사단 | |||||
규모 | 여단 | |||||
역할 | 공격 부대, 전시 진격 | |||||
여단장 | 대령 OOO (0사 00기) | |||||
위치 | 경기도 양평군 | |||||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 육군 제7기동군단 제11기동사단예하 제61기계화보병여단. 별칭은 결전(決戰)부대. 여단본부는 경기도 양평군 옥천면에 위치하고 있었으나 현재는 해체된 제110기계화보병대대 자리로 이전했다.[1][2]2. 소개
20사단 예하 제61기계화보병여단 시절의 부대마크 |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11월 8일 강원도 양양에서 제58보병연대로 창설되었다.
이후 1953년 2월 7일 제61보병여단으로 개칭되었으며, 1953년 2월 9일 제20보병사단 창설 과정에서 예속되었다.
1978년 경기도 연천군에 주둔했으나 5사단과 자리를 바꾸면서 경기도 양평으로 부대이동하였으며, 1981년 보병여단에서 차량화보병연대, 1983년 차량화보병연대에서 기계화보병여단으로 개편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2019년 제20기계화보병사단이 해체되며, 제11기계화보병사단으로 개편, 배속되었다.
20사단 시절의 애칭은 화랑여단이었다. 하지만 11사단 예하로 개편되어 11사단의 화랑부대와 호칭이 중복됨에 따라 20사단 유일한 존속 여단이라는 명목하에 '결전여단'으로 개칭되었다.[3]
또한 옥천면 소재의 양평종합훈련장을 관리하고 있다.
현재는 주둔지를 해체된 110기보대대 주둔지로 옮겼다 양평군 옥천면 소재의 주둔지에는 임시로 양평경찰서가 들어왔다.
현재 K-2 흑표를 13대 초도 배치 완료하였다.
61여단의 교회도 낡은 판자로 되어있었는데 2013년에 다시 리모델링으로 깔끔해졌다.
여단을 중심으로 벽화 그리기를 자주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보통 대대의 벽을 그리는 작업을 했지만 2013년에는 양평의 지역사업을 위하여 면사무소와 연합하여 마을, 강가 다리를 벽화를 그렸다. 하지만 높은 분들에 의해 현재는 미완성 상태로 남아있고, 또한 소방차가 지나가야 할 길을 위해 마을을 전부 허물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2.1. 역사
- 제108기계화보병대대 철마
1983년 제61연대 3대대가 108기계화보병대대로 창설
1983년 20사단 108기보대대로 창설
1984년 12월 28일 K200장갑차 최초 실전배치 및 완편
2019년 12월 01일부로 11기계화보병사단 배속변경
- 제110기계화보병대대 사자
1981년 제61연대 1대대가 제206차량화보병대대로 창설
1986년 전반기 20사단 제206차량화보병대대가 20사단 제110기계화보병대대로 변경됨.
2009년 11월 30일 K21전투장갑차 최초 실전배치 및 완편부대
2019년 11월 30일 부대해체
- 제12전차대대 질풍
1954년 8월 29일 창설(강원도 양구: 동아일보 1955.09.13일자 창설기념식1주년 기사)
1966년 5군단 직할 전차대대로 중부전선에 위치함(1966.03.21일자 경향신문 육군첫도입 전차TF 편성훈련 기사 (기갑위주 편제))
1968년 4월 1일 (1,2기갑여단 창설로 인한 전차대대 해체( 3,9,12전차대대 해체함)
1972년 재창설함 (6군단 직할전차대대)(1972년 3,9,12전차대대 재창설)
1970년대 6군단 직할전차대대 임무 수행
1983년 연천 백의리에서 양평으로 부대 이동함 .
1983년 6군단 직할전차대대에서 20사단 예하 전차대대로 예속변경.
1987년 K1전차 배치 시작 1989년 2중대를 끝으로 K1전차 완편함.
- 1995년 하반기 K242 4.2인치 박격포 차량 실전배치
- 1995년 하반기 화기소대(대대지원 4.2인치 박격포) 창설
- 2001년 12월 K1A1전차 최초 실전배치 및 완편
- 2014년 6월 29일 K2전차 최초 실전배치 및 완편
- 2015년 2월 2일~13일 혹한기 훈련의 일환으로 K2 전차의 사격 및 기동 훈련을 실시. K2 전차의 최초 정규훈련
- 2019년 12월 01일부로 11기계화보병사단 배속변경
3. 편제
3.1. 여단본부
- 참모부
- 본부중대
- 통신중대
3.2. 제61기계화보병여단 군수지원대대 비전
부대 위치는 양평군 옥천면에서 21년 해체된 110기보대대주둔지 소재로 현재 61여단본부 주둔지를 함께 사용하고 있다.이전 20사단직할부대인 정비대대와 보급수송대대의 통합으로 창설되었으며, 창설대대장은 20사단 정비대대 마지막 대대장인 최성우 중령 창설 군수지원대대장직을 수행 하였다, 22년11월 03대 박민선 (육사61) 중령이 취임, 보직 수행중
61여단의 군수지원을 담당하고 있다.
