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6호 전차 티거의 운용국을 정리한 문서.2. 유럽
2.1. 중부유럽
2.1.1. 나치 독일
개인 소장 하이브리드 티거 321호차[1] |
2.1.2. 헝가리 왕국
헝가리 왕국군 소속 티거 |
헝가리 전차병들이 티거를 운용하기 위한 훈련을 마무리 짓고 실전 투입을 앞둔 7월 말, 3대의 티거가 추가로 헝가리군 왕립 제2전차사단에 배치되었는데 무려 생일선물로 준 것이라고 한다. 체코에서 출판된 <Obrněná technika. 6. Střední Evropa 1919-1945 II část.>에서는 이를 라즐로 홀로시-쿠티 소장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선물이었다고 적어놓았는데 이는 당시 2전차사단장이었던 졸탄 제디니 소장의 이름을 잘못 표기한 것으로 보인다. 홀로시-쿠티 소장의 직책은 보병사단장이었고 그의 생일은 8월 23일인 반면, 제디니 소장의 생일은 7월 22일이며 모델 원수가 제디니 소장의 실력을 높이 평가해왔던 것을 고려해보면 설득력 있는 설명이다.
링크
1944년 7월 갈리치아 전투에서 티거에 탑승한 에르빈 타르차이. 이후에는 독일군으로부터 판터를 수령하여 주로 판터에 탑승한다.
사단장의 생일 다음 날인 7월 23일, 헝가리군 왕립 제2전차사단은 스타니슬라프와 사르투니야 방면 전투에 기존의 티거 10대에 생일 선물을 더하여 12대의 티거를 투입하였고 이를 2개 중대로 나누어 에르빈 타르차이 중위와 야노슈 베드레슈 중위가 지휘를 맡았으며 특히 타르차이는 단 두 대의 티거로 30분 동안 소련군 T-34전차 14대를 격파하여 언덕 고지를 사수하는 전공을 세웠다. 그러나 연료와 정비 부품 부족으로 인한 손실은 어찌할 수 없어서 1944년 12월에 헝가리군이 보유한 잔존 티거는 4대 뿐이었다.
2.1.3. 폴란드 지하국
폴란드 국내군 노획 티거 |
2.2. 서유럽
2.2.1. 영국
보빙턴 전차 박물관 소장 131호차 티거 |
자력 기동이 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영화 퓨리에서 직접 출연하여 촬영을 하였고 이는 여러 밀리터리 동호인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2.2.2. 프랑스
프랑스군 소속 티거 |
소뮤아 기갑 박물관 소장 후기형 티거 221호차 |
다만 전후 그래도 나름대로 꽤 써먹었던 판터와는 다르게 티거의 경우에는 빠르게 퇴역시켰다.
프랑스의 티거.
소뮤아 전차 박물관의 티거 복원 계획을 알리는 트윗 |
2.3. 동유럽
2.3.1. 소련
바실리 킬레브닉이 수리한 100호차 |
쿠빙카 박물관 소장 독일 국방군 제424중전차대대 소속 6호 지휘전차 E형 100호차 |
재미있는 일화가 몇 가지 있는데, T-34 전차장으로 근무하던 알렉산드르 므나차카노프 소위[3]는 충각으로 티거 한대를 기동 불능으로 만드는데 성공한다. 전차에서 빠져나와 티거 해치에 수류탄을 까넣어 승무원만 몰살시키는데 성공한 그는 이 티거를 활용하면 독일군의 뒷통수를 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전차병들과 함께 티거를 수리해 독일군 진영으로 간 다음 독일군이 방심하는 틈을 타 접근해서 티거로 독일군을 몰살시킨다. 독일 부대를 전멸시키고 의기양양하게 돌아오는 그는 아군 진영으로 오자 티거를 보고 혼비백산한 아군이 포격을 가해 크게 부상당한다. 결국 팬티를 벗어 걸어 아군에게 항복 의사를 나타내 겨우 살아남고 후방으로 이송되었다고 한다.
