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6-20 19:11:59

장뇌

용뇌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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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대만과 장뇌 그리고 녹나무 숲

1. 개요

(중국), 樟(일본), camphor(영국)

녹나무에서 추출할 수 있는 천연수지물질. 흔히 물파스 등에 첨가되어 싸한 향을 내는 물질이며, 다른 말로 용뇌(腦)라고도 한다.

화학식은 C10H16O. IUPAC 명칭은 1,7,7-trimethylbicyclo[2.2.1]heptan-2-one. 승화성을 지닌 특이한 자극성 냄새가 나고 윤기가 나는 양초같이 무른 흰색 고체수지이다. 실온에서도 조금씩 승화하여 강한 향기를 내고 온도를 더 올리면 쉽게 녹아 물러진다. 나프탈렌과 달리 방치해도 자연승화로 빠르게 줄어들지는 않고 불을 붙이면 승화하며 잘 탄다.

의학적으로는 다른 식물성 허브오일 등과 비슷하게 소염, 진통, 강심, 건위, 살균 등의 효능이 있어 타박상 등의 소염제로 널리쓰이고 신경통 치통 복통을 다스리는데 쓰이고 소화제에도 들어가는데, 배아픈 데에 대한 진통작용일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 문단 참고.

오래전부터 인류가 약용이나 향재료으로 이용해 온 유구한 역사를 지닌 물질로서, 동남아 아열대 일대 여러 지역에서 일찍부터 채취되어 이용되었다[1]. 특이한 향취(즉, 물파스 냄새)를 이용하여 의료용 및 종교의식에도 사용되었다고 한다. 인도에서는 고대에는 힌두교불교에서 향으로도 종교적으로 신에게 바치는 봉납용으로 사용했었고 음식에 향신료로 사용하기도 했다. 그 외 방부제나, 모기나 좀벌레 같은 벌레를 쫒는 방충제, 날벌레를 쫒는 벌레기피제로도 사용된다. 과거 조선이나 근대 한국에서도 방충제로 나프탈렌이 널리 보급되기 전에 장뇌를 의류보관용 방충제로 널리 쓰기도 했다. 현대에 들어와서도 방향제로 사용되고 의약품에도 외용 소염제 외에도 의외로 여러 약품에도 두루 쓰이고 있다. 약이나 구강청정제, 벌레물린데 바르는 버물리 등에서 약한 안티푸라민 냄새가 나면 이 성분이 든 거다.

영어로 camphor tree인 녹나무 수지에서 추출된다고 해서 영어명으로는 캠퍼(camphor)[2]라고 부른다. 어원을 따지면 타이완 원주민과 동남아 해양군도에 진출한 원주민들의 명칭이다.

의약품 파스의 주 원료다. 타박상에 붙이는 파스나 물파스, 안티푸라민 등의 외용 소염제의 성분표시를 보면 dl-캄파(또는 dl-캠퍼)라는 성분이 들어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멘톨과 함께 물파스의 주성분이다. 물파스를 마시면 안된다는 이유가 이 성분이 점막을 자극하여 괴롭기 때문. 리스테린의 악명높은 아린 맛도 이 녀석 때문이다. 심지어 까스명수[3]에도 첨가됐으며, 한때 활명수에도 들어갔었다.

장뇌는 로즈마리 등 허브오일에도 일부 들어있지만 주로 녹나무에서 추출하는데 45년 이상 자라 다 자란 녹나무 잎과 줄기와 둥치를 잘게 잘라 큰 찜기에 고온 증기로 쪄서 승화를 통해 투명하고 끈적한 기름 같은 반고체 왁스 상의 장뇌기름를 추출해 낼 수 있다. 굳으면 하얀 양초나 아라비아검 같다.

녹나무는 목련목에 속하는 아열대 상록활엽교목으로 장목() 또는 향장목(樟木)이라고도 불렸는데 향신료로 요리에 쓰이는 월계수도 녹나무 과에 속한다. 원래는 동남아의 아열대 지방과 인도등에서도 자생했지만 장뇌 생산을 위해 과도하게 채취하다보니 멸종되었고 현재는 중국 동남부와 일본 남부 한국 제주도 등에만 군락으로 자생한다. 열대나무라 추위에 약하지만 성장이 빠르고 높이 20 m 둥치 지름 2 m의 엄청 큰 나무로 자란다. 풍부한 가지와 잎, 압도적 둥치와 거대한 둥근 수형으로 그늘이 좋고 경관도 아름답다. 교토대학 정면의 당당한 녹나무는 학교의 상징.