최근 부대애칭이 솔연에서 비전으로 변경되었다.
3.3. 제12전차대대 질풍
{{{#!wiki style="margin:-0px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
제1전차대대 | 제3전차대대 | 제5전차대대 | 제6전차대대 | 제7전차대대 | 제8전차대대 | |
제9전차대대 | 제11전차대대 | 제12전차대대 | 제15전차대대 | 제16전차대대 | 제17전차대대 | |
제18전차대대 | 제19전차대대 | 제21전차대대 | 제22전차대대 | 제26전차대대 | 제28전차대대 | |
제29전차대대 | 제32전차대대 | 제33전차대대 | 제35전차대대 | 제36전차대대 | 제37전차대대 | |
제38전차대대 | 제39전차대대 | 제51전차대대 | 제52전차대대 | 제53전차대대 | 제55전차대대 | |
제56전차대대 | 제57전차대대 | 제58전차대대 | 제59전차대대 | 제80전차대대 | 제81전차대대 | |
제83전차대대 | ||||||
※ 편제·직제·병과별 둘러보기: 육군의 편제 | ||||||
독립대대 |
K-2 흑표전차가 전군 최초 보급 및 전력화된 부대이다.
2014년 K-2 흑표를 13대 초도 배치 이후 현재는 전량 배치 완료하였다.
제5대 대한민국 육군주임원사인 이태준 원사가 근무했다.
1954년 5군단예하 창설된 부대이다. 이후 1970년 6군단으로 예속변경되어 운용하다 1983년 20사단기계화사단 개편으로 6군단에서 20사단 61여단으로 예속 변경 주둔지를 이전하였다
2023년 유튜버 쯔양이 질풍대대를 공식 방문해서 대대장을 만나 경례하고 생활관도 둘러본 뒤 부대 내 식당에서 먹방 촬영을 했다. 먹방 후 K2 흑표까지 잘 구경하고 갔다. 이날 식단이 먹음직스러운 걸 넘어 상당히 잘 나왔는데 영상을 본 다수의 예비역과 현역 남성들은 짬밥이 이럴 리가 없다면서 쯔양이 방문한다고 병사식당을 변신시켰다는 반응을 보였다.
3.4. 제108기계화보병대대 철마
1952년 제58연대 3대대로 창설
1953년 제20사단 창설과 동시에 예속(제61보병연대 3대대)
1984년 12월 28일 K-200장갑차 최초 실전배치 및 완편
1987년 6월 1일 제108기계화보병대대로 개편
2010년 7월 26일 K-21장갑차 전력화
2019년 12월 1일부 제11기계화보병사단으로 배속변경
108기보대대는 61여단 중 제일 열악한 환경을 자랑하며 다 깨지고 부서고 금이 간 타일을 가진 욕실, 자주 망가지는 온수 보일러는 물론, 영내를 한바퀴만 쭉 돌아봐도 알겠지만 61여단 최악의 아웃풋을 자랑하는 대대이다.
과거 20보병사단 시절에 차량화, 기계화 사단 개편 과정에서 61연대 3대대를 계승한 부대이다.
보병사단 시절 대부분의 보병대대가 1983년 군단 예하 특공연대 창설 부대로 전출을 갔으며, 수도군단 700특공연대을 비롯 하여 701특공여단,705특공여단,706특공여단 창설의 모체는 20사단 보병대대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3.5. 제111기계화보병대대 무적번개
본래는 20사단 62여단의 소속이었지만 부대개편으로 62여단이 해체되면서 61여단의 예하대대로 통합되면서 11사단으로 넘어왔다. 신형막사로 되어 있어 최고의 시설을 자랑한다.
과거 20사단 보병사단 시절 62연대 1대대를 이은 차보대 시절 207+208(통합)차보대대를 계승한 부대이다
과거 MBC의 예능프로그램 '진짜사나이'에 출연한 부대이다.
함께 20사단 62여단 소속이던 109기보대대는 해체되었다.
