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세계 대전의 일본군 군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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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笠 (みかさ) Mikasa |
1. 개요
일본 제국 해군 소속 시키시마급 전함의 4번함이다. 현재까지 유일하게 보존된 전드레드노트급 전함이다.2. 제원
정보 | |
함급 | 시키시마급 전함 |
함명 | 미카사(三笠) |
함번 | 4 |
자매함 | 시키시마, 아사히, 하츠세 |
함선 제원 | |
기준배수량 | 15,000톤 |
길이 | 132m |
너비 | 23m |
흘수 | 13m |
무장 | |
주포 | 305mm 주포 4문(2연장 포탑 x 2) |
포 | 152mm 포 14문 76mm 포 20문 47mm 포 16문 |
어뢰 | 450mm 어뢰발사관 4문 |
장갑 | 현측 9인치(229mm) 갑판 3인치(76mm) 크루프강 장갑 |
3. 취역 배경
청일전쟁과 삼국간섭 이후 일본에서는 러시아를 가상적국으로 상정했고, 이들을 상대하기 위해 1898년 영국에 전함을 주문했다. 건조 당시 성능 상으로 영국 해군에서 운용하는 전함보다 좋아서 영국 의회에서 논란이 될 정도였다. 이 비판에 대해 조선소 측에서는 불만이면 직접 사가라고 대답했다. 사실 규모는 영국 해군이 압도적이지만 대량의 구식함을 유지하다보니 신형함을 도입할 예산이 부족했다. 그리고 외국의 주문을 받아 자국의 조선산업을 유지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기도 했다.[1]4. 함생
4.1. 취역
1900년 진수하여 1902년 취역하였다.4.2. 연합함대의 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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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시마 해전에서 미카사를 기함으로 사용한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 |
2년 후 1904년 러일전쟁이 발발하면서 일본 해군 연합함대의 기함이 되었다. 1905년 5월에 러시아 발트함대와 맞서 싸운 쓰시마 해전에서 기함으로서 활약하였다. 교전 중 러시아함대의 집중 사격을 받아 23발의 포탄에 피격당했지만 격침당하지 않고 버텼고, 승리의 주역이 되었다. 이 해전에서의 승전을 통해 이전까지는 작은 섬나라인 자국이 여러 열강과 대결하여 승리할 수 있을지 확신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일본에게 대국과 힘겨루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안겨주었다.
4.3. 수난과 침몰
그러나 당시 기함이자 주력함으로서의 영광이 무색하게, 이후부터는 수난이 이어졌다. 러일전쟁이 종전된 직후인 1905년 9월 11일 사세보항에서 탄약고 폭발사고로 침몰했다. 폭발 사고의 원인은 한 수병이 붙인 불인데 신호용 램프에 쓰는 알코올로 술을 만들어 먹기 위해 냄새를 없애고 도수를 낮추려고 불을 붙였고, 하필 탄약고에서 했기 때문에 유폭이 발생한 것이다.[2] 이 사고 외에 현역으로 활동하던 도중 한 수병이 자살하려고 탄약고에 방화를 시도하다 실패한 사고도 있었다.4.4. 복귀
미카사는 천황의 비상금까지 들어갔을 정도로 엄청난 거금이 투입된 전함이라 쉽게 포기할 수가 없었다. 때문에 1906년 인양하여 2년 간 수리를 거쳤고, 1908년 현역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각국 해군의 건함경쟁을 하면서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미카사는 몇 년간 오버홀을 거치던 동안 이미 구식 전함이 되어 있었다. 일선에 배치되기 보다는 근해 경비 임무에 종사했고, 1918년에서 1921년 사이 시베리아 출병에 참전했다. 1921년 9월에는 연해주 앞바다에서 임무를 수행하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좌초하여 손상된 상태로 간신히 본국까지 귀환하게 되었다.4.5. 퇴역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에 따라 즉시퇴역 처분을 받아 1923년 9월 퇴역이 결정되었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불운은 이어져서 바로 그 무렵 발생한 관동 대지진으로 인해 부두 벽에 부딪혀 침수사고까지 당했다. 그럼에도 일본 해전사에 가지는 의미가 크다보니 스크랩 되지는 않았고, 1925년 기념함으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도쿄 인근 일본 해군의 거점인 요코스카시에 안식처를 구했다.이 때 군축조약을 준수하기 위해 배 주변에 콘크리트를 부어 완전히 고정시켜 더 이상 항해가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한마디로 군함으로서의 기능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이렇게 까지 한 이유는 기념함으로 보관한 함을 유사시 다시 현역으로 투입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구식이 되었다고 해도 엄연한 전함이라서 전략적 가치가 없지 않았고[3], 직접 해전에 출전하지 않아도 거점 방어용으로 고정 배치하거나, 해안 포격같은 임무에는 충분히 쓸 수도 있었다.
