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스탄불 or 흑해 지방 VS 다른 동네들2. 유럽 이스탄불 VS 아나돌루 이스탄불3. 서부(발칸 반도, 아나돌루 해안) VS 동부(아나돌루 내륙)4. 튀르키예 본토 VS 튀르키예 쿠르디스탄※5. 앙카라 VS 이스탄불★6. 가지안테프 VS 샨르우르파 VS 카흐라만마라쉬7. 디야르바크르 VS 반을 비롯한 기타 동부도시들8. 콘야 vs 아피욘카라히사르9. 아다나 vs 나머지 튀르키예(...)10. 중부 마의 삼각지대 vs 나머지 튀르키예(...)11. 초룸 vs 나머지 튀르키예(...)12. 카이세리 vs 나머지 튀르키예(...)
전통적으로 이스탄불 사람들은 그리스인이 많았다.[1]20세기 초까지만 해도 비무슬림 인구가 50%에 육박하는 국제도시인데다가 메흐메트 2세가 이 곳을 정복했을 때에도 기존 동로마(그리스) 주민들을 쫓아내기는 커녕 이들을 더 육성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곳의 문화는 기존의 아나톨리아 지방과는 문화나 풍습이 달랐고 -외국인들은 거의 구분해낼 수 없지만, 이스탄불에는 고유 튀르키예어 사투리까지 있다- 꽤 오랫동안 오스만 제국의 수도로 기능한지라 다른 지방 사람들을 촌놈취급하는 바람에 다른 지방 사람들이 이스탄불 출신들을 보면 "저런 깍쟁이들" 취급을 한다. 흑해 출신 사람들의 경우 특유의 벽창호같은 고집쟁이로 통한다.
전통적으로 이스탄불은 현재의 파티흐 구(Fatih belediyesi), 즉 테오도시우스 성벽 안쪽만을 의미했다. 그 외의 갈라타, 카드쾨이, 위스퀴다르 같은 현재는 이스탄불 광역시에 속하는 지역들은 과거에는 다른 도시로 여겨졌다. 하지만 오스만 제국 최후기인 1912년 발칸 전쟁 이후 이스탄불로 몰려든 발칸 피난민들과, 공화국 수립 이후 산업화로 인한 이촌향도가 이어지면서 이스탄불의 인구비율은 역전되었고, 여전히 이스탄불에서 살고 있는 토박이들과 이후 이스탄불로 유입한 이주민들 사이에 갈등이 있다. 특히 이스탄불 토박이들은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이스탄불의 인구 40% 정도가 비무슬림이었던 점도 있어서 비무슬림도 있고, 일찍이 서구화된 상류층이 많은데 이들을 (이슬람 관점으로) 부도덕적이라고 걸고 넘어지는게 1980-90년대 튀르키예 영화, 드라마의 주된 클리셰였을 정도. 현재도 이스탄불 토박이들의 상류층 문화는 선망의 대상이자 한편으로는 경멸의 대상이기도 하며, 이스탄불 토박이들이 이주민들을 무시하는 풍조도 갈등의 원인이 되었다.
