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의 리버풀 대성당(사진 상단부 가운데)과 가톨릭의 리버풀 대성당(사진 하단부 가운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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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탈리아 피렌체에 있는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을 피렌체 대성당이라고 부르거나 밀라노에 있는 산타 마리아 나센테 대성당을 밀라노 대성당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보통의 대성당은 정식 명칭 이외에 해당 건물이 위치한 도시명을 따서 지칭하기도 한다. 그러나 영국 리버풀 시내에는 성공회와 가톨릭의 주교좌(cathedral)가 설치된 대성당이 각각 존재한다. 그러므로 이 문서에서는 '리버풀 대성당'으로 불리는 각각의 성당을 항목별로 나누어 서술한다.2. 리버풀 대성당(성공회)
<rowcolor=#fff> 성공회 리버풀교구의 주교좌 리버풀 그리스도 대성당 Ecclesia Cathedralis Christi in Liverpool | Cathedral Church of Christ in Liverpool |
기본 정보 | |
위치 | 영국 리버풀 |
종교 | 성공회 |
교구 | 리버풀교구 |
지위 | 주교좌성당(Cathedral) |
홈페이지 | 공식 홈페이지 |
건축 정보 | |
축성 | 1978년 10월 25일 |
건축가 | 자일스 길버트 스콧 |
양식 | 고딕 리바이벌 |
착공 | 1904년 7월 19일 |
완공 | 1978년 10월 25일 |
건축 내역 | |
길이 | 188.7m |
신랑 높이 | 36.5m |
종탑 높이 | 100.8m |
정식 명칭은 리버풀 그리스도 대성당(Cathedral Church of Christ in Liverpool)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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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배경
1880년 새로 설정된 리버풀교구의 초대 교구장 주교로 존 찰스 라일(John Charles Ryle, 1816-1900) 주교가 승좌하였는데, 그는 라일 주교는 자신의 교구에 주교좌를 설치할 제대로 된 성당이 없음을 안타까워했다. 그리하여 1885년 설계안을 공모한 결과 윌리엄 에머슨(William Emerson, 1843-1924)의 설계가 당선되었지만, 설계대로 건축을 진행하기에는 공사 부지가 적합하지 않음이 판명나 계획은 중단되었다.그렇게 15년이 지난 1900년, 라일 주교의 후임 교구장으로 승좌한 프랜시스 제임스 채바스(Francis James Chavasse, 1846-1928) 주교는 곧바로 주교좌 성당 건설 계획을 재개했다. 일부에서는 굳이 장엄한 대성당이 필요하느냐면서 성당 신축에 반대했지만 채바스 주교는 아랑곳하지 않고 부지를 물색하는 한편 공사기금을 마련하고자 자금을 조달했다.
2.2. 설계
1903년 채바스 주교는 대성당의 설계안을 공모했는데, 공모전에서 당선된 사람은 당시 나이 22세였던 자일스 길버트 스콧(Sir Giles Gilbert Scott OM, 1880-1960)이었다. 스콧을 당선자로 선택한 사람은 스콧의 할아버지 조지 길버트 스콧 경(Sir George Gilbert Scott, 1811-1878)의 제자였던 조지 프레더릭 보들리(George Frederick Bodley, 1827-1907)이었다. 고딕 리바이벌 양식 건축가로 활동했던 보들리는 성당 위원회의 방침에 따라 스콧과 함께 작업했으나 1907년 10월 21일 8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이에 성당 위원회는 스콧에게 설계에 관한 전권을 부여했다.2.3. 공사
1904년 7월 19일, 에드워드 7세가 정초식을 거행하면서 공사가 시작되었다. 초기 설계안에서는 서쪽 현관에 종탑 2기를 세우고 교차랑 하나를 두었지만, 보들리가 사망한 후 1909년 스콧은 설계를 바꾸어 중앙에 종탑을 세우고 교차랑 2개를 측면에 두었다. 설계를 급작스레 바꾸었으나 1910년 성당 위원회로부터 승인을 받았다. 같은 해, 성모 마리아 경당(The Lady Chapel)이 가장 먼저 완성되어 6월 29일 축성되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 인력 수급 및 자재 조달 등 공사에 지장이 있었다.
1960년 2월 8일, 스콧 경이 7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2.4. 완성
1978년 10월 25일, 엘리자베스 2세가 참석한 가운데 성당 낙성을 축하하는 행사가 거행되었다. 설계자 스콧 경이 세상을 떠난 지 18년 후였다. 대성당의 길이는 약 189 m로, 전 세계의 주교좌 성당 중 길이가 가장 길다.3. 리버풀 대성당(가톨릭)
기본 정보 | |
위치 | 영국 리버풀 |
종교 | 가톨릭 |
홈페이지 | 공식 홈페이지 |
건축 정보 | |
축성 | 1967년 5월 14일 |
건축가 | 에드워드 웰비 퍼긴 에드윈 러티언스 에이드리언 길버트 스콧 프레더릭 기버드 |
양식 | 모더니즘 |
착공 | 1962년 10월 |
완공 | 1967년 5월 14일 |
건축 내역 | |
높이 | 84.86m |
지름 | 59.43m |
정식 명칭은 그리스도 왕 관구 대성당(Metropolitan Cathedral of Christ the King)이다.
3.1. 퍼긴의 설계
3.2. 러티언스의 설계
러티언스의 설계도에 따라 제작한 목조 모형 | 모형의 내부 |
갈색 벽돌과 회색 화강암을 쌓아올려 육중한 벽체를 구성했는데, 크리스토퍼 렌 경을 높게 평가한 러티언스는 세인트 폴 대성당의 돔에 바탕을 둔 돔을 성당 중앙부에 얹었다. 돔의 지름은 51 m로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 돔의 지름 42 m보다 9 m나 더 컸고, 성당의 전체 높이는 155 m로 성 베드로 대성당보다 약 20 m 가까이 더 높았다. 전체적인 건축 양식은 로마, 비잔티움, 로마네스크, 르네상스, 영국 바로크를 융합시킨 전례 없는 시도의 결과물이었다. 워낙 거대한 규모이고 공사 부지도 언덕 위에 있었기 때문에, 설계대로 완성되었다면
러티언스의 설계도대로 완성되었을 때의 상상도 |
1933년 6월 3일, 정초식이 거행되면서 러티언스의 설계도에 따라 공사가 시작되었다. 공사 비용은 리버풀의 노동계층 가톨릭 신자들이 낸 헌금으로 충당했다. 대성당의 지하 성당은 어느 정도 완성되었으나 1941년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면서 건축이 중단되었다. 종전 후 공사가 다시 진행되었으나 1944년 러티언스가 세상을 떠난 데다가 300만 파운드로 예상했던 공사 비용이 9배에 달하는 2700만 파운드까지 치솟으면서 러티언스의 원안을 유지하기가 불가능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