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7:33:00

아에몬 타르가르옌(용기사)

<colbgcolor=#000000><colcolor=#fff> 아에몬 타르가르옌
Aemon Targaryen
파일:Aemon Targaryen.The Dragonknight.png
이름 아에몬 타르가르옌 (Aemon Targaryen)
가문 파일:타르가르옌 가문.png 타르가르옌 가문
생몰년 AC 136 ~ AC 178-183
부모 아버지 비세리스 2세
어머니 라라 로가레
형제 아에곤 4세
여동생 나에리스 타르가르옌[1]
별명 용기사 (The Dragonknight)

1. 개요2. 생애3. 평가4.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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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비세리스 2세라라 로가레 사이에 태어난 차남이자 아에곤 4세의 남동생. 용기사(The Dragonknight)라는 이명으로도 유명하다. 17세가 되었을 때에 백부인 아에곤 3세킹스가드로 임관했고, 이후 킹스가드의 로드커맨더까지 역임하였다. 아에곤 3세 이후로도 4명의 왕들을 섬겼으며, 끝내 마지막까지 자신의 형 아에곤 4세를 지키다 사망했다. 마에카르 1세의 삼남이자 본편 시점에서 밤의 경비대의 학사인 아에몬 타르가르옌이 바로 이 사람의 이름을 그대로 따온 것이다.

칠왕국의 현존했던 기사들 중 가장 고귀한 기사로 평가받고 있으며, 그에 걸맞게 검술실력 역시 칠왕국의 전설로 회자되고 있다. 아에몬의 사후 몇 백년이 흐른 현재 시점에서도 그를 기리는 노래와 이야기들이 왕족, 귀족, 그리고 평민들 사이에서 전해지고 있다. 이런 뛰어난 명성에 걸맞게 비세니아 타르가르옌이 가지고 있었던 발리리아 강철검 '검은 자매(Dark Sister)'를 소유했다고 한다.

갓난 아기 시절부터 건장하고 강건했으며 그의 형 아에곤만큼이나 아름다운 용모를 지녔다. 하지만 성품만큼은 형 아에곤과는 문자 그대로 딴판이었는데, 오히려 여동생 나에리스처럼 경건하기 그지없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이후 칠왕국 역사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뛰어난 마상창기사이자 검사로 성장했다.

타르가르옌의 삼두룡이 백금으로 장식된 투구를 장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후대에도 길이 알려질 '용기사'라는 이명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2. 생애

AC 136년에 비세리스 왕자라라 로가레 사이에서 태어났다. 타르가르옌 가문의 전통에 따라 아에몬의 요람에도 드래곤 알이 놓여졌다. 하지만 동생의 출생을 달갑지 않게 여기던 형 아에곤 왕자가 갓 태어난 아에몬을 드래곤 알로 때리고 있는 걸, 어머니인 라라 로가레가 발견하고 아에곤을 급히 말리며 혼냈다고 한다.

여동생 나에리스와는 어린 시절부터 떼어놓을 수 없을만큼 가까운 사이였다고 한다. 오죽하면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다는 추측이 당시에는 물론 후대에도 무성했다. AC 153년에 이뤄진 아에곤과 나에리스의 결혼식 당일, 아에몬과 나에리스 두 사람 모두 울음을 터트렸다는 노래가 전해질 정도. 하지만 실제 기록에 따르면 식후 피로연에서 아에몬은 신랑인 아에곤과 다투고 있었으며, 나에리스는 신부의 옷을 벗겨 신방에 밀어 넣는 웨스테로스 전통 의식을 치르며 울었다고 한다. 당시 아에몬은 이미 발리리아 강철검 '검은 자매(Dark Sister)'를 하사받을 정도로 검술에 조예가 깊었지만, 아에곤과 나에리스의 결혼식 직후에는 아예 곧바로 킹스가드에 임관해버렸다. 이후 생애 동안 큰아버지인 아에곤 3세, 사촌 다에론 1세바엘로르 1세, 아버지 비세리스 2세, 그리고 형 아에곤 4세를 차례로 섬기게 된다.

크레간 스타크과 한차례 겨룬 적도 있었는데, 크레간만큼 뛰어난 검사는 본 적이 없다는 감상을 남겼다고.

