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1-08 17:08:04

인노첸시오 2세

 
{{{#!wiki style="margin: -26px -10px -5px; background: linear-gradient(to right, #ccb400, #ffe100 20%, #ffe100 80%, #ccb400)"
{{{#!wiki style="padding: 5px 0; display: inline-block; margin: -1px 0px"
{{{#!folding   [초대-제60대]
{{{#!wiki style="padding-top: 0px; margin: 1px -1px -10px"
초대 제2대 제3대 제4대 제5대
베드로 리노 아나클레토 클레멘스 1세 에바리스토
제6대 제7대 제8대 제9대 제10대
알렉산데르 1세 식스토 1세 텔레스포로 히지노 비오 1세
제11대 제12대 제13대 제14대 제15대
아니체토 소테르 엘레우테리오 빅토르 1세 제피리노
제16대 제17대 제18대 제19대 제20대
갈리스토 1세 우르바노 1세 폰시아노 안테로 파비아노
제21대 제22대 제23대 제24대 제25대
고르넬리오 루치오 1세 스테파노 1세 식스토 2세 디오니시오
제26대 제27대 제28대 제29대 제30대
펠릭스 1세 에우티키아노 카이오 마르첼리노 마르첼로 1세
제31대 제32대 제33대 제34대 제35대
에우세비오 멜키아데 실베스테르 1세 마르코 율리오 1세
제36대 제37대 제38대 제39대 제40대
리베리오 다마소 1세 시리치오 아나스타시오 1세 인노첸시오 1세
제41대 제42대 제43대 제44대 제45대
조시모 보니파시오 1세 첼레스티노 1세 식스토 3세 레오 1세
제46대 제47대 제48대 제49대 제50대
힐라리오 심플리치오 펠릭스 3세 젤라시오 1세 아나스타시오 2세
제51대 제52대 제53대 제54대 제55대
심마코 호르미스다 요한 1세 펠릭스 4세 보니파시오 2세
제56대 제57대 제58대 제59대 제60대
요한 2세 아가피토 1세 실베리오 비질리오 펠라지오 1세 }}}}}}}}}{{{#!wiki style="padding: 5px 0; display: inline-block; margin: -1px 0px"
{{{#!folding   [제61-120대]
{{{#!wiki style="padding-top: 0px; margin: 1px -1px -10px"
제61대 제62대 제63대 제64대 제65대
요한 3세 베네딕토 1세 펠라지오 2세 그레고리오 1세 사비니아노
제66대 제67대 제68대 제69대 제70대
보니파시오 3세 보니파시오 4세 아데오다토 1세 보니파시오 5세 호노리오 1세
제71대 제72대 제73대 제74대 제75대
세베리노 요한 4세 테오도로 1세 마르티노 1세 에우제니오 1세
제76대 제77대 제78대 제79대 제80대
비탈리아노 아데오다토 2세 도노 아가토 레오 2세
제81대 제82대 제83대 제84대 제85대
베네딕토 2세 요한 5세 코논 세르지오 1세 요한 6세
제86대 제87대 제88대 제89대 제90대
요한 7세 시신니오 콘스탄티노 그레고리오 2세 그레고리오 3세
제91대 제92대 제93대 제94대 제95대
자카리아 스테파노 2세 바오로 1세 스테파노 3세 하드리아노 1세
제96대 제97대 제98대 제99대 제100대
레오 3세 스테파노 4세 파스칼 1세 에우제니오 2세 발렌티노
제101대 제102대 제103대 제104대 제105대
그레고리오 4세 세르지오 2세 레오 4세 베네딕토 3세 니콜라오 1세
제106대 제107대 제108대 제109대 제110대
하드리아노 2세 요한 8세 마리노 1세 하드리아노 3세 스테파노 5세
제111대 제112대 제113대 제114대 제115대
포르모소 보니파시오 6세 스테파노 6세 로마노 테오도로 2세
제116대 제117대 제118대 제119대 제120대
요한 9세 베네딕토 4세 레오 5세 세르지오 3세 아나스타시오 3세
미즉위 선출자
스테파노 2세 }}}}}}}}}{{{#!wiki style="padding: 5px 0; display: inline-block; margin: -1px 0px"
{{{#!folding   [제121-180대]
{{{#!wiki style="padding-top: 0px; margin: 1px -1px -10px"
제121대 제122대 제123대 제124대 제125대
란도 요한 10세 레오 6세 스테파노 7세 요한 11세
제126대 제127대 제128대 제129대 제130대
레오 7세 스테파노 8세 마리노 2세 아가피토 2세 요한 12세
