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르 로드리게스 안드라데의 수상 이력 | |
{{{#!folding ▼ | FIFA 월드컵 우승 멤버 |
우루과이의 전 축구 선수 | |||
이름 | 빅토르 로드리게스 안드라데 Víctor Rodríguez Andrade | ||
본명 | 빅토르 파블로 로드리게스 안드라데 Víctor Pablo Rodríguez Andrade | ||
출생 | 1927년 5월 2일 몬테비데오 바리오 수르 | ||
사망 | 1985년 5월 19일 (향년 58세) | ||
국적 | [[우루과이| ]][[틀:국기| ]][[틀:국기| ]] | ||
신체 | 키 169cm | 체중 62kg | ||
포지션 | 윙 하프 | ||
소속팀 | 센트랄 에스파뇰 (1945~1951) CA 페냐롤 (1952~1957) | ||
국가대표 | 42경기 (우루과이 / 1947~1957) | ||
정보 더 보기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colbgcolor=#eeeeee,#191919> 별명 | 흑진주(La Perla Negra) | |
등번호 | 6[1], 4[2] | ||
가족관계 | 삼촌 호세 레안드로 안드라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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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우루과이의 전 축구 선수로 삼촌 호세 레안드로 안드라데와 함께 우루과이의 FIFA 월드컵 우승을 이끈 주역으로 유명하다.[3]2. 생애
2.1. 선수 생활
2.1.1. 어린 시절 그리고 초기 선수 생활
빅토르 로드리게스 안드라데는 1927년 몬테비데오의 바리오 수르(Barrio Sur)에서 태어났다. 그의 삼촌은 이미 우루과이에서 블랙 마블이란 별명으로 큰 명성을 떨치고 있던 호세 레안드로 안드라데였는데 이로 인해 빅토르는 축구 선수로서 삼촌과 많이 비교가 되었다.[4]1945년, 안드라데는 센트랄 에스파뇰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했고, 1947년부터는 국가대표로도 활동을 시작했다.
2.1.2. 1950년 월드컵
대표팀에 발탁된 안드라데는 곧 대인방어 능력을 인정받았다. 그리고 1950년 월드컵 최종전에서 안드라데에게 브라질의 에이스 지지뉴를 마크하라는 특명이 떨어졌고, 그는 이것을 십분 수행해냈다.그리고 후반 2분, 프리아사의 선제골로 우루과이 선수들이 멘붕에 빠졌을 무렵 빅토르는 주장 옵둘리오 바렐라에게 그 골은 오프사이드였다라는 주장을 했다. 바렐라는 이를 듣고 주심에게 항의했지만 주심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항의가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바렐라는 다시 우루과이 대표팀 선수들을 다잡았고 후안 알베르토 스키아피노와 알시데스 기지아가 골을 넣으며, 결국 우루과이는 월드컵에서 우승했다.
2.1.3. 1954년 월드컵
지난 대회 결선 리그에서만 운이 좋았다는 세간의 평가를 비웃기라도 하듯 우루과이는 1954년 월드컵에서도 4강에까지 진출했다. 물론 안드라데는 전 경기 선발 출장. 그리고 4강전의 상대는 매직 마자르, 우루과이는 주장 바렐라는 부상으로 4강전 출전이 불가능한 상황이었고 안드라데마저 연장전에서 근육 경련[5]이 일어나는 악조건이 터졌다. 그는 피치에 남아 분투했지만 우루과이는 헝가리의 코치시 샨도르에게 연장에서 2골을 얻어맞고 패배하고 말았다.2.1.4. 남아메리카 챔피언십
우루과이는 1942년 이후로 남아메리카 챔피언십에서 우승이 없었다. 하지만 1956년 남아메리카 챔피언십에서 14년 만에 오마르 시보리와 앙헬 라브루나가 버티고 있던 라이벌 아르헨티나를 제치고 우승을 차지했다.이로써 안드라데는 오스카르 미게스와 더불어 FIFA 월드컵과 남아메리카 챔피언십을 모두 우승한 1950년대의 우루과이 선수가 되었다.
2.2. 이후
1957년, 안드라데는 서른의 나이에 빠른 은퇴를 택했다. 은퇴 후에는 국회에서 안내원으로 대략 20년을 일했다. 안드라데는 1985년 5월에 몬테비데오에서 사망했고, 그의 고향인 바리오 수르에 그의 이름을 딴 길이 있다.또한 2005년에 그의 데뷔 클럽인 센트랄 FC[6]는 클럽 역대 최고의 선수로 그를 선정했다.
3. 플레이 스타일 & 평가
체력과 대인 방어 능력이 좋은 선수로 알려져 있다. 현재의 포지션으로 따지면 측면 수비수[7] 또는 수비형 미드필더의 역할을 잘 수행했을 것이다.4. 수상
4.1. 클럽
-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 2회: 1953, 1954(CA 페냐롤)
-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준우승 4회: 1952, 1955, 1956, 1957(CA 페냐롤)
4.2. 국가대표
- 월드컵 우승 1회: 1950
- 남아메리카 챔피언십 우승 1회: 1956
4.3. 개인
[1] 1950년 월드컵[2] 1954년 월드컵[3] 호세는 1930년 월드컵에서 우승했고 빅토르는 1950년 월드컵에서 우승했다.[4] 포지션도 비슷해서 더욱 그랬다. 호세의 주포지션은 라이트 윙 하프, 빅토르는 라이트도 능숙하게 소화할 수 있었지만 주포지션은 레프트 윙 하프였다.[5] 당시에는 선수 교체가 없었다.[6] 센트랄 에스파뇰의 현재 이름.[7] 윙 하프로써 양측면을 모두 소화 가능했다고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