튀르키예 서부는 근현대까지 그리스인들이 거주해왔고, 오늘날의 주민들 또한 해당 지역에 살던 그리스인들의 생물학적 후손이며, 문화적인 연결고리도 발칸반도나 남유럽에 훨씬 가깝다. 반면에 동부 지방은 쿠르드족, 아랍인을 비롯한 민족들과 부대끼며 살다 보니 혈통적, 문화적 연결고리는 아랍과 이란에 훨씬 더 가깝다. 특히 튀르키예 독립 전쟁 이후 성립된 튀르키예 공화국에서 적극적으로 서구화정책을 펼치다 보니 도시지역은 다른 유럽국가들과 별반 다를 바 없게 되었지만 농촌이 많은 동부는 여전히 전통적인 대가족, 가부장 사회에서 전통적인 생활방식을 고수하며 사는 사람들이 많다. 또 튀르키예는 남미에 버금가는 민족의 용광로인데다가 지리적으로 상이한 문화권과 맞닿아 있는 영향 때문에 서쪽과 동쪽은 아예 사람들 생김새부터 다른 경우가 종종 있다. 그리스와 발칸과 가까운 서부에 사는 튀르키예인은 유럽 백인과 비슷하게 생긴 사람이 많고 이슬람 문화권과 접한 동부는 아랍인과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많다. 더 나아가 이스탄불은 오스만 제국 시기부터 오랫동안 튀르키예의 중심으로 기능했기 때문에 새로 수도가 된 앙카라사람들을 영 껄끄럽게 여기는 경향도 없잖아 있고... 때문에 서부에서는 동부사람들이 여전히 비문명화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동부지방 독실독실한 사람들은 서부사람들이 돈가지고 자신들을 무시하는데다가 무슬림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동부지방 사람들중에서도 대도시에 거주하는 서양물 먹은 사람들은 마찬가지 이유로 동부의 시골주민들에 대해 무시하는 경향도 없지 않다. 특히 동부지방 사람들의 이런 경향은 오르한 파묵의 소설 "눈"에 잘 묘사되어 있으므로 추천한다. 소설에 보면 카르스의 부자나 공무원들 그리고 의사나 경찰 같은 사회지도층 계층과 가난한 빈민들과의 갈등이 잘 나타나 있다. 특히 빈민들은 전기를 도둑질 해서 쓰고 하루하루를 겨우 연명하는 것으로 묘사되어 튀르키예의 지역불균형을 잘 묘사하고 있다. 이런 빈민들이 훗날 정의개발당의 열렬한 지지자가 된다. 사실 동부지방의 부자들은 이미 서부로 많이 갔다. 동부는 깡촌에다가 서부에 비해 낙후되었고 PKK 테러도 있고 1970년대에는 공산당이 설쳐서 더 했다. 게다가 동부는 최근 에르도안에 의해 PKK 시리아와 전쟁으로 황폐화 되어가고 있기 때문에 부자가 남아있을 매력이 없다. 독일이나 튀르키예 서부로 많이 갔다.
튀르키예 서부, 동부의 갈등의 단적인 예로 Doğulu (도울루, 동쪽사람)이라는 단어가 있다. 원래는 순전히 동부지역 출신이라는 뜻으로 쓰던 말이지만 2000년대 이후 Doğulu 라는 단어는 쿠르드인을 뜻하는 우회적인 표현이나 촌뜨기라는 의미의 경멸적인, 차별적인 어휘로 쓰이고 있다. 실제 튀르키예 동부 출신인 사람한테도 이 말을 사용하면 상대방이 잘 모르는 사람일 경우 초면에 무례한 짓이라고 발끈할 정도.
이러한 갈등의 또다른 예는 튀르키예 서부와 동부 사이의 인적교류가 흔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정확하게 말하면 동부에서 서부로 학업, 취직등의 이유로 이주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서부에서 동부로 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튀르키예 서부 사람들이 흔히 하는 편견이 '동부에 사는 사람들은 죄다 쿠르드인이고 낙후되어있고 종교적으로도 원리주의적이다'라는 것이다. 튀르키예 정부에서도 이러한 동부와 서부 사이의 갈등을 조율하기 위해 군대징집, 공무원 임용 등에 있어 지역에 따른 배치를 하고 있는 중인데, 가령 서부 출신의 튀르키예인은 동부에 위치한 군부대, 관공서, 학교로 발령시키고, 동부 출신의 튀르키예인은 서부에 위치한 군부대, 관공서, 학교로 우선 발령시키는 식이다. 때문에 쿠르드인이 도시, 마을 인구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동네에서도 공무원, 경찰, 군인, 교사는 서부출신의 튀르키예인들이 대다수인걸 볼 수 있으며, 반대로 에디르네같이 동부 출신의 이주민이 별로 없는 서부의 소도시들의 공무원, 경찰, 군인, 교사들은 동부출신이 많다.
