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11-14 14:34:16

징발



1. 개요2. 절차3. 역사4. 미디어에서5. 여담

1. 개요

徵發, requisition

전시 ·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비상사태하에서 군작전을 수행하기 위하여 필요한 토지, 물자, 시설 또는 권리를 국민으로부터 강제로 모으거나 거두는 것을 말한다.

2. 절차

군도 평시에는 통상적인 조달 등 계약을 통해 군수품을 구매하고, 특히 전시에 군수계약을 이행하지 않는 경우에는 단지 채무불이행이 되는 것뿐 아니라 전시군수계약불이행죄로 처벌하도록 하고 있지만, 위와 같은 방법으로도 군의 수요를 충족할 수 없을 때 국민에게 강제로 부담을 지우는 것이다.

그냥 가져가면 약탈과 다를 바 없고, 적법한 징발은 징발관(국방부장관)이 영장을 발행하여 절차에 따라 집행해야 하고, 징발대상자에게는 정당한 대가를 보상하여야 한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징발이라는 명목으로 행해진 제도는 실질적으로 약탈에 가까운 경우가 매우 많았다. 당연하게도 전쟁이란 초국가적 비상사태이기에 애초에 다 보상을 할래도 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고, 사회적 대혼란으로 유야무야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현대에도 인권 의식이 부족한 국가에서는 약탈이나 다름없는 행태로 이뤄지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1] 징발이 필요할 정도의 비상사태 하에서 절차의 준수는 기대하기 어렵고 우선 그냥 가져갈 가능성이 높다.

부동산은 감정평가 가액에 따라, 동산은 징발 또는 멸실 당시의 시가를 기준으로 보상을 한다고 정하여져 있기는 하지만(징발법 시행령 제12조), 징발을 시행하는 상황적 특수성을 고려해 보면 100% 제대로 된 값을 받는다는 보장은 없다고 봐도 된다. 애초에 군이 전면적인 징발을 할 지경이면 이미 전쟁결과에 따라 국가가 망해도 이상하지 않은 완전 총력전 상황이다. 나중에 보상을 해 줄지도 모르지만 큰 기대는 안 하는 게 좋다.[2] 전쟁 중에 피살당하거나 전사하거나 장애인이 된 사람들에 대한 보훈 혜택조차 대부분 국가에서 충분하지 않았던 판국에 재산 피해 입은 사람들은 억울하지만 그걸로 끝인 경우가 많았다.
때문에 당하는 입장에서는 '모양새는 지키려고 한다'라는 것에 의의를 두는 것이 속 편하다. 그러나 이런 겉치레뿐이었어도 아래에서도 보듯 약탈이 만연하던 시대에는 주민들에게 어느 정도 환영을 받았다.

대한민국에서는 징발법에서 징발 절차를 규정하고 있다.

3. 역사

군주제봉건제 시절에는 평시에도 '부역 징발'이 성행했는데, 국가사업을 위하여 백성들을 무보수로 노역에 의무동원시키는 것을 징발의 일종으로 취급했기 때문이다. 한민족의 경우 조선 시대에 부역제 관련 문제들이 많이 생겨나기도 했는데, 방군수포 같은 게 대표적.

나폴레옹 통치 시기 프랑스군의 주요 보급 방책이었다. 당시엔 취사병도 없었고 야전의 프랑스군에게 식량을 배달할 방법도 없었으며 보낼 식량 자체도 얼마 없었다. 돈 주고 사는 것도 방법이었고 부대는 항상 돈을 가지고 다니기는 했지만 그 돈은 병사들 월급 주기도 모자란 돈이라서 함부로 사용할 수 없었다. 때문에 현지인들에게 같잖은 증명서 하나 떼어다 주고 빼앗다시피한 것. 현지인들이 좋아할 리가 없었지만 총칼 든 군인들 앞에서 감히 덤빌 수는 없었다. 일단 나중에 값을 치러주기는 했으나 헐값으로 땜질하기 일쑤였다. 더군다나 징발한 지역을 적에게 뺏길 경우 징발비용을 낼 필요도 없었다.

그런 한계가 있었지만 약탈보다는 훨씬 반응이 나았다. 약탈은 일단 현지인들에게 엄청난 적대감을 불러일으키는 문제가 있었고 빼앗은 물자도 강탈한 군인들이 그 자리에서 흥청망청 낭비하기 일쑤라서 효율적인 분배가 불가능했다. 약탈 과정에서 현지인을 살해하는 일도 빈번하여 해당 지역의 생산력이 장기적으로 떨어졌다. 반면 징발은 사령부에서 직접 수행했기 때문에 물자를 효율적으로 분배할 수 있었고, 군인 개개인이라면 모를까 군인 조직은 강간/살해 명령을 내려서 얻을 이득이 상대적으로 적으므로[3] 현지인의 반감도 비교적 덜했다. 위에서 보듯 보상이 제대로 이루어지진 않는다고 하지만 보상을 받을 확률이 조금이나마 존재한다는 것이 빼앗긴 입장에서는 약탈보다는 훨씬 나았다.

