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C8D6EB><colcolor=#000000> 레녹스 백작부인 마거릿 더글러스 Margaret Douglas, Countess of Lennox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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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마거릿 더글러스 Margaret Douglas | |
출생 | 1515년 10월 8일 | |
잉글랜드 왕국 노섬벌랜드 하보틀 성 | ||
사망 | 1578년 3월 7일 (향년 62세) | |
잉글랜드 왕국 런던 | ||
배우자 | 제4대 레녹스 백작 매튜 스튜어트 (1544년 결혼 / 1571년 사망) | |
자녀 | 헨리, 찰스 | |
아버지 | 제6대 앵거스 백작 아치볼드 더글러스 | |
어머니 | 마거릿 튜더 | |
직위 | 레녹스 백작부인 |
1. 개요
잉글랜드 왕국의 백작부인. 잉글랜드 국왕 헨리 7세의 외손녀이자 스코틀랜드 국왕 제임스 5세의 이부여동생이며 제임스 6세 & 1세의 할머니다.2. 생애
1515년 10월 8일 노섬벌랜드의 하보틀 성에서 제6대 앵거스 백작 아치볼드 더글러스와 잉글랜드 국왕 헨리 7세의 딸이며 스코틀랜드 국왕 제임스 4세의 미망인인 마거릿 튜더의 외동딸로 태어났다. 1528년 10월, 스코틀랜드 국왕이자 마거릿의 이부오빠인 제임스 5세가 앵거스 백작과의 권력 다툼에서 승리하자, 앵거스 백작은 잉글랜드로 피신하면서 아내와 딸을 잉글랜드의 노럼 성으로 보냈다. 그 후 마거릿은 유모이자 시녀인 이사벨 호퍼와 함께 대부인 토머스 울지 추기경의 집에서 지냈다.1530년 울지가 사망한 후, 마거릿은 뷰리외 궁정으로 초대되었고, 그곳에서 메리 공주와 함꼐 지내면서 그녀의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 1530~32년 크리스마스를 그리니치 궁전에서 보냈고, 외삼촌인 헨리 8세로부터 후한 선물을 받았다. 1533년 앤 불린이 헨리 8세의 왕비가 된 뒤 앤 불린의 시녀가 되었는데, 이 무렵에 앤 불린의 외삼촌인 토머스 하워드 경[1]과 만나게 되었고 이윽고 그와 연인이 되었다. 1535년 말, 두 사람은 비밀리에 약혼식을 거행했다.
1536년, 앤 불린이 불륜과 반역 혐의를 뒤집어 쓰고 처형되었다. 그해 7월, 헨리 8세는 마거릿 더글러스가 토머스 하워드와 비밀리에 약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격노했다. 당시 헨리 8세는 딸 메리와 엘리자베스 공주를 사생아로 선언해 왕위 계승권을 박탈했기 때문에, 남아있는 적법한 왕위 계승권자는 헨리 8세의 누이 마거릿 튜더의 딸인 마거릿 더글러스 뿐이었다. 그런 그녀가 잉글랜드 최강의 귀족 집안으로 손꼽히는 하워드 가문의 일원이며, 처형당한 왕비의 외삼촌과 비밀리에 결혼했다는 사실은 심각한 정치적 파장을 야기했다. 마거릿과 토머스 모두 런던 탑에 수감되었고, 의회는 1536년 7월 18일 토머스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또한 의회는 왕의 동의 없이 왕실의 일원과 결혼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법안도 제정했다. 헨리 8세는 나중에 토머스의 사형을 취소하고 계속 감금했고, 토머스는 1537년 10월 31일에 런던 탑에서 사망했다.
마거릿은 런던 탑에서 병에 걸렸고, 헨리 8세는 조카딸을 시온 수도원으로 옮겨 수녀원장의 보살핌을 받게 했다. 그 후 토머스 하워드가 죽어가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헨리 8세는 1537년 10월 29일에 마거릿을 풀어주기로 했다. 1539년, 마거릿과 리치몬드와 서머셋 공작부인 메리 하워드[2]는 그리니치 궁전에서 헨리 8세의 네번째 왕비인 클레베의 앤이 환대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들은 앤의 궁정에 합류하여 신부를 왕에게 인도했다.
1540년, 마거릿은 헨리 8세의 다섯번째 왕비인 캐서린 하워드의 형제인 찰스 하워드와 불륜을 저질렀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왕은 마거릿을 강하게 질책했지만 딱히 불이익을 가하진 않았다. 1543년, 마거릿은 햄튼 코트에서 헨리 8세와 여섯 번째 왕비 캐서린 파의 결혼식을 지켜본 몇 안 되는 증인 중 한 명이었다. 마거릿은 1520년대부터 캐서린 파와 알고 지내던 사이였으며, 곧 새 왕비의 가장 가까운 여인 중 한 명이 되었다. 1544년, 마거릿은 스코틀랜드에서 반란을 일으켰다가 잉글랜드로 쫓겨난 망명자인 제4대 레녹스 백작 매튜 스튜어트와 결혼했다.