튀르키예는 현재 수도인 앙카라와 오스만 제국 시기의 옛 수도이자 제2 대도시인 이스탄불의 대립도 장난이 아닌데 오스만 제국이 붕괴하고, 튀르키예 공화국 초기에 초대 대통령이었던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의 주도하에 수도를 앙카라로 천도하게 되었다. 이스탄불은 옛 오스만 왕조 구체제의 수도이고 외세의 침입에 대항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렇게 하루 아침만에 수도를 옮기게 되니 이스탄불 시민들이 박탈감을 느끼게 되었다. 이후로 앙카라 시민들을 촌놈 취급하는 경향이 생겨났다. 이스탄불 시민들은 앙카라 사람들을 졸부 취급하고, 앙카라 시민들은 이스탄불 사람들을 몰락하여 과거 유물들로만 벌어먹고 사는 주제에 가진 거 없이 허세만 가득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튀르키예 남동부에 위치한 이 세 지방은 서로 라이벌 관계이다. 마치 튀르키예와 그리스와 불가리아가 케밥가지고 원조논쟁 하듯이 이 지방들도 튀르키예에서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지방 향토요리들(가지케밥, 양파케밥, 치으쾨프테 등등)이 서로 자기네가 원조라고 주장한다. 이 세 지방의 라이벌관계는 오스만 제국 시절부터 있던 일인데, 세 지방 모두 주로 교역에 종사하면서 먹고살던 지방이고 지금도 샨르우르파에는 아랍, 쿠르드 계열이 다수고, 가지안테프는 튀르크멘이 다수이고, 카흐라만마라쉬에는 현재는 많이 줄거나 튀르크화 되었지만 아르메니아 계열이 다수였던 지역이었다. 덕분에 인접한 지방임에도 사투리나 문화가 눈에 띄일정도로 다른걸 볼 수 있다.
디야르바크르는 쿠르드족의 수도라 불릴만큼 쿠르드 인구가 많은 곳이다. 반또한 쿠르드 인구가 도시의 90%를 차지할 만큼 쿠르드 비중이 높은 지역이다. 그런데 이 두 지역은 서로 원수지간이다. 외부의 시선으로 봤을땐 둘 다 쿠르드족이고, 인민민주당을 지지하는 등 딱히 갈등의 요소가 보이지 않지만, 이들이 대립하는 이유는 부족이 다르기 때문. 심지어 이들이 사용하는 쿠르드어는 서로 의미조차 통하지 않을만큼 사투리 차이가 심하다. 특히 반을 비롯한 동북부 지방의 쿠르드인들은 PKK를 극도로 혐오하는 입장인데, PKK가 처음 일어난 지역이 디야르바크르 도의 리제 군이기 때문에 "디야르바크르 놈들이 우리한테까지 피해를 끼치고 있다." 라고 생각한다. 디야르바크르 북서쪽에 위치한 엘라즈으(Elazığ)의 경우 극렬 튀르크 민족주의자 비중이 높은 지역이라 쿠르드와는 극단적으로 사이가 나쁘며, 마르딘의 경우 애초에 인구 다수가 시리아 정교회를 믿는 아랍계 주민들이고, 그곳의 쿠르드들도 디야르바크르의 쿠르드와는 부족이 다르기 때문에 갈등이 있다.
양 도가 모두 행정구역상으로는 중부 아나톨리아 지방에 속하며 기후조건이나 문화도 동일하다. 하지만 아피욘카라히사르는 튀르키예 독립 전쟁당시의 격전지였고 일찌감치 세속화 된 지역임에 반해 콘야는 튀르키예에서 가장 보수적인 지역으로 유명하다. 콘야에서는 아피욘카라히사르 사람들을 "우리 종교에서 금지하는 술이나 처먹고 꽐라되는 놈들"이라고 까고, 아피욘카라히사르 사람들은 콘야사람들한테 "그러는 니들이 튀르키예에서 가장 많이 라크 마시는데요?"라고 깐다. 그리고 실제로 콘야가 튀르키예에서 가장 많이 라크를 소비하는 동네로 유명하다. 참고로 라임을 활용해서 만든 유명한 말이 있다. "아피욘의 크림, 콘야의 미친놈"(Afyon'un kaymağı, Konya'nın manyağı) 아피욘의 특산품인 카이막이라는 걸쭉한 크림과 콘야의 종교꼴통들을 빗댄 말이다.
