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27 18:28:21

1964 AFC 아시안컵 이스라엘

1964년 AFC 아시안컵에서 넘어옴
파일:AFC 아시안컵 로고_좌우.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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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
홍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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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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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
이스라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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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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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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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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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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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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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에미리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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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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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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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1
미정

[1] 본선 진출 16개국.[2] 본선 진출 24개국.[3] 2024년 개최.
같이 보기: 역대 AFC 아시안컵, 역대 UEFA 유로, 역대 코파 아메리카, 역대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역대 CONCACAF 골드컵, 역대 OFC 네이션스컵 }}}}}}}}}
1964 AFC 아시안컵 이스라엘
AFC Asian Cup Israel 1964
1964 גביע אסיה בכדורגל
대회기간 1964년 5월 26일 ~ 6월 3일
개최국 파일:이스라엘 국기.svg 이스라엘
본선 진출팀 4개팀
대회 결과
우승 이스라엘
준우승 인도
3위 대한민국
4위 영국령 홍콩
수상
득점왕 파일:인도 국기.svg 인더 싱
파일:이스라엘 국기.svg 모르데하이 슈피글레르
이전·이후 대회
1960년
대한민국
1964년
이스라엘
1968년
이란
1. 개요2. 지역예선
2.1. 서부지역 예선2.2. 중부지역 예선2.3. 동부지역 예선2.4. 본선 진출팀
3. 결승 리그
3.1. 1경기 이스라엘 1 - 0 홍콩3.2. 2경기 대한민국 0 - 2 인도3.3. 3경기 이스라엘 2 - 0 인도3.4. 4경기 대한민국 1 - 0 홍콩3.5. 5경기 인도 3 - 1 홍콩3.6. 6경기 대한민국 1 - 2 이스라엘
4. 결과

[clearfix]

1. 개요

1964년 5월 26일부터 6월 3일까지 이스라엘에서 개최되었다.

개최된 경기장는 기바트 람 스타디움, 라마트 간 스타디움, 블룸필드 스타디움 그리고 야파로에서 개최되었고 총 6경기로 지역예선을 통과 한 4개국(4강)이 본선에 진출하였다.

개최국 이스라엘[1]이 자동 진출하게 되었다.[2]

이때도 공식 명칭은 아시안 네이션스 컵 1964였다.

참고로, 현재 이스라엘 축구 협회UEFA 소속이기 때문에 이스라엘에서 열린 아시안컵은 이 대회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남게되었다.

2. 지역예선[3]

당초 예선전은 중부지역이 1, 2로 나뉘고, 동부지역, 서부지역으로 총 4개의 지역으로 진행될 예정이었다.
  • 서부지역 : 아프가니스탄, 실론, 인도[4], 이란
  • 중부지역 1 : 버마, 말레이시아[5], 파키스탄, 싱가포르
  • 중부지역 2 : 캄보디아, 홍콩[6], 인도네시아,
    남베트남[7], 태국
  • 동부지역 : 일본, 필리핀, 대만[8], 대한민국(디펜딩 챔피언)
그러나 중부지역 1은 말레이시아를 제외한 나머지 팀이 모두 기권을 하여 말레이시아가 중부지역 2로 넘어가서 예선을 치르게 되었다. 특히 파키스탄과 이란은 정치적으로 인도와 경기를 할수 없다고 기권하였다. 정작 파키스탄은 예선도 인도와 치르지 않음에도...
최종적으로는
  • 서부지역 : 인도, 아프가니스탄, 실론, 이란
  • 중부지역 : 홍콩, 남베트남, 말레이시아, 태국, 캄보디아 왕국, 인도네시아, 버마, 파키스탄, 싱가포르
  • 동부지역 : 대한민국(디펜딩 챔피언), 일본, 필리핀, 대만

2.1. 서부지역 예선

아프가니스탄, 이란 그리고 실론이 기권하면서 인도가 자동으로 본선에 진출하였다.

