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colbgcolor=#0047a0> 이명 | 유원해(柳原海) |
출생 | 1907년 3월 11일 |
경상북도 안동군 풍남면 하회동[1] (현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2] 751번지) | |
사망 | 1964년 5월 14일 (향년 57세) |
경상북도 안동군 | |
본관 | 풍산 류씨(豊山 柳氏)[3] |
가족 | 배우자 남양 홍씨, 아들 유시보 장조카 유시훈 |
상훈 |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
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2. 생애
1907년 3월 11일 경상북도 안동군 풍남면 하회동(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751번지)에서 아버지 유준영(柳浚榮, 1872 ~ ?)[4]과 어머니 전주 이씨(1872 ~ ?)[5] 사이에서 3남 1녀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일찍이 아들 유시보와 함께 중화민국으로 건너가 지린성 빈장도(濱江道) 빈장현(濱江縣), 펑톈성 펑톈시(奉天市)·잉커우현(營口縣) 등지를 전전하였다.1938년부터 1940년까지 중화민국 허난성 카이펑시에서 개봉상점(開封商占)을 경영하면서 이곳을 독립운동 거점으로 삼아 조선민족혁명당과 관련하여 항일 활동을 수행하였다. 이후 조선의용대가 한국광복군에 편입되자 1942년 4월 15일 아들 유시보, 장조카 유시훈과 함께 한국광복군 제1지대 제1구대에 입대하였고, 제2분대장 겸 제2공작반장으로서 허난성 난양현(南陽縣)·정저우시 등지에서 초모 공작을 수행하였다. 1944년 4월 일본 제국 육군이 허난성 정저우시·뤄양현(洛陽縣) 등지를 침공하자 국민혁명군 제5전구 사령부의 증원 요청에 따라 제1구대원들과 함께 출전하여 일본 제국 육군의 동태 정찰, 첩보 수집, 포로 심문 등의 임무를 맡아 수행하였다. 1944년 6월에는 미국 육군으로부터 만주국 영토에 파견될 첩보 공작 요원으로 선발되어 1944년 말까지 만주국 관내에서 비밀리에 조선인 동지 포섭, 조직망 구축, 첩보 공작 등을 수행하였다.
8.15 광복 후 귀국하였고, 1964년 5월 14일 경상북도 안동군에서 사망했다. 1977년 11월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받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고,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