자신의 사촌 다에론 1세가 주도한 도르네 정복에 참여했다. 다에론 1세를 겨냥한 암살자의 독화살을 몸으로 막아내다가 중독되어 킹스랜딩으로 이송된 적도 있었지만, 회복하여 전선으로 복귀한 후에는 도르네의 대전사를 상대로 승리하면서 큰 명성을 떨쳤다. 하지만 정복 직후의 도르네에서 반란이 터져버렸고(AC 161년), 끝내 윌 가문의 윌 공에게 사로잡혀 독사 구덩이 위에 매달린 철창에 발가벗긴 채로 갇히고 만다.

이후 다에론 1세의 뒤를 이어 새로 즉위한 바엘로르 1세가 도르네의 '뼈의 길'을 맨발로 걸어가 도르네와 화평을 맺었다. 그 과정에서 윌 가문이 아에몬의 석방 조건으로 내건 게 바엘로르가 직접 아에몬을 철장에서 구출하는 것이었다. 아에몬은 아래에 독사들이 넘치고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추워지는 철장에 나체로 매달려서 밤낮으로 고통 받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사촌이자 주군인 바엘로르에게 오지 말라고 빌었지만, 바엘로르는 기꺼이 사촌인 아에몬을 위해 독사들을 뚫고 걸어가 그를 구출했다.

친형 아에곤 4세의 치세에서 나에리스의 아들 다에론 2세가 아에몬과 나에리스의 불륜에 의해 태어난 사생아라는 소문이 돌았다.[2] 이 소문을 근거로 모르길 해트윅 경이 나에리스를 반역 행위로 고발하자 분노해 그를 결투 재판에 회부시켰고, 그 재판에서 여동생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직접 대전사로 싸워 모르길 해트윅 경을 죽이고 승리했다. 이렇게 평생동안 나에리스를 극진히 생각하며 그녀의 명예를 보호하기 위해 애썼다. 또한 마상시합에 '눈물의 기사'란 이름으로 참가하여 나에리스에게 화관을 바친 척도 있었다.

이후 전 킹스가드 테렌스 토인 경의 형제들이 테렌스의 복수를 위해[3] 아에곤 4세를 시해하려고 덤벼들자, 그들에게서 아에곤 4세를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우다가 동귀어진으로 사망했다.

3. 평가

The days when men like Ryam Redwyne and Prince Aemon the Dragonknight wore the white cloak are gone to dust and song
라이엄 레드와인 이나 왕자 아에몬 ‘용기사’ 타르가르옌이 백색의 망토를 입었던 시절은 이제 노래와 먼지로 밖에 남지 않았답니다.
바리스 - 에다드 스타크 에게.[4]
용기사 / Dragonknight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닥뜨린 '들'을 죽음에서 구해낸 전적이 있으며, 가장 숭고하고 명예로웠던 전설의 킹스가드로 평가받고 있으며, 인격적으로나 무력으로도 흠잡을데 없는 위인이였고. 그의 죽음도 킹스가드에서도 가장 명예로운 죽음인 왕을 무사히 지키고 죽음을 맞이한다. 그러나 그도 그의 여동생과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소문 등, 백색의 망토를 입은 킹스가드 중에서도 가장 명예로운 기사로 평가받은 ‘용기사’라는 이명으로 불렸던 그마저 결국 한낱 인간에 불과하지 않았을까 라는 궁금증을 자아내기도 했다.

마에고르 1세다에몬 타르가르옌의 케이스와는 다르게 동생인 자신이 형보다 인격적으로나 지적으로 훨씬 왕다운 면이 있던 사람이었고, 아에곤 4세 의 장대한 뻘짓쇼를 계속 목도했던 신하들마저 ‘차라리 아에몬이 형이였다면..’ 이라고 한탄했을 정도. 정신이 좀 다른쪽으로 많이 이상했던 바엘로르 1세 를 독사구덩이 에서 빼준 것도 아에몬이었다.

파일:Viper_pit (1).webp
바엘로르 1세를 구해주는 아에몬 - 얼음과 불의 세계에서

하지만 용기사를 둘러쌌던 가장 큰 논란이자 가십거리였던 '다에론 2세 가 바로 아에곤 4세의 아들이 아니라 바로 용기사 아에몬의 아들' 이란 것. 정확히 맞다/아니다 여부를 떠나서 미의심쩍은 것이 한두개가 아닌 건은 물론이요 그 직계 후손들까지 거의 기정사실로 보는 시각/서술도 있으며, 더 나아갈 것도 없이 역사서에서도 '정말 아에몬의 아들일 수도 있다' 는 말까지 써있다.

