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런던 브리지로 잘못 알려져있는 타워 브리지에 대한 내용은 타워 브리지 문서 참고하십시오.
1. 개요
London Bridge영국 런던의 템스강에 위치한, 굉장히 오래된 역사를 지닌 다리. 한때는 런던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다리였으나, 다리가 너무 오래되어 재건축을 하면서 지금은 평범한 도로교가 된 다리이다. 그 위치를 타워 브리지가 이어받았는데, 이 때문에 타워 브리지가 런던 브리지로 종종 오해받기도 한다. 엄연히 둘은 다른 다리이고, 역사는 이 런던 브리지가 휠씬 오래되었다.
1.1. 관련 노래
London Bridge is falling down,
Falling down, falling down.
London Bridge is falling down,
My fair lady.
Falling down, falling down.
London Bridge is falling down,
My fair lady.
오랜 역사 동안 하도 부서지고 무너지고 하다 보니 아예 "런던 브리지 무너지네 (London Bridge is falling down)"란 노래가 구전 동요로 전해질 정도이다. 1744년에 처음 기록되었다고 한다.위키피디아 이 유명한 동요 때문에 사람들이 가사를 타워 브리지의 도개교가 내려가는 장면이라 착각해 오해가 증폭됐다. 이 구절은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잉글랜드 지방에서 사망할 경우 전개될 예정이었던 장례 프로토콜의 이름이기도 하다.[1]
영상을 보면 무너져서 새로 세울 때마다 재료 단가가 올라가 비싼 재료를 사용하는데, 결국 금덩이와 은덩이로 다리를 건설한 끝에 안 무너지게 되었다. 첫 번째 영상에선 여기서 끝나지만, 금덩이와 은덩이로 만들어 놓으니 도둑이 뜯어가는 바람에 또 무너졌고, 다시 만들어 초병을 세워두니 초병이 잠들어 버렸고, 결국 초병에게 담배를 물려주니 그제서야 멀쩡했다는 살을 더 붙인 이야기도 있다.
그 외에도 철 또는 철근으로 건설했지만 휘어서 붕괴되었고, 못과 바늘로 지었지만 녹이 슬고 휘어서 붕괴되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동전을 모아 메꿨지만 (영국 화폐 단위로 페니) 역시 건너는 사람들이 동전을 가져가서 폭삭 무너졌다는 바리에이션도 있다. (세이하이키즈 버전에서는 10대 초반 정도의 여자 아이 한명이 다리를 건너다가 무너져서 물에 빠지는데 여러번 건너려다가 계속 무너져서 실패해 물 속에 빠져버리고, 마지막에는 물 위로 올라오며 죽고 싶어서 울어버린다. 보러가기)
맨 마지막 가사인 'My Fair Lady'의 뜻은 여왕을 뜻한다고도 하고, 직역하여 아름다운 아가씨라고도 한다.
이 노래에서 유래된 한국의 '동대문을 열어라'와 유사한 놀이도 있는데 두 명이 다리를 만들어 마지막 가사 바로 다음에 두 명이 팔을 내려 걸린 사람이 다리를 짓고 반복하는 놀이다.
김지호의 춤추는 동요나라에 나오는 노래제목이다. 버전은 How's the weather?이다.
2. 역사
2.1. 로마 시대의 다리
로마가 영국 지역을 점령했을 때 이 지역을 론디니움이라고 불렀는데, 이때 런던 브리지도 처음 생겼다. 서기 55년에 목조 다리로 처음 지어졌는데, 이 기념비적인 첫 다리는 서기 60년경에 반란으로 부서졌다가 재건축되었다. 그러나 서기 400년대 초반에 로마 제국이 쇠퇴하면서 제국의 영향력이 미치지 못했고, 다리도 관리가 되지 않다가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2.2. 중세 초반의 목조 다리
이후 앵글로색슨 족이 런던 지역으로 들어오자 다리를 다시 만들어야 된다는 의견이 나왔다. 서기 990년 색슨 족이 목조 다리를 재건했지만, 전쟁이 벌어지면서 1014년에 파괴되었다. 그러다가 노르만 족이 영국을 정복하자 1066년 다시 다리가 재건되었다. 그러나 1091년에 폭풍으로 인해 다리가 또 부서졌다. 부서진 다리는 곧 수리되었지만 1136년에는 화재로 전소되었다. 다리는 다시 복구되었는데, 이 다리가 마지막 목조 런던 브리지였다.2.3. 올드 런던 브리지
흔히 많이 알고 있는, 다리 위에 건물이 많이 올려진 런던 브리지는 이를 말한다. 1176년에 맨날 불타고 부서지는 목조 다리 대신 석조로 다리를 튼튼하게 만드는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다리 위에 건물도 얹어놓았다. 공사는 꽤 오래 걸려서 1209년에 끝났다. 건물의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교각이 20개로 상당히 많았고, 교각 기초도 거대했다. 당시에는 다리에 하중을 주면 줄수록 안정적일 거라 생각하여 다리 위에 건물을 많이 지었다고 한다. 다리의 한쪽 끝에 있는 문 역할을 하는 건물은 뉴게이트 감옥(Newgate Prison)으로, 열악한 환경과 처형한 죄수들의 신체부위를 감옥 벽 밖에 걸어두는 것으로 악명 높았다.
