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03 18:49:56

젤림한 바카예프

파일:ZelimkhanBakayev.png
<colbgcolor=#792644> 알 와흐다 FC No. -
<colcolor=#aea28a> 젤림한 바카예프
Зелимхан Бакаев | Zelimkhan Bakayev
본명 젤림한 자브라일로비치 바카예프
Зелимхан Джабраилович Бакаев
Zelimkhan Dzhabrailovich Bakayev
출생 1996년 7월 1일 ([age(1997-03-07)]세)
러시아 인구셰티야 공화국 나즈란
국적
[[러시아|]][[틀:국기|]][[틀:국기|]]
신체 180cm, 체중 77kg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윙어
주발 왼발
소속 <colbgcolor=#792644><colcolor=#aea28a> 유스 FC 스파르타크 모스크바 (2007~2014)
선수 FC 스파르타크 모스크바 (2014~2022)
스파르타크 모스크바-2 (2014~2018 / 임대)
FC 아르세날 툴라 (2018~2019 / 임대)
FC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 (2022~ )
알 와흐다 FC (2023~ / 임대)
국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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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경기 6골 (러시아 U-21 / 2016~2018)
13경기 1골 (러시아 / 2019~ )
가족 동생 솔트무라트 바카예프

1. 개요2. 클럽 경력
2.1. 유년기2.2. 1군으로 도약
2.2.1. FC 아르세날 툴라 (임대)2.2.2. 2019-20 시즌2.2.3. 2020-21 시즌
2.3. FC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
3. 국가대표 경력4. 수상 경력5. 여담6.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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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러시아 국적의 알 와흐다 FC 소속 축구선수.

2. 클럽 경력

2.1. 유년기

아버지와 함께 8살때 축구를 시작하였다. 아버지가 나즈란 역 근처에 있는 공터에서 동생 솔트무라드와 함께 훈련시켰다고 한다. 2007년에는 10살의 나이로 아버지의 친구가 일하는 로코모티프 모스크바에 입단테스트를 보러 갔지만 합격하지 못해 고향인 인구셰티아로 돌아왔다. 이후 할머니의 도움으로 스파르타크 모스크바에 입단하게 된다. 테스트는 한달동안 지속되었고 항상 할머니가 거기에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후 학교에 입학한 이후 바카예프는 1년반동안 친척과 떨어져서 지내야 했다. 그러면서 축구 기량을 발전시키지 못했고 많이 뛰지도 못했다. 이후 동생 솔트무라드와 함께 부모님이 모스크바로 올라왔다.

바카예프의 첫 코치였던 알렉세이 레오니도비치 루닌이었다. 11살의 나이에 스파르타크 아카데미에 들어온 바카예프는 외소한 체격을 갖고 있었고 크게 두드러지지 못했다. 그래서 스파르타크 측에서는 바카예프를 방출시키려고 했으나, 아버지가 그를 도왔다고 한다. 그의 영양상태를 점검해보고 체격 상태를 같이 점검했고 그게 통했다. 다만, 당시 아카데미의 감독이었던 블라디미르 브로도프는 젤림한을 방출시키지 않은 이유는 동생 솔트무라드를 잃을까봐였다고 했다.
"당시 젤림한을 방출하고 싶었던 상황이 있었습니다. 저는 반대를 하는 쪽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럴 경우 촉망받는 유망주인 솔트무라드가 나갈 수 있기 때문이었죠. 저는 스피드가 축구 선수의 잠재력을 평가하는 요소 중 주요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항상 스피드를 무언가에 이용할 수 있고, 만약 느리다면, 선수 본인도 알겠지만 현대 축구에서 고전할 수 있습니다. 솔트무라드는 입단하자마자 그의 잠재력을 보여줬지만 젤림한은 16살에 되어서야 보여줬습니다. 그 이전에는 코치들이 그를 어떤 방법으로도 도우려 하지 않았습니다. 테크닉에서는 이견이 없이 좋았지만 스피드나 체력부분에서 약점이 있었습니다. 저는 당시 코치에게 "후반전 풀 타임 뛰껴봐."라고 말했지만 그는 "그러면 15분만에 방전될 겁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전 "그러면 첨에는 15분 그다음에 20, 30분을 뛰껴. 계속 10분만 뛰끼면 체력이 늘어나지 않아."라 했죠. 전 젤림한에게 "힘들어지고 넘어지면 일어나서 뛰어. 만약 그러고나서 실수를 하고 볼을 뺏기더라고 아무말 하지 않을거야."라고 했습니다. 그 결과 젤림한은 성장했고 스스로와 싸워서 이겨냈죠."[원문]

