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 우에노역 あゝ上野駅 | Ah, Ueno Station | |
앨범 커버 | |
<colbgcolor=#E5E1EB><colcolor=#007FFF> 발매일 | <colbgcolor=#FFFFFF,#191919> 1964년 5월[1] |
레이블 | 도시바 레코드 (1964년 판본) EMI 그룹 (1976년 판본) |
작사 | 세키구치 요시아키 |
작곡 | 아라이 에이이치 |
노래 | 이자와 하치로[2] |
1964년 5월에 발매된 가수 이자와 하치로의 3번째 싱글 엔카 앨범이다. B면은 북해의 보름달(北海の満月). 이름에서도 보다시피 도쿄의 우에노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1. 개요
오늘날의 우에노역 |
취업을 위해 고향 도호쿠를 떠나 도쿄에 도착한 사람들. 60년대 당시 우에노역의 모습을 볼 수 있다. |
이 노래는 작사가인 세키구치 요시아키가 "집의 빛(家の光)" 이라는 잡지[3]에 기고한 시 한 편에서 시작됐다.
일자리를 구해서 성공한 다음에 고향으로 금의환향하겠다는 꿈을 꾸며 도쿄로 상경한 도호쿠 출신 청년들[4][5]을 소재로 세키구치는 시를 써서 이를 해당 잡지에 기고했다. 그리고 해당 시는 1위로 입선했는데, 이 시가 도시바 레코드(현 EMI 재팬)에 의해 작곡 및 레코드화되었고, 당시의 젊은 무명 가수였던 이자와 하치로가 불렀다.[6]
여기에 이자와 본인도 가수의 꿈을 안고 도호쿠 지방의 끝자락인 아오모리에서 도쿄로 홀로 상경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 곡이 발매된 이후 같은 시기에 상경한 도호쿠 지방 및 각 지방 출신 취직자, 이른바 단카이 세대라고 불리는 세대에게 폭넓은 지지와 공감을 받았고, 그리고 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준 마음의 응원가로서 당시 경제대국 2위를 향해 달리던 일본의 대표적 히트곡이 되었다. 혹자는 이 노래가 이자와의 대표곡이라고도 할 정도.
이를 반영하듯 우에노역에는 이 노래의 가사비가 설치되어 있고, 우에노에서 출발하는 도호쿠 방면 장거리 특급열차의 종운식, 리바이벌 운행 등에서도 이 노래를 틀어준다. 현재에도 도호쿠 방면 장거리 열차 승강장(
2. 가사
何処かに故郷の 香りをのせて (도코카니 코쿄노 카오리오 노세테) 어딘가에 고향의 향기를 싣고 入る列車の 懐かしさ (하이루 렛샤노 나츠카시사) 들어오는 열차를 보니 그리워지네 上野は おいらの 心の駅だ (우에노와 오이라노 코코로노 에키다) 우에노는 우리들 마음속의 역이다 挫けちゃならない人生が (쿠지케챠 나라나이 진세이가) 좌절해서는 안되는 인생이 あの日 ここから 始まった (아노히 코코카라 하지맛타) 그 날 여기에서 시작됐다 父ちゃん、僕がいなくなったんで (토짱, 보쿠가 이나쿠낫탄데) 아빠, 내가 없으니까 母ちゃんの畑仕事も大変だろうな (카짱노 하타케시고토모 타이헨다로우나) 엄마 밭일도 힘드시려나? 今度の休みには、必ず帰るから (콘도노 야스미니와, 카나라즈 카에루카라) 다음 번 휴가 때는 반드시 돌아올테니까 その時には、父ちゃんの肩も母ちゃんの肩も (소노 토키와, 토짱노 카짱노 카타모,) 그 때는 아빠 어깨도, 엄마 어깨도 もう嫌だって言うまで叩いてやるぞ。 (모오 이야닷테 이우마데 타타이테 야루조) 이제 그만하라고 말할때까지 두드려 줄 테니까 それまで元気で待っていてくれよな ! (소레마데 겐키데 맛테이테 쿠레요나) 그 때까지 건강하게 기다려주세요! 