2.2. 중부지역 예선

캄보디아, 인도네시아가 기권으로 출전하지 않게 되었으며, 말레이시아가 이쪽으로 넘어오게 됨에 따라, 4팀이 풀리그로 경기를 치르게 되었다.[9] 기간은 1963년 12월 7일~14일. 장소는 남베트남 사이공의 공화국 경기장.
경기결과 원정
파일:영국령 홍콩 기.svg 홍콩 3 - 3 파일:태국 국기.svg 태국
파일:베트남 공화국 국기.svg 남베트남 5 - 3 파일:말레이시아 국기.svg 말레이시아
파일:말레이시아 국기.svg 말레이시아 3 - 1 파일:태국 국기.svg 태국
파일:베트남 공화국 국기.svg 남베트남 1 - 4 파일:영국령 홍콩 기.svg 홍콩
파일:영국령 홍콩 기.svg 홍콩 4 - 3 파일:말레이시아 국기.svg 말레이시아
파일:베트남 공화국 국기.svg 남베트남 3 - 0 파일:태국 국기.svg 태국

초대 개최국 홍콩은 중부지역에 오면서 본선 진출이라는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예선 첫 출전의 태국과 비겼지만, 이후 홈팀 남베트남과 말레이시아를 상대로 4골을 넣으며 연파하였다. 남베트남은 말레이시아와 태국을 이겼음에도 홍콩에게 4-1의 참패를 당해버리는 바람에 3회 연속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첫 출전의 태국은 첫 경기만 의외의 선전을 했지만, 이후 두 경기에서 3실점 패배로 본선진출에 실패했다. 공교롭게도 전경기 3실점. 북보르네오와 사라왁 지방을 편입하여 새로운 나라로 탄생한 말레이시아는 이번에도 베트남을 넘지 못하며 본선 진출에 실패한다.
순위 국가 경기수 득점 실점 승점
1 파일:영국령 홍콩 기.svg 홍콩 3 2 1 0 11 7 5
2 파일:베트남 공화국 국기.svg 남베트남 3 2 0 1 9 7 4
3 파일:말레이시아 국기.svg 말레이시아 3 1 0 2 9 10 2
4 파일:태국 국기.svg 태국 3 0 1 2 4 9 1

홍콩이 본선에 진출하였다.

2.3. 동부지역 예선

일본, 대만 그리고 필리핀이 기권하면서 대한민국이 자동으로 4강 본선 아시안컵에 진출하였다. 필리핀은 A팀을 구성하지 못해서(...) 기권했다고 한다.

2.4. 본선[4강] 진출팀

국가명 진출 자격 진출 자격 획득일 진출횟수 최근 진출 최고성적
파일:이스라엘 국기.svg 이스라엘 개최국 - 3회 1960 준우승
[ISR]
파일:인도 국기.svg 인도[12] 서부지역 예선 승자 1963년 1회 첫 진출
파일:영국령 홍콩 국기.svg 영국령 홍콩 중부지역 예선 승자 1963년 12월 14일 2회 1956 3위
[HKG]
파일:대한민국 국기(1949-1997).svg 대한민국 동부지역 예선 승자 1963년 3회 1960 우승
[KOR]

3. 결승 리그[4강]

지난 대회와 동일하게 풀리그로 치러졌다.

3.1. 1경기 이스라엘 1 - 0 홍콩

1964년 5월 26일 16:30 라마트간 스타디움
2만 5천명의 홈펜의 응원을 안고 첫우승을 노리는 이스라엘은 후반에야 터진 스파이글러의 골로 신승을 거뒀다.

3.2. 2경기 대한민국 0 - 2 인도

1964년 5월 27일 16:30 하이파 유니스폴 스타디움
예선을 거치지 않은 팀간의 대결로 첫 출전의 인도와 대회 3연패를 노리던 대한민국은 시작하자마자 아팔라주의 골에 멘붕을 겪었고 후반에도 인더 싱의 골로 인도의 완승으로 끝났다.

