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3-09 12:12:14

문명 7/지도자/마키아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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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
Machiavelli
외교 위주 | 경제 중심
특유 능력
군주론
(Il Princi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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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대당 [[파일:문명7_영향력.webp|width=16px]] '''영향력이 +3''' 증가합니다.
 * '''외교 활동''' 제안이 '''수락'''되면 시대마다 [[파일:문명7_금.webp|width=16px]] '''금을 50''', '''거부'''되면 [[파일:문명7_금.webp|width=16px]] '''금을 100''' 얻습니다.
 * '''공식 전쟁''' 선포에 필요한 '''관계''' 요구 사항을 무시합니다.
 * 이 문명이 종주국이 아닌 '''도시 국가'''에서 '''군대를 동원'''할 수 있습니다.
특유 안건
책략가
(The Spi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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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기를 제외한 '''다른 지도자'''와 '''전쟁''' 중인 지도자를 좋아합니다.

1. 개요2. 역사적 배경3. 지도자 특성4. 운영5. 연관 문명6. 대사 모음

1. 개요

마키아벨리
피렌체의 작가이자 외교관, 철학자인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이름은 이중성과 배신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권력을 얻고 유지하며 행사하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는 자가 가장 효율적인 통치자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관점 때문에 그는 가톨릭교회와 당대 이탈리아 가문 중 가장 강력했던 메디치 가문의 분노를 샀습니다. 하지만 마키아벨리의 사상은 그의 사후 저서인 군주론에 고스란히 남아 있으며, 진정한 마키아벨리식 유언이 되어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군주론으로 유명한 니콜로 마키아벨리로 이전작에서 위대한 작가로 등장한 바가 있다.

2. 역사적 배경

역사적 배경 [ 펼치기 · 접기 ]
> 중세 시대 권력에 대한 접근 방식 중 하나는, 신의 왕국을 고대하며 완벽한 이상향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이상적인 통치자들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었습니다. 마키아벨리는 그 반대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즉, 일어나야 할 일이 아니라 실제로 일어나는 일을 기반으로 한 잔인한 권력 획득 방식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는 최초의 현대 정치 철학자 중 하나로 간주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시선 때문에 그의 이름은 배신과 목적 지향, 교묘한 전략과 동의어가 되었습니다.

마키아벨리의 세계를 이해하려면 중세 말에 서유럽을 휩쓴 거대한 파도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스페인에서는 마지막 아랍 칼리프가 쫓겨났고, 스페인은 그때부터 정복할 새로운 땅을 찾고 있었습니다. 동부 아랍 제국의 뒤를 이어 새로운 터키 열강이 등장하여 비잔티움을 벼랑 끝으로 밀어붙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파도의 가장 큰 인자는 생물학적인 인자, 흑사병이었습니다. 이 전염병은 세계를 재편했습니다. 중국에서는 실크로드의 원활한 흐름을 보장했던 몽골 제국이 무너졌습니다. 유럽에서는 봉건 제도를 뒷받침하던 값싼 농업 노동력의 공급이 중단되었습니다. 이탈리아에서는 황폐화로 인해 사람들이 부유한 상인 가문과 귀족 가문의 역할을 재고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과거에 이미 영향력이 있었고 오랫동안 바티칸의 권력 투쟁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지만, 이제는 무역과 권력의 중심 결합체에 있었습니다.

‘르네상스’는 유럽인(주로 이탈리아인)에 의해 고전 문헌이 재발견된 현상을 말합니다. 이러한 변화로 인해 군주제에서 파생된 수많은 개념이 끝을 맞이했으며, 사람들이 통치 방법과 같은 중요한 질문에 대해 다시 생각하도록 장려하는, 새로운 인본주의적 세계관이 나타났습니다.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종종 특정한 종류의 현실정치, 즉, 도덕이나 원칙에 의해 방해받지 않는 권력과 영향력의 전략적 축적과 동의어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이러한 평판은 다소 부당합니다. 마키아벨리는 그의 정치적 이데올로기 그 이상이었습니다. 그는 극작가이자 희극 작가이자 통역사이자 철학자였으며, 그를 정의하는 것처럼 보이는 텍스트인 '군주론'보다 훨씬 많은 콘텐츠를 생산했습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새로운 통치자를 위한 전략을 제시합니다. 그는 냉철한 실용주의에 기반한 권고를 했으며, 가히 충격적이라 할 만한 것이었습니다. 마키아벨리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권력 기반을 재구성하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예를 들어,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통치자가 이상적일 수는 있지만, 그 다음 가는 최선의 방법은 두려움을 사는 것' 같은 식입니다. 군주는 정직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불가능하다면 거짓말을 해서라도 정직한 겉모습을 유지해야 합니다. 마키아벨리의 관점에서 보면 강력한 경쟁 가문을 없애거나 백성에게 공포를 심는 것과 같은 특정 조치는 특정 상황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요컨대, '군주론'은 무자비하고 교묘하며 비열하지만, 성공한 통치자가 되기 위한 지침서입니다.

