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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낙주

파일:백낙주.jpg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창씨명 마쓰바라 운키(松原雲起)
이명 백세창(白世昌)·백운기(白雲起)
자 / 호 학범(學範) / 일우(一愚)
본관 수원 백씨[1]
출생 1888년 12월 18일
평안도 정주목 갈지통 광동리
(현 평안북도 정주시 오산동)
사망 1965년 12월 29일 (향년 77세)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동 자택
묘소 국립서울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157호
상훈 건국훈장 독립장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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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독립유공자.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받았다.

2. 생애

1888년 12월 18일 평안도 정주목 갈지통 광동리(현 평안북도 정주시 오산동)에서 아버지 백병제(白昺濟)와 어머니 남양 홍씨 홍익환(洪益煥)의 딸 사이의 무녀독남으로 태어났다.

1919년 고향 평안북도 정주군에서 3.1 운동에 참여했다가 그해 7월 만주로 망명하였고, 그해 4월 유하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2]에서 결성된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1920년 봉천성 흥경현(興京縣)[3]·본계현(本溪縣)[4]·무순현(撫順縣)[5] 방면의 외무감독, 재무감독 등에 임명되어 활동하다가, 그해 7월 대한독립단 독립소대장으로서, 봉천성 흥경현 영릉가(永陵街)[6]에서 봉천 주재 일본 영사 및 친일단체인 만주보민회 회장 백형린(白衡麟), 백용범(白龍範), 오가와(小川) 순사 등 일행을 사살하고 그들이 소지하고 있던 30여 만 원을 탈취하였다.

또한 그해 10월 일어난 간도 참변으로 독립군의 근거지가 혼란에 처하자, 1921년 권덕근·나정규(羅正奎)[7] 등과 함께 대한독립단 산하 혈성대(血誠隊)를 조직, 혈성대장에 취임하고 지방 수복 공작에 착수하여, 봉천성 관내 흥경현을 비롯해 관전현(寬甸縣)[8]·환인현(桓仁縣)[9]·통화현(通化縣)[10]·유하현·해룡현(海龍縣)[11] 등을 수복하는 한편, 친일단체 만주보민회를 비롯해 일민단(日民團)·강립회(强立會) 등의 단원 및 회원들을 숙청하였다.

1923년 8월 대한통의부가 조직되자 법무부장 현정경과 함께 법무부원으로 활약하였다. 이후 전덕원을 따라 의군부로 이적하였으며, 1926년에는 국내에 잠입하여 군자금 모집에 진력하다가 이듬해인 1927년 일본 관헌의 추적을 받게 되었으나, 서자의(徐子儀) 등과 함께 만주로 무사히 돌아와 당시 몽고와 접해 있던 봉천성 도남현(洮南縣)[12]으로 잠시 망명했다가 1928년 3월 다시 만주로 돌아왔다.

1928년 9월 28일 봉천 주재 일본 영사관 오오카와(大川) 순사부장의 직접 지휘 하 일본군에 의해 집이 포위되고 체포될 위기에 처하자 영사관 순포(巡捕) 왕추신(王樞臣)에게 중상을 입힌 뒤 피신하였다.

그러나 그 뒤 요령성 무순현 방면에서 활동하던 중, 변절자 공성환(孔成煥)의 밀고로 결국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평안북도 신의주경찰서로 압송되었다. 그는 결국 1932년 3월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고, 공소하여 이듬해 평양복심법원에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아 마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그 뒤 서대문형무소와 대전형무소에 차례로 이감되었다. 이후 위 죄명에 대해 상고하였으나 1944년 1월 31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에 대해 상고가 취하되면서 1945년 8.15 광복이 되어서야 비로소 출옥할 수 있었다.

광복 후에는 경상남도 부산시로 이주하여 광복동지회 및 3.1 동지회 부산지회장에 취임하여 활동했으며, 동구 범일동에 거주하면서 여생을 보내다가, 1965년 12월 29일 범일동 자택에서 별세하였다.

1963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독립장이 수여되었다. 그의 유해는 1975년 8월 8일 국립서울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이장되었다.

[1] 인주공파(仁州公派) 20세 낙(樂)◯ 항렬. 수원 백씨 32세.[2]중화인민공화국 지린성 퉁화시 류허현(柳河縣) 싼위앤푸조선족진(三源浦朝鮮族鎭).[3] 현 중화인민공화국 랴오닝성 푸순시 신빈만주족자치현(新賓滿族自治縣).[4] 현 중화인민공화국 랴오닝성 번시시.[5] 현 중화인민공화국 랴오닝성 푸순시.[6] 현 중화인민공화국 랴오닝성 푸순시 신빈만주족자치현(新賓滿族自治縣) 용링진(永陵鎭).[7] 이명 나정봉.[8] 현 중화인민공화국 랴오닝성 단둥시 콴뎬만주족자치현(寬甸滿族自治縣).[9] 현 중화인민공화국 랴오닝성 번시시 환런만주족자치현(桓仁滿族自治縣).[10] 현 중화인민공화국 지린성 퉁화시(通化市) 퉁화현.[11] 현 중화인민공화국 지린성 메이허커우시(梅河口市).[12] 현 중화인민공화국 지린성 바이청시(白城市) 타오난시(洮南市). 지린성 바이청시는 현재도 내몽골 자치구 싱안맹(興安盟)과 접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