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8:06:31

이현승(축구선수)

이현승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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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前 축구선수
파일:p02276_img10_202002.jpg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이현승
李弦昇 / Lee Hyun-Seung
출생 1988년 12월 14일 ([age(1988-12-14)]세)
경기도 수원시
국적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신체조건 171cm, 72kg
학력 율전중학교 (졸업)
수원공업고등학교 (중퇴)
직업 축구선수 (미드필더[1] / 은퇴)
바리스타
프로 입단 2006년 전북 현대 모터스
소속 <colbgcolor=#eeeeee,#191919> 선수 전북 현대 모터스 (2006~2009)
FC 서울 (2010~2011)
전남 드래곤즈 (2011 / ^임대^)
전남 드래곤즈 (2012~2014)
부천 FC 1995 (2015)
대전 시티즌 (2015~2017)
안산-아산 무궁화 FC (2016~2017 / ^군 복무^)
부천 FC 1995 (2018)
경주 한국수력원자력 (2019)
김해시청 축구단 (2020)
국가대표 파일: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17경기 1골 (대한민국 U-20 / 2006~2007)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前 축구선수.

2006년에 17세 4개월 26일의 나이로 득점하며 K리그 역대 최연소 득점 기록을 새롭게 썼다. 2024년 박승수에게 해당 기록이 깨지기 전가지 18년 동안 최연소 기록자로 군림했다.

2. 경력

2.1. 유소년 시절

초등학교 때 비등록 축구를 통해 두각을 나타내었고, 새롭게 축구부가 창단한 율전중을 거쳐 수원공고를 거쳤다. 수원공고에선 '제 2의 박지성' 소리를 들을 정도로 유망주였다.

수원공업고등학교를 다니던 중 전북 현대 모터스 최강희 감독의 스카웃으로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전북 현대 모터스에 입단[2]했다.

2.2. 전북 현대 모터스

2006년 17세 4개월 26일의 나이로 수원 삼성 블루윙즈전에서 골을 넣으며 K리그 역대 최연소 득점 기록[3]을 세웠고 이 기록은 2024년 6월 30일, 박승수에 의해 약 18년 만에 깨졌다.

또한 대한민국 국적 최연소 ACL 출전 기록도 세우며 팀의 사상 첫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에 기여했다. 이후 최연소 FIFA 클럽 월드컵 출전자로 이름을 남기는 활약으로 주목을 받았다.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U-20 국가대표에 선발되어 2007 U-20 세계 청소년 월드컵에도 참가했다. 그러나 U-20 국가대표팀에서는 이상호이청용에게 밀려 주전으로 기용되지 못하며 별 활약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팀에서는 프로축구 최연소 도움 해트트릭[4]을 기록하는 등, 팀내 최다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만 19세의 나이에 성인 무대에서 한 시즌에 약 30경기를 소화했다.

2008년에는 시즌 중반 팀에 합류한 루이스에게 서서히 밀리긴 했지만 그래도 팀을 6강 플레이오프에 올려놓는데 기여를 했다.

2009년에는 기존 루이스의 백업 자리를 두고 하대성과 주전 경쟁을 하는 와중에서도 그럭저럭 활약하며 자신의 커리어 최다인 시즌 4골을 득점하며 팀의 첫 K-리그 우승에 기여했다.

전북 팬들의 이현승에 대한 중론은 '게으른 천재로, 예상보다 크게 성장하지 못했다.' 라는 평.

2.3. FC 서울

2010 시즌을 앞두고 이현승은 하대성과 함께 심우연&김승용을 바꾸는 2:2 트레이드 형식으로 FC 서울로 이적했다.

하지만 빙가다 체제에서 이현승은 아예 배제됐다. 함께 이적한 하대성이 리그를 대표하는 미드필더로 성장한 것과 비교되기도 했다.

결국 2010시즌 소속 팀이 우승했음에도 불구하고 리그 3경기 출전에 그치며 자신의 커리어 최악의 시즌을 보냈다.

2.4. 전남 드래곤즈

그러던 중 2011년 전남 드래곤즈로 새로 부임한 정해성 감독의 요청으로 겨울 이적 시장 막판 전남으로 1년 임대를 왔다.

정해성 감독의 신임 아래 꾸준히 주전으로 출장하며 전북 시절 세웠던 커리어 하이 기록인 시즌 4골 2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전남의 에이스로 활약했다. 이 시기에 조광래 대표팀 감독의 부름을 받고 대표팀에 선발되기도 했다.

이후 전남으로 완전 이적했다.

이듬해 부임한 하석주 감독 아래서도 주전으로 뛰며 리그에서만 30경기를 넘게 뛰는 등 전남에서 4년 동안 100경기를 넘게 소화하며 팀의 핵심 미드필더로 활약했다.

그러나 2014년 부상으로 많은 경기를 소화하지 못했고, 시즌 종료 후 세대교체를 주도하는 노상래 감독이 지휘봉을 잡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팀을 떠났다.

비록 전북에서처럼 우승을 경험하진 못했지만 이현승은 전남 시절 자신이 팀에 중심이 돼 가장 잘 할 수 있는 플레이를 선보이며 가장 많은 경기에 나섰다.

