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010101><colcolor=#fff,#eee> 마도노 미츠아키 [ruby(真, ruby=ま)][ruby(殿, ruby=どの)][ruby(光, ruby=みつ)][ruby(昭, ruby=あき)] | Mitsuaki Madono | |
<nopad> | |
출생 | 1964년 7월 28일 ([age(1964-07-28)]세) |
오사카부[1] | |
국적 | [[일본| ]][[틀:국기| ]][[틀:국기| ]] |
직업 | 성우 |
신체 | 170cm, 55kg|B형 |
가족 | 양친[2] 배우자, 자녀 2명 |
양성소 | 도쿄 아나운스 아카데미 테아도르 에코 부속 양성소 |
소속사 | 마우스 프로모션(1989~2007.03.31) 세이지 프로덕션(2007.04.01~????) 아오니 프로덕션(????~현재) |
활동 시기 | 1989년 ~ 현재 |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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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의 남성 성우.뭔가 맛이 가 있는데 무시할 수 없는 포스를 내뿜는 역할을 자주 맡는다. 특히 빠삐용. 물론 류도 잇세이처럼 정반대의 진중한 연기 역시 잘 소화한다.[3] 외화에서는 권상우 전담 성우이기도 하다. 덕분에 권상우는 몇몇 오타쿠들에게 퀀삐용 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사실 본인도 권상우의 팬이며, 처음 천국의 계단 더빙을 맡았을 때 아주 몰입했다고 한다. 드라마 대물의 더빙 중에는 드라마 자체의 팬이 되어 블로그에 대물의 감상을 현재 일본의 국회의원들에 빗대어 쓰기도 했다. 그리고 권상우가 영화 '통증'의 홍보차 일본을 방문했을 당시 일본판 DVD 특별 수록 영상 인터뷰를 통해 권상우와의 직접 대담이 성사되기도 했다. 사실상의 공인 전담. 인터뷰를 하기 며칠 전에 다리를 치료하기 위한 간단한 수술을 받은 상태에서 참고 자료로 해당 영화의 DVD를 봤었다며 다리의 통증을 느끼면서 통증을 본다는 자학개그를 선보였다. 본인 블로그
2. 개인사
대학생 시절에는 극단에 소속. 4학년 시절에는 아침에는 대학에서 졸업 논문을 쓰고, 오후에는 연극 연습, 밤에는 주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계를 유지했고 대학을 다니면서도 성우 학교를 병행하는 등 바쁜 시기를 보냈었다. 그리고 대학 졸업 후에는 부모님에게 배우로 독립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자식이 2명인 기혼자라고 한다. 초코스케라는 이름의 개도 기르고 있다.
데뷔 초기에는 극도로 가난해 목욕탕에 갈 돈도 없어 당시 사무소 사장실의 샤워기를 무단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그 일이 드러났을 때에 마도노라면 어쩔 수 없네라고 반응했다고.
본인 말에 의하면 제일 씹기 쉬운 것은 자신의 이름. 기억하는 방법은 '真の 殿、光現れる(진짜 주군, 빛이 나타나다)'.
또한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같은 마우스 프로모션 동기였던 이시다 아키라와도 상당히 친하다. 이시다가 바이크 사고가 났을 때 병문안을 가 이시다의 어머니를 직접 만나뵌 적도 있으며,[4] 이시다를 바이크 뒷자리에 태우고 집까지 바래다주고
3. 대한민국과의 관계
2011년 미도리카와 히카루, 미야케 준이치와 함께 내한하여 서울에서 팬미팅이 있었다. 당시에도 권상우를 담당하며 생긴 대한민국에 대한 애정과 호감을 여지없이 드러내었고[6] 귀국한 뒤에도 블로그에 수회에 걸쳐 그 후기를 썼다. 심지어 장금이의 꿈의 장수로를 비롯해 한국에서 제작된 애니메이션들의 내수 더빙판에 여럿 참여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내한 당시 몇 번이나 명동에 들러 쇼핑을 했다고 한다. 한국 음반 매장에서 권상우가 나온 드라마의 OST나 카라의 MV, DVD 등을 사갔다. 귀국하며 선물로 사간 것은 '막걸리 초콜릿'. 주변 성우들에게 꽤 호평이었지만 유독 박로미만은 맛없다고 비명을 지르며 진짜 막걸리를 내놓으라고 소리쳤다고 한다. 그 후 내한 이벤트 주최사에 수시로 '다음에도 또 불러줘!' 라고 한다는 듯. 덧붙여, 좋아하는 한국 걸그룹은 레인보우.
이런 적극적인 친한 성향 덕분인지 국내에서 일어나는 대형 사고에 관해서도 관심이 많으며, 특히 2014년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의 소식을 접했을 때도 안타까워하며 피해자들이 무사하기를 트위터에서 애도 소식을 올린 적이 있다.
그로부터 8년 후, 이태원 참사에도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를 올린 적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