3.3. 3경기 이스라엘 2 - 0 인도

1964년 5월 29일 16시 30분 야파 불룸필드 스타디움
1승 팀간의 대결로 사실상의 결승전이었던 이 대결에서 스파이글러는 대화 첫 PK를 성공시키며 앞서나갔고 아하로니의 쐐기골로 이스라엘은 사실상 우승을 확정짓게 된다.

3.4. 4경기 대한민국 1 - 0 홍콩

1964년 5월 30일 16시 30분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 스타디움
첫 경기 충격패를 당한 대한민국은 홍콩을 상대로도 공격이 풀리지 않았고 박승옥의 골로 간신히 승리하여 우승의 마지막 불씨를 살렸다. 홍콩은 2패로 우승이 좌절되었다.

3.5. 5경기 인도 3 - 1 홍콩

1964년 6월 2일 16:30분 야파 불룸필드 스타디움
시작하자마자 리쿽컹의 골로 홍콩이 앞서가며 반전을 예고했지만 싱, 사마자파티, 고스와미의 연이은 골로 인도가 손쉽게 승리를 했다. 승점 4점을 획득한 인도는 5골 3실점으로 대한민국이 이스라엘에게 승리를 거둬주길 바랬다.

3.6. 6경기 대한민국 1 - 2 이스라엘

1964년 6월 3일 16시 30분 라마트간 국립 스타디움
인도와 이스라엘의 승점이 4점. 대한민국은 2점. 대한민국이 승리를 하게되면 세팀이 승점 4점이 되어 득실로 우승을 결정해야하는 상황이었다. 인도 역시 대한민국의 승리가 간절했고 이미 두번의 대회를 준우승을 한 홈팀 이스라엘은 무승부만 거둬도 우승이 확정되는 상황. 경우의 수를 따질 필요도 없이 이스라엘은 전반에만 레온과 티시의 골로 2-0으로 앞서 나갔고, 후반에 이순명의 골로 따라간 대한민국이지만, 역부족이었다. 이렇게 이스라엘은 2전 3기만에 첫 우승을 거두게 된다.
순위 국가 경기수 득점 실점 승점
1 파일:이스라엘 국기.svg 이스라엘 3 3 0 0 5 1 6
2 파일:인도 국기.svg 인도 3 2 0 1 5 3 4
3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3 1 0 2 2 4 2
4 파일:영국령 홍콩 기.svg 홍콩 3 0 0 3 1 5 0


1964 AFC 아시안컵 우승
파일:이스라엘 국기.svg
이스라엘
첫 번째 우승

이스라엘이 전승 무패로 첫 우승이자 영원히 마지막 우승을 차지하였다. 영원히 마지막 우승인 이유는 이후 이스라엘이 중동과의 마찰로 인해 AFC에서 쫒겨났기 때문이다.

사실 이 대회에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첫 경기의 불과 4일 뒤 치러진 1964년 도쿄 올림픽 축구 예선 남베트남과의 경기로 인해 B팀을 구성하여 내보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때까지만 해도 올림픽 축구는 A대표팀이 참가하는 대회였기 때문에 아시안컵보다 우선순위가 높을 수밖에 없었다.[16]

이후 1988년 아시안컵 예선에선 B팀을 내보냈다가 가까스로 10개국(10강) 본선 아시안컵에 진출, 1992년 아시안컵 예선은 아예 실업&대학 선발을 내보냈다가 태국에 패해 8개국(8강) 본선 아시안컵에 진출에 실패했다.