젤림한은 또한 아버지가 집 근처에 잡아놓은 아침과 저녁 추가 훈련으로 인해 기량이 상승했다. 이와 관련해 바카예프는 2017년 기자회견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
"저의 약점이 피지컬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서 그 부분에 집중을 해서 향상시켰습니다. 또한 속도 부분에서 약점이 있어서 코치진들이 절 도와줬습니다. 저는 아카데미에서 가장 느린 선수중 하나였지만 이제는 가장 빠른 선수 축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제 유일한 장점은 드리블이었습니다. 어렸을 때 굴곡진 곳에서 축구를 많이 했고 거기서 드리블이나 개인기를 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필요한 것들을 얻기 위해서는 가끔씩 하루에 4번씩도 훈련을 해야하죠!"[원문2]

2013년부터 바카예프는 스파르타크의 유스팀으로 뛰기 시작했다. 7월 15일에 크릴리야 소베토프 사마라를 상대로 러시아 유스 챔피언십 경기에 58분 교체 출장하여 유스 데뷔를 하였다. 8월 24일 암카르와의 경기에 출장하여 61분에 유스 데뷔골을 넣었다. 통산 유스로 61경기에 출장하여 10골을 출장하였다. 2014년 4월 26일에는 당시 3부리그 소속이었던 스파르타크 2 소속으로 메탈루르크 비크사를 상대로 72분 교체 출장하여 데뷔전을 치렀다. 2016년 4월 7일 2015-16시즌 FNL 30라운드 경기에서 발티카 칼리닌그라드를 상대로 선발출장하여 51분에 스파르타크-2 소속으로 첫 골을 넣었다. 스파르타크-2 소속으로 53경기에 출장하여 4골을 넣었다.

2.2. 1군으로 도약

2015년 9월 23일 러시아 컵 32강 볼가 니즈니 노브고로드를 상대로 61분에 교체출장을 하면서 스파르타크 모스크바 데뷔전을 치렀다. 10월 28일에 열린 크라스노다르와의 16강 경기에서도 교체출장하였다. 이후 2015-16시즌과 16-17시즌에는 FNL에 있는 스파르타크-2에서만 41경기를 뛰었다.

2017년 7월 23일에는 2라운드 우파와의 경기에서 선발명단에 이름을 올리며 러시아 프리미어 리그 데뷔전을 치렀다. 69분에 교체되었다. 2017-18시즌에는 스파르타크 모스크바 소속으로 5경기의 프리미어 리그 경기를 뛰었다.

2.2.1. FC 아르세날 툴라 (임대)

2018년 8월 1일 올레크 코노노프 감독의 아르세날 툴라로 임대를 갔다.

2018년 8월 4일, 그는 2라운드 제니트와의 경기에서 아르세날 소속으로 데뷔를 치렀고 67분에 다니일 레소보이와 교체되었다. 8월 12일 아흐마트 그로즈니와의 3라운드 경기에서 아르세날 소속으로 커리어 사상 프리미어 리그 첫 골을 넣었다. 9월 15일 크릴리야 소베토므 사마라와의 7라운드 경기에서 72분에 에반스 캉과와 교체되어 팀의 4번째 골을 82분에 넣었다. 9월 22일 루빈 카잔과의 8라운드 경기에서 선발로 풀타임을 뛰었고 76분에 골을 넣었다. 11월 9일 안지 마하치칼라와의 15라운드 경기에서 2골을 넣었다. 이 경기 이후 아르세날의 감독이었던 올레크 코노노프가 스파르타크로 자리를 옮겼고 아르세날은 이고르 체레프첸코가 지휘하게 된다.