장뇌는 지난 세기에 특히 셀룰로이드의 생산재료로 대량으로 산업적으로 쓰였다. 셀룰로이드는 최초로 발명된 열가소성 합성수지 플라스틱으로 이 장뇌와 니트로셀룰로오스를 혼합해서 만드는 제조법이 1850년 경에 발명되어 그 후 100년 이상 다양한 용도에 쓰여왔다. 셀룰로이드는 코끼리 상아를 대신해서 당구공이나 탁구공을 만드는데 쓰이고, 매끄럽고 윤기나는 단단한 플라스틱의 질감으로 도자기 인형 같은 장식품이나 머리빗 등 생활용품도 셀룰로이드로 만들어졌다. 또 제복이나 와이셔츠의 빳빳한 깃 칼라나 여성용 코르셋에도 많이 쓰였다. 피아노 건반이나 관악기 마우스피스, 아코디온 몸체 등 다양한 악기에도 많이 쓰였다. 최초의 플라스틱이다 보니 엄청난 양의 셀룰로이드가 다양한 용도에 사용되어, 재료인 장뇌 생산도 한때는 세계적인 규모의 핵심산업이었다. 1930년대 장뇌는 전세계 소비량의 80%가 셀룰로이드나 필름 제조에 쓰였고 의약품은 10%, 6%가 종교 의식용 방향제 등으로 쓰였다. 화약의 성분으로 쓰이기도 했다.

특히 영화나 사진 필름을 만드는데 셀룰로이드가 대량으로 쓰였다. 셀룰로이드로 길고 유연한 사진 필름롤이 가능해져 움직이는 영상을 담을 수있는 영화기술이 발전했다. 다만 이런 셀룰로이드 필름은 고온에서 쉽게 자연발화하고 매우 불에 잘 타므로 초기 영화관은 화재가 잦았고 무성영화 시대 셀룰로이드 필름 원본은 영화사 화재로 많은 수가 소실되었다.

허버트 조지 웰즈의 소설 타임머신(소설)에서, 주인공은 까마득한 미래의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던 장뇌를 발견하고 경악한다. 강한 휘발성 물질인 장뇌가 수천 년, 아니 수십만 년의 세월[4] 동안 날아가지 않고 보관되었던 것. 주인공은 장뇌에 불을 붙여 빛을 밝히며 감탄한다. 사실 유리병 안에 봉인되어 있었기 때문에 거의 휘발되지 않고 남아 있었던 것일거다. 처음엔 그냥 유리병 안에 든 파라핀 정도로 생각했다가 유리를 깨고 나서 강한 장뇌 향을 맡고 장뇌라는걸 알아 차렸다.

일본의 후지사와 제약은 의류 방충용 장뇌로 유명해진 기업. 20세기 초에 처음 판매개시한 후 무려 120년간 생산되었는데 2019년에 발매중지되었다. 다른 회사의 장뇌도 있지만 후지사와 표는 천연재료라는 이유로 계속 찾는 소비자들이 있고, 온라인에서 재고품이 정가의 몇 배의 프리미엄이 붙어 팔리고 있다고. 일본에서는 후쿠오카현에서만 생산된다고 한다.

장뇌삼과는 관계가 없다. 한자도 다르다.

2. 대만과 장뇌 그리고 녹나무 숲

자연산 장뇌는 대만의 특산품이다. 다른 동남아 아열대 지역에서도 녹나무가 자라고 장뇌향을 추출할 수 있지만 품종이 달라 약품이나 셀룰로이드 산업용 원료로 쓰기에는 부적합하고, 오직 타이완 북동부 고산지역의 녹나무 숲에서 나는 장뇌만이 품질과 생산량 모두 뛰어나 널리 쓰였다. 사실상 타이완에서만 나는 세계독점자원으로 막대한 이익이 보장되었다. 타이완 원주민(고산족)들은 오래전부터 녹나무를 신성한 나무로 숭배하기도 했다. 타이완에서는 중국에서 유입된 종족은 서쪽 평지에, 원주민들은 주로 동쪽 산악지대에 살았다. 이들 타이완 원주민들이 서/남태평양 일대 섬들의 해양 원주민 종족들의 뿌리이다. 보르네오 섬에서도 나는데 이는 용뇌라고 불렀다.

17세기에 타이완 섬이 청나라에 합병된 후 타이완에서 생산된 장뇌가 중국 본토에 도입되었다. 1680년대에는 타이완에 정착한 한족 농민들이 장뇌를 채취하기 위해 녹나무 숲에서 원래 살던 원주민들을 강제로 몰아내며 큰 충돌이 벌어지기도 했다. 1700년 경에는 장뇌를 청나라 정부전매 특산품으로 지정해 거래를 독점하고 이를 어기고 밀거래하던 사람들이 매년 2백여 명 처형당할 정도로 중요한 산업이었다.

