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11-15 06:28:41

에드워드 린스컨스

네덜란드의 前 축구 선수
파일:Edward_Linskens.jpg
<colbgcolor=#eee><colcolor=#000,#e5e5e5> 이름 에드워드 린스컨스
Edward Linskens
본명 에드워드 헨리퀴스 안톤 마리아 린스컨스
Edward Henricus Antoon Maria Linskens
출생 1968년 11월 6일 ([age(1968-11-06)]세)
네덜란드 림뷔르흐주 벤라이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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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178cm|체중 미상
주발 오른발
직업 축구 선수 (미드필더 / 은퇴)
소속 <colbgcolor=#eee> 선수 SV 벤라이 (?~1986 / 유스)
PSV 에인트호번 (1986~1987 / 유스)
PSV 에인트호번 (1987~1996)
NAC 브레다 (1996)
KSC 로케런 (1996~1997)
VVV 펜로 (1997~1998)
국가대표 없음
1. 개요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2.2. 국가대표
3. 플레이 스타일4. 은퇴 후 삶

1. 개요

네덜란드의 前 축구 선수. 미드필더로 활약했으며, PSV 에인트호번에서 9년간 뛰며 팀의 전성기를 함께했다. 1988년 유러피언컵 우승의 주역 중 한 명으로, 특히 레알 마드리드 CF와의 준결승에서 결승골을 넣어 팀을 결승으로 이끈 것으로 유명하다. PSV에서 빅 이어를 들어올린 것을 포함하여 에레디비시 4회 우승, KNVB 베이커 3회 우승, 요한 크루이프 스할 1회 우승 등 총 9개의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주전 선수로 자리 잡지는 못했지만 이른바 '12번째 선수'로서 중요한 순간마다 활약했으며, 영리한 플레이와 결정력 있는 골 결정력을 보여줬다. 은퇴 후에는 PSV 팬샵 매니저, 스포츠용품점 운영, 장례업계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다.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린스컨스는 고향팀인 SV 벤라이에서 축구를 시작했고, 1986년 PSV 에인트호번의 유스팀에 입단했다. 1987년 1군으로 승격한 후 1988년 1월 16일 FC 트벤터와의 리그 경기에서 프로 데뷔를 치렸다.

그의 가장 유명한 순간은 1988년 4월 6일 유러피언컵 준결승 레알 마드리드 CF와의 원정 경기에서 나왔다. 19분 프랑크 아르네센이 페널티 박스 안에서 패스한 공을 받은 린스컨스는 어정쩡한 뒤꿈치 슈팅으로 골키퍼 프란시스코 부요를 제치고 골을 넣었다. 이 골로 PSV는 에스타디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1-1 무승부를 거두었고, 홈에서 열린 2차전에서 0-0으로 비기며 PSV가 결승에 진출했고, 결승전에서 SL 벤피카까지 승부차기로 꺾으면서 구단 역사상 첫 번째 유러피언컵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린스컨스는 PSV에서 꾸준히 출전 기회를 얻었지만 주전 자리를 완전히 차지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른바 '완벽한 12번째 선수' 역할을 훌륭히 소화했으며[1], 중요한 순간마다 팀에 기여했다.

특히 1993년 2월 14일 아약스와의 경기에서는 두 골을 모두 넣어 2-1 승리를 이끌었다. 이 경기에서 호마리우가 실축한 페널티킥도 얻어내는 등 맹활약을 펼쳤다.

1996년 딕 아드보카트 감독으로부터 더 이상 출전 기회가 많지 않을 것이라는 통보를 받은 린스컨스는 PSV를 떠나기로 결정했다.

1996년 겨울 이적시장에서 린스컨스는 NAC 브레다로 이적했다. 3년 반 계약을 체결하며 큰 기대를 받았지만, 빔 레이스베르헌 감독은 그의 컨디션과 의지 부족을 문제 삼아 곧 1군에서 제외시켰다. 시즌 말 2군 훈련 참가 명령을 받은 린스컨스는 병가를 내고 결국 계약을 해지했다.

이후 벨기에KSC 로케런에서 2년 계약을 맺었다. 첫 시즌 20경기에 출전해 3골을 넣었지만, 벨기에 축구 스타일이 맞지 않는다며 1년 만에 또다시 계약을 해지했다.

1997-98 시즌을 앞두고 소속팀이 없던 린스컨스는 에이르스터 디비시 소속인 VVV 펜로에서 기회를 얻었다. 팀 내에서 좋은 활약을 보였지만 연봉이 비싸다는 이유로 재계약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새로운 팀을 찾지 못한 린스컨스는 1998년 고향팀 SV 벤라이에서 뛰며 프로팀 스카우트들의 관심을 끌어보려 했다. 하지만 10월 4일 SV 블레릭과의 경기에서 무릎 인대 부상을 심하게 당하면서 축구 선수로서의 커리어가 끝났다.

2.2. 국가대표

린스컨스는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에 한 번도 선발되지 못했다.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 네덜란드 대표팀은 루드 굴리트, 마르코 반 바스텐, 프랑크 레이카르트 등이 이끄는 전성기였고, 미드필더 자리의 경쟁도 매우 치열했기 때문이다.

3. 플레이 스타일

린스컨스는 영리한 플레이메이킹과 상황 판단력이 뛰어난 미드필더였다. 특별히 뛰어난 개인 기량을 가진 선수는 아니었지만, 팀 플레이에서 빛을 발하는 타입이었다. 결정적인 순간에 골을 넣는 능력도 갖추고 있어 '클러치 플레이어'로 불리기도 했다.

4. 은퇴 후 삶

현역 은퇴 후 린스컨스는 2000년부터 2008년까지 필립스 스타디온에 위치한 PSV 팬샵 매니저로 일했다. 2010년에는 에인트호번에서 스포츠용품점 '호이벨스포르트'를 운영했지만 2011년 파산했다.
2013년에는 잠시 축구계로 돌아와 고향팀 SV 벤라이 2군의 코치로 활동했다. 2015년부터는 장례업계에서 일하고 있다.
[1] 후에 테오 루시우스나 오트만 바칼 등이 비슷한 역할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