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2-06 01:47:27

이국종/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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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고등학교 이전3. 의과대학 입학 이후4. 아주대학교병원 권역외상센터장 사임5. 아주대학교의료원 외상연구소장6. 국군대전병원

1. 개요

의사 이국종의 생애를 정리한 문서.

2. 고등학교 이전

1969년 서울특별시 강서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6.25 전쟁 참전 용사인 국가유공자이며 전쟁에서 외상을 당했다. 어린 시절 집이 가난해서 동사무소에서 밀가루를 배급받았고[1] 상이군경과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나빴던 탓에 중학교 시절까지만 해도 국가유공자 아들이라는 걸 숨기고 지냈다. 지병으로 축농증을 앓았기 때문에 국가유공자에게 주어지는 의료복지카드병원을 다녔는데, 병원 입장에서 돈이 안 됐기 때문인지 진료를 거부당한 적도 많았고, 또 집 근처에 큰 병원이 없어서 먼 길을 걸어 여러 군데를 다녀야만 했다고. 이런 주변 환경 속에서 상처를 많이 받았지만, 만화영화 주인공 캔디처럼 '외로워도 슬퍼도 난 쓰러지지 않는다'라는 생각으로 이 악물고 버텼다고 한다.# 이러한 경험으로 이국종은 '내가 나중에 어른이 되면 아픈 사람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겠다.'라고 다짐했다고 한다.

그중에서 의료복지카드를 들고오는 자신에게 일반 환자와 같은 대우를 해주는 '김학산 외과'라는 병원이 있었는데, 이국종은 그에 감사하면서도 의문을 갖고 의사에게 "왜 저를 일반 환자와 같이 대해주시나요??"고 물었다. 그러자 의사는 의아해하며 "그건 네가 신경 쓸 문제가 아니야"라고 답했다고. 되려 본인 부담금도 안 받고 오히려 이국종에게 "아버지가 자랑스럽겠구나" 라고 하며 용돈을 주곤 했다고 한다.#

3. 의과대학 입학 이후

이후 공부에 매진하여, 처음에는 해군사관학교 생도가 되기로 마음 먹었지만 시력이 좋지 않았다. 고등학교때 수학을 못해서 굉장히 어려웠다고 한다. 수학을 피해서 공과대학에 안 가고 의과대학으로 도망갔다고 한다. 하지만 의과대학에서도 수학을 또 했기에 수학을 분명히 피했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웬 재앙이냐고 생각했다고 한다.# 물론 의료복지카드를 들고 있는 자신을 거절하지 않고 따뜻하게 진료해 주었던 몇몇 의사들의 격려와, 몸이 편찮았던 부친의 영향도 컸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1995년 아주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2]하고 아주대학교 대학원에서 의학석사학위[3]를 취득하면서 연구강사 생활을 시작했다.[4]

초기에는 간담췌외과의로 펠로우 과정을 거쳤으며, 아주대학교 대학원에서 의학박사학위[5]를 취득하며 외상외과 분야에 발을 내디뎠다. 이듬해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캘리포니아 대학교 샌디에이고 외상센터에서 연수, 2007년에는 영국 로열런던 외상센터에서 수련했다.

2011년 아주대학교병원 외상외과장 신분으로 아덴만 여명 작전에서 구출된 석해균 선장을 치료하여 정부로부터 국민포장을 수여받았고, 대한민국 해군과의 합동 의료훈련 공로를 인정받아 명예 대위 계급의 영예를 얻었다.[6]

2013년부터 모교 아주대학교병원의 중증외상센터장을 맡고 있으며, 저서로는 간담췌외과, 내분비외과, 외상외과, 응급의학과에서 다수의 논문을 집필했다.

2018년 『골든아워』(전 2권)라는 제목의 에세이 책을 냈다. 출간하자마자 베스트 셀러에 등극 했다.