반대로 영국군은 이런 징발이라는 수단을 쓰지 않고 따박따박 현찰로 구입했기에 현지인들이 반겼다.[4] 때문에 이베리아반도 전쟁에 시달리던 스페인에서는 프랑스군이 나타나면 모든 재산을 숨기기 바빴고 영국군이 나타나면 그 재산을 꺼내느라 바빴다. 프랑스군이 징발할 때는 부스러기만 좀 나오던 가난한 촌락에서 영국군이 금화를 내밀자 수북한 곡물이 나올 정도니... 그러나 이는 제해권과 해외무역을 꽉 쥐고 있던 영국이었기에 감당할 수 있는 지출이었다. 대신 돈과 보급품이 올 때까진 진군을 못하므로 진군속도도 느려졌다. 그래도 현지인의 저항 같은 건 전혀 없이 지원군을 얻을 수도 있었다. 전설을 쓴 건 프랑스군이지만 그 전설을 박살낸 건 돈의 힘으로 밀어붙인 영국군이었다.[5]

4. 미디어에서

  • 영화 감기에서는 성남시 분당구의 시내버스[6]가 징발되어 분당구 시민 전체를 탄천종합운동장으로 수송하는 장면이 나온다.
  •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에서는 약탈이 일어나자 "약탈이 아니라 징발이다"라고 두둔하는 장면이 나온다. 물론 해적에게는 징발 권한이 없으므로 해당 장면은 문자 그대로의 약탈이 맞다(...).
  • Warhammer 40,000: Dawn of War의 기초 자원은 징발 자원이다. 거점을 점령하면 좀 더 많은 징발을 할 수 있고 병력을 더 뽑을 수 있다는 식의 설명이다. 또 다른 자원은 전기이다.

5. 여담

  • 가짜 뉴스의 단골 소재이기도 한데, 특히 대한민국에서는 이 징발 관련한 카더라 통신이 잊을 만하면 떠돌아서 민심을 소란하게 한다. 오죽하면 2017년에 이걸 소재로 특집기사가 났을 정도.
  • 전 세계 통틀어서 특이한 징발 물건이 있다면 바로 개기름(피지)이다. 2차대전 당시 연료가 모자른 일본 제국이 기름이 모자르자 송근유, 정어리기름, 귤껍질기름도 모았으나 이 마저도 모자라서 사람의 개기름까지 징발해다가 연료로 사용했다고 한다.

[1] 예를 들어 북한토지개혁 정책은 명목상으로는 징발을 자칭했으나 실상은 지주들을 향한 무분별한 학살과 폭력, 그리고 강탈을 통해 이뤄졌다.[2] 대표적인 예로 2차대전이 끝나고 한참 지난 뒤 독일일본이 있는데, 징발자산에 대해 보상을 했지만 사실상 안하느니만 못한 푼돈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물론 승전국인 소련프랑스 등도 마찬가지였다.[3] 약탈은 군인과 민간인의 개인 대 개인의 행동이므로 당장의 강압이 나타나기 쉽다. 한편 징발은 군대라는 집단이 권위로 압박할 수 있으므로 직접적 폭력 없이도 상당수 고분고분한 민간인을 제압할 수 있다.[4] 19세기 말 거문도점령했을 때도 현지인들에게서 물자나 용역을 동원할 때 정당한 대가를 치르고 구매하는 방식으로 동원하였기에 당시 거문도 주민들이 영국군을 매우 반겼다고 한다.[5] 프랑스-인디언 전쟁미국 독립 전쟁 시절에도 영국군은 현물 금화를 지급했기 때문에 민간인들이 군대 보급품 거래를 오히려 독립군보다 선호했다. 반면 독립군은 패배할 경우 휴지조각이 되는 군표를 사용했기 때문에 보급에서 어려움을 많이 겪었고, 기적 같은 우연이 따라주지 않았거나 적극적 외교를 통해 프랑스 등 유럽 열강들의 지원을 끌어내지 못했다면 최종적으로 영국에 패배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6] 현대 에어로타운이 주로 출연하나, 도색과 노선 번호는 2014년의 실제 성남 시내버스와 관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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