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17 16:01:15

오페르트 도굴사건(한제국 건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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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개변된 역사 무기
민국인 제너럴 셔먼호 사건 · 오페르트 도굴사건
톈진 사건
· {{{-2 군산포 해전
제2차 한산도 해전
· 영종도 해전 · 안산 전투}}}
갑식 보총 · 강선 조총
1백근 야포
· {{{-2 천갑탄
소포
· 뇌창 · 소이신기전}}}

1. 개요2. 주요 등장인물3. 사건의 발단4. 사건 전개
4.1. 오페르트 측
4.1.1. 준비4.1.2. 상륙에서 덕산까지4.1.3. 도굴
4.2. 조선 측 대응
4.2.1. 준비4.2.2. 예상 외의 일
4.3. 구만포 교전4.4. 오페르트 체포4.5. 행담도 해전
5. 사건의 처리
5.1. 조선 측의 행동5.2. 상해에서 열린 국제영사재판
5.2.1. 판결
6. 사건의 여파
6.1. 미국6.2. 프랑스

1. 개요

윤민혁이 쓴 대체역사소설 한제국 건국사 2부 초반에 나오는 에피소드.

실제 역사인 오페르트 도굴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으나 어디까지나 모티브일 뿐 전개는 상당히 판이하다.

작중에서 프랑스인 페롱 신부와 유대계 함부르크 상인 오페르트, 미국인 탐험가 젠킨스가 벌인 희대의 막장짓. 의도는 좋았으나[1] 이로 인해 조선 백성들과 서양 각 정부에 악영향만 미치게 된다.

앞서 설명했듯 이 문서는 실제 오페르트 도굴사건을 기반으로 한 소설상 에피소드를 다룬 글이므로 실제 역사와는 구분지어서 볼 것.

2. 주요 등장인물

실존인물을 모티브로 했을 뿐 아래 적힌 설명은 역사상 사실과 무관하다.
  • 에른스트 야콥 오페르트
    실존했던 인물.
    유대계 함부르크인. 페롱과는 조선에서 처음 알게 되었으며[2] 조선에서 벌어지고 있는 천주교 박해와 관련해 아픈 기억[3]을 가지고 살아가던 도중 페롱 신부와 만나게 되고 남연군의 유해를 미끼로 조선 정부를 협박하자는 페롱 신부의 계획에 동의하여 손잡게 된다.[4] [5]조선군에 잡힌 후 조선 내 프랑스군 포로들과 같이 상해로 돌아가게 된다.
  • 스타니슬라 페롱
    실존했던 인물.

    •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신부. 병인양요 때 조선군에 잡힌 후 기적적으로 조선을 탈출해 오페르트를 만나 이번 사건을 꾸미게 된다. 상하이에서의 재판 후 인도에 있는 교구귀양 파견을 가게 된다.
  • 프레더릭 젠킨스.
    실존했던 인물.
    미국의 무역상인이자 탐험가. 젊었을 적 서부개척에도 뛰어드는 등 산전수전 겪은 인물. 조선에서의 통상수교와 조선왕 조부의 무덤에서 얻게 될 금을 목적으로 이 사건에 뛰어들게 된다. 중간에 일이 꼬이자 빠질려고 했으나 이미 투자한 돈이 많은 지라 그대로 계획을 속행.
  • 조지 시워드
    실존했던 인물.
    상하이 주재 미국 총영사. 젠킨스에게 미 국무성 전권인정서를 발급해준다. 현직 대통령 앤드류 존슨 계열 인물.
  • 앙리 드 벨로네
    실존했던 인물.
    상해 주재 프랑스 총영사. 상해에서 열린 도굴사건 재판관 중 한 석을 맡게 된다. 전편의 삽질에 이어 그리고 나름대로는 프랑스의 국익을 위한다는 목적으로 재판에 훼방을 놓는다. 덕분에 자신과 프랑스의 명예는 바닥으로 떨어진다.
    페롱 신부와 오페르트가 자신들의 후원자로 정했던 인물 중 하나.[6]
  • 권철상
    이 소설의 주역 중 한 명. 민국인. 오페르트 도굴사건을 막기 위해 공충병마절도사의 직함을 받고 충청도로 향한다.
  • 윤준혁
    권철상 직속 부하. 민국인. 공충병영 부하들을 이끌고 덕산으로 내려가 젠킨스를 포로로 잡는다.

3. 사건의 발단

조선 내에서 계속해서 자행된 천주교 박해에 분개한 페롱 신부는 비슷한 뜻을 가진 오페르트를 만나 이번 사건을 계획하게 되었다. 이 둘은 미국 출신 탐험가(이자 무역상인인) 프레더릭 젠킨스와 접선하여 이번 일을 치르는데 필요한 지원을 요청하고, 젠킨스는 조선과의 통상수교를 노리고 그들과 손잡게 된다. 더불어 젠킨스를 통해 미국 총영사로부터 조선과의 수교에 필요한 전권인정서까지 발급받게 된다.

