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우크라이나에 속한 지역이지만 스크로바체프스키가 태어났을 때는 폴란드에 속해 있었던 르부프 태생이다. 1960년부터 1979년까지 거의 20여년간 미네소타 교향악단의 음악감독으로 있으면서 이 악단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 올렸고 아울러 자신의 명성도 국제적인 저명인사로 만들었던 인물이다.
스크로바체프스키는 영재형 음악가에 속한다. 어려서부터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공부했고, 어린 나이에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제3번을 협연했을 정도로 뛰어난 연주솜씨를 지녔었다. 그러나 팔을 심하게 다치는 사고로 더 이상 피아노를 연주할 수 없게 되면서 진로를 작곡과 지휘로 돌렸다.
크라쿠프 음악원에서 작곡과 지휘를 전공하고, 파리로 가서 나디아 불랑제 교수에게 작곡을 사사했다. 1946년(23세)에 블로슬라브 필하모닉의 음악감독이 됐고, 이어서 카토비체 필하모닉, 크라쿠프 필하모닉, 그리고 대망의 바르샤바 국립 교향악단의 음악감독을 지냈다. 1956년엔 싼타 체칠리아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한 경력도 있다.
20세기 최고의 지휘자 가운데 한 사람인 조지 셀(George Szell)의 초청으로 클리블랜드 교향악단을 객원 지휘했었고, 1960년에 미네아폴리스 교향악단의 음악감독으로 취임했다. 이 악단은 1968년에 미네소타 교향악단으로 이름을 바꿨다. 1979년에 이 악단에서 물러나고 계관지휘자의 영예를 받았다. 1981년, 미국 작곡가 포럼은 스크로바체프스키가 미네소타 교향악단의 수석 클라리넷 주자인 조 롱고(Joe Longo)를 위해 작곡한 클라리넷 협주곡을 초연했다.
한동안 쉬다가 1983년에 영국맨체스터의 할레 오케스트라의 수석지휘자로 취임했다. 1992년까지 시무하다가 사임했고, 1995년부터 1997년 사이엔 밀워키 교향악단의 음악고문으로 일했고, 1988년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가 사라토가에서 갖는 여름 시즌의 상주 작곡가로 활동했다.
음반에서는 자르뷔르켄 방송 교향악단과 녹음한 브루크너의 교향곡 전곡 앨범이 가장 유명하다. 이 음반은 음반사상 가장 훌륭한 브루크너 교향곡에 대한 해석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베토벤의 교향곡 전곡도 그의 명연주 가운데 하나다.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제2번(피안노/Gina Bachauer)도 특기할만한 음반이다.
최근 스크로바체프스키의 초기 녹음들이 속속히 디지털 리마스터링으로 발매되고 있는데, 쇼스타코비치, 브람스 그리고 특별히 자를란트 방송교향악단(Saarlaendischer Rundfunk Orchestra)과 녹음한 브루크너 교향곡 전집은 ARTE NOVA 레이블에서 발매되어 음악 비평계로부터 상당한 호감을 받았다.
그의 창작곡 가운데서는 1995년에 작곡해서 1997년에 퓨리처 상을 받은 <파사칼리아 이마지나리아, Passacaglia Immaginaria>가 유명하다. 이 작품은 1996년에 미네소타 교향악단의 연주로 초연됐다. St. Paul Chamber Orchestra의 초대 음악감독 레오폴드 시페(Leopold Sipe)를 추도하기 위해 작곡한 “체임버 콘체르토(The Chamber Concerto)”도 1999년에 퓨리처 상을 받았다.
폴란드 정부가 주는 최고훈장 흰독수리 훈장을 받았고, 말러-부르크너 협회는 그에게 금메달을 주었다. 1973년엔 <딧슨 지휘자 상, Ditson Conductor's Award>, 1976년엔 케네디 센터 프리드하임 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