제131대 제132대 제133대 제134대 제135대
베네딕토 5세 레오 8세 요한 13세 베네딕토 6세 베네딕토 7세
제136대 제137대 제138대 제139대 제140대
요한 14세 요한 15세 그레고리오 5세 실베스테르 2세 요한 17세
제141대 제142대 제143대 제144대 제145대
요한 18세 세르지오 4세 베네딕토 8세 요한 19세 베네딕토 9세
제146대 제147대 제148대 제149대 제150대
실베스테르 3세 베네딕토 9세 그레고리오 6세 클레멘스 2세 베네딕토 9세
제151대 제152대 제153대 제154대 제155대
다마소 2세 레오 9세 빅토르 2세 스테파노 9세 니콜라오 2세
제156대 제157대 제158대 제159대 제160대
알렉산데르 2세 그레고리오 7세 빅토르 3세 우르바노 2세 파스칼 2세
제161대 제162대 제163대 제164대 제165대
젤라시오 2세 갈리스토 2세 호노리오 2세 인노첸시오 2세 첼레스티노 2세
제166대 제167대 제168대 제169대 제170대
루치오 2세 에우제니오 3세 아나스타시오 4세 하드리아노 4세 알렉산데르 3세
제171대 제172대 제173대 제174대 제175대
루치오 3세 우르바노 3세 그레고리오 8세 클레멘스 3세 첼레스티노 3세
제176대 제177대 제178대 제179대 제180대
인노첸시오 3세 호노리오 3세 그레고리오 9세 첼레스티노 4세 인노첸시오 4세 }}}}}}}}}{{{#!wiki style="padding: 5px 0; display: inline-block; margin: -1px 0px"
{{{#!folding   [제181-240대]
{{{#!wiki style="padding-top: 0px; margin: 1px -1px -10px"
제181대 제182대 제183대 제184대 제185대
알렉산데르 4세 우르바노 4세 클레멘스 4세 그레고리오 10세 인노첸시오 5세
제186대 제187대 제188대 제189대 제190대
하드리아노 5세 요한 21세 니콜라오 3세 마르티노 4세 호노리오 4세
제191대 제192대 제193대 제194대 제195대
니콜라오 4세 첼레스티노 5세 보니파시오 8세 베네딕토 11세 클레멘스 5세
제196대 제197대 제198대 제199대 제200대
요한 22세 베네딕토 12세 클레멘스 6세 인노첸시오 6세 우르바노 5세
제201대 제202대 제203대 제204대 제205대
그레고리오 11세 우르바노 6세 보니파시오 9세 인노첸시오 7세 그레고리오 12세
제206대 제207대 제208대 제209대 제210대
마르티노 5세 에우제니오 4세 니콜라오 5세 갈리스토 3세 비오 2세
제211대 제212대 제213대 제214대 제215대
바오로 2세 식스토 4세 인노첸시오 8세 알렉산데르 6세 비오 3세
제216대 제217대 제218대 제219대 제220대
율리오 2세 레오 10세 하드리아노 6세 클레멘스 7세 바오로 3세
제221대 제222대 제223대 제224대 제225대
율리오 3세 마르첼로 2세 바오로 4세 비오 4세 비오 5세
제226대 제227대 제228대 제229대 제230대
그레고리오 13세 식스토 5세 우르바노 7세 그레고리오 14세 인노첸시오 9세
제231대 제232대 제233대 제234대 제235대
클레멘스 8세 레오 11세 바오로 5세 그레고리오 15세 우르바노 8세
제236대 제237대 제238대 제239대 제240대
인노첸시오 10세 알렉산데르 7세 클레멘스 9세 클레멘스 10세 인노첸시오 11세 }}}}}}}}}{{{#!wiki style="padding: 5px 0; display: inline-block; margin: -1px 0px"
{{{#!folding   [제241대 이후]
{{{#!wiki style="padding-top: 0px; margin: 1px -1px -10px"
제241대 제242대 제243대 제244대 제245대
알렉산데르 8세 인노첸시오 12세 클레멘스 11세 인노첸시오 13세 베네딕토 13세
제246대 제247대 제248대 제249대 제250대
클레멘스 12세 베네딕토 14세 클레멘스 13세 클레멘스 14세 비오 6세
제251대 제252대 제253대 제254대 제255대
비오 7세 레오 12세 비오 8세 그레고리오 16세 비오 9세
제256대 제257대 제258대 제259대 제260대
레오 13세 비오 10세 베네딕토 15세 비오 11세 비오 12세
제261대 제262대 제263대 제264대 제265대
요한 23세 바오로 6세 요한 바오로 1세 요한 바오로 2세 베네딕토 16세
제266대
프란치스코 }}}}}}}}}}}}

