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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레스 푸욜/클럽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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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푸욜 데뷔.jpg
▲ 1999년 데뷔 당시
소속팀 <colbgcolor=#ffffff,#191919>FC 바르셀로나 (라리가)
등번호 5
24(2000-2002)
32(1999-2000)
기록
파일:라리가 산탄데르 은행 로고(가로형/화이트).svg
392경기
13득점 12도움
파일:UEFA 챔피언스 리그 로고(가로형 화이트).svg
115경기
2득점 1도움
파일:UEFA 유로파 리그 로고 화이트.svg
9경기
파일:코파 델 레이 로고.svg
58경기 4득점
파일:Supercopa-de-España-RFEF.svg
6경기
파일:UEFA 슈퍼컵 로고_white.svg
2경기
파일:FIFA 클럽 월드컵 로고.svg
6경기
합산 성적
593경기
19득점 13도움
1. 개요2. 경력
2.1. 1999-00 시즌 ~ 2001-02 시즌2.2. 2002-03 시즌2.3. 2003-04 시즌2.4. 2004-05 시즌2.5. 2005-06 시즌2.6. 2006-07 시즌2.7. 2007-08 시즌2.8. 2008-09 시즌2.9. 2009-10 시즌2.10. 2010-11 시즌2.11. 2011-12 시즌2.12. 2012-13 시즌2.13. 2013-14 시즌2.14. 은퇴

[clearfix]

1. 개요

카를레스 푸욜의 클럽 경력을 소개하는 문서. 푸욜이 원클럽맨으로 은퇴했기에 사실상 바르셀로나 경력을 소개하는 문서라고 봐도 무방하다.

2. 경력

2.1. 1999-00 시즌 ~ 2001-02 시즌

푸욜이 처음 축구 선수의 길을 시작했을 때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골키퍼였고, 이후 공격수도 하다가 바르사 유스에 들어간 후에는 수비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바르사 B팀에서 라이트백으로 포지션이 굳어졌고 1999년에 바르셀로나 1군에 데뷔하면서 곧바로 유럽 최고의 라이트백 중 한 명으로 군림하며 바르셀로나의 챔스 4강에 기여했다.

2.2. 2002-03 시즌

이후 루이 판할 감독의 3-4-3 전술이 실패로 돌아가고 2002-03 시즌 크리스탕발의 부진과 안데르손의 계속되는 부상 등의 악재로 드보어의 파트너로 중앙 수비수로 보직을 변경한 푸욜은 한때 적응하지 못하며 잔실수를 하는 등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지만, 날이 갈수록 성장을 거듭하며 센터백으로 최전성기를 맞게 되었다.

2.3. 2003-04 시즌

2003-04 시즌부터 루이스 엔리케의 뒤를 이어 바르셀로나의 주장을 맡게 되었다. 이때의 나이가 25살, 주장 치고는 꽤나 젊은 나이였지만 이때까지 푸욜은 트로피가 데뷔 이래 하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2.4. 2004-05 시즌

이때 바르셀로나는 레이카르트 감독에 호나우지뉴, 사무엘 에투 등 기라성 같은 선수들이 드림팀을 구성했고, 푸욜은 센터백으로 이를 뒷받침하며 2004-05 시즌에는 마침내 라리가 우승을 이루는 한편 해당 시즌 발롱도르를 수상한 호나우지뉴보다도 평균적으로 높은 평점을 기록하여 2004-05 시즌 라리가 전체 선수 중 시즌 평점 1위(DBS 칼초 기준)를 차지했다.

2.5. 2005-06 시즌

파일:푸욜과 친구들.jpg
파일:푸욜 첫 빅이어.jpg
2005-06 시즌에는 라리가 2연패와 본인의 처음이자 구단의 2번째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이뤄냈다.[1]

2.6. 2006-07 시즌

2006-07 시즌에는 팀 전체가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푸욜은 시즌 내내 탁월한 모습을 보여주어 다시 한 번 라리가 시즌 평점 전체 1위(DBS 칼초 기준)를 달성하는 기염을 토한다.

2.7. 2007-08 시즌

2007-08 시즌에는 바르셀로나가 전체적으로 불안한 모습을 보이는 와중에 주장으로서 팀의 과도기를 잘 이끌었다.

2.8. 2008-09 시즌

파일:푸욜 라리가.jpg
파일:푸욜 트레블 시즌.jpg
펩 과르디올라 감독이 부임한 후 그의 지도 아래 2008-09 시즌에 리오넬 메시,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사비 에르난데스 등과 함께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맨유를 2:0으로 꺾고 트레블을 달성한다.

2.9. 2009-10 시즌

이 시즌에도 주전으로 활약하며 라리가 우승에 기여한다. 다만 UEFA 챔피언스 리그는 4강에서 인테르에게 패하며 2연패에 실패하였다.

