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3 20:02:52

화니백화점

화니백화점
FUNNY DEPARTMENT STORE
파일:화니백화점 로고.png[1]
<colbgcolor=#EE1F2D><colcolor=#fff> 정식 명칭 주식회사 화니백화점
영문 명칭 FUNNY DEPARTMENT STORE CO. LTD.
국가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설립 1977년 6월 20일
해체 1999년 6월 10일
주소 광주광역시 동구 충장로4가 14번지[2]
업종명 유통업
파일:구화니.jpg
1986년 촬영된 화니백화점 .파일:화니충장.jpg
1998년 화니백화점의 모습[3]

1. 개요2. 역사3. 몰락4. 폐업 이후

[clearfix]

1. 개요

광주광역시 동구[4] 충장로4가 14번지에 있었던 백화점. 당시 대표 번호는 062-223-7611.

2. 역사

1997년 화니백화점 광고
전남 나주시 출신 이연술 씨(1923~2003)가 지난 1945년 계림동에 ‘일성상회’라는 잡화점을 개점해 운영한 것이 시작으로 이를 키워 1966년에는 한때 광주광역시의 대표적인 시내버스 회사였던 삼양시내버스를 창립하고 1977년 6월 20일 충장로에 화니백화점을 개점하게 된다.

화니백화점은 지상 6층, 매장면적 1,900평 규모로 당시 호남지역에서 가장 큰 판매점이었고 광주 최초의 백화점이었다. 당시에는 압도적인 규모와 선진적인 서비스 덕분에 화니백화점은 광주, 전남사람들을 엄청나게 끌어모았고, 충장로랜드마크로 군림하게 된다. 1980년대부터는 연간 1천억원을 가뿐히 넘기는 높은 매출을 보이면서 광주지역 유통업계를 선도하는 1인자이자 향토기업이 되었다.

이후 1986년 충장로3가에 가든백화점(현 와이즈파크)이 개점하면서 기세가 한풀 꺾이긴 했지만[5] 함께 시장을 양분했다.

1992년에는 목포에 2번째 점포를 개점하였다.[6] 구.신안군청 바로 앞에 위치해 있는데 애초 문을 열 때부터 상권이 형성되기 어려운 곳에 자리를 잡은데다가 점포 크기도 지나치게 작았다. 화니백화점이 망하면서 쇼핑몰, 영화관 등의 용도로 쓰이다가 현재는 마트와 종교 시설로 쓰이고 있다.

3. 몰락

1995년, 광주역 앞 송원백화점과 서구 광천동 광주종합버스터미널신세계백화점이 차례로 개점하게 되면서 광주 유통업계가 격동하기 시작했다.

광주신세계는 당시 매장면적 6,400평이라는 거대한 규모[7]와 많은 브랜드매장을 자랑했으며, 송원백화점[8]은 매장면적 5,900평에 문화센터, 스포츠센터에는 수영장까지 갖추고 있었다.[9]

거기에 그치지않고 당시 업계 1인자였던 롯데백화점까지 충장로와 가까운 대인동 버스터미널 부지에 백화점 건립 허가를 따내면서 광주 최대 규모로 공사를 시작했고 뉴코아, 나산, 거평, 한신코아등등 대형유통업계들이 속속 광주에 진출하려고 문을 두드리면서 시장이 매우 치열해지기 시작했다.

특히 90년대 중반 이마트까르푸를 필두로 붐이 일었던 할인점 사업에도 뛰어들어 '화니마트'를 개점했지만 규모나 수준에서 대기업들의 할인점에 훨씬 못 미쳤고 결국 몇년 못가서 사라졌다.
파일:화니주월1.jpg
백운고가차도 뒤로 보이는 화니 주월점
넓은 면적을 가진 대형백화점들이 속속 등장하고, 특히 광주신세계가 불과 2년만에 광주지역 백화점 총 매출의 절반을 차지하면서 화니백화점은 매우 큰 타격을 받게 되었다.[10] 부랴부랴 본관 주변 땅과 상가들을 사들여서 증축과 신관[11] 건설을 통해 매장을 1천평 정도 더 넓혔지만, 그로 인해 늘어난 영업 이익이 매장을 넓히는데 들어간 비용에 못미치게 되면서 적자의 늪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주월동 백운고가차도 근처에 부지를 매입해서 그 자리에 지하 6층, 지상 9층 규모에 매장면적 7,400여평의 주월점을 짓기로 한다. 1997년 말 오픈할 계획이었고 화니백화점의 새로운 본점 역할을 하게 될 예정이었다.[12]