2019년 정부포상 국민추천제에 따른 2번째 국민훈장 무궁화장(1등급) 수훈자로 선정되었다. 정부는 2011년 이래 매년 이 제도를 실시하고 있지만 2011년 고 이태석 신부가 무궁화장을 추서받은 이후 1등급인 무궁화장을 받은 사람은 없었다가, 이국종 교수가 2번째로 최고훈장의 영예를 얻었다. 두 사람 모두 최일선의 험한 현장에서 사람을 살리는 의사였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4. 아주대학교병원 권역외상센터장 사임

2020년 1월, 이국종 교수는 외상센터를 떠나겠다고 발표했다. 예전부터 외상센터 운영을 놓고 아주대병원 측과 갈등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국종 교수는 "아주대병원이 적자를 감수하며 외상센터를 운영하고 있다는 말은 거짓이다. 복지부에서 관련 예산으로 작년에만 63억을 주었는데, 그 돈을 병원이 빼먹고 있다." "아주대병원은 필요할 때마다 내 이름을 팔아먹고 있다."와 같은 발언을 통해 외상센터에 대한 외압과 무관심에 대한 고충을 토로했다.#
김현정(PD)> 선생님, 물러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판단을 내리신 거예요?

이국종> 이제 그만할 거예요. 그럼요. 지금 복지부부터 저희 병원에 이르기까지 숨 쉬는 것 빼고 다 거짓말이에요. 아주대병원이 적자를 감수하고 어쩌고저쩌고 다 거짓말이에요, 다. 새빨간 거짓말이에요. 복지부에서 공문까지 보내고 그랬어요. 예산 그런 식으로 빼먹지 말라고, 제대로 쓰라고. 예산을 저희한테 작년에만 63억이 내려왔고 줬어요. 그렇게까지 미친듯이 해서 받았어요. 외상센터 지어놓고 나니까 적자가 아닌 거예요. 아주대학교병원이 작년 같은 경우에 수익이 얼마가 난 줄 아세요? 500억이 넘어요. 아주대병원이 지금 전국적으로 돈을 제일 많이 버는 병원 중에 하나예요.

김현정> 아니, 그러면요, 경영상의 문제는 아니고 돈도 충분히 지원받고 있다면 왜 이국종 교수에게 그렇게 미운털이 박혔는가? 그건 왜라고 보세요?

이국종> 예를 들어 외상센터 지하 2층에 교직원 식당을 밀어 넣겠다고 그랬다고요. 그리고 교직원 식당이 있는 지금 본관 자리는 수익 사업에 쓰겠죠. 사방에 다니면서 경기도 도의회 도의원들한테도 허락해 달라고 그러면서 또 저를 팔아요. “이국종이가 밥 먹을 데가 없다. 그러니까 외상센터 지하에다 그걸 넣어주면, 지하에다가 교직원 식당을 넣어주면 이국종이가 일하다 싹 내려와서 밥을 먹고 간다.” 이따위 소리를 한다고요.

김현정> 필요할 때마다 이국종을 팔았다.

이국종> 그렇죠. 저도 그냥 교수의 삶을 살래요. 저도 이제 모르겠어요. 이번 생은 망했어요, 망했어. 완전히.

김현정> 얼마 전에 이재명 지사하고 만나셨는데, 뭔가 해법이 나오지는 않았습니까?

이국종> 나오기는 뭐가 나와요. 무슨 방법이 있어요. 제가 보지도 못했어요. 밑에 있는 보건과 사람들 잠깐 보고 나온 거예요.

김현정> 지사님 못 만나셨어요?

이국종> 지나가다가 잠깐 본 거지 보지도 못했다고요. 그 바쁜 양반이 뭘 봐요. 40분 정도 보건과 사람들하고 그 비서관들하고 그냥 같이 앉아 있었죠.(후략)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

이국종 교수와 아주대병원 측과의 갈등의 골이 깊었음이 분명하다. 결국 2020년 1월 29일, 이국종 교수는 전자결재 방식으로 보직 사임원을 제출했고, 아주대병원이 이국종 교수의 사직서를 2020년 2월 4일에 수리하였다.

그렇게 이국종 교수는 외상센터장에서 사임하였다. 이에 이재명 도지사는 "아주대병원과 관련된 의혹을 밝혀라."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2월 17일부터 2차 조사를 시작했다는 기사를 끝으로 더 이상의 내용은 찾아볼 수 없고 이후에 어떻게 된 것인지는 불명이다.

5. 아주대학교의료원 외상연구소장

2020년 6월 1일, 이국종 교수는 아주대학교의료원 산하 첨단의학연구원 소속 외상연구소장에 임명되었다. 2022년 5월까지 소장직을 맡게 될 예정. 박해심 아주대의료원장(알레르기 내과, 아주대 의무부총장)은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이국종 교수는 권역외상센터 진료보다는 KT와 함께 중증외상환자의 이송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 국가재난 안전플랫폼 구축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2022년 1월 현재 의료원 홈페이지 외상외과 의료진 소개란을 살펴보면, 2018~2020년까지 외상연구소장직을 맡은 것으로 되어 있다. 즉, 현재는 김재근 소장이 외상연구소장을 담당하고 있으며 2021.09.01~2022.08.31까지 연구원으로 되어 있다.