2.5. 부천 FC 1995

파일:2017-9-17-18;24;22.jpg

2015시즌을 앞두고 부천 FC 1995로 이적하였다. 당시 클래식 주전급 미드필더가 챌린지 팀으로 이적하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는 팀이 있었는데, 이적료 문제와 당시 로컬룰의 기이함으로 인해 바로 1부 리그 팀으로 이적할 수 없었기 때문에 FC 서울 시절 2군에서 고생할 때 감독이던 최진한 감독을 따라 부천으로 이적한 것이다.

최진한 감독은 이현승을 통해 미드필드 지역에서 득점력 향상과 패스 플레이 강화 효과를 기대한 것이였다. 이현승은 최진한 감독에 부응하듯 공격진에서 준수한 활약을 보이며 K리그 챌린지 5라운드에서 역대급의 시저스킥 골을 선보였다.

하지만 팀은 부진하며 결국 최진한 감독이 시즌 중반 사임하고 송선호 감독 대행이 부임했다. 송선호 체제에서도 역시 부천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전반기 동안 17경기에 출장해 3골을 성공시키면서 챌린지 무대에서 클래식 출신 선수의 차이를 보여줬다.

2.6. 대전 시티즌 , 아산 무궁화

파일:(변환)99이현승 (4).jpg

2015년 7월 3일 대전 시티즌으로 이적하며 K리그 클래식 무대로 복귀하였다. 대전에서는 주로 공격진에서 상대를 유인해내는 자칭 미끼 역할로 공격을 풀어가는 데 보탬이 되기도 하였으나, 대전이 당시 워낙 최악의 부진을 거듭하고 있었고, 정작 공격수로서 골은 없었기에 큰 주목을 받진 못하였고, 결국 대전은 챌린지로 강등되었다.

결국 대전의 강등을 막지 못한채 2016년 안산 무궁화로 입대하며 반 년 만에 K리그 챌린지로 복귀했다. 전북 시절 코치였던 이흥실 감독과 재회했다.

2016년 4월 9일 친정팀 대전시티즌과의 경기서 한지호의 골을 어시스트하며 안산 입단 후 첫 어시스트를 기록했으며, 이후 거의 모든 경기에 출전하며 위협적인 모습을 보이는 특급 선수로 활약하며 2016시즌 38경기 출전 8골 6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리그 도움 6위 등 자신의 커리어 하이를 갱신함은 물론 팀의 창단 첫 리그 우승을 공헌, 2016 K리그 챌린지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2017년에는 팀과 함께 아산으로 홈을 옮겼고, 부천 시절 감독이던 송선호 감독과 재회했다. 전반기 14경기에 나섰다.

2017년 9월 전역해 대전에 복귀하였으며, 10월 22일 성남 FC전에서 대전 입단 후 첫골을 성공시키면서 잠시나마 대전의 리그 탈꼴찌의 희망의 불씨를 살렸지만, 경기 종료 막판 심판의 오심 속에 대전은 페널티킥을 내주면서 아쉽게 리그 최하위를 확정지고 말았다.

2.7. 부천 FC 1995 2기

2017시즌을 끝으로 대전과 계약 기간이 만료되면서 자유 계약으로 친정팀 부천으로 이적했다.

하지만 공격수임에도 유독 낮은 골결정력을 보이며 골을 보지 못했으며, 5월 27일 안산 그리너스 FC전에서 성공시킨 골이 2018시즌 처음이자 마지막 골이 되었다.

7월 8일 FC 안양과의 경기를 통해 K리그 통산 300경기 출장을 달성, K리그 역대 최연소 300경기 출전이라는 기록을 세웠다.[5][6]

2018시즌 한해 32경기 1골이라는 기록을 남겼고, 시즌 막판 다음 시즌 감독으로 부임한 송선호 감독과 재회하나 했지만 결국 1년 만에 계약 만료로 부천을 떠났다.

2.8. 세미프로 리그

2019년 경주 한수원으로 이적해 1년간 활악하며 팀의 전국체전, 내셔널축구선수권대회 우승 등 2관왕에 기여했다.

2020년에는 새로이 개편된 대한민국 3부 축구리그인 K3리그 참가팀 김해시청 축구단으로 이적하였다. 20시즌에는 리그 12경기 2골, FA컵 2경기 2골로 총 14경기 4골을 기록하며 팀의 K3리그 초대 우승에 기여했다.

2020시즌 종료 후 2021시즌 시작 전 발표된 등번호 명단에서 확인되지 않으며 팀을 떠난 것이 확정되었다.

3. 우승

4. 은퇴 이후

김해시청을 떠난 후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부인과 같이 서울에 커피숍을 차려 바리스타로 활동하고 있음을 밝히면서 사실상 축구 선수를 은퇴한 것으로 보인다.


[1] 공격형 미드필더[2] 2006년에는 K리그에 드래프트 제도가 시행되지 않았다.[3] 종전 기록자는 1984년 유공에서 뛰던 차희철. 이현승은 이 득점으로 차희철의 기록을 약 한 달 정도 앞당겼다.[4] 만 18세 4개월에 세운 기록이며, 종전 기록은 2002년 11월 17일 이천수가 가지고 있었다.[5] 29세 6개월 24일.[6] 물론 1,2부 그리고 리그컵 출전이 포함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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