특히 1850년대 셀룰로이드의 발명으로 그 원료가 되는 장뇌의 산업적 수요가 폭발하자 서양 상인들이 이 장뇌를 수입하기 위해 그 당시 포모사라고 불리던 타이완 섬에 몰려들었고 미국이 청나라로부터 장뇌 무역권을 획득해 타이난 항구를 확장하고 녹나무 숲을 대량 벌채해 대규모 장뇌산업시설을 발전시켜 전세계에 장뇌와 셀룰로이드를 공급하였다. 하지만 이로 인해 숲에서 쫒겨나 분노한 원주민이 습격을 하기도 했다. 첫 일본주재 미국대사를 역임한 타운젠트 해리스는 이런 중요한 산업자원을 독점생산하는 타이완 섬을 알래스카처럼 청나라로부터 사들이자는 주장도 했다. 나중에 청나라로부터 대만을 식민지로 획득한 일본에서도 타이완섬 개척에 많은 자금이 들어가 정부재정에 큰 부담이 되자 타이완섬을 프랑스에 팔자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청일전쟁 이후 일본이 1895년 타이완 섬을 청나라로부터 빼앗았고, 일본 역시 장뇌를 전매 대상으로 하여 독점수출로 매년 엄청난 이익을 거둬들였다. 이후 1905년 러일전쟁으로 큰 부채를 진 일본 정부는 성장에 오래 걸리는 녹나무의 자원관리를 위해 녹나무 벌채량을 규제하여 가격이 치솟기도 했다. 특히 일본은 벌채를 위해 산림지역에 살던 원주민(타이완 고산족)들을 "야만족"으로 몰아 새로운 평지 정착지로 이주를 강요했고 이에 반발하는 고산족들이 일본 회사들의 벌채작업을 좌절시키기 위해 게릴라식으로 무장투쟁을 벌여 1900년대 전후해서 한 해 수백명의 사상자가 나기도 했다. 이 고산족들은 원래 15세기 청나라가 합병한 시대부터 장뇌 채취꾼들을 자기들 땅에서 몰아내기 위해 수 백 년간 외지인들에 대항해 투쟁을 벌여온 용맹한 전사들로 머리 사냥 풍습도 있는 사나운 전투종족으로 유명한 종족들이었다. 대포로 무장한 수 백 명의 근대식 일본군대도 산악지역에서는 고산족 원주민 전사들의 매복에 당해 번번히 패퇴해서 결국 원주민들과 타협을 해야 했다.

그러나 일본의 중국산 장뇌 독점과 과도한 가격통제로 인해 장뇌의 가격이 파운드 당 노동자 3일치 일당에 맞먹을 정도로 너무 비싸졌고 그래서 이를 다른 나라나 다른 방법으로 생산하려는 시도를 촉진됐다. 타이완의 녹나무를 기후가 비슷한 다른 아시아나 중남미 국가에서 재배해보려는 시도는 모두 실패했고 화학적 합성도 다양한 시도와 실패 끝에, 마침내 1930년대 미국의 화학회사 듀퐁이 이산화티탄을 촉매로 미국소나무의 송진에서 장뇌를 화학적으로 값싸게 생산할 수 있는 인공 합성 방법을 발명하게 된다. 이로 인해 타이완의 장뇌 생산 독점은 끝나고 결국 1940년대 중반에는 장뇌의 가격이 그 이전의 1/10 이하로 떨어져 타이완산 장뇌는 경쟁력을 잃고 시장에서 밀려나게 된다.

거의 한 세기 가량을 전세계의 산업계가 타이완이라는 조그만 섬에서 나는 천연원료에 의존했지만 이로서 길고긴 타이완산 장뇌의 역사와 원주민들의 생존 투쟁은 끝나게 된다. 1930년대에도 타이완에는 75년간 세계의 장뇌 수요를 공급할 만한 녹나무숲이 건재했지만 돌이 부족해져서 석기시대가 끝난 게 아니듯이 영원히 꿀을 빨 수 있을 것 같던 중국/일본의 장뇌산업도 화학 기술의 발전으로 끝나게 된다.

여담으로 장뇌 산업을 끝장낸 셀룰로이드도 새로운 합성 수지가 속속 등장하며 현재에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 예를 들어 당구공 생산은 이미 1920년대에 더 저렴한 베이클라이트로 전환하였고 다른 셀룰로이드 제품들도 특유의 발화위험 때문에 더 안전한 다른 합성수지가 등장하자 도태되었다. 최대수요처였던 영화 필름도 1950년대 아세테이트 필름으로 전환했고 현대까지 쓰이던 탁구공도 21세기들어 ABS로 전환해 현재는 기타 피크같은 일부 악기 등에 쓰일 뿐이다.


[1] 제법이 확립된 것은 대략 6세기 경[2] 의약품 포장엔 dl-캄파라고 표기되고 있다.[3] 의약외품 한정. 일반의약품엔 첨가되지 않았다.[4] 이 박물관이 언제 만들어졌는지에 따라 보관 기간도 다르겠지만, 아무튼 발견한 시기는 서기 80만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