또 다른 일화로 티거 전차에 돌격해 자폭해서 돈좌시킨 영웅적인 소련 병사 아나톨리 우골롭스키[4]를 기리기 위해 상부에서는 격파된 티거 전차(100호차)를 묘비삼아 무덤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전차 수리병이던 바실리 킬레브닉은 해당 티거가 궤도만 수리하면,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을 것이라고 알아봤고, 티거를 호시탐탐 노리던 그는 그를 따르는 전차병과 함께 티거를 수리하는데 성공한다.
그들은 철십자를 지우고 크게 붉은별을 그린 다음 레바킨 근위를 전차장으로 삼아 독일군에게 돌진해서 상당수의 대전차포와 토치카를 박살 냈다. 이 소식을 들은 수뇌부는 영웅의 무덤을 훼손했다고 노발대발했지만 다행히 정치장교가 말려줘서 28근위전차여단에 소속되어 싸울 수 있었다고 한다. 이후 1945년, 동프로이센 공세 전투에서 소실되었다.[5] 그밖에 몇몇 티거들이 노획되어 사용되었지만 레바킨 전차장의 100호차가 가장 오래 살아남은 것으로 알려져있다.
졸지에 묘비를 빼앗긴 우골롭스키의 무덤에는 이후 그들이 진짜로 격파한 다른 티거를 대신 가져다 두었다.
2.4. 남유럽
2.4.1. 루마니아 왕국
1944년 말 미하이 1세의 쿠데타 이후 연합국으로 전환한 루마니아 왕국의 루마니아 왕국군은 2대의 티거를 노획했다.2.4.2. 이탈리아 왕국
이탈리아 왕국군 소속 티거 |
3. 아시아
3.1. 일본 제국
초기형 티거를 타보는 일본군 장교들[6] |
1944년 2월, 티거 두 대와 판터 D형 하나가 보르도 항으로 이송되었고 일본 측에선 영수증까지 작성했지만 서술했듯 수송할 방법 자체가 존재하지 않아서 그해 여름까지 그 티거는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고 한다. 일본에서도 이미 대금을 양도한 물건을 차마 환불해달라는 말을 하기는 뭐했던지 구입한 2대분은 독일이 양도해서 서부전선 어딘가로 보냈다고 한다. #
다만 일본이 티거를 자국까지 수송하는 데 성공했더라도 전황에 별 영향은 끼치지 못했을 것이다. 원산지인 독일이 충실하게 증명했지만 전쟁은 결전병기의 원맨쇼로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당장 독일군도 1천여대가 넘는 티거를 투입했음에도 불구하고 패망을 막지 못했다. 단 두대의 티거로는 큰 의미가 되진 못했을 것이다. 물론 태평양 어디 정글 한복판에서 갑자기 티거가 튀어나온다면 미군이 충격먹겠지만, 곧 폭격으로 고철덩이가 될 것이다. 게다가 일본군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당시 일본의 수준은 티거와 같은 중전차를 제대로 운용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기술력은 종전까지 겨우 M4 셔먼하고 동등한 치토 같은 전차를, 그것도 2대만 완성하는데 그친 수준에다가 중전차 운용 경험은 오로지 91식, 95식 중전차 뿐에 실전도 거치질 못했고, 중전차 설계를 포함한 전체적인 전술교리는 그야말로 구시대적인 개념인데다가 설상가상으로 자원까지 모자랐기에 보급 역시 처참했기 때문이다. 위에서도 설명했듯 티거는 연료를 무지막지하게 잡아먹는데, 그나마 루마니아라는 기름셔틀이 있었던 독일과는 달리 당장 기름이 떨어져서 해군도 전력으로 전개하지 못하고 미국에게 섬을 뺏기게 되는 일본이 가뜩이나 연비가 떨어지는 중전차를 기용할 이유는 더더욱 떨어진다.