파일:N and A.png
나에리스 타르가르옌 과 아에몬

특히 독실한 칠신교의 신도인 절세미녀의 왕비와 그녀의 오빠이자 가장 후대에서 까지 칭송되는 무력과 인품 을 지닌 숭고한 킹스가드 로드커맨더 의 금단의 사랑 이야기는 당대에 많은 시 와 노래를 남기기도 했다. 운명에 의해 좌절된 진실된 사랑이라는 비극적인 기사도/로맨스 소설 뺨치는 이 이야기는 비정한 현실주의와 가끔 꿈도 희망도 없는 이 얼풀노 세계관 에서 굉장히 이질적이고 동화같은 이야기라, 해외 팬들에게도 큰 인상을 남겼다.
My grandfather named me for Prince Aemon the Dragonknight, who was his uncle, or his father, depending on which tale you believe. Aemon, he called me .
나의 할아버지는 내 이름을 용기사 아에몬 타르가르옌 에게서 따와 지어주셨지. 그의 삼촌이자, 아버지 였을지도 모르는..어느 이야기를 믿는지는 너에게 달렸지만 말이다…날 ‘아에몬’ 이라고 불러주셨어..
- 아에몬 타르가르옌존 스노우 에게

특히 "설마?"라는 소문이 점점 겉잡을 수 없이 살이 붙더니 모르길 해트윅 경은 이 소문을 근거로 나에리스를 반역 행위로 고발해버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나에리스는 굉장히 당황해했고 아에몬은 그야말로 극대노 하며 그녀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결투재판을 요청하여 모르길 해트윅을 죽여버렸고 다시는 이 소문에 대해 대놓고 말하는 이는 없었다.[5] 하지만..
when the Dragonknight entered the trial by combat, was he the brother who wanted to defend sister's honor, or was he the father who was desperately trying to save his son?
용기사가 결투재판에 나설때, 그는 여동생의 명예와 무고를 증명하려는 오빠였을까? 아니면 자신의 아들의 죽음을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워야하는 아버지였을까?[6]
이렇듯, 해당 논란을 입밖으로 꺼내지 못하게 확실히 틀어 막아놨지만 상황이 상황이었던인지라 이겼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의심의 눈초리를 완전히 지우진 못했다. 신기한 점은 남편인 아에곤 4세가 아내와 자식의 무고함을 호소하거나 이에 대해 화를 내거나 했다는 기록 자체가 없다. 그리고 해당 고발은 잘 보면 아에몬이 킹스가드의 맹세를 어겼다고 말하는거라 마찬가지라 아에몬에게도 화살이 돌아가는 것이기도 했다. 이 점에 주목해 사실 이 결투재판 자체를 아에곤 4세가 설계했단 음모론도 있을 정도. 특히 다에론 2세가 무능했던 자신의 아버지 아에곤 4세와는 성격이 너무 달랐다는 점에 주목해 아에몬이 아버지가 맞을 것 같다고 하는 팬들도 있지만, 원래 타르가르옌 가문의 아이들은 부모와 성격이 180도 다른 케이스가 꽤 많다. 당장 아에곤 4세부터가 유능했던 아버지 비세리스 2세와는 영 딴판이다.

서자들을 적자화시켜줄 정도로 자식들에게 많은 애정을 쏟아붓던 아에곤 4세가 나에리스와 다에론 2세에게 유독 차가웠단 점도 의미심장한 부분. 여기서 더 나아가 가보인 ‘블랙파이어’ 검을 다에몬에게 하사하고 적자로 인정해버린 이유는 ‘다에론 2세가 자신의 아들이 아님을 확실하게 알고있어서 그랬을것이다’ 라는 말도 있다. 나중에 열린 마상시합에서 ‘눈물의 기사’ 로써 아에몬이 나에리스에게 화관을 바칠때 레드킵의 시녀들/귀족 여성들까지 엄청 호들갑을 떨었던건 유명하다.