4. 과거부대
- 제110기계화보병대대
5. 출신인물
5.1. 여단장
볼드체는 대장 진급이 된 여단장. |
역대 제61기계화보병여단장 | |||||
역대 | 이름 | 계급 | 임관 | 비고 | 기타 |
초대 | 김인철 | 예) 준장 | 육사 2기 | 前 여단장 | |
21대 | 이진삼 | 예) 대장 | 육사 15기 | 前 육군참모총장 | |
23대 | 김동진 | 예) 대장 | 육사 17기 | 前 국방부장관 | |
25대 | 함덕선 | 예) 중장 | 육사 20기 | 前 제11군단장 | |
26대 | 이유수 | 예) 중장 | 육사 20기 | 前 제7기동군단장 | |
48대 | 김창환 | 대령 | 육사 47기 | 前 여단장 | |
49대 | 박진국 | 준장 | 육사 48기 | 前 여단장 | |
50대 | 이경진 | 준장 | 학사 23기 | 現 수방사 참모장 | |
51대 | 한광철 | 대령 | 학군 33기 | 前 여단장 | |
52대 | 김영삼 | 대령 | 육사 53기 | 前 여단장 | |
53대 | 김희찬 | 대령 | 학군 36기 | 前 여단장 | |
54대 | 김현규 | 대령 | 3사 33기 | 現 제11기동사단 참모장 | |
55대 | 대령 | 現 여단장 |
5.2. 장교/부사관
5.3. 병
6. 기타
6.1. 근무환경
21.4월부로 시행된 시한부 경계작전태세 강화로 인해 여단본부 본부중대가 위병소, 초소근무 담당 / 통신중대가 상황, 당직하사, 불침번 담당 / 군지대대가 CCTV와 불침번 근무를 담당하게 되었다.21.10월부로 독신간부숙소(사자레스텔)와 부대 사이에 부대 울타리(철조망)을 설치해 위병소 근무강도가 완화되었다.
6.2. 훈련
7. 사건 사고
-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같은 사단 60연대, 62연대(구 62기보여단)과 함께 투입되어 주남마을 버스 총격 사건 등 학살에 관여하였다. 즉, 여단 자체가 다소 흑역사가 있어서 사단의 메인 부대로 광고하기엔 다소 부담이 있는 편. 특히 병원 기습총격 등 후티나 하마스 등의 과격주의 테러조직이나 할 법한 테러 행위를 했던 선배 장병들의 흑역사가 존재한다.[4][5]
8. 여담
[1] 21년 양평경찰서 건물 신축으로 인해 양평경찰서가 임시로 舊 61여단본부로 이전했다.[2] 舊 20사단 역사관은 본래 사령부 자리에 2사단이 들어오면서 61여단 본부로 같이 이전했다.[3] 해체된 20사단 애칭이 결전사단이었으며, 61여단이 결전사단의 정신을 이어받는다는 뜻이다. 8사단의 73여단이 26사단 해체 후 넘어오면서 불무리 이름을 물려받은 것과 같다고 보면 된다.[4] 다만, 이를 의식하는 것이 과하다는 의견도 있다. 왜냐하면, 해당 행위를 한 당대 장병들은 당사자 기준 병/간부 전원이 전역한데다 지금 7~90대 노령 내지 이미 사망했기 때문. 즉, 그들 중에서도 살아남아 있는 5.18 민주화운동 투입 전력이 있는 당시 생존 장병과 신군부 생존 인사들이 사죄할 영역이지 혹여나 역덕이 아닌 한 해당 사건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고 있을 남녀불문 현재 여단 소속의 젊은 장병들이 할 일이 아니란 것. 게다가 위에서 시켜서 했다면 "복지도 개판인데 왜 당사자는 없는 사과를, 위의 장군들 영달을 위해 군인본분을 벗어난 일을 시키냐?" 는 반감이 생길 수도 있는데다 현역 장병 일부가 개인적이든 추모를 하다 적발되면 정권에 관계없이 상층부 해석에 따라 정치 활동 관여로 처벌받을 수 있다.[5] 당장 다른 사례로, 타 기관 병역의무자였던 의경들만 해도 서울 쪽이나 광주지방법원 경호 담당 의경 출신자들은 20대 기준으로 광주 유족회를 매우 혐오하는 사람도 상당히 많다. 당장 경호하고 싶지도 않을 만큼 이미지가 나쁜 전두환을 현장 경호했던 의경 출신자들 등은 되려 한국의 역사교육 문제 등과 더불어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도 있는데다 되려 자신들이 억울하게 욕을 먹었던 기억 탓에, "왜 저런 나쁜 사람을 몇 푼 되지도 않는 국가 돈 받고 지키냐?" 라고 전형적으로 무관한 타인들을 비난한 5.18 유족회에 극단적 반감이 있을 인원이 꽤 있을 정도다. 만일 부대에서 현역 장병들을 추모행사에 참석시키는 짓을 한다면, 오히려 흑역사를 바로잡으려다 피해자들에 대한 증오를 잉태시켜 새로운 흑역사를 낳을 수 있단 점인데 그걸 부대 상층부와 국방부도 모를 리 없기에 어지간히 이변이 없는 한 그럴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