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04-18 09:11:18

초월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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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예시
2.1. 대사2.2. 명칭
3. 비판
3.1. '초월'의 뜻을 모르고 용어 남용3.2. 번역가들의 지나친 의역 욕심
4. 중국어 음차의 초월번역5. 관련 문서

1. 개요

창작은 인간의 일이고, 편집은 신의 일이다.
스티븐 킹, 유혹하는 글쓰기
원문의 느낌과 어감을 원문의 직역보다 더 효과적으로 표현했다고 평가받는 번역. 원문의 의미, 즉 나타내고자 하는 의도를 손상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번역문의 언어의 문화권 사람들에게 (단순히 뜻을 직역한 문장보다도) 그 느낌이 확 다가올 정도의 의역을 해냈다면 그것이 초월번역이다. 개념 자체는 오래 전부터 존재하고 있었으나 서브컬처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서 '초월번역'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원문의 의미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창작의 영역을 두드릴 정도로 창의적인 번역이 나왔을 때, 경외를 담아 부르는 표현이다. 즉 의역이 최종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경지로서, 번역을 직업으로 삼고 있거나 관심이 있는 사람들 누구나가 이루고 싶어하는 목표다. 이 분야의 고전은 김후란이 옮긴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의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고[1]가 있다.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하나는 의미가 원문에서 벗어났지만 결과물의 어감이 강렬해서 임팩트가 큰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뜻 자체는 원문과 똑같지만 단어 선정이나 표현 등이 매우 적절하여 원판만큼, 혹은 더욱 직설적이고 강렬해지는 경우이다.[2] 이 중 전자는 애드리브에 가까우므로 엄밀히 말하면 번역이 잘된 게 아니라 오역의 범주에 들어가지만, 후자는 상당히 긍정적인 평을 받게 된다. 그 외에도 딱히 어감이나 임팩트에 차이는 없지만 언어유희 같은 이유로 번역이 굉장히 어려운 단어나 표현을 마치 원래부터 대상 언어로 만들어졌던 것처럼 적절하게 번역하는 경우도 높은 평가를 받게 된다. 물론 원문과는 전혀 달라질 확률이 높지만, 원문 그대로 옮겨서 지나친 부연 설명으로 몰입을 떨어뜨리거나 의미를 죽여버리는 것보단 낫다.

사실 번역이라는 일 자체가 고도의 어휘력을 필요로 하는데, 언어와 표현이 해당 지역의 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만큼 각 언어의 특징적인 단어들이 다른 언어의 것과 완벽하게 대응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단어의 의미가 여러 가지인 경우 아무리 상황에 따라 뜻이 달라진다고 해도 그 뜻이 한두 가지로 좁혀지는 경우는 드물며, 심지어는 이 언어에는 이러저러한 뜻을 가진 단어가 있는데 저 언어에는 없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번역을 할 때에는 번역자가 원문을 얼마나 변형시킬지에 대해 절묘한 선에서 타협을 해야 하는데, 그 선이 정말 절묘할 경우 초월번역으로 인정받는 것이다. 요컨대 한마디로 줄이면 '원문의 뜻을 살리면서도 원문을 의역한 것 이상의 예술성이 발휘된 번역'을 가리킨다.

2. 예시

[include(틀:토론 합의, this=문단, 토론주소1=AbsorbingStupidHurtClam, 합의사항1=1. 나무위키에 항목이 작성되어 있으며
1-1. 해당 초월번역 자체를 표제로 삼고 있는 것.
1-2. 혹은 초월번역 자체를 중점으로 설명하는 별개의 문단이 있으며 동시에 해당 문단으로 돌리는 리다이렉트 문서가 있을 것.
2.제도권 언론 등 편집지침상 근거가 존재하는 것.)]
가나다순.

2.1. 대사

2.2. 명칭

3. 비판

3.1. '초월'의 뜻을 모르고 용어 남용

초월번역이라는 말 자체가 학술적으로 정의되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구체적인 조건이나 기준이 없어 각자 평가하기 나름이기 때문에 어떤 번역을 인정할지 말지는 상당한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같은 것을 놓고도 어떤 사람들은 높이 평가하여 초월번역이라고 부르는 반면, 다른 사람들은 그저 발번역 내지는 오역에 불과한 것으로 보고 부정적으로 평가하며 수정되어야 하는 사항으로 보기도 한다.

원문의 내용과 다르면 무조건 오역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고, 원문이 말장난이거나 해서 그대로 번역하면 이해하기 힘들다 여겨 나름대로 고친 경우라면 오역이 아닌 초월번역 내지는 의역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예를 들어 위의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나 '농구는 신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심장으로 하는 것이다.'도 엄격하게 따지면 원문에 없던 단어를 넣은 것이므로 오역이라고 할 수도 있는 것.

흔히 발번역이라 부를 정도로 엉망인 것 가운데에서도 일부는 문법과 어휘 선정 면에서는 문제가 많지만 번역하는 과정에서 보인 감각이나 창의성 면에서는 높이 평가할 만한 것도 있다. 그런데 상술했듯이 초월번역이라는 것도 '감각이나 창의성'을 잘 살려 번역한 것을 가리킨다.