就職列車に 揺られて着いた (슈우쇼쿠 렛샤니 유라레테 츠이타) 일하러 가려고 오른 열차에서 흔들거리며 도착하니 遠いあの夜を 思い出す (토오이 아노 요오 오모이다스) 머나먼 그날 밤이 생각 나네 上野は おいらの 心の駅だ (우에노와 오이라노 코코로노 에키사다) 우에노는 우리들 마음속의 역이다 配達帰りの 自転車に (하이타츠 카에리노 지텐샤오) 배달 후 자전거를 타고 돌아가는 길에 停めて聞いてる 国訛り (토마테 키이테루 쿠나니마리) 잠시 세워놓고 듣고 있네 고향 사투리를 ホームの時計を 見つめていたら (호-무노 토케이오 미츠메테 이타라) 플랫폼의 시계를 바라보고 있자니 母の笑顔に なってきた (하하노 에가오니 낫테키타) 엄마의 웃는 얼굴이 보이네 上野は おいらの 心の駅だ (우에노와 오이라노 코코로노 에키사다) 우에노는 우리들 마음속의 역이다 お店の仕事は 辛いけど (오미세노 시고토와 츠라이케도) 가게의 일은 매우 힘들지만 胸にゃ デッカイ 夢がある (무네냐 데카이 유메가 아루) 가슴 속에는 큰 꿈이 있네 |
[1] 이후 1976년, 1985년에 각각 재발매. 특히 1985년 판본은 도호쿠 신칸센, 조에쓰 신칸센 개통과 함께 리마스터링되어 발매됐다.[2] 井沢八郎, (1937-2007). 본명은 <쿠도 킨이치(工藤 金一)>로, 아오모리 출신 엔카 가수. 이 곡으로 인해 1970년대 도호쿠 지방에서 도쿄로 올라온 사람들의 애환과 도쿄의 황금기를 노래한 엔카 가수로 한때 유명했다. 그러나 1980년대 아내와의 불화로 인한 이혼, 교통법 위반에 대한 재판 불출석, 매춘 등의 온갖 스캔들을 일으키면서 그 인기가 꺾이며, 사람의 관심에서 잊혀지다가, 2007년 1월 17일 식도암으로 향년 70세로 별세했다.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으며, 두 자녀 모두 연예계에서 잠시 활동했지만 둘 다 은퇴했고, 현재 아들인 쿠도 마사키(工藤正貴)는 한 예능 프로덕션 산하 스타트업 기업의 사장으로 재직중이며, 딸인 쿠도 유키(工藤夕貴)는 시즈오카현에서 농지를 구입하고, 근처에 카페를 오픈해서 운영중이라고 한다. 공교롭게 이자와가 사망한 날은 하필이면 딸 쿠도 유키의 생일이었고, 그의 유언은 "우리 딸 생일 축하한다"였다고 한다.[3] 현재도 발매중이다.[4] 짱구는 못말려의 노하라 히로시가 대표적인 케이스다. 원작에서 히로시는 아키타현 출신으로 나온다.[5] 역사적으로 보면 보신 전쟁이 신정부파의 승리로 끝나면서 막부파의 다수를 차지했던 도호쿠의 다이묘 및 주민들은 폐번치현이 진행된 이후에도 상당한 기간 동안 차별을 받아야 했다. 게다가 도호쿠 지방은 당시 일본에서도 개발이 더딘 지역으로 에도 막부 말기까지도 텐메이 대기근으로 인한 굶주림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많았고 하루가 멀다하고 강물에는 굶어 죽은 어린이 시체가 둥둥 떠내려가는 실정인데 반역향이라는 이유로 정부는 아무런 지원조차 해주지 않았다. 이런 눈 뜨고도 보기 힘든 고향의 참혹한 실상과 더불어 자신의 가족, 친우, 전우, 이웃의 여동생 같은 어린 여자애들이 인신매매로 팔려간다는 사실에 대단히 슬퍼하고 분노한 이들이 있었는데, 이들이 바로 2.26 사건을 일으킨 도호쿠 출신 장교들이다. 실제로 이 지역은 쇼와 시대 말기까지 시골 깡촌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했고, 이렇다보니 지금도 대다수 도호쿠 사람들은 과거 정부에 매우 적대적이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자민당의 지지도가 그나마 약간 올라가긴 했지만, 여전히 도호쿠 지방은 민주당이나 공산당 같은 야당 지지층이 굳건한 편.[6] 정작 세키구치 본인은 거물급 가수가 불러주기를 원했다지만 무명 가수가 부른다는 말에 낙담했다고.[7] 과거 호쿠토세이, 카시오페이아 등의 장거리 특급열차가 출발하던 승강장으로 어찌보면 이 노래가 가장 잘 어울리는 승강장이었으나 이후 트란 스위트 시키시마 플랫폼이 13.5홈으로 정해짐에 따라 13홈은 장거리 특급열차 발착 승강장이라는 타이틀을 잃고 우에노도쿄라인 열차만 취급하게 되었고 발차 멜로디도 평범한 Cielo Estrellado로 바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