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훈장 모란장 수훈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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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bgcolor=#f667bd><colcolor=#fff> 윤덕병 | |
| | |
| 출생 | 1927년 |
| 충청남도 논산시 | |
| 사망 | 2019년 6월 26일 (향년 92세) |
| 사망지 미상 | |
| 가족 | 아들 윤호중[1] |
| 직업 | 기업인 |
| 학력 | 일본 도쿄의 한 고등학교 건국대학교 (정치외교학) |
| 주요 경력 | 한국야쿠르트 창업자 및 회장 |
| 수상 | 국민훈장 모란장 (1988년 수훈) 보건대상 공로상 (2002년 수상) 가장 존경받는 기업인상 (2008년 수상) |
1. 개요
“소비자를 속이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을 속이는 일이다."
[설명]
[설명]
대한민국의 전 기업인.
2. 생애
1927년 충청남도 논산시에서 태어났다. 일본 도쿄에 유학을 가고 건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였다.고등학교 시절 일본에서 들여온 종균 앰풀을 기반으로 그는 1969년 당시 건국대학교 축산연구소장을 맡고 있던 사촌 형 윤쾌병과 함께 에치와이(당시 한국야쿠르트)를 창업하였다. 당시 국내에서는 유산균과 발효유에 대한 인식이 높지 않았으나[3], 발효유산업의 가능성을 내다보고 사업을 추진하였다.
그는 '우리나라 축산의 미래가 우유 가공업에 달려 있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건강 사회 건설'을 창업 이념으로 내세웠다. 이후 1971년 국내 시장에 야쿠르트를 출시하면서 발효유 제품을 대중화하는 데 기여하였다.
3. 야쿠르트 아줌마
윤덕병은 제품의 판매와 유통을 위해 주부를 중심으로 한 방문판매 조직인 야쿠르트 아줌마 제도를 도입하였다.서울 종로 지역에서 47명으로 시작한 판매 조직은 1978년 약 3,000명, 1998년 1만 명을 넘어섰으며, 이후 국내 대표적인 방문판매 조직 가운데 하나로 성장하였다.
이 제도는 주부들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제공했다는 점에서도 주목받았으며, 국내 유통업계의 방문판매 방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또한 야쿠르트 아줌마라는 직업의 특성상 많이 움직이기에 건강해진다는 그의 경영 철학도 담겨있다.
4. 평가
윤덕병은 국내에 발효유 제품을 본격적으로 보급하고 야쿠르트를 대중적인 식품으로 정착시키는 데 기여한 인물로 평가된다.특히 발효유산업의 개척과 함께 주부를 활용한 방문판매 조직을 구축하여 한국야쿠르트(현 에치와이)의 성장 기반을 마련하였다.
5. 사망
2019년 6월 26일 오전 7시에 윤덕병은 노환으로 사망하였다. 향년 92세.6. 활동
| 일자 | 활동 |
| 1969 | 에치와이(당시 한국야쿠르트) 창업 |
| 1975.03 | 사랑의 손길펴기회[4] 조직 |
| 1979~ | 전국학생과학발명품경진대회[5] 후원 (단독) |
| 2010 | 우덕장학재단 설립 |
[1] 에치와이 부회장.[설명] 3억 원 가치의 야쿠르트 원액 중 극소수의 보관 용기 오염으로 인해 원액의 유산균 농도가 떨어져 일부 원액을 야쿠르트로 판매하는 것이 불가능해지자 모든 원액을 폐기하며 한 말. 실제론 정상 원액과 유산균 부족 원액을 적절히 섞으면 판매 기준에 맞는 유산균 농도를 맞출 수 있지만 '소비자에게 오염된 야쿠르트를 결코 정상인 양 팔 수 없다.'라는 생각으로 수익을 버리고 정의를 선택한 셈.[3] 야쿠르트 판매 초기에 사람들이 야쿠루트를 만병통치약으로 맹신하거나 몸에 좋은 유산균을 균이라는 이유로 병균(...)으로 몰아갔다는 점에서 당시 우유가공업에 대한 인식이 매우 미비했음을 알 수 있다.[4] 봉사 단체이며, 당시 에치와이의 전 임원이 참여했다.[5] 여담으로 비눗방울총은 1979년에 처음 열린 이 대회에서 금상(한국야쿠르트사장상)을 받은 청소년 임성무의 발명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