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좌식(坐式)은 방과 마루 따위의 바닥에서 앉은 채로 생활하는 방식을 말한다.2. 역사
원초적으로 따지면 입식보다도 오래되었다고 볼 수 있다. 가구란 것이 없던 시절에는 의자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한반도에서는 원래 입식이 보편적이었지만 이는 서양의 그것과는 다소 다르다. 17세기에 온돌이 대다수의 가정에 보급되면서 입식 문화에서 좌식 문화로 전환되었다. 그래서 태조 왕건처럼 그 전 시대 사극을 보면 바닥에 앉는 조선시대 사극과는 달리, 침대와 의자를 사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다만 이는 지배층 한정으로 일반 서민은 고려 중기로 가면 방바닥 아래의 전체가 구들로 되기 이전부터 좌식 생활을 했었고, 지배층 또한 완전 입식 생활이 보편적이지는 않았는지, 침상에서 자는 것은 맞지만 고려도경에서 왕 조차 건물 밖에서 신발을 벗은 후 안내에서 왕골을 깔은 바닥에 그냥 앉았다고 한다.조선조 최대의 생활혁명: 입식에서 좌식문화로, 조재모(2012)[1] 그러나 구한말부터 서양식 입식 문화가 도입되기 시작했고, 1970년대 경제 성장기 이후부터 천천히 서민들에게도 입식 문화가 유입되어 현재는 좌식과 입식이 혼재되는 양상을 보인다. 1980년대 후반 이후 태어난 세대들 중에는 좌식을 불편해하는 사람이 많아서 식당 중에서도 입식으로 전환 공사를 하는 곳이 많다. 가정에서 사용하는 가구 또한 반상 등 앉아서 사용하는 가구보다 식탁과 의자를 사용하는 경우가 더 많다. 사실, 원래 인간들의 신체 구조상 좌식은 무리가 많다. 좌식에 의한 신체 질병이 유독 한국인과 일본인에게만 압도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그러한 예시들이다. 하지만 가정집의 경우 실내에서 신발을 신는 것은 무리라는 인식이 많아서 실내에서는 여전히 신발을 신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다. 한국과 일본에서 실내 신발 착용이 허용되는 곳은 주로 식당이나 사무실 등 상업용 건물로 한정된다.
유럽권에서는 사미족이 유일하게 좌식 문화를 전통으로 갖고 있었다. 고아티(goahti) 혹은 코타(kåta)라 부르는 텐트 혹은 흙집 안에 모피를 깔고 생활했다. 물론, 현재는 이들도 입식 문화에 동화되었다.
3. 특징
- 좌식 문화에서 방바닥은 앉는 공간, 즉, 거대한 의자와도 같기 때문에 방바닥을 매우 중시한다. 그래서 한국은 장판이 발달[2]했으며, 일본의 다다미나 중앙아시아, 서남아시아 등지의 카페트와 같은 깔개가 발달하곤 한다. 게다가 방바닥이 더러워지지 않도록 실내에서는 신발을 신지 않거나, 실내 전용 신발(실내화)을 신는다.
- 현대에 좌식생활만 하는 집은 가난해 보인다는 인식이 있다. 정확히는 입식 가구를 들여놓을 공간도, 돈도 없어서 그렇게 산다는 이미지. 매체상에서도 잘 사는 집은 입식 생활만 하거나 입식 생활을 병행하는 데 비해, 못 사는 집은 좌식 생활만 하는 것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가장 와닿는 가구는 식탁. 바닥에 밥상 놓고 철푸덕 앉아서 먹느냐 식탁에 앉아 먹느냐의 유무로 중산층과 차상위계층[3]을 얼추 구분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4. 장단점
4.1. 장점
- 입식에 비하면 필요한 가구가 적은 특성상 압도적으로 비용과 공간이 절약된다. 장롱처럼 수납에 필요한 가구만 들여놓으면 되는 특성상 한 방에서 여러 가지 일을 하는 것이 가능하다. 상을 펴고 밥 먹던 방에다 그대로 이불을 깔고 잘 수 있다. 한옥에서 안방, 건넌방, 사랑방 등으로 위치에 따른 공간 구분은 있어도 입식문화권과 같은 거실, 침실 등의 기능적 구분이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 실내로 들어오기 전에 신발을 벗어야 하므로 신발에 묻은 외부 오염물질이 실내로 들어올 확률이 낮아진다. 다만 이는 좌식 자체의 장점이 아니라 그저 실내에서 신발을 벗는 문화의 장점이다.
