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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착촌 | 에칼루가르수이트 | 카시미우트 |
| 사흘로크 | 우페르나비아르수크 | |
이갈리쿠 정착촌 안에 위치한 가르다르 대성당 유적[1]
| 나르사크 지구의 정착촌 이갈리쿠 Igaliku | |||||
| <colbgcolor=#d00c33><colcolor=#FFFFFF> 경위도 | 61°59′16″N 45°25′15″W | ||||
| 국가 | 그린란드 | ||||
| 주 | |||||
| 지구(地區) | 나르사크 | ||||
| 시간대 | UTC-02:00 | ||||
| 우편번호 | 3921 | ||||
| 지역번호 | 66 | ||||
| 인구 | 32명[A]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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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bgcolor=#000><colcolor=#FFF> 이름 | 한국어 | 그린란드 쿠야타: 빙원 지역에서의 노르드와 이누이트 농경 | |
| 영어 | Kujataa Greenland: Norse and Inuit Farming at the Edge of the Ice Cap | ||
| 프랑스어 | Kujataa au Groenland : agriculture nordique et inuite en bordure de la calotte glaciaire | ||
| 덴마크어 | Kujataa, Grønland: Nordbo- og inuitlandbrug ved randen af indlandsisen | ||
| 국가·위치 | () | ||
| 등재유형 | 문화유산 | ||
| 지정번호 | 1536 | ||
| 등재연도 | 2017년 | ||
| 등재기준 | (v)[3] | }}} | |
1. 개요
쿠야흘레크주 나르사크 지구의 정착촌. 인근에 가르다르(Garðar) 노르드인 마을 유적이 위치하고 있어, 이 마을을 포함한 일대가 쿠야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4]나르사르수아크로부터 남동쪽으로 20km 정도 떨어진 투누흘리아르피크 협만에 위치한다.
2. 역사
2.1. 바이킹 시대
가르다르(Garðar)라는 정착촌이 현재의 이갈리쿠에 해당하는 위치에 있었다. 이곳은 당시 동부 정착지(에위스트리뷔그드; Eystribygð)의 중심인 동시에 그린란드 노르드인의 종교적 심장부와 같았다.역시, 당시 이곳에 위치했던 가르다르 성당은 당대 그린란드에서 유독 규모가 크고 공들여 건설된 경향이 있었다. 이 성당은 최대 16m×27m의 크기를 가졌으며 스테인드글라스 창문까지 설치되어 있었던 것으로 여겨지고 있으나, 현재 이 성당의 유적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2.2. 식민지 시대
1782년 노르웨이 상인 안데르스 올센(Anders Olsen)이 그의 그린란드인 아내 투페르나(Tuperna)와 함께 이곳에 목축지를 설립하였다. 올센은 본래 우페르나비아르수크에 목축지를 가지고 있었으나, 이 농장이 화재로 사라져버린 것.1786년 안데르스 올센이 사망하고 그의 아들 요하네스 안데르센(Johannes Andersen)이 목축지를 이어받았다. 이후 인구가 점차 증가하였다.
1911년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이갈리쿠는 고트호프 식민지구의 하위 행정구역 가운데 하나인 나르사크 자치구의 거주지가 되었다.
이 시기 이갈리쿠 주민들은 목축업만으로 충분한 수입을 가질 수 없었기 때문에 물개 사냥 등의 보조적인 수입원을 가지고 있었지만, 본업이 아닌 만큼 카약을 타는 실력은 썩 좋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2.2.1. 이갈리쿠 자치구
1933년 교역소급 마을로 격상됨에 따라 이듬해 남그린란드 지방의회에서 이갈리쿠와 그 인근은 사실상 자치 상태인 만큼 개별 자치구로 보아야 한다고 결론지었다.이에 1937년 이갈리쿠 자치구가 설정, 율리아네호프 식민지구의 하위 행정구역이 되었다.
1945년 방목지가 더 필요하다는 이유로 자치구 영역을 확장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1946년 기각되었다.
1950년 식민지구가 폐지되면서 이갈리쿠 자치구도 사라졌다.
2.2.2. 1950년 이후
율리아네호프 식민지구가 사라짐에 따라 하위 행정구역인 이갈리쿠 자치구도 사라졌고, 이갈리쿠는 신생 행정구역인 나르사크 자치구에 속하게 되었다.2.3. 그린란드 자치정부 시기
2009년 자치정부가 재차 수립되며 행정구역이 대대적으로 개편됨에 따라 나르사크 자치구가 폐지되었고, 이갈리쿠는 쿠야흘레크주의 나르사크 지구에 속하게 되었다.2017년 이갈리쿠를 포함한 일대가 앞서 언급된 유네스코 쿠야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3. 산업
이갈리쿠의 주 산업은 어업이 아닌 목축업이다. 매년 30톤 상당의 양이 출하된다.바이킹 시대 그린란드 노르드인들의 유적과 함께 하이킹 명소로도 알려져 있어 관광업이 목축업에 이은 두 번째 수입원으로 기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