12월 3일, 제니트와의 러시아 프리미어 리그 16라운드 경기에서 77분에 득점을 하면서 팀의 승리에 기여하였다. 같은 날에 스파르타크가 젤림한을 다시 임대 복귀시키고 하고 싶어한다는 루머가 나왔다. 2019년 4월 20일, 우파와의 24라운드 경기에서는 3분만에 득점에 성공하였다. 5월 4일 로코모티프 모스크바와의 27라운드 경기에서는 24분에 득점에 성공하며 팀의 2대0 승리를 도왔다. 5월 10일에는 안지 마하치칼라와의 28라운드 경기에서 34분에 페널티를 얻어냈고, 득점까지 성공하면서 팀의 1대0 승리를 만들어냈다.

아르세날 소속으로 러시아 프리미어리그 25경기를 출장해 8골 2도움을, 러시아 컵에서 4경기를 출장해 1도움을 기록하였다. 2019년 6월에 그는 원 소속팀인 스파르타크 모스크바로 복귀하였다.

2.2.2. 2019-20 시즌

임대 종료 후 시즌 전에 코노노프 감독에게 등번호 10번을 요구했고 감독이 이를 수락했다. 7월 13일 1라운드 소치와의 경기에서 선발출장해 풀타임을 뛰었다. 19-20시즌이 시작한 이후 주전 미드필더로 자리잡았다. 7월 20일 로스토프와의 2라운드 경기에서는 마치 프리미어 채널로부터 MOM 칭호를 받았다. 8월 8일 툰과의 유로파리그 3차예선 경기에서 스파르타크 소속으로 데뷔골을 터뜨렸다. 8월 11일 아흐마트 그로즈니와의 5라운드 경기에서는 역대 스파르타크 선수 최초로 전반전에만 러시아 프리미어 리그 경기에서 2골을 넣은 선수가 되었고 경기 종료 후 MOM에 선정되었다. 9월 25일 KAMAZ와의 러시아 컵 32강 경기에서는 에세키엘 폰세에게 2도움을 해주면서 팀의 16강 진출을 도왔다.

올레크 코노노프 감독이 9월 말에 경질된 이후 테데스코 감독이 선임되었고 그는 바카예프를 윙어에서 공미로 포지션 변경을 하였고 스파르타크의 키 플레이어가 되었다. 10월 27일 로코모티프 모스크바와의 14라운드 더비 경기에서 3도움을 기록하면서 팀의 3대0 승리에 크게 기여하였고 경기 종료 후 MOM으로 선정되었다. 11월 9일 크릴리야 소베토프 사마라와의 16라운드 리그 경기에서는 선발출장하여 전반 3분에 에세키엘 폰세에게 도움을 기록하였고 83분에는 페널티를 얻어내면서 MOM으로 선정되었다. 이후 바카예프는 이번시즌 가장 많은 MOM을 받은 선수가 되었다. 11월 24일 우랄과의 17라운드 경기에서는 0대0으로 비겼지만 4개의 유효슈팅을 만들어내면서 MOM으로 선정되었다.

2020년 2월 29일에는 디나모 모스크바와의 20라운드 경기에서 선발출장해 전반 29분 알렉산드르 소볼레프의 패스를 받아 득점에 성공하였고 이후에 로만 조브닌에게 어시스트를 해줘 팀의 2대0 승리에 모두 관여했다. 경기 종료 후 MOM으로 선정되었다. 3월 4일 CSKA와의 러시아 컵 8강 경기에서는 4분만에 득점하였지만, 이후에 상대 선수와 충돌하여 뇌진탕 증세를 일으켜 교체되었다. 7월 4일 탐보프와의 26라운드 경기에서는 페널티를 얻어냈다. 7월 22일에는 루빈 카잔과의 30라운드 경기에서 40분에 페널티를 얻어냈고 팀의 승리를 이끌어냈다.

2019-20시즌에는 모든 대회 통산 35경기에 뛰어 10골 12도움을 기록하는 커리어 하이 기록을 세웠다. 팀내 최다 공격포인트와 팀내 도움 1위를 기록하였다.

2.2.3. 2020-21 시즌

2020년 8월 26일 로토르 볼고그라드와의 5라운드 경기에서 페널티골을 넣으면서 시즌 1호 득점을 기록하였다.