- 운동과 다이어트에 의외로 도움이 된다. 앉았다 일어났다 하는 것이 불편할 수는 있어도 체력을 단련하는 데에는 좋다. 좌식 문화를 선호하는 일본인들이 전세계적으로 장수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이 영향이 있다는 의견도 있다.
- 바닥 아무 데나 철푸덕 앉거나 누울 수 있고 물건도 둘 수 있기 때문에 공간 활용성이 높다. 특히 갑작스레 손님이 여럿 오기라도 하면 입식은 의자와 침대의 수가 한정돼 있으므로 난감해지지만 좌식은 정 안되면 그냥 바닥에 앉거나 누워도 된다. 즉 격식과 체면을 차리지 않아도 된다면 입식보다 편하다.
4.2. 단점
- 앉고 일어나기를 반복하며 운동이 된다는 말은 그만큼 힘들고 체력을 소모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익숙지 않은 사람에게는 바닥에 앉아있는 자세 자체가 힘들고 다리와 엉덩이가 아프다.
- 바닥에 앉는 것 자체가 신체에 악영향을 준다.
- 허리 건강을 망치는 생활 방식으로 꼽힌다. 바닥에 앉는 자세는 척추에 가장 큰 부담을 주는 자세로 꼽힌다. 허리 건강을 위해서는 되도록 피해야 한다. 다리를 쩍 벌리고 앉는 양반다리 자세가 고관절에 매우 좋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허리 건강을 그나마 지키고 싶다면 스님들이 앉듯 허리를 펴고 앉을 것. 좌식형 의자 중에서 등받이가 있는 모델이 있는데 좌식 특성상 바닥에 앉는 것부터가 불편하고 허리가 아프다.
- 좌식 문화권인 한국과 일본에서는 무릎 반월연골판 손상 질환 비율이 중국/유럽/아메리카의 2배 이상에 달한다. 앉아있거나 바닥에 무릎을 대고 활동하는 자세가 무릎에 부담을 주는 것이다.
- 한국인과 일본인이 중국인과 유럽인에 비해서 다리가 짧고 오다리가 많은 것도 좌식 문화의 영향이 있다고 한다.
- 현대 의복 대부분이 입식 문화 기반인 서양식이라 좌식 생활에 잘 맞지 않는다. 실제로 좀 슬림하고 스판기가 전혀 없는 바지를 입으면 바닥에 주저앉기 상당히 불편하며, 짧은 치마도 좀 다른 의미로서지만 불편한 것은 마찬가지다.
- 입식에 비해 바닥 청소를 더 깨끗이 해야 한다. 물론 입식에서도 바닥 청소는 하지만 맨몸으로 앉거나 누울 수 있을 정도로 깔끔해야 하는 것은 의자나 침대 정도 뿐이다. 반면 좌식에서는 바닥 전체가 거대한 의자나 침상과 다름 없으므로 늘상 깨끗이 쓸고 닦아야 한다. 그러지 않았다간 순식간에 더러워지는 양말과 바지를 볼 수 있다.
이하는 좌식 문화 자체의 단점이라기보다는 실내에서 신발을 벗는 문화의 단점에 가깝다. 즉 가구만 입식이고 실내에서 신발을 벗어야 하는 것은 여전하다면 해당되는 단점이다. 이 때문에 일부 크고 부유한 집에서는 이를 절충해 침실 등 사적인 공간에서는 신발을 벗거나 실내화를 신고, 응접실이나 홀 등 공용 공간에서는 신발을 신도록 이원화하기도 한다.
- 방문객 입장에서는 신발을 벗어야 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고 불편할 수 있다.