몇몇팬들은 뭔 듣보잡 기사 두명에게 죽냐고 폄하하지만, 그를 죽음으로 몰고간 테런스 토인의 형제 기사들은 그 스타니스 바라테온과 킹스가드 초신성으로 일컫는 제이미 라니스터도 그들의 무력을 인정했으며 “굉장히 위험한 전사들(very dangerous warriors)” 이였을 것 이라고 언급한바 있다.[7] 게다가 토인의 형제들 또한 육체적 전성기에 도달해있기도 했다. 게다가 엄청난 무력의 기사들도 여차하는 순간에 픽픽 죽어나가는 경우는 얼불노 세계관에서 허다하며 심지어 타이밍이 기가막히게 떨어진 성공적인 '기습'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에몬은 이 기사 둘을 상대하면서 아에곤 4세에게는 해가 끼치지않게 해야하니 용기사에겐 굉장히 불리한 상황이었다.#

후임 킹스가드들에게도 평가가 갈리는 입체적인 인물이기도 한데, 숭고한 면을 존경하여 “전임 킹스가드이자 전설로 칭송받는 용기사 처럼 나도 맹세를 굳건히 지켜야 한다!” 라고 사랑과 정욕을 멀리하고 무예를 정진하는 킹스가드가 있는반면, “아니, 용기사도 못지킨걸 나보고 지키라고 하냐” 며 불평하며 몰래 여자와 동침하는 킹스가드 들도 있었다.

4. 기타

여동생 나에리스 타르가르옌과 사랑하는 사이였다는 건 루머 수준을 넘어 정설로 취급되었고, 다에론 2세가 사실 둘의 사생아라는 소문도 널리 퍼져있으며 꽤나 신빙성있게 취급된다. 위에 서술된 것처럼 아에곤 4세와 나에리스가 결혼했을 때에는 눈물까지 흘렸다는 소문도 돌았고, 그때 붙은 별명인 '눈물의 기사'로 마상 시합에 참가해 나에리스에게 화관을 바치기도 했다. 심지어 형의(루머에 따르면 그 자신의) 후손인 1번 항목의 아에몬이나 아리안느 마르텔 조차 그 루머가 사실일 수도 있다는 투로 얘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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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형 아에곤 4세와 결혼했기 때문에 형수이기도 하다.[2] 아에곤 4세 본인이 직접 휘하 기사를 시켜 이러한 소문을 퍼뜨렸다는 얘기도 있고, 아에곤 4세가 나에리스와 다에론 2세 모자를 냉대한 이유가 이 소문을 믿었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다. 블랙파이어 반란의 주동자들도 이 주장을 반란의 근거로 삼았다. 1권부터 작가가 내놓은 떡밥.[3] 킹스가드였던 테렌스 토인은 아에곤 4세의 정부 중 하나였던 베서니 브라켄과 놀아나다가 들통나, 분노한 아에곤 4세에 의해 베서니와 함께 거열형으로 처형당했다. 이에 테렌스의 두 동생들은 앙심을 품고는 형의 복수를 위해, 자객이 되어 왕궁으로 잡입해 아에곤 4세를 시해하려고 덤볐다.[4] 이 처럼 청렴결백하고 맹세를 지키는 명예로운 시절의 킹스가드를 표현할때 ‘용기사’가 거의 무조건 들어간는 것 만큼 그의 위상은 바라테온 왕조 시대까지 건재하다는 것에서 범상치 않은 인물이라는 것이 초기 팬덤의 예상이었고 후에 캐릭터성이 더 밝혀지며 기정사실화 된다.[5] 참고로 이건 명목상 나에리스’만’ 고발하는 행위였지만, 순결의 서약을 지켜야 하는 킹스가드인 아에몬을 모욕하는 발언이기도 했다.[6] 참고로 이 결투재판의 패배는 자신의 목숨은 물론이고 다에론 2세와 어머니이자 자신의 동생인 나에리스의 목숨과도 직결돨 수 있는 상황이었다. 다행이었던 점은 이 양반이 얼불노 무력 TOP5에는 항상 들어가는, 인간흉기들이 즐비한 킹스가드 중에서도 가히 손꼽히는 무력의 화신이었다는 점이다.[7] 멀리 갈것없이 형이 킹스가드였고, 같이 무예를 연마했으니 칠왕국 어중이떠중이 기사들 과는 차원이 다른 무력을 가졌을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