아다나 출신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다. 튀르키예에서 아다나 출신이라고 하면 으레 갖는 이미지가 사기꾼, 범죄자, 양아치라는 이미지. 유독 이상하게 아다나에서 각종 흉악, 엽기 범죄가 터진다든가 다른 지역 범죄도 해당 범죄자 신상을 파고 보니 아다나 출신이라는 게 많이 나온 지라 갖게 된 이미지다. 오죽하면 아다나로 오는 타지 사람이나 여행자에게 아다나 시민 스스로 "여기서 제일 조심해야하는 건 나를 포함한 아다나 사람 그 자체다"란 자학드립이 낀 주의점을 알려줄 정도. 요즘은 아다나와 인접한 메르신 도 출신들도 까이고 있는데, 외즈게잔 아슬란(Özgecan Aslan) 강간살인 사건이 벌어진 곳이 바로 이곳이다. 그 외에도 흉악범죄가 심심하다 하면 벌어지는 곳이라 아다나와 함께 까이는 중. 두 곳 다 여름철엔 무지막지하게 덥고 푹푹 찌는 곳이라[2]"저놈들 더위 때문에 대가리가 익어버린게야. 그렇지 않고서야 사람의 탈을 쓰고 저런 흉악한 짓을 하겠어?" 라고 깐다. 한편 아다나를 비롯한 가지안테프, 카흐라만마라쉬, 메르신이 포함되는 추쿠르오바(Çukurova) 평야 지방 사람들은 오스만 제국 시절부터 욕 잘하고 상남자같은 기질로 유명한데, 특히 아다나 사람들 하면 그새끼들은 신에 대고도 욕할 수 있는 새끼들이야. 라며 까는 사람들도 있다. 아다나인 양아치 기질은 전통이었다 유튜브에 보면 날씨가 덥다고 태양에다 산탄총을 쏘는 아다나인이라는 유머도 있다보러가기
대체로 튀르키예 중부지역은 앙카라를 제외하곤 종교색이 강한 편인데, 그 중에서도 앙카라와 인접한 3개 도인 찬크르(Çankırı), 초룸(Çorum), 요즈갓(Yozgat)은 정도가 심해서 심심하다 싶으면 명예살인, 신부보쌈같은 흉흉한 소식이 들려오는 지역이라 마의 삼각지대(Şeytan Üçgeni)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까인다. 특히 세속주의 성향이 강한 서부지방에선 "어휴 저 무식한 촌것들은 별 수 없다." 라고 까며, 쿠르드가 많은 동부지방에서도 극렬 튀르크 민족주의자들이 많은 이 지방에 대해 "저새끼들은 무슬림은커녕 사람도 아니다!" 라고 까는 중. 여담이지만 찬크르, 초룸, 요즈갓 마의 삼각지대는 전부 산 아니면 숲으로 이루어진 시골뿐이라 도 인구가 눈물나게 적다. 가장 인구가 많은 초룸이 28만, 찬크르가 18만3500, 요즈갓 인구는 10만이 채 안 되는 98,248명이다. 왠지 일본의 군마현기믹도 있다. 세 도 모두 종교적으로 꼴통스러운 곳이라 꼴통 삼각지대(Yobaz Üçgeni)라고도 불린다(...).
꼴통 삼각지대(Yobaz Üçgeni)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는 지역(...)으로 일반적으로 초룸 사람 하면 굉장히 교활하고 고집스럽다는 편견이 있다. 튀르키예인들이 자주 사용하는 표현 중에 "Senin yaptığını Çorumlu (bile) yapmaz!" (네놈이 한 짓은 초룸사람 (조차)도 하지 않는다!) 라는 관용어가 있을 정도. 물론 이 말을 들은 상대방은 거의 백프로 노발대발한다. 상대방이 초룸사람이라면 싸움 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카이세리 사람들은 해당 항목에서도 보면 알 수 있지만 노랭이+악질 장사치 편견이 있다. 말도 안되는 액수로 가격을 후려치는 행위를 "kayserililik yapmak" (카이세리 사람 짓을 한다) 라고 부를 정도. 오스만 제국의 위대한 건축가중 하나인 미마르 시난의 고향이 카이세리인데, 이곳은 예전부터 아르메니아인들이 많이 거주했던 지역이라 카이세리 사람 = 아르메니아인 = 악질 장사치라는 편견도 있다.
[1] 물론 엄밀히 말하자면 지금의 이스탄불 지역이 그리스화되기 전에는 트라키아인이 살고 있었다.[2] 튀르키예에선 낮에 55도까지 치솟는 샨르우르파조차도 에어컨 쓰는 가정이 거의 없는데, 이 지방은 여름이 건조한 다른 튀르키예 지방들과 달리 습하고 더운 지역이라(정확히 말하면 강수량은 낮은데 바닷가라 습기가 바로 밀려온다) 어디서든 에어컨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