4. 사건 전개

4.1. 오페르트 측

4.1.1. 준비

오페르트와 페롱 신부는 이번 일을 1년 동안 준비. 남연군 묘가 있는 충남 출신 조선인 가톨릭 신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작성된 현지도굴계획서에 미국인 총영사에게는 조선의 실상을 거짓[7]으로 보고하여[8] 섀넌도어 함을 평안도로 파견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런데 그 섀넌도어 호와 조선군 간에 문제가 일어나[9] 전권인정서를 발급받기 힘들 것 같았으나 예상 외로 무난히[10] 전권인정서를 받아 조선으로 출항하게 된다. 중간에 나가사키에서 무기를 공급받은[11] 이들은 5월 9일 조선 영해에 도착하게 된다.

4.1.2. 상륙에서 덕산까지

5월 9일 행담도 인근해상에 도착한 오페르트 일행은 다음날 오전 11시 구만포에 상륙하여 덕산으로 향한다. 여기서부터 이들의 계획이 틀어지기 시작하는데, 상륙까지 시간이 예상보다 오래 걸린데다 구만포에서 불필요한 소동을 벌여 관군이 출동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생기기 시작한다. 거기다 덕산까지의 길이 꽤 돌아가는 길이라 예상보다 시간을 훨씬 잡아먹게 되었고 도중에 강행군을 견디지 못해 쓰러진 선원까지 나온다. 선원 중 일부는 젠킨스와 함께 본함에서 타고온 소형기정을 경비.

4.1.3. 도굴

남연군 묘소에 도착 후 땅을 파 보니 예상 외로 남연군의 시신을 두께 1m짜리 석회석이 가로막았고 당시 가지고 있던 장비로는 이걸 뚫을 방법이 없었다. 결국 여기서 또 시간을 지체하게 되는데...

4.2. 조선 측 대응

사실상 권철상과 윤준혁이 주로 이야기를 끌어간다.

4.2.1. 준비

민국인들의 경고를 받은 조선 정부는 음력 4월 충청도 지역 수군과 육군에 이양선에 대한 경계령을 내린다. 그리고 민국인 권철상을 공충도병마절도사로 임명하여 이번 사건의 해결을 맡긴다.

4.2.2. 예상 외의 일

예상치 못하게 옥천 근처 서원에서 서원철폐에 반대하는 유림들의 난동이 벌어져 권철상은 이 난동을 진압하고 서원을 철거하느라 시간을 많이 빼앗기게 된다. 이 일로 공충병영의 군대는 부하 윤준혁에게 일임하고 본인은 단독으로 옥천에서 덕산으로 곧장 향한다. 윤준혁은 5월 10일 새벽 이양선 출몰 소식을 듣고 서둘러 덕산으로 향한다.

4.3. 구만포 교전

덕산으로 향하던 윤준혁이 이끌던 병력이 구만포에 정박되어 있는 기정에서 젠킨스 일행을 발견. 잠시동안의 교전 후 그들을 체포하게 된다. 이 때 무적죽장군이 처음 등장한다.

4.4. 오페르트 체포

밤낮을 달려 남연군 묘소에 도착한 권철상은 이미 오페르트 일행의 도굴이 시작되었음을 확인한다. 병력이 없어 제압할 방법을 찾던 중 묘소 근처에서 오페르트 일행에게 야유를 퍼붓던 200명 가량의 군중들을 발견. 그들을 이용해 오페르트 일행의 시선을 돌리고 가지고 있던 최루탄으로 오페르트 일당을 일거에 제압한다. 군중들을 동원해 일당을 체포한 뒤 뒤이어 온 윤준혁의 군사와 합류.

4.5. 행담도 해전

이 소설에서 처음 등장한 해전.
행담도 주민의 신고를 받은 공충수군은 공충수사 조존일이 직접 6척의 군함[12]을 이끌고 출동. 오페르트 일당이 타고 온 차이나 호를 공격하여 차이나 호를 무력화 시킴. 이 과정에서 2개의 선수포가 고폭탄을 사격하면서 2척의 전선과 300명의 군사를 잃게 된다.[13] 조존일은 거북선이 고폭탄 한 발에 격침되자 유럽인들의 화력에 경외감을 가지는 한편 그 포를 운용한 포수들이 겨우 10명 남짓하다는 점을 깨닫고 충격에 빠지고 아직도 이런 구닥다리 무기로 무장한 자신들의 현실에 대한 걱정과 그렇게 만들었던 과거 조정에 대해 원망을 품게 된다. 그러나 조선 수군의 화력도 무시할 수 없음이 나타나는데 천자총통이 대장군전을 사격하자 연돌과 선체 측면이 관통되어 차이나호의 선원들의 전투의지를 꺾고 배를 무력화시켰다. 이후 조란환으로 추정되는 산탄사격으로 선수포를 운용하던 선원들을 휩쓸었다.