4.6. 2차 대전 이후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이 패전한 직후 미군이 미카사를 접수하여 클럽과 수족관으로 개조하여 사용했다. 그 과정에서 주포 등 각종 화기와 시설물을 제거하여 고철로 처리했고, 원형도 크게 훼손되었다. 그외에도 고철을 노리던 도둑들의 표적이 되었다. 소련의 경우는 반세기전에 당한 치욕의 상징이라고 여겨 아예 해체해버릴 것을 건의했으나 드레드노트급도 아닌 전함이 더 이상 유의미한 전력은 아니고, 어차피 콘크리트로 고정되어 있어 제대로 활용할 수 없다는 이유로 반려되었다.4.7. 현재
이후 복구작업을 거쳐 오늘날까지 보존되고 있다. 주일 미 해군과 해상자위대 제1호위대군의 기지인 요코스카에서 '미카사 공원'(三笠公園)이라는 이름으로 보존 중이다.
하지만 겉보기에는 그럴싸하지만 무장을 포함한 대부분의 상부 구조물은 '모양만 비슷하게 만든 재현물'에 불과하다. 전성기때의 원형과는 매우 달라진 상황이다. 때문에 사료로서의 가치는 매우 떨어진다. 영국이 트라팔가 해전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지금까지 보존하고 있는 넬슨의 기함 HMS 빅토리 함과는 대조적이다.[4]
좀 더 자세한 내용은 위키백과 참조.
5. 의의
취역 당시 일본 해군의 최대 전함으로 준수한 성능을 지닌 군함이었다. 쓰시마 해전에서는 기함으로 대활약하여 일본에게 결정적인 승리를 안겨준 수훈함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전훈은 오히려 자신의 수명을 단축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영국 해군은 쓰시마 해전을 분석하여 전함의 역사를 바꾸어버린 신형 전함, 드레드노트급 전함을 만들었다. 그리고 드레드노트의 출현으로 미카사를 포함한 당시의 전함들은 모두 구식 전함이 되어버렸고, 미카사의 퇴역도 앞당겨졌다.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에 따라 스크랩될 위기를 피하기 위해 콘크리트로 고정되어 군함으로서 역할이 불가능해졌다. 그리고 전후의 혼란한 상황에서 크게 훼손되어 역사적 사료로서의 가치도 거의 없는 상황이다. 다만 이러한 점이 오히려 미카사를 지금까지 보존하게 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콘크리트로 고정되지 않았다면 대전 말기 배 한 척이라도 아까운 일본군 사정상 무조건 재취역시켰을 것이며, 격침되는 운명을 맞이했을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다. 종전까지 살아 남았다고 하더라도 나가토처럼 핵실험에 동원되거나 다른 곳으로 옮겨져 스크랩되었을 공산이 크다.
그래도 기념함으로 남은 전함 중에 가장 오래되었으며, 유일하게 살아남은 전드레드노트급 전함이다. 그리고 일본이 운용했던 전함 중에서는 유일하게 현존하는 함이다. 무엇보다도 일본이 전쟁사에서 가장 자랑스러워 하는 승리의 상징물로 남아있다.
6. 각종 매체
6.1. 월드 오브 워쉽
월드 오브 워쉽에서 일본 2티어 프리미엄 전함으로 나온다. 게임상 등장하는 유일한 전노급 전함인 만큼 성능은 당연히 기대 안하는 것이 좋은 수준. 부포성능은 좋지만 주포 포문수가 4문으로 크게 부족해서 10문을 장착한 HMS 드레드노트 1척한테 미카사 두 척이 발린다. 12문을 장착한 와이오밍급 전함이랑 싸우게 되면 미카사 3: 와이오밍 1 수준으로 격차가 벌어진다.