2021년 3월 23일, 경기도 닥터헬기 사업자인 한국항공우주산업은 올해 연말까지만 닥터헬기를 운용할 계획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코로나19 사태와 해당 사업의 막대한 적자로 KAI측에서 헬기 운용을 계속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 그 이유.#

이에 따라, 2021년 9월에 한국항공우주산업을 대신할 사업자가 선정되었다. # 이후, 닥터헬기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의 닥터헬기 위탁운영사가 아주대병원에서 국립중앙의료원으로 바뀌었다. 다만, 헬기 탑승인원 운용은 계속 아주대에서 맡는다. #

6. 국군대전병원


2023년 12월 27일부로 국군대전병원 병원장으로 임명되었다. 이와 함께 해군 명예 중령에서 대령으로 진급했다.# 8월부터 국군대전병원장직에 관심을 갖고 공모에 지원하여 좋은 결과를 얻은 것이다. 대령 진급은, 대전병원장 보직이 현역 군의관이 맡을 때 대령 보직이니만큼[7] 명예계급 보유자인 이국종 교수 역시 이에 맞춰 대령으로 진급시킨 것으로 보인다.[8] 이에 따라 아주대학교 교수직은 휴직하게 되었다. 취임식은 12월 28일 진행되었다.

보통 군무원 신분의 계약직 군병원장들은 사복 근무를 하는데, 이국종 교수는 취임식도 해군 군의대령 정복 차림으로 했고, 근무도 함상복 차림으로 하고 있다.

거의 대부분의 국군병원 병원장들이 육군 장교 혹은 그 출신 군무원, 소수의 공군 출신인 와중 정말 보기 드물게 임명된 해군 출신 병원장이라, 병원장 방침에 의거 병원 내에 해군 문화가 꽤 많이 들어오고 있다. CPO를 우대하는 해군의 특성을 반영, 병원 내 ·상사 전용 공간을 만든 것이 대표적인데, 병원 원상사들이 꽤 호평했다고 한다. 공간 이름도 CPO/SNCO룸으로 지었는데, 해군 출신 병원장답게 해군식 약어가 앞에 오도록 지었다. 이외에 대전병원내 음압병실과 드론 혈액운송 시스템도 구축중이다.


2024년 7월, 국군대전병원 함대전개외과팀의 한미 연합 의무지원 FTX(야외기동훈련) 영상이 공개되었다. 이날 훈련은 서해 안면도 해상에서 항해 중인 일출봉함에 적 공격에 의한 인명피해가 발생한 상황을 가정하고 함상에 의료진을 전개하여 응급수술 후 육상으로 후송하는 순서로 진행되었으며, 이국종 원장은 해군항공사령부의 헬기 지원을 받아 직접 의료진을 이끌고 일출봉함에 승함하여 훈련을 진행하였다.



[1] 이국종 교수에 따르면, 밥도 못 얻어먹고 고아나 다름없이 살았지만 약해 보이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고 견뎠다고 한다[2] 88학번으로 아주대학교 의과대학 1기 신입생으로 입학, 4학년 마치고 대한민국 해군 6개월 단기사병 복무 후 2기와 함께 졸업했다.[3] 석사학위논문 : 술전 금식이 90% 간 절제술로 유도된 급성 간기능부전 백서의 생존에 미치는 영향 (1998)[4] 아주대 의과대학 졸업과 의학석사학위 취득 사이에 인턴, 전공의 생활을 거쳤다.[5] 박사학위논문 : 수술전 문맥지결찰이 간절제술 후 잔존간의 재생에 미치는 영향 (2002)[6] 2017년에 소령, 2018년에 중령, 2023년에 대령으로 진급했다.[7] 군의관의 정점인 국군의무사령관과 육본 의무실장 두 자리가 준장이며, 국군수도병원국군대전병원같은 핵심 병원장이 대령이다. 현재 수도병원장은 의무사령관을 역임하고 준장으로 예편한 석웅 군무이사관이 맡고 있다.[8] 차후 군에서 장성급 보직을 맡게 되더라도, 현행 훈령 상 문민에게 부여할 수 있는 명예계급의 상한이 대령이라 훈령 개정 없이는 추가 진급이 불가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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