시즌 초반에는 어느정도의 출전시간을 부여받았으나 퀸시 프로머스의 영입 이후 백업으로 완전히 밀렸다. 최종성적은 23경기 1골 6도움. 기량에 비해 출전시간을 부여받지 못하자, 디나모 모스크바로의 이적설도 돌았으나, 일단은 새 감독이 시즌 종료 후 부임하게 되면서 스파르타크에 잔류하는 것으로 보인다.

2.3. FC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

2022년 6월 15일, FC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와 3년 계약을 체결했다. 1년 연장 옵션 포함.#

2.3.1. 알 와흐다 FC (임대)

현지 시간 2023년 9월 19일, 알 와흐다 FC로 임대를 떠났다.#

3. 국가대표 경력

2016년 가을 처음으로 러시아 유스 국가대표에 차출되었다. 5월 31일 스위스와의 친선경기에서 데뷔했다. 2017년 5월 31일 벨라루스와의 경기에서 2골을 기록하였다. 11월 10일에는 아르메니아를 상대로 득점을 기록하였다.

2019년 5월 14일날 유로 2020 예선 산마리노와 키프로스 경기를 대비하는 러시아 국가대표팀의 확장 엔트리에 처음으로 들었다. 5월 23일에 최종엔트리에 들었다. 6월 11일 키프로스와의 경기에서 처음으로 경기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다. 10월 13일 키프로스와의 유로 예선 8라운드 경기에서 러시아 대표팀 데뷔전을 치렀다. 78분에 알렉세이 이오노프와 교체되었다. 11월 19일 산마리노와의 유로 예선 10라운드 경기에서 처음으로 러시아 대표팀 선발 명단에 진입하였다. 풀타임을 뛰었고 팀은 5대0으로 승리하였다. 이후 경기 sports.ru 선정 경기 MOM으로 뽑혔다.

4. 수상 경력

FC 스파르타크 모스크바
FC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

5. 여담

  • 동생 솔트무라드 바카예프도 스파르타크 모스크바 아카데미를 졸업해 현재 루빈 카잔에서 선수생활을 하고 있다.
  • 아버지인 자브라일 바가우디노비치 바카예프도 축구선수 출신이지만 프로무대는 단 1경기만 뛰었다. 안구시타라는 팀에 소속되어 3부리그 경기에서 82분에 나르트 나르트칼라를 상대로 교체출전한 것이 전부. 하지만 18살의 나이에 축구를 그만두기로 하였고 이후 그것을 계속 후회하고 있다고 한다.
  • 2019년 12월 15일에 고향인 인구셰티아에서 파티마 보가티레바라는 사람과 결혼하였다.
  • 2019년 6월에 동생인 솔트무라드와 함께 고향인 나즈란에 축구 학교를 차렸다. 학생 수는 70명이고 감독은 티무르 잔기예프라고 한다.

6. 같이 보기



[원문] По Зелимхану был момент, когда его хотели отчислить. Я был категорически против — потому что тогда бы ушёл и Солтмурад, который был просто ракетой. Для меня скорость — один из главных факторов при оценке перспектив футболиста. На скорость всегда можно что-то наложить, а если человек медленный, пусть даже соображающий, в современном футболе ему будет тяжело. Солтмурад сразу показал себя перспективным, а Зелимхан раскрылся только в 16 лет. До этого тренер ни в какую не хотел его ставить. По технике вопросов не было (любой левша действует нестандартно), но уступал в скорости и выносливости. Я сказал тренеру: «Поставь его на весь второй тайм». — «Да он сдохнет через 15 минут». — «Тогда выпусти сначала на 15, потом на 20, потом на 30. Если давать по 10 минут, он в выносливости не прибавит. Заставляй его. Говори: «Если станет плохо и упадешь — вставай и беги. Если после этого ошибешься и потеряешь мяч, я тебе и слова не скажу». В итоге Зелимхан прибавлял и в честной борьбе выиграл конкуренцию[원문2] Мне говорили: плохая физика; работали над тем, чтобы улучшить ее. Возникали проблемы с ударом — тренировали его. Я был одним из самых медленных в нашей академии, и даже в дубле поначалу — а теперь один из самых быстрых. И только дриблинг всегда был на хорошем уровне. В детстве играл на полях с кочками, там и научился обводить. А так, чтобы набрать нужные кондиции, иногда приходилось тренироваться по четыре раза в ден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