6.2. 벽람항로
벽람항로 중국 서버보다 먼저 일본 서버의 '군신의 귀환' 이벤트에서 순양전함 히에이와 함께 특별 건조로 등장. 2차 세계대전에서 활약한 함선들만 등장한 가운데 혼자 러일전쟁 시즌의 군함으로 등장한다. 최고등급인 SSR이며 다른 전함과는 다르게 대공포 슬롯에 부포를 대신 장비[5]하고, 4일에 걸친 이벤트를 클리어하면 Z기를 획득할 수 있다. 미카사(벽람항로)문서 참조.6.3. Naval Creed:Warships
Naval Creed:Warships에서 2티어 프리미엄 전함으로 나온다. 이벤트 보상으로 나오며, 월오쉽과 동일하게 그냥 장식용. 다만 부포가 치렁 치렁 달려서 독전제외 다른 고티어 전함하고 부포전을 해도 뒤지지 않는다. '부포 한정'이지만.
6.4. 일본국소환
무 제국의 최신예 주력함 라 카사미의 모티브. 상세한 묘사는 없으나 완전히 같은 물건이라는 뉘앙스의 언급이 계속된다. 과학 국가인 무 제국에게는 자국의 기술력을 과시하는 플래그십이었지만 2차대전 말기급 기술력인 제8제국과의 가벼운 교전에서 순양함 수준도 안된다는 사실이 노출되고 포탑 하나가 날아가는 손상을 입었었는지라, 일본에 밀착할 겸 기술도 흡수할 겸 전력도 강화할 겸 수리와 대대적인 개조를 요망한다. 일본 쪽에서는 보틀쉽 만들듯 함체 속에 신장비를 우겨넣는 것보다 그냥 자기네 호위함을 사가라고 제안했지만 국가의 자존심인 전함의 특성상 국민들에게 보여줘야 한다고 주장하여 엔진부터 무장까지 근대화개수를 시행한다.속력이 빨라지고 레이더와 소나를 설치하는 것은 물론 4문의 12인치 함포를 5인치 속사포로 바꾸고 다연장 다목적 미사일 런처와 잠수함용 중어뢰까지 장비하여 제8제국의 전함 1척, 순양함 3척, 구축함 4척으로 구성된 함대와 정면승부를 겨루고, 후계함들도 차례차례 개수를 진행하는 중. 대대적인 군비증강으로 숨넘어갈 지경인 일본 조선소들은 비명을 질렀다. 팬덤에서는 내부 공간과 용적 관계상 저게 가능한지 의문을 표하는 축과 근대화개수 사례를 보면 진짜로 엔진도 갈아끼웠고 작중 묘사되는 신병기들은 필요 용적이 큰 VLS가 없는 등 부피가 작은 것들이므로 효율을 도외시한다면 불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축이 나뉘어 있다.
[1] 일본 뿐만 아니라 칠레 등에 판매한 고속순양함 역시 영국 군함보다 성능이 좋았다.[2] 이 수병이 기행을 한 것은 아니고, 당시에는 알코올로 술을 만들어 먹는 일 자체가 타국 해군에서도 종종 있었다고 한다. 특히 미국 해군은 금주법을 제정했던 본국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술을 규제해서 심지어 수병들 중에는 어뢰의 연료로 충전되어 있던 알콜(에탄올)을 몰래 빼내서 마시기도 했다고 한다. 물론 이것은 어뢰의 사거리 감소로 직결되기 때문에 엄연한 군기위반사례이다. 이외에도 보급품으로 나오는 건포도 등을 이용해 직접 술을 담가 먹는 경우도 많았다. 사실 범선 시대에는 전통으로 매일 수병들에게 물을 탄 럼주를 배급했고, 해군의 역사와 자부심이 강한 영국 해군은 무려 1971년까지 이 전통을 유지했다.[3] 실제로 영화로까지 만들어졌던 러시아 해군의 전드레드노트급 전함 포템킨의 경우, 독일이 오스만에 양도한 드레드노트급 순양전함 몰트케급과 전투를 벌여 대등하게 싸우기도 했다. 그리고 포클랜드 해전에서도 영국의 전드레드노트급 전함이 포클랜드 제도에 있는 것을 알면서도 접근했던 독일 해군의 장갑순양함들이 그 화력에 주춤하기도 했다. 12인치 주포 4문의 위력은 드레드노트급 이후의 전함들은 몰라도 그 밑의 순양함 이하급 함정들로서는 절대 무시할 수 없는 화력이다.[4] 그나마 칠레가 운용하던 구식 영국제 전함 알미란테 라토레가 퇴역하여 해체하게 되자 칠레와의 협의하에 일부 구조물을 이식했다.[5] 미카사는 1898년 발주, 1900년 진수, 1902년 취역한 함인데, 플라이어 1호 초도비행이 1903년 12월이었으므로 대공포는커녕 대공포로 잡아야 하는 것도 없던 시대다. 물론 비행선을 생각한다면 다를 수도 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