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殷影생몰년도 미상
신라 말기의 인물. 나말여초 효공왕 시기 신라의 대신이었다.
2. 생애
911년 정월, 효공왕이 천첩(賤妾)을 총애하고 정사를 돌보지 않자, 대신인 은영은 정사를 돌볼 것을 간하였지만 효공왕은 은영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 결국 은영은 효공왕의 첩을 잡아죽였다(!).왕의 후궁을 죽이는 폭거를 벌였음에도 은영이 어떤 처벌을 받았는지는 기록이 없어서 알 수 없다. 이듬해인 912년, 효공왕은 사망했는데 후사가 없어 박씨인 신덕왕이 왕위를 잇게 된다.
3. 기타
- 당시는 후삼국시대로써 견훤은 901년 대야성 공략에는 실패했으나 907년 일선군[1] 이남 10여성을 함락시키면서 낙동강 동쪽으로 진출할 교두보를 마련하였고, 궁예 또한 사벌주로 진출하면서 신라를 위협해 오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효공왕은 여자와 주색잡기에 빠져서 정사를 돌보지 않아서 불만이 컸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누락되었을 수도 있지만 자신의 후궁을 죽였는데도 은영에 대한 처벌이 없는 기록이 없는 점을 보아 당시 신라의 왕권은 크게 추락한 상태였던 것으로 보인다. 효공왕은 헌강왕의 서자 출신으로써 진성여왕를 이어 왕위를 계승하였기에 정통성과 권력 자체도 이미 미약했던 것으로 보이며 은영의 행위가 효공왕 재위기 전후 박씨 문중의 집권에 영향을 끼쳤거나 은영 자신이 박씨 문중의 파벌로 박씨를 대리하여 변을 일으켰을 확률이 존재한다.
- 행주 은씨는 은영(殷影)을 자신들의 조상 중 하나이며 고려 때 태보에 추증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근거가
족보밖에없다. 애초에 은영은 골품제가 강고했던 신라의 대신이었기에 진골 출신일 가능성이 커서 성씨도 은씨도 아닐 확률이 더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