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의 행정구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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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하동도(河東道)는 당나라의 최상위 행정구역인 도(道) 중 하나이다. 오늘날 중화인민공화국 산서성 일대를 관할했다. 여기 적힌 정보들은 《구당서》 39권 지리지2과 《신당서》 39권 지리지3의 정보를 기준으로 한다.2. 하위 행정구역
2.1. 하중부(河中府)
2.2. 강주(絳州)
2.3. 진주(晉州)
2.4. 습주(隰州)
2.5. 분주(汾州)
2.6. 자주(慈州)
2.7. 노주(潞州)
2.8. 택주(澤州)
2.9. 심주(沁州)
2.10. 요주(遼州)
2.11. 북경태원부(北京太原府)
남북조시대까지 병주(幷州), 태원군(太原郡)으로 불린 곳으로 수나라 때 주현제를 실시하면서 병주가 되었다. 양제가 즉위한 뒤 대업(大業) 3년(607년) 군현제를 실시하면서 태원군으로 개편되었다.수나라 말인 617년 태원 유수였던 이연은 여기서 거병하고 다음해에 당나라를 세웠다. 측천무후는 스스로 제위에 오른 뒤 천수(天授) 원년(690년) 이곳에 북도(北都)를 세웠으며, 신룡(神龍) 원년(705년) 중종의 중조에 따라 북도는 폐지되었다. 개원(開元) 11년(723년) 병주에 북도(北都)를 다시 세웠으며, 병주는 태원부(太原府)로 승격되었다. 천보(天寶) 원년(742년) 북도를 북경(北京)으로 개칭했다가 상원(上元) 2년(761년) 해당 명칭을 폐지했고 머지않아 다시 북도라고 하였다.
2.12. 대주(代州)
2.13. 울주(蔚州)
2.14. 흔주(忻州)
2.15. 남주(嵐州)
2.16. 헌주(憲州)
2.17. 석주(石州)
2.18. 삭주(朔州)
북제 때 설치된 주로 수나라에서 양제가 즉위한 뒤 대업(大業) 3년(607년) 군현제를 실시하면서 대군(代郡)으로 개편되었다가 마읍군(馬邑郡)으로 개칭되었다.수나라 말 유무주는 이곳에서 태수 왕인공을 살해한 뒤 반란을 일으켰다가 무덕(武德) 4년(621년) 당나라에 의해 진압되었으며, 당나라는 유무주를 토벌한 뒤 삭주를 설치했다. 천보(天寶) 원년(742년) 군현제를 실시하면서 마읍군으로 개편되었다가 건원(乾元) 원년(758년) 주현제로 회귀하면서 다시 삭주가 되었다.
2.19. 운주(雲州)
2.20. 선우도호부(單于都護府)
자세한 내용은 선우도호부 문서 참고하십시오.[1] 무덕(武德) 3년(620년) 태주(太州)를 설치했다가 무덕(武德) 6년(623년) 태주를 폐지하면서 다시 병주의 속현이 되었다.[2] 무덕(武德) 3년(620년) 분주(汾州)의 속현이 되었다가 무덕(武德) 6년(623년) 병주의 속현이 되었고 이듬해에 다시 분주의 속현이 되었으며, 태종의 즉위 후 다시 병주의 속현이 되었다. 천수(天授) 원년(690년) 무흥현(武興縣)으로 개칭되었고 신룡(神龍) 원년(705년) 다시 문수현이 되었다.[3] 무덕(武德) 3년(620년) 수주(受州)를 설치했다가 정관(貞觀) 8년(634년) 수주를 폐지하면서 다시 병주의 속현이 되었다.[4] 수나라 때 옛 경양성(梗陽城)에 설치된 현이다.[5] 수나라 때 진양현(晉陽縣)의 일부가 분할되어 설치되었다. 선천(先天) 2년(713년) 일부를 분할하여 영천현(靈川縣)을 설치했다가 이듬해에 폐지했다.[6] 북제 때 초원현(招遠縣)이 설치되었고 수나라 때 선양현(善陽縣)으로 개칭되었다.[7] 개원(開元) 5년(717년) 선양현의 일부를 분할하여 대동군성(大同軍城)에 설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