4. 결과

순위 국가 경기 득실 승점 비고
1 이스라엘 3 3 0 0 5 1 +4 6 우승
2 인도 3 2 0 1 5 3 +2 4 준우승
3 대한민국 3 1 0 2 2 4 -2 2 3위
4 홍콩 3 0 0 3 1 5 -4 0 4위
  • 득점왕 : 모르데차이 스파이글러(이스라엘), 인더 싱(인도) 2골


[1] 이 시절 이스라엘은 1956~60아시안컵 준우승, 1964아시안컵 우승하며, 자국 클럽팀으로 아챔 우승 3회, 준우승 1회1970월드컵 12위를 기록한 강팀이었다.[2] 대한민국이 디펜딩 챔피언 자격으로 자동으로 4강 아시안컵에 진출한 것으로 몇몇 알고 있으나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는데, 사실 대한민국은 동부지역 예선에 참가했다가 상대팀들이 전부 기권하는 바람에 운 좋게 자동으로 진출하게 된 것이다.[3] 1956 ~ 1964 아시안컵은 지역예선에서 본선 아시안컵에 들어 갈 수 있는 자리는 단 4자리(4강) 아시안컵으로 현재 24자리 아시안컵 보다 아시안컵에 들어가기가 더 어려웠던 시절이었으며, 현재처럼 인터넷도 없이 상대팀과 전력을 분석하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지금과 비교하면 프로축구리그가 없던 국가들도 있었다.(유로도 첫 대회인 1960년 부터 1976년 대회까지 유로에 들어 갈 수 있는 자리가 단 4자리(4강) 유로 대회로 현재 24자리 유로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려웠던 시절이었다.)[4] 1951년과 1962년 아시안게임 축구 두 대회 금메달(우승)팀이었으며, 아시안게임 축구는 1998년까지 A매치 대회였다.[5] 1963년 말레야 연방에서 국토와 국명이 바뀌었다. 말레이시아는 1년전 말라야 시절에 1962 아시안게임 축구 대회 동메달전(3,4위전)에서 남베트남을 이기고 동메달(3위)를 기록했다. 아시안게임 축구는 1998년까지 A매치 대회였다.[6] 당시 홍콩은 지난 1954아시안게임 축구 대회 5위를 기록한 아시아의 강호였고, 1956아시안컵에서 우승국 대한민국과 2:2 무승부로 승점 1점을 얻으며 56 아시안컵 3위, 1958아시안게임 축구 대회 6위를 기록한다. 아시안게임은 1998년까지 A매치 대회였다.[7] 이 시절 남베트남은 2년전 1954 아시안게임 축구 대회 7위, 1956 호주 맬버른 올림픽 지역예선까지 통과하였고, 1958 아시안게임 축구 대회 7위, 1962 아시안게임 축구 대회 4위를 기록할 정도로 강호였다. 아시안게임 축구는 1998년까지 A매치 대회였다.[8] 1954년과 1958년 아시안게임 축구 두 대회 연속 금메달(우승)팀이었으며, 아시안게임 축구는 1998년까지 A매치 대회였다.[9] 지난 대회에선 동부지역에서 예선을 치른 홍콩이 어째서 중부지역으로 온건지 의문.[4강] [ISR] 1956, 1960[12] 1951년과 1962년 아시안게임 축구 두 대회 금메달(우승)팀이었으며, 아시안게임 축구는 1998년까지 A매치 대회였다.[HKG] 1956[KOR] 1956, 1960[4강] [16] 물론 2차 세계대전 이후로 미루어진 1950년에 월드컵이 다시 시작되고 올림픽 축구는 유럽과 남미팀들에게는 메이저 대회로 평가받지 못하게 되었지만 남미팀이 참가만 하면 되는 코파 아메리카와 아시아팀끼리 지역예선 후 진출하는 아시안컵과 달리 올림픽도 지역예선을 거쳐야하며 유럽팀들의 올림픽 진출 티켓이 월드컵에 배정된 13장보다 절반이 부족한 6장이지만 유럽과 남미의 유망주들과 멕시코가 단골로 진출할 정도로 올림픽 축구도 아시안컵보다 실질적으로 낮은 대회가 아니며 그동안 아시아팀이 올림픽에서 메달을 획득한 것도 1968년 일본과 2012년 한국의 동메달이 전부일 정도로 쉽지 않은 대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