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山經表. 조선 영조 시기에 신경준(申景濬, 1712-1781)이 한반도의 산경(山經)체계를 도표로 정리한 역사지리지.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신경준(申景濬)[1712~1781]의 자는 순민(舜民), 호는 여암(旅庵)이며 본관은 고령이다. 순창군 순창읍 가남리의 남산대(南山臺)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진사 신래(申淶)이며, 어머니는 한산 이씨로 이의홍(李儀鴻)의 딸이다. 1754년(영조 30) 증광시에 을과로 급제하여 정언·장령·현감 등을 역임하였다. 1769년에 종부시정(宗簿寺正)이 되어 강화의 선원각(璿源閣)을 중수하였다. 영조의 명으로 『여지승람(輿地勝覽)』을 감수하였고, 1770년에는 『문헌비고(文獻備考)』 중 『여지고(輿地考)』의 집필을 담당하였다. 많은 저술을 하였는데 특히 『운해 훈민정음』, 『언서 음해(諺書音解)』, 『강계지(疆界志)』, 『산수고(山水考)』, 『도로고(道路考)』 등 문자학(文字學)·성운학(聲韻學)·지리학(地理學) 등을 중심으로 다방면에 걸쳐서 업적을 남겼다.
2. 내용
조선 영조 시기의 학자로 도로고, 훈민정음운해, 순원화훼잡설, 강계고 등 한국의 문자학(文字學)·성운학(聲韻學)·지리학(地理學)과 관련된 여러 책을 저술했던 신경준이 1700년 중엽에 한반도의 산맥을 우리나라 고유의 방법으로 정리해놓은 것이다.[1]필사본 1책 48장으로 이루어졌다. 사주 단변(四周單邊)에 행자수(行字數)는 일정하지 않으며, 어미(魚尾)는 없다. 규격은 반곽(半郭) 23.2×15.0㎝이다.
조선의 산맥 체계를 수계(水系)와 연결시켜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놓은 책으로서, 일본인이 분류, 명명한 산맥 구분 및 산맥 명칭과는 달리 과거 전통적인 산지 분류 체계[2]에 대해 파악할 수 있다.
우리나라 산맥[山徑]의 갈래, 분포, 위치 등을 기록한 지리지이다. 산의 내력의 높낮이, 산이 치닫다가 생긴 고개, 산이 읍치(邑治)를 어떻게 둘러 있는지 등을 상세하고도 일목요연하게 표로 기록하였다. 『산경표』는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한 개의 대간(大幹)과 한 개의 정간(正幹), 13개의 정맥(正脈) 등 총 15개의 산맥으로 조선의 산줄기를 분류하였다. 15개의 산맥은 백두대간(白頭大幹), 장백정간(長白正幹), 낙남정맥(洛南正脈), 청북정맥(淸北正脈), 청남정맥(淸南正脈), 해서정맥(海西正脈), 임진북예성남정맥(臨津北禮成南正脈), 한북정맥(漢北正脈), 낙동정맥, 한남금북정맥(漢南錦北正脈), 한남정맥, 금북정맥, 금남호남정맥(錦南湖南正脈), 호남정맥이다.
3. 오해
산경표를 표현한 지도는 산경도라고 한다. 산경도가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일본 학자가 만든 산맥도는 잘못된 것이고 우리 고유의 것인 산경도가 옳은 것이라는 잘못된 주장이 퍼졌으나, 사실 둘은 산지를 분류한 기준 자체가 완전히 다르므로 둘 중 어느 것이 옳고 그르다 할 수는 없다. 산맥도는 지질과 지각 변동을, 산경도는 유역과 수계를 반영한 것이다. 그래서 지질학적으로는 산맥도가 더 맞지만 실제로 다닐 때는 산경도의 모습이 체감상 더 와닿을 수 있다.『산경표』의 산맥 체계는 몇 가지 특징을 보인다. 첫째, 대간과 정간을 제외하면 대부분 하천의 수계(水界)를 기준으로 산줄기를 나누었다. 둘째, 대간·정간·정맥 등으로 산줄기에 위계성(位階性)을 부여하였다. 셋째, 『산경표』에 나타난 간과 맥들은 혈맥이 서로 통하듯이 연결되어 단절이 없다. 넷째, 백두산이 국토의 중심 또는 출발점으로 인식되었다. 『산경표』는 조선의 산맥 체계를 수계(水系)와 연결시켜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놓은 책으로서, 현재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일본인이 분류, 명명한 산맥 구분 및 산맥 명칭 이전의 조선의 전통적인 산지 분류 체계를 파악할 수 있는 점에 중요한 의의가 있다.
기타 자세한 내용은 한반도의 산 및 고개/산경표 항목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