파일:교황 문장.svg 가톨릭 교회의 교황
파일:164_innocenzo_II.png
제163대 호노리오 2세 제164대 인노첸시오 2세 제165대 첼레스티노 2세

제164대 교황.

전임 교황 호노리오 2세가 사망할 무렵, 바티칸에서 떠오르던 차기 교황 후보자는 결단력 있는 개혁가 성향의 피에르토 피에르레오니 추기경이었다. 그는 피에르 아발라르와 같이 수학하였고, 클뤼니 대수도원수도자로서 학문적 명성이 높았다. 하지만 그는 결국 선출되지 못하고 당시 산 안젤로 성당의 부제급 추기경이었던 그레고리오 파파레스키가 인노첸시오 2세로 등극한다.

그 이유는 당대 로마의 정치 상황에 있었다. 당시의 로마는 피에르레오니와 프랑지파니라는 두 가문의 대립이 지속되는 상태였고, 이들은 교황 선출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전임 교황이었던 호노리오 2세는 프랑지파니 파벌에 속해 있었는데, 피에르토 추기경은 피에르레오니 가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피에르토 추기경은 인노첸시오 2세에 불복하여 대립교황 아나클레토 2세로 등극한다. 초반에는 로마 시민들을 대상으로 막대한 돈을 뿌린 피에르레오니 파벌이 유리했고, 결국 아나클레토 2세가 로마를 손에 넣고 인노첸시오는 로마를 떠나야 했다.

하지만 로마 외의 지역에서는 인노첸시오 2세의 인기가 더 많았다. 그는 가는 곳마다 환영을 받았고, 당시 교회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했던 크렐르보의 성 베르나르도가 인노첸시오 2세를 지지했다. 그는 아나클레토 2세의 출신이었던 클뤼니 수도원이 초기의 개혁적 성향을 버리고 타락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나클레토 2세를 몰아낼 결정적인 한 방이 부족한 상태였는데, 이를 타개하기 위해 양 측은 신성 로마 제국 황제 로타르 3세를 끌어들이고자 했다. 당시의 로타르 3세는 호엔슈타우펜 가문과 권력 투쟁을 벌이고 있었고, 아직 로마에서 황제의 대관식을 치르지 못한 상태였다. 아나클레토 2세는 호엔슈타우펜 가문의 수장 콘라드를 파문하겠다는 제안을 했지만 로타르 3세는 시큰둥했다.

결국 아나클레토 2세는 제국 황제가 아닌 로마 아래의 시칠리아 백작 루제루 2세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는 루제루 2세를 시칠리아 왕국의 왕으로 임명해 힘을 실어주었다. 이를 보고 로타르 3세는 인노첸시오 2세를 지지했다.[1] 로타르 3세는 1132년 로마로 진군하였으나 로마 전역을 점령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로타르 3세는 1133년 6월에 대관식을 하고 본국으로 가버려 결국 인노첸시오 2세는 다시 도망쳐야 했다.

대치 국면은 1135년에 전환을 맞는다. 동로마 제국이 점유했던 이탈리아 남부를 점령하고 약탈하던 시칠리아 왕국의 루제루 2세를 몰아내기 위해 동로마 황제 요안니스 2세가 로타르 3세에게 돈을 지원할 테니 루제루 2세를 몰아내 달라는 요청을 보낸 것이었다. 내부 권력 투쟁에서 승리한 당시의 로타르 3세는 1136년에 대군을 이끌고 로마로 향했다. 하지만 루제루 2세는 로타르 3세가 고령이라는 점을 이용하여 지연전을 펼쳐 생각보다 잘 버텨냈다. 결국 로타르 3세는 티롤 지방에서 사망한다. 하지만 문제는 몇 달 뒤에 아나클레토 2세 역시 사망했다는 것이다. 명분을 잃어버린 루제루 2세는 인노첸시오 2세를 공식적을 인정함으로써 대립을 끝내고자 했다. 하지만 인노첸시오 2세는 좋은 조건을 무시하고 시칠리아 왕국을 공격한다. 하지만 여기서 져서 인노첸시오 2세는 루제루 2세의 시칠리아 왕국 왕위를 공인해야 했다.

결국 대립교황을 몰아냈지만 상처만 남은 인노첸시오 2세의 남은 치세는 그다지 행복하지 못했다. 로마 사람들은 인노첸시오 2세를 항상 아나클레토 2세에 비해 낮게 평가했고, 그 동안의 대립은 북이탈리아의 여러 도시들이 본격적으로 자치를 추구할 여유를 주었다. 심지어 막판에는 로마에서 원로원이 부활하기까지 했다.


[1] 로타르 3세는 과거 보름스 협약에서 축소된 황제의 주교 서임권을 되찾고자 하는 딜을 걸었지만, 베르나르도를 중심으로 결집한 교회의 압력으로 결국 대관식을 받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