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차 코바체비치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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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 | ||||
클럽 | ||||
11대 |
유고슬라비아의 前 축구 감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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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ee><colcolor=#000,#e5e5e5> 이름 | 블라디차 코바체비치 Владица Ковачевић|Vladica Kovačević | |
본명 | 블라디미르 코바체비치 Владимир Ковачевић|Vladimir Kovačević | |
출생 | 1940년 1월 7일 ([age(1940-01-07)]세) | |
유고슬라비아 왕국 이바니차 | ||
사망 | 2016년 7월 28일 (향년 76세) | |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 ||
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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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 키 169cm|체중 69kg | |
직업 | 축구 선수 (공격수 / 은퇴) 축구 감독 (은퇴) | |
소속 | <colbgcolor=#eee> 선수 | FK 파르티잔 (1955~1958 / 유스) FK 파르티잔 (1958~1966) FC 낭트 (1966~1967) FK 파르티잔 (1967~1970) 앙제 SCO (1970~1972) |
감독 | FK 파르티잔 (1972~1973 / 수석코치) 올랭피크 리옹 (1981~1983) | |
국가대표 | 13경기 2골 (유고슬라비아 / 1960~1965) |
1. 개요
유고슬라비아의 축구 선수 출신 前 축구 감독. 공격수로 활약하며 1960~70년대 파르티잔에서 주전으로 활동했다.2. 선수 경력
2.1. 클럽
코바체비치는 15세에 베오그라드의 축구 클럽 파르티잔에서 축구 경력을 시작했다.1958-59 시즌에 파르티잔 1군에서 뛰기 시작했으며, 이 시즌에 파르티잔은 유고슬라비아 챔피언십에서 2위를 차지했다. 첫 시즌에는 4경기에 출전했고, 다음 시즌에는 가능한 22경기 중 18경기에 출전하여 7골을 기록했다.
당시 코바체비치는 플로리얀 마테칼로 감독이 이끌었던 파르티잔의 유명한 세대 출신이다. 벨리보르 바소비치, 밀란 갈리치, 파흐루딘 유수피, 류보미르 미하일로비치 등 이 세대의 파르티잔 선수들은 처음으로 '파르티잔의 아기들'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 파르티잔의 아기들은 유고슬라비아 챔피언십 타이틀 4개를 획득했으며, 1965-66 시즌 유러피언컵에서 파르티잔과 함께 결승전에 진출했으나, 결승전에서 레알 마드리드에 1-2로 패배했다.
유러피언컵 결승전 이후 시즌에 파르티잔 선수 대부분이 해외로 떠났다. 코바체비치는 프랑스의 낭트로 이적하여 한 시즌을 뛰었다. 1966-67 시즌에 낭트 소속으로 29경기에 출전하여 8골을 기록했으며, 낭트는 그 시즌 프랑스 챔피언십에서 2위를 차지했다.
낭트에서 한 시즌을 보낸 후, 코바체비치는 당시 의무였던 유고슬라비아 인민군 복무를 위해 떠났고, 복무 후 다시 파르티잔에서 세 시즌을 뛰었다. 파르티잔을 떠난 후 다시 프랑스로 갔지만, 이번에는 앙제였다. 1970-71 시즌에 20골을 기록하며 팀 내 최다 득점자이자 프랑스 리그 득점 7위에 올랐다. 앙제에서 세 시즌을 보낸 후, 1972년에 현역 선수 경력을 마감했다.
3. 국가대표
유고슬라비아 축구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총 13경기에 출전하여 2골을 기록했다.첫 경기는 1960년 4월 10일 베오그라드에서 열린 올림픽 예선 이스라엘과의 경기였다. 이 경기에서 이스라엘이 2-1로 승리했다.
또한 코바체비치는 1962년 칠레 월드컵에서 두 경기에 출전했으며,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은 이 대회에서 4위를 차지했다.
코바체비치의 마지막 국가대표 경기는 1965년 6월 16일 오슬로에서 열린 월드컵 예선 노르웨이와의 경기였다. 유고슬라비아는 이 경기에서 0-3으로 패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