그러나, 1997년 한보 사태 이후로 국가신용도가 떨어진 탓에 화니백화점은 해외 투자 유치에 실패하면서 자금 마련에 큰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본격적으로 외환 위기가 불어닥치자 화니백화점이 그동안 주월점 건설과 본점 근방 부지 및 금남로 빌딩 매입, 마트 사업 등등 무리한 방어전과 사업 확장을 위해 발행했던 어음이 모조리 만기가 되어 한방에 날아오면서 결국 해를 넘기지 못하고 9월에 부도가 났다.

화니백화점은 화의신청을 통해 충장로 본관과 보유 부동산들을 매각해서 그 돈으로 주월점을 완공 후 개점해서 위기를 극복하려 했고, 최종적으로는 광주에 진출하려던 현대백화점 측에 주월점에 대한 투자 협상까지 했지만 현대백화점은 주월점의 운영권을 요구하면서 무산되었다.[13] 끝내 화의신청이 받아들여지지않아 1999년 폐업하고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당시에 발행한 화니 주월점 홍보물을 보면 수영장을 포함한 대규모 스포츠센터와 문화시설, 뷔페와 레스토랑, 지하에는 슈퍼마켓까지 조성할 예정이었다고 하니, 당시 문화센터와 푸드코트가 전부였던 신세계나 롯데[14]와 비교하더라도 더 다양한 시설에서 상당히 경쟁력이 있었고 본점을 이전함으로써 기존 금남,충장로 상권을 빼앗기긴 하지만 남구에는 백화점이 단 한 곳도 없기 때문에 고정수요 역시 충분했다.[15]

만약 화니백화점이 부도를 피하고 주월점을 정상적으로 오픈했더라면 오랜 역사를 가진 화니백화점의 인지도가 있기 때문에 신세계나 롯데에는 밀리더라도 대구의 대구백화점이나 대전의 백화점 세이 처럼 지금까지 향토백화점으로 건재했을 수도 있다.[16]

4. 폐업 이후

파일:충장 아트원.jpg
2014년 화니 본점 자리에 들어선 충장아트원
파일:광주남구종합청사.jpg
2013년 남구청사로 리모델링된 화니 주월점
화니백화점이 1999년 폐업한 후, 충장로 본점과 공사가 멈춘 주월점 건물은 모두 경매로 넘어가게 되었다. 본관은 잠깐동안 가구백화점으로 운영되다가 몇년 못가서 문을 완전히 닫았고 그 뒤로는 옛 위상이 무색하게 1층에 생활용품점과 폐업 떨이전이나 간간히 열리다가 2011년 철거된 후 충장 아트원 오피스텔이 들어섰다.[17]

공정률 87%에서 공사가 멈춘 주월점은 1999년 한 부동산 개발업체에 매각되어서 2000년 '메가트로'라는 이름[18]보세 의류 쇼핑몰 및 복합상가로 오픈할 했지만 저조한 분양률 때문에 내부 공사를 진행하던 중에 또 중단되었고[19] 그 뒤로 10년 동안 주인만 계속 바뀔 뿐 공사는 진행되지 못했다. 그 사이 백운광장 상권도 아예 맛이 가버렸다. 결국 2011년에 남구청캠코가 공공청사 위탁 개발사업을 체결하면서 칼을 빼들었다. 남구에서 105억에 건물을 매입하고 캠코가 리모델링 비용을 부담하는 조건으로 공사를 재개했고, 2013년 드디어 착공 이후 18년만에 공사를 마무리하면서 버려진 백화점 건물이 남구종합청사로 다시 태어났다.

2017년에는 지하1층부터 3층을 원래 용도인 아울렛으로 활용 중이지만 영업부진으로 점포들이 줄줄이 폐업해버렸다.(...)

파일:CA06A775-5939-4BDF-8609-C5079250CB42.jpg
10년전까지만 해도 백운광장의 흉물이었으나 남구청사가 된 이후로 이제는 백운광장의 새도약을 알리는 랜드마크 역할을 하는 중인데 2020년대에 들어서 미디어파사드, LED미디어월이 설치되는 등 점점 마개조를 당하고 있다.