초창기에는 중간에 배가 통과할 수 있는 도개교가 있었으나 약 1세기 정도만 유지되고 사라졌다. 다리 위 건물은 계속해서 바뀌었지만 기반이 되는 다리는 1831년까지 계속 사용되었다. 다리 자체가 좁았기에 다리 위 건물은 다닥다닥 붙게 되고 자연스럽게 건물도 높아지게 되었다. 이 때문에 화재에 상당히 취약했는데, 실제로 불이 나서 건물 수십 채가 홀라당 타버렸다는 기록이 여러 건 남아 있다.
1700년대에 들어서면서 런던 지역의 교통량이 증가하면서 런던 브리지도 교통 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했다. 이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다리 위 건물을 철거하고 다리 전체를 도로로 쓰기로 결정했다. 1762년에 건물이 모두 철거되었고 그 자리를 모두 도로로 바뀌었다. 다리 구조도 일부 변경하여 사용했다.
그러나 1800년대에 들어가면서 교통량이 더욱 증가하여 더 이상 감당할 수가 없게 되었다. 결국 새로 널찍한 다리를 건설하는 계획이 잡혔고 새 다리는 기존 다리 바로 옆에 건설되었다. 1831년 새 다리가 완공되자 올드 런던 브리지는 철거되었다.
올드 런던 브리지가 있던 흔적은 지금 거의 남아있지 않다. 강 북쪽 성공회 교회인 순교자 성 마그누스 성당(Church of Saint Magnus-the-Martyr)이 유일하게 남은 흔적인데, 이 교회의 출입구가 올드 런던 브리지의 보행자 통로 출입구 역할도 겸했기 때문이다. 강 남쪽은 현대에 새로 지은 건물이 들어서서 흔적 자체가 지워졌고, 여기에 올드 런던 브리지가 있었다는 명판 하나만 남아 있다.
소설 "왕자와 거지"에 이 런던 브리지가 자세히 묘사된다.
여담이지만 이시기를 전후로 유럽 내에서 올드 런던 브리지처럼 다리 위에 건물이 세워진 것들이 있다. 대표적인 예가 독일 에어푸르트의 크뢰머 다리와 이탈리아 피렌체의 베키오 다리와 베네치아의 리알토 다리가 있다.
2.4. 뉴 런던 브리지
1831년 올드 런던 브리지를 대체하여 새로 건설된 런던 브리지도 석조로 건축되었다. 그러나 이것마저도 1971년에 철거되었는데, 역시 런던 교통량이 예상 외로 급증한 것이 문제였다. 원래의 다리 폭은 15 m였는데, 교통량이 늘어나자 1896년에 폭을 4 m 더 늘렸다. 그러다보니 다리에 가해지는 하중이 너무 늘어났고, 결국 다리에 이상이 생겼다. 다리에 금이 가고 상판이 서서히 내려앉았던 것.
이러다보니 1960년대 중반에 다리를 새로 건설하기로 하고, 옛 다리를 팔아치웠다. 건설된 지 1세기도 넘은 다리라서 역사적인 가치도 있었고, 외관이 꽤 멋졌기 때문이다. 이 다리를 사간 곳은 미국 애리조나주의 레이크 하바수(Lake Havasu)시로, 런던의 다리를 해체한 뒤 이곳으로 옮겨서 재조립해 복원했다. 이 복원된 다리의 이름도 런던 브리지이다.
미국으로 팔려간 런던 브리지.
2.5. 현대의 런던 브리지
1973년 새 런던 브리지가 개통됐다. 콘크리트로 만든 현대적인 다리이다. 역사에 기록된 특이하고 고풍스러웠던 런던 브리지는 우여곡절 끝에 이렇게 현대적이고 평범한 교량이 되었다.
폭은 32m로 꽤 넓게 지어졌다. 차로는 왕복 6차로이고 양쪽 맨 끝 차로는 버스전용차로로 운영중이다.
이 다리에서 위의 동요를 부르는 아이들도 있다. 또한 템스 강변에 위의 동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
3. 기타
미국이나 영국에서 런던 브리지가 여성의 팬티(...)를 가리키는 은어로도 쓰인다. 한국으로 치면 남대문과 비슷한 은어다.[2]4. 관련 문서
- 타워 브리지
- 런던 브리지 테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