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64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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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백제의 장군. 의자왕 대의 인물로 관등은 좌장 또는 좌평.[1]2. 행적
649년 8월, 정예병사 7천 명을 이끌고 신라 석토성[2] 등 7성을 함락시켰다.신라는 김유신을 필두로 진춘, 죽지, 천존 등의 장군을 파견해 싸우게 했음에도 10일 간 치열하게 싸워 서로 승패를 내지 못하고 도살성에서 대치했다. 하지만 신라군이 구원병이 올 것이라는 거짓 정보를 흘려 은상 등 백제군의 사기를 저하시켰고, 이를 노린 신라군의 공격으로 대패하게 된다. 달솔 정중 등 100명이 사로잡혔고, 자신은 달솔 자견 등과 함께 전사했다. 기록상 전사자가 8,990명으로, 사실상 투입했던 군대가 전멸한 것이나 다름없다.[3]3. 기타
은상의 패배 이후, 한동안 백제는 655년 고구려, 말갈과 협력해 신라를 치기 전까지 신라를 공격하지 못했다. 백제, 신라의 기록으로도 1만에 가까운 병력이 전멸했기 때문에, 패배의 여파가 컸던 것으로 여겨진다.[4]비록 기록도 거의 없고 결국은 패배하긴 하였지만 그 천하의 김유신 및 쟁쟁한 신라의 장군들과 싸워 대치했고 패배의 후유증이 상당했던 것으로 보아 당시 백제에서 한가락하는 역전의 장수였던 걸로 추정된다. 좌장/좌평 직위가 확실하다면 660년에야 좌평 직위로 확인되는 의직, 달솔 직위였던 계백, 흑치상지보다도 관위가 높다.[5]
[1] 삼국사기 백제본기는 좌장(左將), 김유신 열전은 좌평으로 표기됐다. 좌장과 좌평 모두 백제에서 존재했던 관직이라 어느 쪽인지는 불명. 신라본기에선 '장군'으로만 나온다.[2] 충청북도 단양군 적성면 가음안산 또는 충북 진천의 문암산성으로 비정된다.[3] 정병 7천 명의 기록과 충돌하는데 사서의 오류가 아니라면 후속부대가 더 투입되었을 가능성이 크다.[4] 4세기 아신왕과 광개토대왕과의 전쟁에서 백제는 지속적으로 패배하면서 국력을 까먹은 탓에 396년에 고구려에게 항복을 해야 했다. 6세기 관산성 전투 당시 백제도 1만 ~ 2만 9천에 가까운 군대가 전멸해서 신라의 가야 흡수를 막지 못했으며 8년 뒤인 562년에서야 신라를 공격할 정도로 회복해야만 했다.[5] 백제사를 눈여겨본 역사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좌장이란 직위가 영 낯설지 않을 것이다. 바로 아신왕 때 아신왕의 심복인 진무가 좌장 직위를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