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8-21 14:56:53

힐탑트레져

힐탑아파트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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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HillTop.jpg
1동 전경
<colbgcolor=#000><colcolor=#bf9b30> 명칭 힐탑트레져
영문 명칭 HILLTOP Treasure Apartment
종류 아파트(1동), 연립주택(2동)
주소 서울특별시 용산구 UN빌리지길 200-16 (한남동)
완공 <colbgcolor=#000><colcolor=#bf9b30> 최초 완공 1968년 10월 10일
리모델링 2003년 12월
동수 2개동
층수 지하 3층, 지상 4~11층
세대수 84세대
주차대수 183대
면적 90.0㎡, 90.8㎡, 196㎡,
222㎡, 224㎡, 230㎡, 240㎡,
247.8㎡, 248.2㎡, 272㎡
건설 설계 안병의[1]
최초 시공 파일:현대건설 국문 로고.svg
리모델링 주머니건설(주)

1. 개요2. 연혁
2.1. 과거 : 힐탑아파트2.2. 현재 : 힐탑트레져
3. 특징 및 시설4. 교통
4.1. 버스4.2. 지하철
5.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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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남동 UN빌리지 안에 위치한 아파트이다.

옛 힐탑아파트를 리모델링한 1동(A동)과 옛 선라이즈빌라를 허물고 그 자리에 신축한 2동(B동)으로 구성된 고급 아파트 단지이다.

2. 연혁

2.1. 과거 : 힐탑아파트

파일:힐탑건설과정.png
힐탑아파트 건설현장[2]
힐탑트레져는 과거에 외인아파트 즉, 내국인을 위한 집이 아닌 외국인을 위해 지어진 아파트였다. 박정희 대통령이 집권을 시작한 1960년대부터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하면서, 정부가 초청한 기술자와 사업가 등 한국을 찾는 외국인이 날이 갈수록 늘어나자 이들이 머무를 숙소는 턱없이 부족해지기 시작했으며 특히 장기간 국내에 체류해야하는 각국 대사관직원, 주재원들에겐 호텔같은 숙소는 적합하지 않았다. 그래서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장기체류 외국인을 위한 외인아파트 건립을 계획했고 외인아파트를 통해 외국인 주택난 해결과 동시에 임대운영으로 외화도 벌어들일 수 있게 되었는데, 그 시작이 바로 힐탑아파트다.

주로 UN 관계자 및 미군들과 그 가족들을 거주시키기 위해 외자를 유치해서 지어진 아파트였으며, 대한주택공사(현 LH)의 주도로 1967년 3월 13일 착공하여 1년 7개월 간의 공사 끝에 1968년 10월 10일 완공되었으며 시공자는 현대건설이었다.[3]
파일:힐탑아파트.jpg
70년대 초반(추정)에 촬영된 힐탑아파트
LH 한국토지주택공사에서 소개하는 힐탑아파트
힐탑아파트는 지상 11층으로, 당시 10층을 넘긴 대한민국 최초의 고층아파트였으며 동시에 아파트에 처음으로 엘리베이터를 설치했다.[4] 덕분에 저층, 고층 가릴 것 없이 집에 출입하는 것이 편리해진 것은 물론이고 옥상에 정원과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를 만들어 공간을 더 알차게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참고로 옥상에 정원과 놀이터를 만든 것 역시 국내 최초라고 하며 지금도 최신사례를 잘 찾아보기 힘든 상당히 선진적인 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자동차 소음 및 일조량 부족 등 선호도가 떨어지는 1층을 비워놓고 2층부터 건물이 시작되는 필로티 구조도 과감하게 선보였다. 다만 1층이 완전 빈 것은 아니고 매점, 세탁실, 전화교환실 등 필수적인 부대시설이 일부 들어갔다. 특히 매점에서는 당시엔 구경조차 힘들었던 수프캔과 감자칩, 스파게티면 등 해외 식료품을 판매했다고 한다.