5. 사건의 처리

5.1. 조선 측의 행동

전국에서 목을 베라는 상소가 빗발치고 민심도 같은 입장이었다. 심지어 임금인 고종도 그들의 능지처참을 원했다. 하지만 조선을 국제사회에 편입시키려는 흥선대원군과 민국인들, 그리고 조정 중신들의 뜻으로 오페르트 일당 [14]병인양요 때 잡힌 프랑스군 포로[15]와 함께 상해로 보냈다. 이 때 조사 과정에서 프랑스군 장교들이 참고인 신분으로 참석하고 남연군묘 현장을 조사하기도 했다. 어차피 유럽인들도 가만히 넘어가지는 않을 테니 상해에서 유럽인들의 법으로 처분되길 바랬다. 그리고 사학죄인이자 전공이 있는 김준호를 상해 주재 조선 영사로 임명하여 재판에 참석시킨다.

5.2. 상해에서 열린 국제영사재판

1868년 7월 5일부터 4일 간 계속된 재판. 초장부터 판사 중 한 명인 상해 주재 프랑스 전권공사 앙리 드 벨로네가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재판을 방해했고 이로인해 국제재판은 전혀 진전이 없었다. 이 재판을 관전하던 조선측 영사 김준호는 4일째 되던 날 오후, 영국과 미국 측 영사와의 단독회담[16]후 국제재판에서 국가별 재판으로 전환신청을 하였다. 국가별 재판에 기소된 3명은 국적에 따라 프랑스, 함부르크, 미국 영사들로부터 재판을 받게 된다.

5.2.1. 판결

프랑스 측은 페롱 신부에게 깔끔히 무죄선언을 내렸고, 오페르트는 상해 내 재산 몰수 그리고 함부르크로 연행, 젠킨스는 미국으로 연행되어 샌프란시스코에서 따로 형사재판을 받게 된다. 그리고 주모자들과는 별도로 단순가담한 선원들 중 중국인 선원들은 청국에 의해 상해 프랑스 조계 근처에서 사형을 당했다. 그리고 판결과는 별도로 페롱 신부는 파리 외방전교회로부터 인도로 갈 것을 지시받았다. 사실상 귀양 처분을 받은 셈.

6. 사건의 여파

6.1. 미국

사기꾼 젠킨스에게 놀아난 시워드 일가가 그러지 않아도 정치생명이 간당간당한 앤드류 존슨의 명줄에 결정타를 날렸고 존슨은 공화당으로부터 차기 대선후보 지명에서 탈락되었다.

6.2. 프랑스

저번 병인년에 벌어진 대조선원정의 크나큰 실패, 멕시코에서 계획했던 괴뢰정부 수립 실패, 황제의 인기가 바닥을 기는 상황에서 페롱 신부의 행각과 벨로네의 어처구니 없는 행동[17]이 프랑스 시민들에게 알려지면서 황제 나폴레옹 3세는 정치적으로 완전 수세에 몰렸다. 거기다 프로이센 소속 선박 차이나 호가 침몰된 것으로 프로이센과의 관계에서는 더욱 더 긴장감이 감돌았다.

[1] 어디까지나 오페르트와 페롱 신부에 한해서만.[2] 병인양요 때 조선군에 잡힌 페롱 신부는 애초에 오페르트와 연계하여 탈출하려 했다.[3] 조선인 가톨릭 신자 필리푸스와의 일[4] 실제 오페르트의 범행동기는 아직 밝혀진 바가 없다[5] 소설을 보면 남연군의 유골을 자신의 연구에 이용하려 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뭐 조선인이 백인이랑 같다는걸 증명하는거라 의도는 좋았다지만.... 어쨌든 페롱에게 동조 하면서도 의도는 좀 달랐다고 봐야 할 듯.[6] 하지만 그가 저번 병인양요 때 실책으로 좌천된 이후 줄곧 잠수를 타는 바람에 젠킨스로 후원자를 압축했다.[7] 조선이 실은 미국과 통상을 원한다는 것[8] 전권인정서를 받기위함이었다[9] 조선군이 실수로 섀넌도어 호 종속 보트를 격침시켰다.[10] 시워드도 이제까지 젠킨스의 거짓말에 긴가민가 했지만 성공했을시, 해군성과 대립각을 세우던 국무성의 입지확대와 자신의 영달을 위해 승인하였다.[11] 그들이 구매한 소총은 사쓰마와 조슈 측이 막부를 치기 위해 구비해 뒀던 장비들이다.[12] 귀선이라고 언급되는 거북선이 1척, 나머지는 자세한 언급은 없으나 함포의 적재 수를 보면 판옥선으로 유추되며 유럽인들에게는 소형 포선 정도의 대형 정크선이라고 인식되었다. 상대 차이나 호는 1000톤.[13] 사실상 조선군이 입은 피해의 전부.[14] 총 121명.[15] 총 158명.[16] 페롱 신부의 처벌을 강력히 원하는 조선의 입장을 읽은 영국에서, 개별재판으로 전환신청을 하면 자신들이 페롱 신부의 유죄판결을 돕겠다고 제안했다.[17] 국제재판 고의적 방해, 용의가 확실한 범죄자 무단석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