1548년 거친 구혼 기간 동안 마거릿은 아버지 아치볼드 더글러스를 통해 그녀의 이복형제 조지 더글러스가 가족의 다른 구성원들과 함께 달키스 궁전에서 잉글랜드군의 포로로 잡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앵거스 백작은 마거릿과 그녀의 남편 매튜가 잉글랜드 당국과 협상하여 조지를 비롯한 스코틀랜드의 포로들이 잘 대우받을 있도록 편의를 봐주길 바랐다. 그러나 레녹스 백작은 앵거스 백작이 자신보단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게 더 나을 것이라는 입장을 표명했고, 마거릿은 1549년 3월 레슬 성에서 아버지에게 서신을 보내 레녹스 백작과 반목했던 아버지가 어찌 그의 도움을 바라느냐고 불평하며 그와 평화를 이루라고 권고했다.
1553년 7월 메리 1세가 잉글랜드 여왕에 등극한 후, 메리의 절친한 친구였던 마거릿의 입지가 강해졌다. 그녀는 웨스트민스터 궁전에 방을 별도로 가졌다. 1553년 11월, 여왕은 신성 로마 제국 대사 시몽 르나르에게 자신처럼 가톨릭을 섬기며, 튜더 왕조의 혈통을 물려받은 레녹스 백작부인이 잉글랜드 왕위를 계승할 가장 합당한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다수 잉글랜드 귀족들이 엘리자베스 공주의 왕위 계승을 강하게 주장하고, 메리 1세의 남편인 펠리페 2세도 엘리자베스를 옹호했기에 메리 1세는 결국 마거릿을 차기 여왕으로 옹립하려던 계획을 포기해야 했다.
1558년 메리 1세가 사망한 후, 마거릿은 메리 여왕의 장례식에서 애도자를 인도했다. 엘리자베스 1세가 새 잉글랜드 여왕으로 즉위한 후 마거릿은 요크셔로 이사했고 그녀의 집인 뉴샘 템플은 가톨릭 음모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녀는 아들인 단리 경 헨리 스튜어트를 자신의 이부조카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3]와 결혼시켜서 잉글랜드 왕위를 주장할 발판으로 삼으려 했다. 엘리자베스 1세는 이 결혼을 반대했지만 1565년 끝내 성사되자 그 해 6월 마거릿을 런던 탑에 감금했다. 1567년 단리 경이 살해된 후 마거릿은 석방되었다. 마거릿은 며느리인 메리 여왕에게 아들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요구하는 편지를 보냈고, 나중엔 메리가 내연남인 보스웰 백작과 공모해서 아들을 죽였다고 여기고 그녀를 살인 혐의로 고발했지만 나중에 화해했다.
마거릿의 남편인 매튜 스튜어트는 1570년 아들 헨리 스튜어트와 메리 여왕의 외아들인 제임스 6세의 섭정으로서 스코틀랜드를 이끌었지만, 1년 후 암살당했다 .1574년, 마거릿은 어린 아들이자 제5대 레녹스 백작 찰스를 부유한 대지주 윌리엄 캐번디시의 딸이며 엘리자베스 1세의 측근인 엘리자베스 캐번디시와 비밀 결혼을 시켰다. 엘리자베스 1세는 자신의 허락 없이 결혼이 이뤄졌다는 소식에 분노해 마거릿을 또 한번 런던 탑에 가뒀다. 1576년 아들 찰스가 사망한 뒤 마거릿은 다시 사면을 받고 풀려났다.
그후 아들 찰스의 외동딸인 손녀 아라벨라 스튜어트를 돌보면서 여생을 보내던 마거릿은 1578년 3월 7일 런던에서 사망했다. 그녀는 죽기 며칠 전에 레스터 백작 로버트 더들리와 함께 저녁을 먹었는데, 이로 인해 로버트 더들리가 마거릿을 독살했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이 소문을 입증할 증거는 없다. 마거릿은 빚을 진 채 죽어서 장례를 치르기 곤란했지만, 엘리자베스 1세의 특명으로 왕실이 재정을 지원했기에 장례식이 호화롭게 치러졌다. 그녀의 유해는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의 헨리 7세 예배당 남쪽 통로에 있는 아들 찰스 스튜어트와 같은 무덤에 안장되었다.
3. 자녀
자녀 | 이름 | 출생 | 사망 | 배우자 / 자녀 |
1남 | 헨리 스튜어트 (Henry Stuart) | 1544년 | 1544년 | |
2남 | 단리 경 헨리 스튜어트 (Henry Stuart, Lord Darnley) | 1546년 | 1567년 2월 10일 | 스코틀랜드의 메리 여왕 슬하 1남[4] |
3남 | 필립 스튜어트 (Philip Stuart) | 1556년 | 1556년 | |
4남 | 제5대 레녹스 백작 찰스 스튜어트 (Charles Stuart, 5th Earl of Lennox) | 1557년 4월 또는 5월 | 1576년 4월 | 엘리자베스 캐번디시[5] 슬하 1녀 |
[1] 제2대 노퍽 공작 토머스 하워드와 그의 두 번째 아내인 아그네스 틸니의 차남이다.[2] 헨리 8세의 사생아인 리치몬드와 서머셋 공작 헨리 피츠로이의 아내.[3] 이부오빠 제임스 5세의 딸.[4] 제임스 6세 & 1세[5] 잉글랜드의 대지주이자 정치가 윌리엄 캐번디시의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