마키아벨리는 피렌체 공화국의 변호사 집안 출신입니다. 그는 행정직으로 착실하게 승진했고 가벼운 외교 임무도 수행했습니다. 메디치와 보르지아 같은 가문이 서로의 도시와 가문을 잔인하게 정복하기 위해 서로를 앞지르려 하던 시대에 뛰어난 인재였습니다. 1509년, 마키아벨리는 소규모의 피렌체 민병대를 이끌고 피사 시를 점령했지만, 곧 교황의 보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마키아벨리의 후원 가문이 플로렌스의 수장 자리에서 불명예스럽게 물러나면서 공화국은 끝을 맞이했습니다. 그 후 악명 높은 독재자 메디치가 돌아와 마키아벨리를 투옥하고 고문했습니다.

마키아벨리는 3주 동안 '줄'에 매달려 있다가 풀려났고 시골의 가족 농장에서 여생을 보내며 집필을 마쳤습니다. 그는 무자비한 정치에 노출되었을 뿐만 아니라 중세 시대의 허울이 녹아내리기 시작하면서 공화주의와 같은 새로운 사상이 뿌리를 내리던 시기, 그리고 경건한 교황이 군대를 일으켜 적을 처단하던 그런 시대에 자신의 냉소적인 견해를 알렸습니다.

마키아벨리는 우리가 지닌 권력과 통제에 대한 사고 방식을 재편했습니다. 마키아벨리는 이를 고결한 이상에서 실존하는 문제로 옮겨 놓았습니다. 그는 비록 그보다 훨씬 앞선 시기에 훨씬 거대한 제국 소속이기는 했지만, 궁정 고문과 매우 비슷한 위치에 있었을 공자 같은 사람과 대비되는 인물일 것입니다. 공자는 전통을 존중하고 타인에 대한 선의를 중시하는 엄격한 행동 규범이 있어야 하며, 이 규범을 따르면 통치자가 번영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마키아벨리는 그 반대로 현대주의자이자 실용주의자였습니다. 그의 잔인한(또는 잔인할 정도로 정직한) 자세는 다른 유명한 역사적 인물들의 적대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권력에 굶주린 프로이센의 모습으로 인해 설득력이 없기는 했지만,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는 '반 마키아벨리론'을 저술하여 교활한 군주보다 계몽된 독재자의 미덕을 칭송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평판은 마키아벨리에게 과분할지도 모릅니다. 마키아벨리는 자기가 쓴 책을 그를 고문하고 추방한 메디치 가문에 보냈습니다. 후대의 독자들은 리비우스에 대한 담론에서 그가 공화국에 대해 훨씬 동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고문의 상처를 안고 고국으로 망명한 늙은 마키아벨리가 양심의 가책 없이 권력을 행사하는 방법에 대해 냉소적이고 쓰라린 담론을 쓰고 있는 모습, 그리고 헌정사에 자신을 고문한 사람의 이름을 쓰고 메디치 가문에 '여기, 당신들에 대한 책입니다'라고 말하는 모습을 그려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키아벨리는 집단의 작동 방식에 대해 전략적이고 체계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하는 최초의 현대주의 정치 철학자 중 한 명으로 간주됩니다. 그의 작품은 일종의 풍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마키아벨리가 그린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이 우리 현대 정치의 근간이 되었다는 암울한 진술이 될 것입니다.

3. 지도자 특성

4. 운영

5. 연관 문명

6. 대사 모음

마키아벨리는 이탈리아어를 사용한다. 성우는 Michele c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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