그럼 티거를 기술적으로 역설계하거나 기술을 이전받는 식의 시도를 노리는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딱히 성과는 없었을 것이다. 일본은 설계도가 있어도 이상한게 튀어 나온건 둘째치고, 일본은 기술력이 항공기와 함선에 집중되어 있어서 육군 장비는 찬밥이나 먹는 상황이었던 데다가, 설계도만 있는거하고 실제 부품이 있는거하고는 차이가 존재한다. 그리고 일본은 티거는 못가져갔지만 잠수함을 동원한 일본-독일 군사교류 프로젝트인 야나기 작전으로 전투기 기관포를 포함해서 여타 무기 실물들을 수입해간적이 있는데, 그것들 거의 다 제대로 된 복제는 커녕 데드카피 수준의 제품들마저 모조리 실패하고 수입해간 실물들만 태평양 전쟁 말기까지 마르고 닮도록 써먹다가 손망실한다. 기관포 정도의 물건도 기술수준이 안되어서 제대로 복제 못했는데, 티거의 88mm포를 복사하는것은 불가능하다. 당시 티거를 일본으로 옮겨가는데 성공했다 하더라도 일본 독자적인 중전차 개발은 현실의 치토 전차나 치리 전차가 했던 진행도에서 크게 나아가지 못했을것이다. 심지어 티거가 활약한 주 전장은 유럽의 평지였지, 일본군의 주 전장이었던 중국의 산악지대, 동남아시아의 정글이 아니었다. 이처럼 지형에 따른 적응과정과 현지화 과정 역시 한세월이 걸렸을 것이다.
수리 및 유지보수 문제도 발목을 잡는데 일본보다는 사정이 매우 나았던 독일도 연료 부족에 골골거리면서 전장에서 기관계에 문제가 일어난 티거를 견인해 수리할 여력이 되지 못해 폐기하는 일이 잦았는데 일본의 사정은 그보다 훨씬 더 열악했다. 일본의 여력으로는 독일에서는 간단한 수리로 해결됐을 사소한 문제라도 문제가 발생했을 시 제대로 수리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웠을 것이다.
결정적으로 일본의 치하 이상 체급의 중전차들의 행보를 고려했을 때, 티거 역시 전쟁이 끝나는 그 날까지 본토결전병기, 기껏해야 전쟁 말기에 무의미한 돌격으로 인해 손망실당하거나, 아무것도 안하고 짱박혀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게다가 본토방어에 전념한다고 해도 미국 전차를 만날 상황은 최소 45년 초반 이후일텐데 그때면 M26 퍼싱과 T28, T29 같은 더 강력한 포를 탑재한 시제 중전차들, 심지어 만주와 독일의 기갑부대를 박살내고 내려온 소련의 IS-3과 T-44까지 만나야 했다.
결과적으로 이때의 기록 덕분에 고증과 관계없는 게임에 일본이 등장하면 프리미엄 딱지 붙어서 등장한다.
4. 아메리카
4.1. 미국
1943년 미군이 튀니지에서 노획한 501중전차대대 소속 티거 712호차 |
포트 베닝 미 육군 기갑 기병 박물관 소장 712호차 |
4.2. 캐나다 자치령
캐나다군이 노획한 티거 |
[1] 본래 문스터 전차 박물관이 잔해를 복원해 소장하던 차량이였으나 개인 소유주로 이전되었다.[2] 추축국으로만 한정짓는다면 유일한 예이다. 일본은 구매의사는 밝혔고 돈도 지불했지만 현실적인 문제로 실제로 운용해본 적은 없었기 때문.[3] 전후 소장으로 진급한다.[4] 이 병사는 이 공로로 소비에트연방영웅 칭호를 추서받았다.[5] 이때 공교롭게도 독일군도 노획한 T-34들을 동원하고 있었다.[6] 전차장석에 있는 사람은 주독 일본대사였던 오오시마 히로시다.[7] 2대전 시기의 일본 기갑차량 관련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일본군에게는 중전차라고 부를 물건은 아예 없었고, 나머지 기갑장비들 역시 타국에 비해 약간 떨어지는 감이 있었다. 다만 이는 일본군의 주 전투지역은 미군이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전까지 중국과 만주 일대에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전차의 필요성과 투입할만한 지형이 많이 없어서 기갑장비에 대한 연구와 필요성이 상당히 떨어졌고 해군력이 훨씬 중요했기에 이렇게 동맹국의 뛰어난 전차를 수입하여 기술을 이전하는 식의 시도를 한 것이다.[8] 비단 잠수함 뿐만이 아니라 수송선에서도 전차만한 무거운 물건을 운송하기는 쉽지 않은지라 독일은 만들어둔 전차를 운송할 수단이 없어서 본토에 쌓아두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