동 배치도 다소 독특한데, 一자형 혹은 복도식 ㅁ자형이 아닌 ㅅ자로 중간에 한번 꺾인 형태로 지어졌다. 건물을 꺾은 의도가 공식적으로 밝혀지진 않았지만 당시 옥수동 일대에 자리잡았던 무허가 판잣집들이 아파트 발코니에서 내려다 보이지 않기 위해서 그쪽을 등지게 하려고 꺾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이를 뒷받침하는게 힐탑아파트의 뒷면은 크게 뚫린 창문이 하나도 없고 아주 작은 창만 그것도 건물 뒤편이 적나라하게 보이지 않도록 뚫려있다. 여기서 건축적 의의가 생겨나는데, 큰 창이 뚫리지 않아 높은 장벽처럼 느껴질 수 있는 아파트 뒷면에 일정한 간격으로 단차를 주었고 그 단차 부분에는 좁고 긴 창을 내어서 한 덩어리처럼 보이지 않도록 의도했고 건설 당시 거푸집 안쪽에 새끼줄을 붙이고 콘크리트를 타설해서 외벽 표면에 굉장히 거친 질감을 표현해냈는데, 장인정신이라고 표현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고퀄리티를 자랑했다.

그동안의 아파트들은 내부면적은 10평이 채 안되고 화장실도 각 층 복도에 마련된 공용을 사용하던 것과 달리, 힐탑아파트는 내부면적이 19평형, 25평형, 33평형 3가지로 구성되었고 총 120가구였다. 집 안에 개별 화장실이 있었으며 종류에 따라 방이 1개부터 3개까지 있어 그 당시에는 엄청났던 크기였다.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도 각각 2,3,4인가구가 살기에 부족함이 없는 크기임을 생각하면 당시에는 어땠을지 어느정도 체감이 가능할 것이다.
각 세대 내부에는 중앙식 스팀난방과 TV설비, 자동식 전화, 화재경보기 같은 첨단설비가 국내 최초로 탑재되었고 거실 바깥쪽에는 폭 2.5미터의 넓은 발코니를 집마다 설치했다. 무늬만 발코니인 요새와는 달리, 힐탑아파트의 발코니는 창문으로 막히지 않고 야외에 노출되어 있었고 옆 집과의 칸막이가 낮아 발코니를 통해 음식을 나누는 등 이웃과의 교류까지 고려한 설계였다. ‘대한민국아파트발굴사’에 따르면 힐탑아파트를 설계한 건축가 안병의씨는 “남측으로 난 발코니는 숨 쉴 틈 없이 돌아가는 매일의 삶 속에서 작은 탈출을 시도할 수 있는 곳이다. 햇볕을 쬐고 식사를 한다. 옆집과 사이에 나있는 벽의 오프닝(공간)을 통해 이웃과 다양한 얘깃거리가 이루어진다. 화분을 놓거나 음식을 건네주고 받을 수 있고 직접 얼굴을 보며 얘기를 나눌 수도 있다.”라고 회고했다고 한다.

다만 운영방침상 내국인은 거주할 수 없다는 폐쇄성이 있고 아파트 내부도 실내에서 신발을 신는 서양문화에 맞춰 지어졌으며 1층에 외국인 전용매점이 있는 등 전반적으로 외국인에 맞춰진 설계 및 시설이라는 점에서 힐탑아파트는 “한국형 아파트”와 거리가 꽤 있는 편이었다.[5]

여담으로 힐탑아파트로 미군들의 수요가 몰리자 1972년 남산 자락에 외인아파트가 하나 더 만들어지는데, 남산의 경관을 해친다는 비판을 끊임 없이 받게 된다. 실제로 한남대교 부근에서 당시 남산을 찍은 사진들을 보면 그랜드 하얏트 서울 오른쪽에 비슷한 높이의 아파트 두 동이 남산을 막고 서 있었다. 결국 외인아파트는 1994년 두 동을 동시에 폭파시키는 방식으로 철거되었다. 당시 뉴스

2.2. 현재 : 힐탑트레져

파일:external/pds12.egloos.com/a0104861_496c5577d7fcf.gif
조감도
힐탑아파트는 대한주택공사에서 10년 이상 외국인들에게 임대로 운영하다가 1980년 그 앞에 선라이즈빌라와 함께 민간에 통매각했고 힐탑아파트를 인수한 민간업체는 분양을 시도했다가 포기하고 그대로 외국인들에게 임대를 내어주면서 계속 외국인아파트로 존속했다.