원문을 훼손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탁월하다고도 말하기 어려운, 한 마디로 적절하게 번역된 것을 초월번역으로 무조건 밀어붙이는 경우도 있다. 역시 '초월' 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조건이나 기준이 없기 때문으로, 살리기 어려울 수 있는 말장난 등을 적절히 살리는 것 자체만으로 인정하는 경우가 있는 반면 그건 그저 올바른 번역일 뿐이라고 보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엔 원문이 얼마나 번역하기 까다로웠는지가 문제인데, 그 '까다롭다'는 것 자체도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각자의 어휘력이나 감각 등에 따라 달라지며 번역이라는 게 누구나가 한 번쯤 해 보는 일은 아닌지라 아주 간단한 의역임에도 불구하고 초월번역이라고 추켜세우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번역이 잘되고 못된 것과는 관계없이 다른 이유로 유명세나 인기를 얻게 되었음에도 높게 평가받는 경우도 매우 많다.

3.2. 번역가들의 지나친 의역 욕심

초월번역이란 말부터가 문제가 있다. 번역본을 읽는다는 것은 결국 원저자의 글에 대한 번역자의 해석본을 읽는 것이다. 독자가 외국어를 모국어만큼 할 수 있었다면 번역본 따위에 기댈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번역본을 읽지만, 독자가 원하는 것은 원문의 메시지이지 번역자의 주관이 들어간 해석본이 아니다. 번역자는 이를 명심하고 최대한 주관을 배제한 채 객관적인 태도로 번역을 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번역본이 원본을 초월한다는 것은 말이 좋아 초월이지 실제로는 주제넘은 짓인 것이다. 언어체계가 달라 전달하기 어려운 언어유희 등을 잘 번역한 것은 긍정적으로 볼 수 있으나, 대사를 더 자극적이고 인상적이게, 임팩트 있게[4] 번역해서 이슈가 되는 경우는 좋은 번역이라 할 수 없으며, 이런 번역을 초월번역이라고 띄워주는 사람들도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보통 타이틀, 제목의 경우 번역자의 재량에 맡겨 과감한 의역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때는 초월번역이라고 부를 만한 좋은 번역이 나올 여지가 있다.[5] 하지만 내용은 원작의 의미를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게 그 어떤 일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원문을 토대로 가감 없이 번역해야 한다. 특히 독자의 평균 수준이 높을수록 원문 중심의 번역을 요구받는다. 대역본으로 나오는 전문 분야 잡지의 경우, 윤문을 강조하면서도 원문의 의미를 철저하게 지킬 것을 요구받는데, 이런 데서 재량껏 의역했다가는 그 잡지사에서는 다시는 일감을 얻지 못할 수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원문이 같이 제공되고 독자들도 어느 정도 외국어 능력이 되기 때문에 논란의 여지를 줄 수 있는 번역은 바로 번역자에 대한 클레임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4. 중국어 음차의 초월번역

표의문자인 중국어음차를 할때 초월번역하는 경우가 많은데, 코카콜라를 '커코우커러(可口可乐(kěkǒukělè))'(직역하면 '모든 것이 좋아서 기분이 좋다')로 옮기는 것이 그 예. 다른 예로 해커(Hacker)의 경우 중국어로 黒客(흑객,hēikè) '헤이커'로 표현하는데, 직역하면 '검은 손님'이다. 발음을 비슷하게 하면서도 뜻도 부여하는 것.

서울시청에서 공식적으로 만든 서울의 중국어 음차어 '首尔(Shǒu’ěr)'도 상당이 좋은 중국어 음차 초월번역으로 꼽힌다. 대략 '셔우얼' 정도의 발음으로 서울의 본래 발음을 살리면서도 머리 수(首) 자를 넣어서 '수도'의 이미지를 물씬 풍기는 것이 그 이유. 과거에는 汉城(Hànchéng) 즉 '한성'이었다.

한편 일본어 음차에서도 나름 초월번역 사례가 있는데 confeito[6] 금평당(金平糖)으로 번역한 것이다.

5. 관련 문서


[1] 두 인물의 정사 장면을 묘사한 대목인데, 원문을 번역하면 '사랑의 기쁨을 알았으며' 정도가 된다.[2] 의미가 다르더라도 의도는 같은 경우도 포함. 주로 위트 있는 문구나 해당 국가의 문화를 이해할 필요가 있는 유머가 포함된 것을 번역하는 국가의 문화에 맞는 문장으로 대체하는 경우가 여기에 포함된다.[3] 이게 왜 초월번역이냐, 카야노가 지어준 코로센세라는 명칭은 죽이다+선생님 정도인데 우리나라 번역은 죽이다+생님으로 전혀 위화감이 없는 깔끔한 번역에 성공했다.[4] 예를 들어 어떤 캐릭터의 대사를 원문보다 더 (나무위키식 표현으로)찰지게, 과격하게, 우스꽝스럽게 번역했다면, 그건 원저자가 설정한 캐릭터의 성격을 왜곡한 셈이 되는 것이다.[5] 책이나 영화 제목은 원제를 찾아 비교해보면 의역을 넘어 창작을 한 수준으로 현지화를 거치는 경우가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이걸 좋게 말하면 초월번역이지만 까놓고 말하면 강렬한 첫인상을 남기기 위한 마케팅 수법이다.[6] 원래 이 단어는 사탕을 뜻하는 단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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