- 격식을 차려야 하는 자리거나 패션에 신경을 좀 쓴 경우, 정장이나 제복[4], 드레스 등을 입은 경우, 혹은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개인적으로 체통을 중시하는 성격이라면, 신발 또한 엄연히 옷차림의 일부이므로 신발을 벗고 발을 드러내는 것은 옷을 일부 벗는 것과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히 맨발이 보이느냐 마느냐와는 조금 다른 문제로, 가령 이미 발이 드러나는 샌들을 신은 경우라도 그것을 벗는 것은 별개고, 반대로 양말이나 스타킹을 신어서 신발을 벗어도 맨발이 드러나지 않는다 해도 마찬가지다.[5] 심지어 본인이 집주인으로서 방문객을 맞을 때조차 맨발을 드러내기 꺼리는 사람도 꽤 있고,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기도 한다.[6] 하이힐처럼 스타일에 끼치는 영향이 크거나 부츠처럼 신고 벗기 불편한 신발을 신은 경우라면 그 부담감은 더 커진다. 실제로 자세의 불편함 때문이 아니라 신발을 벗기 싫어서 좌식 식당을 꺼리거나, (여전히 실내에서는 신발을 벗는 게 대세인 한국에서는) 사람을 만날 때 집보다 실외에서 만나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도 많다.
특히 입식 문화의 역사가 긴 서양에서는 여전히 공적인 자리에서 신발을 벗는 것에 대한 금기가 상당한 편이다. 괜히 엘리자베스 2세가 방한 중에 안동 하회마을 한옥에서 신발 벗고 스타킹 차림으로 마루에 올라가자 외신 기자들이 마구 플래시를 터뜨리고 대서특필한 것이 아니다. 관련 칼럼 21세기 들어 서양에서도 위생 등의 이유로 실내에서는 밖에서 신던 신발을 벗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데, 가장 큰 반대 근거가 민망하고 예의에 어긋난다는 것일 정도다. - 집주인의 바닥 청소가 깨끗하다는 보장이 없으므로 방문객 입장에서는 다소 찜찜할 수도 있다. 단순히 방문객의 결벽증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 이런 식으로 무좀이 전염되는 경우가 매우 많다. 물론 입식에서는 상시 신발을 신는다는 이유로 무좀이 창궐하기 쉽다는 측면에서는 일장일단이 있다.
- 집이 클수록 불편해진다. 극단적으로 가령 3~4층, 혹은 그 이상의 규모를 가진 대저택 전체가 좌식이라고 생각해 보자. 현관에 신발 벗어두고 그 큰 건물 전체를 맨발이나 양말 차림으로만 돌아다니는 것이 대단히 불편하고 비효율적인 짓일 것임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일정 이상 큰 주택은 대부분 입식, 최소한 실내화라도 신는 반 입식이 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출입구가 두세 개 이상이라면 다른 출입구를 이용할 때마다 신발을 들어 옮기거나 바꿔야 하는데 이건 반 입식으로도 해결이 안 된다.
5. 같이 보기
[1] 좌식공간관습의 건축사적 함의 - 신발의 문제를 중심으로 -, 조재모, 건축역사연구, 2012, vol.21, no.1, 통권 80호 pp. 83-98 (16 pages), 한국건축역사학회.[2] 하지만 한국의 온돌+장판 조합이 하나의 주거 양식으로 서민들의 주택에까지 퍼진 시기는 조선 후기이다. 이전에는 조선철이라 불리는 카펫을 더 많이 이용했다. 특히나 카펫은 신라 시대의 유물까지 출토되어 오랫동안 한반도에서 사용되어 왔을 것으로 추정된다.[3] 서민층은 인식과는 달리 중산층을 포함해 차상위계층, 저소득층 등의 하위 계층을 모두 포함하는 말로 경제적인 계층 분류법이 아니다.[4] 가령 군필자라면 군복에 군화를 신지 않는 것이 얼마나 기괴한 패션인지 알 것이다.[5] 안에 내복이나 러닝셔츠를 입었다고 옷을 벗어도 괜찮은 것은 아닌 것과 같다.[6]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실외나 격식 있는 자리에서는 모자를 쓰는 것이 당연한 예의였던 것과 비슷하다. '쓰기 싫은데 예의 때문에 억지로 쓰는 것'이 아니라, 쓰지 않고 맨머리를 드러내는 것을 스스로 부끄러워했다. 아무리 가난할지언정 낡아빠져 다 떨어지고 구멍난 모자라도 쓰고 다녔고, 범죄자, 마피아들조차 모자는 썼다. 21세기 현재도 문화가 보수적인 군대에서는 실외탈모는 규정위반이다.[7] 좌식 식당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안내판이다. 그런데 이는 법적으로는 아무런 효력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