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몽골 제국(차가타이 칸국)의 13세기 중반 ~ 14세기 초반에 걸친 인도 아대륙에 대한 침공. 대규모의 원정은 1298 ~ 1306년에 걸쳐 집중되었으며, 결국 델리 술탄국 (노예왕조 ~ 할지 왕조)의 승리로 끝났다.다만 델리 술탄국 이후 국가인 무굴 제국[1]의 개국 군주는 바부르인데 이 바부르의 모친이 차가타이 칸국계 칭기스칸의 15대 손이다. 비록 몽골은 모계쪽 혈통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진 않지만 쿠빌라이가 죽고 완전히 포기했던 원나라의 베트남 원정과는 다르게 좋은 쪽으로 생각하면 최후에는 이겼다고도 할 수 있을지도?
2. 배경
1221년 몽골군이 호라즘 왕조의 왕자 잘랄 웃 딘 밍부르누를 추격하며 인더스 강변으로 남하한 것이 그 시작이다. 이때 발라가 이끄는 몽골군은 라호르 외곽과 물탄을 습격하고 회군하였다.3. 전개
1240년경 몽골군이 카슈미르를 정복, 다루가치를 두어 다스렸다. 한편 1241년 말엽, 뭉게투의 몽골군이 라호르를 함락하고 주민들을 학살한 것 외에 몽골은 10년 이상 인도 방면에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던 1255년 카슈미르의 왕이 반기를 들고 몽골이 임명한 다루가치를 죽이자 몽골 장수 살리가 쳐들어와 그 왕을 죽이고 반란을 진압하였다. 이후 몽골군은 술탄국의 내분에 개입하여 라호르-쿠자-소드라 일대를 술탄의 동생 잘랄 웃 딘 마수드에게 주어 속국으로 삼았다. 1257년엔 신드의 지배자가 훌라구 칸에게 복속을 청하여 몽골군이 진주하게 되었다.3.1. 1차 원정 (1292년)
1266년 술탄이 된 기야스 웃 딘 발반은 몽골의 침공에 대비하여 군대를 재정비 하였는데, 이는 다음 왕조를 개창하는 잘랄 웃 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1285년 몽골군은 재차 펀잡을 침공하였고, 술탄 발반은 베아스 강 전투에서 이들을 격퇴하는데 성공했지만 후계자이던 무함마드 칸을 잃는 아픔을 겪었다. 결국 그로 인해 후계 다툼이 벌어졌고, 1290년의 쿠데타로 왕조가 바뀌자 북쪽 차가타이 칸국의 두와 칸은 인도 침공을 결심하였다. 그의 네구다리 총독 압둘라는 인도로 진군하였으나 울구 휘하의 선발대가 잘랄 웃 딘 할지에게 패하고 포로가 되었다. 항복한 4천의 몽골 포로들은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델리 외곽에 정착하였다. 몽골을 인도에선 인도에선 무갈이라 불렀기에 일대는 무갈푸라로 불렸다.3.2. 2차 원정 (1298 ~ 1299년)
신드 침공, 자파르 칸이 격퇴3.3. 3차 원정 (1299년)
두와 칸이 아들 쿠틀루그 파견3.4. 4차 원정 (1303년)
술탄이 델리 비운 틈에 기습하려 하나 실패3.5. 5차 원정 (1306년)
몽골군 대패4. 영향
1320년대에 기야스 웃 딘 투글루크가 새 수도로 세운 투글루카바드 유적의 성벽.
혹시나 모를 몽골의 침공에 대비하기 위해 육중한 성벽을 지니도록 설계되었다.
[1] 애초에 무굴이라는 단어가 인도어로 몽골이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