[1] 해당 로고는 1977년 개점 때부터 파산할 때까지 사용되었다.[2] 現 충장아트원 오피스텔[3] 97년 부도 이후, 중저가 브랜드를 판매하는 상설할인매장으로 전환했고 일부 의류매장을 내보내고 가구점이 들어오면서 사실상 백화점으로써 명을 다하게 되었다.[4] 개점 당시 전라남도 광주시 동구[5] 이곳도 한때 연매출 1천억원을 넘길 만큼 정말 엄청나게 잘 나갔다.[6] 전주에는 한신코아백화점, 순천에는 뉴코아백화점이 오픈하면서 당시 광주지역 백화점들이 중소도시 지역에 진출을 했다. 화니는 목포에, 송원은 여수와 익산에 진출하였는데 지금은 대형 백화점들의 진출로 인해 전부 폐점한 상황[7] 사실 전국적으로 보면 당시에도 그리 큰 것은 아니였지만 화니백화점의 3배에 달하는 크기라 지역내에서는 충분히 압도적일 수 밖에 없다.[8] 지역건설업체인 금광기업 계열이자 송원대학교 재단을 소유한 송원그룹이 운영하던 백화점으로, 나중에 현대백화점에 위탁해 15년간 영업했고 지금은 NC백화점으로 영업중이다.[9] 당시 수영장이 딸린 백화점은 그야말로 전무후무해서 당시에 부자들이 놀러가는 백화점으로 유명했다.[10] 이때 롯데백화점은 아직 공사중이었다.[11] 충장로4가 10번지이다. 이 건물은 아직 남아있다.[12] 주월점이 본점 자리를 가져가면 기존 충장로 본점은 여성패션전문점으로 리모델링하려고 했었다.[13] 화니와 결별한 후 찾아간 곳이 송원백화점이었다. 송원백화점 역시 매출 부진으로 인해 자금난을 겪고 있었고 결국 1998년부터 현대백화점에 위탁경영을 맡기게 된다.[14] 롯데는 나중에 롯데시네마가 들어오긴 했다.[15] 주월점에서 차로 5분도 안걸리는 거리에 봉선동이 있으며, 지금은 아예 주소도 봉선동으로 편입되었다. 살아남기만 했다면 봉선동 학부모들의 수요는 충분히 독차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16] 다만 두 백화점 역시 2020년대에는 휴점 및 온갖 고전 상태이다. 이전처럼 지역에 기반을 둔 향토백화점들이 살아남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기에 부도를 피했어도 결국 단순한 수명연장에 그쳤을 가능성이 크다.[17] 증축으로 연결되었던 주변 건물들은 본점이 철거되면서 다시 분리되었고 아직까지 존재한다.[18] 아직도 남구청사의 옛모습을 기억할때 메가트로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19] 당시 분위기가 전국적으로 우후죽순처럼 보세 의류 쇼핑몰이 생겨났는데, 수요가 공급을 도저히 따라가지 못하는 바람에 1년을 넘기기 힘들었고 제대로 영업을 해보지도 못하고 부도를 맞는 곳도 수두룩했다. 메가트로도 그 중에 한 곳이었는데, 그 외에도 누죤(나산클레프), 워드존(현 충장 다이소), 프라이비트(현 충장 ZARA), 코밀(현 세종요양병원) 등이 잠깐동안 빛을 보고 사라졌다. 그나마 충장로에 가든백화점을 리뉴얼한 이프유와 밀리오레는 성공적이었다. 특히 밀리오레도 원래 우성건설에서 여기에 리베라백화점을 지으려고 착공까지 했으나 부도를 맞으면서 유통부문을 통째로 대우에 매각했고 대우 역시 얼마 못 가 그룹이 해체되면서 또 매물로 나왔고 당시에 잘 나가던 밀리오레가 인수한 덕에 겨우 개장한 것으로 꽤 복잡한 과거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밀리오레도 초반에만 반짝인기를 누리고 그 뒤엔 쭉 운영난을 겪다가 결국 2011년 이랜드에 매각하고 현재는 NC웨이브라는 이름으로 영업중이다. 저주받은 건물이라 카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