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3-28 23:28:12

엘리자베스 드 버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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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Robert_the_Bruce_and_Elizabeth_de_Burgh.jpg
이름 엘리자베스 드 버러
Elizabeth de Burgh
출생 1289년
아일랜드 영지 다운 주 또는 앤트림 주
사망 1327년 10월 26일 (향년 37~38세)
스코틀랜드 왕국 컬렌 성
아버지 리처드 드 버러
어머니 마거릿 드 버러
형제 아벨린, 엘레노어, 월터(또는 윌리엄), 존, 마틸다, 토머스, 캐서린, 에드먼드, 조앤
배우자 로버트 1세
자녀 마거릿, 마틸다(또는 모드), 데이비드, 엘리자베스
직위 스코틀랜드 왕비

1. 개요2. 생애3. 자녀

1. 개요

스코틀랜드 왕국 로버트 1세왕비.

2. 생애

1289년경 아일랜드 영지 다운 주 또는 엔트림 주에서 출생했다. 아버지는 제2대 얼스터 백작으로서 아일랜드 영지와 잉글랜드 왕국에 걸쳐 대규모 영지를 경영한 대귀족 리처드 드 버러이고, 어머니는 리처드 드 버러의 사촌인 존 드 버러와 존 발리올의 친척인 세실리 발리올의 딸 마거릿 드 버러이다. 형제로 아벨린[1], 엘레노어[2], 월터(또는 윌리엄), 존[3], 마틸다[4], 토머스, 캐서린[5], 에드먼드, 조앤[6]이 있었다.

1302년경,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1세의 주선으로 13세의 나이에 28세의 캐릭 백작 로버트 브루스와 결혼했다. 로버트 브루스는 제1차 스코틀랜드 독립 전쟁의 스코틀랜드 측 지도자 중 한 사람이었지만, 1302년 2월에 편을 바꿔서 에드워드 1세에게 복종했다. 에드워드 1세는 자신의 충실한 봉신인 리처드 드 버러의 딸을 로버트 브루스와 맺어줌으로써, 로버트 브루스가 자신을 확고하게 지지하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로버트 브루스는 에드워드 1세의 의도대로 해주지 않았다. 1306년 2월 정적인 바데녹 영주 존 코민 3세를 덤프리스 교회에서 암살한 뒤, 1306년 3월 27일 스콘에서 스코틀랜드 국왕 로버트 1세로서 대관식을 거행했다. 이때 엘리자베스도 스코틀랜드 왕비로서 대관식에 참여했다. 잉글랜드 측 연대기에 따르면, 엘리자베스는 대관식이 끝난 뒤 "우리는 아쉽게도 단지 5월의 왕과 여왕일 뿐이다!"라고 자조했다고 한다.

1306년 6월 19일. 로버트 1세가 메스번 전투에서 펨브로크 백작 에이머 드 발랑스에게 완패했다. 그 후 로버트 1세는 엘리자베스, 첫번째 아내 마르의 이사벨라 사이에서 낳은 장녀 마조리, 누이 메리와 크리스찬, 그리고 자기에게 왕관을 씌워준 부컨 백작부인 이사벨라 맥더프를 동생 닐 브루스의 보호 아래 킬드럼미 성으로 보냈다. 그러나 잉글랜드군이 킬드럼미 성을 포위한 뒤 대장장이에게 뇌물을 줘서 곡물 창고에 불을 지르게 하는 바람에 성이 함락되었고, 닐 브루스는 체포된 후 교수형에 처해진 뒤 사지 절단형에 처해졌다.

킬드럼미 성이 함락되기 직전, 엘리자베스 등 여성 일행은 제9대 아솔 백작 존 드 스트라스보기의 호위를 받으며 로스 백작령의 테인에 있는 성 두타크 예배당으로 피신했다. 그러나 로스 백작 윌리엄 2세는 손님을 잘 대접해야 한다는 관습을 무시하고, 그들을 체포해 잉글랜드군에 넘겼다. 그 후 엘리자베스 일행은 에드워드 1세 앞으로 끌려왔다. 에드워드 1세는 로버트 1세의 자매 메리와 이사벨라 맥더프를 각각 로스버러와 베릭 성벽에 세워진 나무 우리에 가두었고, 로버트 1세의 9살된 딸 마조리를 와튼 수도원으로 보냈으며, 아솔 백작을 교수형에 처한 뒤 수급을 베어 런던 브리지에 전시했다. 다만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충직한 봉신인 리처드 드 버러의 딸인 점이 고려되어 가택 연금만 시키기로 했다.

그 후 엘리자베스는 1306년 10월부터 1308년 7월까지 요크셔의 버스윅에 머물렀고, 이후에는 버크셔의 비샴 수도원으로 보내져서 1312년 3월까지 머물렀다가, 윈저 성으로 이동해 1312년 10월까지 머물렀고, 1313년 3월까지 도싯의 샤프츠베리 수도원에서, 1314년 3월까지 에식스의 바킹 수도원에서, 그리고 같은 해 6월까지 켄트의 로체스터 성에 머물렀다. 1314년 6월 23~24일 배넉번 전투에서 로버트 1세가 에드워드 2세를 상대로 대승을 거둔 뒤, 엘리자베스는 요크로 이송된 뒤 1314년 11월 칼라일로 이동했고, 그 직후 포로 교환을 통해 남편과 재회했다.

이후 아이들을 낳는 것 외에는 별다른 행적을 보이지 않고 조용히 지내던 엘리자베스는 1327년 10월 27일 벤프셔의 컬렌에 있는 왕궁을 방문했다가 낙마하여 사망했다. 그녀의 유해는 스코틀랜드 국왕과 왕비의 전통적인 매장지인 던펌린 수도원에 안장되었다. 1328년, 로버트 1세는 그녀의 영혼의 구원을 위해 컬렌에 수도원을 세웠다. 로버트 1세는 엘리자베스보다 18개월 후에 사망했고, 그녀의 무덤 옆에 안장되었다.

3. 자녀

  • 마거릿(1315년에서 1322년 사이 ~ 1346년 3월 30일에서 1347년 11월 9일 사이): 제5대 서덜랜드 백작 윌리엄 드 모라비아의 부인.
  • 마틸다(또는 모드(1315년에서 1323년 사이 ~ 1353): 토머스 아이작의 부인.
  • 데이비드 2세(1324 ~ 1371): 스코틀랜드 국왕.
  • 남자 아이(1324 ~ 1327): 데이비드 2세의 쌍둥이 동생.
  • 엘리자베스(? ~ 1364년 이후): 애버달지와 듀플린 영주 월터 올리펀트의 부인.


[1] 초대 라우스 백작 존 드 버밍엄의 부인[2] 초대 몰튼 남작 토머스 몰튼의 부인[3] 1286 ~ 1313, 제7대 글로스터 백작 길버트 드 클레어의 막내 딸 엘리자베스 드 클레어의 남편. 제3대 얼스터 백작 윌리엄의 아버지.[4] 1290 ~ 1320, 제8대 글로스터 백작 길버트 드 클레어의 부인.[5] ? ~ 1331, 초대 데스먼드 백작 모리스 피츠제럴드의 부인.[6] ? ~ 1359, 제2대 킬데어 백작 토머스 피츠제럴드와 초혼, 초대 다시 남작 존 다시와 재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