그러나 1990년대에 들어서 시설이 많이 낡으면서 삼성물산 건설부문과 손잡고 재건축을 하려했으나 건축규제로 인해 4층 이하로만 지을 수 있게 되면서 재건축을 하면 오히려 층수를 크게 낮춰야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졌다. 사업성이 나오지 않자 결국 삼성물산이 포기하고 떠나가면서 아파트는 다시 한번 매물로 나와 새주인을 찾게 되고 2002년 군인공제회가 힐탑아파트와 선라이즈빌라를 인수했다.

군인공제회는 답이 없는 재건축 대신 리모델링을 선택했고 2002년에 한 고급빌라 컨설팅업체의 자회사인 주머니건설을 시공자로 착공하였으며 2003년 완공했다. 6층짜리 선라이즈빌라는 완전철거 후 4층짜리로 재건축했고 층수가 높은 힐탑아파트는 리모델링하면서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한 현장에 재건축과 리모델링이 병행되었다. 힐탑아파트는 철근콘크리트 라멘조(기둥식 구조)로 시공된 덕분에 구조변경이 상당히 자유로웠고 집을 더 넓히기 위해 두 집을 하나로 합치는 등 많은 구조변경을 거쳐 120세대에서 65세대로 세대수가 크게 줄었다. 대신 내부면적은 최소 86평형에서 99평형까지 커졌다. 새로 지은 2동은 아예 모두 126평형으로 지어졌다.

서울시의 건축규제로 본의 아니게 한국 건축사에서 기념비적인 아파트가 사라지지 않고 리모델링을 통해 살아남게 되었지만, 아쉽게도 ㅅ자 형태 외에는 돌출 발코니라던가 외벽 질감표현, 노출형 비상계단, 옥탑 물탱크실 등 힐탑아파트의 특징적인 부분들이 완전히 사라져 더이상 찾아볼 수 없다. 그래도 68년 건설된 골조가 대부분 보존되었다는 부분을 높게 평가했는지 1동은 2013년에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힐탑트레져로 리모델링 후 재분양했을때는 내국인들에게도 분양해서 입주가 가능하다. 하지만 여전히 외국인 수요가 높다.

3. 특징 및 시설

1층에는 바베큐 파티를 할 수 있는 시설과 탁자, 정원이 있다. 입구 앞에는 주민 광장이 있다.

힐탑아파트 시절 주차장이었던 아파트 앞 지상부를 힐탑트레져에 오면소 녹지로 조성해 놓았으며 주차시설은 전부 지하로 넣어버렸다. 아파트에서는 이미지 때문인지 불법 주정차를 매우 강력히 단속하고 있다.

내부시설은 휘트니스 센터가 있다.

언덕 위에 있어서, 올라가다 보면 여러 주한대사관을 만날 수 있다.

4. 교통

4.1. 버스

4.2. 지하철

5. 기타

학부모들이 의외로 많이 찾지 않는 아파트이기도 한데, 가장 가까운 서울한남초등학교까지 통학시간이 20분이 넘기 때문이다.
[1] 당시 대한주택공사 건축실장이었으며 한국건축의 거장 김중업의 매제라고 한다.[2] 앞에 보이는 나즈막한 아파트는 힐탑아파트보다 1여년 늦게 지어진 ‘선라이즈’빌라로, 용도는 힐탑과 마찬가지로 외인아파트였다. 규모는 지상 6층에 30가구.[3] 당시 현대건설의 주 무대는 토목 공사였고, 고층건물 시공경험이 없는데다가 힐탑아파트에는 국내 최초로 시도되는 것이 많았기 때문에 시공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4] 미국 OTIS사의 제품을 사용했다고 한다.[5] 최초의 한국형 아파트는 1971년 입주한 여의도 시범아파트로, 힐탑아파트와 다른 점은 효율수익성이 떨어지는 필로티 구조를 없애고, 나홀로 아파트가 아닌 여러 동으로 이뤄진 단지 형식으로 만들어졌으며 전용매점이 단지내 근린상가로 확장되었다... 이런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