2.10. 2010-11 시즌

그리고 2010-11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맨유를 3:1로 꺾고, 푸욜은 3번째 빅 이어를 들어올린다.[2] 라리가 3연패는 덤.

2.11. 2011-12 시즌

2011년 12월 10일(한국시각 11일) 펼쳐진 엘 클라시코에서는 미칠듯한 수비 능력과 주장다운 침착한 수비 조율을 보여주며 선제골을 내준 팀의 수비진을 잘 이끌었고 결국 팀의 3:1 역전승을 이끌었다. 2012년 1월 18일(한국시간 19일) 레알 마드리드와 코파 델 레이 8강에서 만나 엘 클라시코가 성사되었는데 에스타디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원정에서 1:0으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사비의 코너킥을 받아서 헤딩골을 작렬시켰다. 이날 수비에서는 평타였지만 동점골을 넣은 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커버 가능했다. 결국 2:1 역전승의 시발점이 되었다.

2.12. 2012-13 시즌

2012-13 시즌에는 부상이 잦지만 그래도 왕성하게 활약했다. 국가대표팀에서 푸욜은 은퇴했고 앞으로 클럽에만 집중하면 될 줄 알았으나...

2.13. 2013-14 시즌

결국에 2013-14 시즌도 부상으로 많은 경기를 소화하지 못했다.

결국 2014년 3월 5일 기자회견에서 2013-14 시즌을 끝으로 바르셀로나를 떠나겠다고 선언했다. 그 동안의 잦은 부상으로 인한 수술 때문에 지칠대로 지친 것이 원인이었다. 그런데 바르셀로나가 이적 금지 징계를 받으면서 이후 전개가 불분명해졌다. 일단 징계상으로 푸욜이 바르셀로나와 상호 합의하에 계약을 종료하고 자유계약으로 나가는 것은 가능하다. 달라진 것은 바르셀로나 팀의 상황. 푸욜을 대책없이 보내고 나면 대안이 아득해진다. 푸욜 역시 이런 문제점을 인식하고 심경의 변화를 일으킬 수도 있으므로, 2014-15 시즌에 푸욜이 바르셀로나에 남게 될지는 미지수였으나 FIFA가 항소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징계는 미뤄지게 되었고, 따라서 바르셀로나의 2014년 여름 이적시장은 큰 문제 없이 해결할 수 있게 되었으므로 남게 될 확률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리고 5월 10일 구단 홈페이지를 통해 은퇴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렇게 2014년 3월 2일에 치른 라리가 26R 알메리아 전이 푸욜의 현역 마지막 경기이자 마지막 골을 넣은 경기가 되었다.

2.14. 은퇴

2014년 5월 15일 공식 은퇴식을 열었다. #
파일:puyol_041-min.webp
파일:Ey2_1HeW8AMyuIq.jpg
파일:Carles-Puyol_1112.jpg
파일:Adios_Puyol.jpg
L'ADÉU
D'UN GRAN CAPITAN
파일:fc-barcelona-v-levante-ud-copa-del-rey-quarter-final.jpg
[카를레스 푸욜 은퇴식 연설 내용]
최대한 제 다리에 대해 해결책을 찾아보려 했지만 좋은 방법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포기하는 성격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제는 경기에 대한 압박감을 내려놓아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축복 받은 사람인 것 같습니다.
19년 동안 자고 일어나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것들을 할 수 있었으니까요.
많은 트로피를 가져왔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이 클럽에서 배운 인간적인 것들 이었습니다.

여기에 작은 소년으로 들어왔지만 이제는 가장 자랑스러운 가족의 가장이 되어 떠나가겠습니다.

FC 바르셀로나 통산 기록: 593경기 19골 13도움[3]
라리가 6회: 2004-05, 2005-06, 2008-09, 2009-10, 2010-11, 2012-13
UEFA 챔피언스 리그 3회: 2005-06, 2008-09, 2010-11
코파 델 레이 2회: 2008-09, 2011-12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6회: 2005-06, 2006-07, 2009-10, 2010-11, 2011-12, 2013-14
UEFA 슈퍼컵 2회: 2009-10, 2011-12
FIFA 클럽 월드컵 2회: 2009-10, 20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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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만 캄 노우 홈에서 열린 AC 밀란과의 챔스 4강 2차전 안드리 셰브첸코의 완벽한 헤더 골에 할리우드 액션으로 넘어졌는데, 이것이 판정에 반영되어 많은 비판을 받았다. 푸욜의 선수 경력 중 유일한 흠으로 아직까지도 회자되는 사건이다.[2] 정확히는 투병 후 돌아온 에릭 아비달에게 가장 먼저 트로피를 들게 해주는 양보해주는 멋진 모습을 보였다.[3] 퇴단 당시 기준 사비에 이어 역대 출장 2위. 곧 이니에스타, 부스케츠, 메시, 피케도 푸욜을 넘어서며 현재는 출장 6위를 기록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