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5-30 05:26:30

로터다인

페어리 로터다인(Fairey Rotodyne)

1. 제원2. 요약3. 비행 원리4. 구조5. 평가와 시범6. 높으신 분들7. 관련 영상

1. 제원

형식 : 복합 회전익기
초도비행 : 1957년 11월 5일
승무원 : 2명 + 승객 48명
전장 / 전폭 / 전고 : 17.9 m / 14.17 m / 5.76 m
로터 직경 : 27.43 m
회전 면적 : 591.0 m2
중량 : 9,927~17,000 kg
동력 : 네이피어 이랜드(Napier Eland) N.El.7 터보프롭 엔진 (2,800 hp) 2기 / 팁제트 엔진 (1,000 lbf) 4기
최대속도 : 343 km/h
항속거리 : 830 km
순항고도 : 4,000 m
생산수 : 1대

2. 요약

1915년영국 미들섹스주에서 설립된 항공기 제조업체인 페어리(Fairey Aviation) 사에 의해 개발된 복합 헬리콥터로, 당시만 해도 이런 형태의 실용기가 없었던 탓에 세계 최초의 VTOL 항공기라며 소개되어 항공업계에 충격을 준 기체였다. 수직이착륙을 위해 고안된 특수한 구조 때문에 일반 고정익 여객기에 비하면 탑재량과 속도 면에서는 뒤처졌지만, 활주로가 필요없고 승객들을 곧바로 필요한 착륙 장소에 내려줄 수 있다는 점을 내세워 어필했었다. 야심찬 시도로 탄생한 페어리 로터다인(Fairey Rotodyne)은 항공 역사상 독특한 위상을 차지했으나 회전익기라는 한계를 넘지 못해 연비가 나빠 거리당 운항비가 높아지는데다 거주 지역에 이착륙할 때의 소음 문제를 끝까지 해결하지 못했고, 조종성도 개선할 여지가 있어서 결국 여객기 시장에 진입할 수는 없었다.

3. 비행 원리

날개에 장착된 엔진은 클러치를 통해 전진 추력을 일으키는 프로펠러를 구동시킬 뿐만 아니라 이륙할 때에는 출력의 대부분은 압축기를 회전시켜 발생시킨 압축 공기에 연료를 혼합에 태운 연소 가스를 로터 끝에 달린 로터 팁제트로 분사하여 직경 27미터가 넘는 거대한 로터를 회전시킨다. 이때 4장의 로터 블레이드 끝에 설치된 노즐에서는 각각 1,000파운드의 추력을 얻을 수 있어 219 m/s라는 회전속도를 얻을 수 있는데, 로터다인은 여기서 얻어진 양력으로 수직으로 떠오르게 된다.

팁제트 방식의 로터는 토크가 발생하지 않는 장점이 있어 이 기체는 일반 헬기와는 달리 테일 로터가 없었지만, 페어리 기술진들은 독특한 방법으로 요잉 제어를 하게 만들었다. 수직이착륙 모드 상태에서 조종사가 러더 페달을 밟으면 양쪽 프로펠러의 피치가 바뀌며 수평으로 기체를 선회시키는 방식이었는데, 이것 또한 페어리 개발진들을 지휘한 조지 히슬롭(George S. Hislop)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조종 장치였다.

이륙한 후에는 엔진 출력을 프로펠러와 연결된 클러치로 전달해 모두 프로펠러를 돌리는데 이용되는데, 말하자면 이때는 로터에는 전혀 엔진의 파워가 전달되지 않고 오토자이로처럼 회전하며 이때부터는 대부분 주날개의 양력에 의존하여 수평 비행을 하게 된다. 로터는 전혀 엔진 출력이 전달되지 않고 전방에서 기류를 받아 마치 바람개비처럼 회전하게 되는데, 이런 오토 로테이션으로 양력을 일으켜 짧은 주날개를 보조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독특한 비행 방식을 채택한 로터다인은 전진 추력을 모두 로터에 의존하는 기존의 헬리콥터에 비해 훨씬 빠른 속도를 낼 수 있었고, 항속거리도 길었다.

4. 구조

페어리 로터다인은 이처럼 고정익기의 장점과 회전익기의 특징을 모두 얻을 수 있다는 구상으로 만들어졌으며, 등장한 이후 이런 형태의 항공기를 가리켜 자이로다인(Gyrodyne)이라고 불리게 만들었다. 동체도 여객기와 군용 수송기의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었는데, 동체 내부에 배치된 40개의 좌석은 쉽게 탈착이 가능했으며 모두 떼어내면 동체 후방에 마련된 크램쉘 도어를 이용하면 군용 VTOL 수송기로도 쓸 수 있었다. 두랄루민으로 만든 메인 로터는 내부에 제트 분사 개스를 전달해주는 강철제 튜브가 관통하고 있었고, 윙팁의 노즐은 고열을 견디기 위해 니모닉 합금(Nimonic 80)으로 만들어졌다. 이처럼 로터다인에는 당시만 해도 처음 보는 기술이나 독자적으로 고안되어 만들어진 시스템들이 많아서 원형기의 제작비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페어리 측의 주장에 의하면, 전용으로 개발된 네이피어 이랜드 엔진을 제외하고도 £710,000라는 거액이 프로토타입인 XE521호기를 만드는데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5. 평가와 시범

로터다인은 1957년테스트 파일럿 론 제랄티(W. Ron Gellatly)와 존 모톤(John G.P. Morton)이 타고 처음 떠올랐다. 수직이착륙 테스트를 시작으로 호버링, 활주 이륙 테스트를 거친 XE521은 1958년 4월 10일에는 드디어 수직으로 떠올라 수평비행으로 전환한 다음 다시 수직으로 착륙하는데 성공을 거두었다. 이듬해인 1959년 1월 5일, 페어리 로터다인은 100 km 폐쇄 순환 코스를 평균속도 307.2 km/h로 날아 수직이착륙기 분야에서 세계신기록을 수립했다. 같은 해 판보로(Farnborough)와 파리에서 열린 국제 에어쇼에 출품된 로터다인은 수많은 군중들 앞에서 수직이착륙과 324 km/h의 속도로 수평비행하는 시범을 보여주었고, 심지어 30미터 길이의 철교를 들어올리는 시범까지 펼쳐보이며 만능에 가까운 놀라운 능력을 마음껏 자랑했다. 페어리 로터다인은 관람객들에게 "날으는 버스"라는 별명으로 불렸지만, 동시에 그것은 "날으는 크레인"이기도 했다. 59년 에어쇼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페어리 로터다인으로, 그것을 본 사람들은 모두 미래가 성큼 다가왔다고 실감하게 된다.

이 광경을 지켜 본 영국 유럽 항공(British European Airways : BEA)은 6대의 로터다인의 구매를 위한 상담에 들어갔고, 영국 공군도 군용 수송기 버젼 12대의 구입을 문의해왔다. 일본항공(JAL)은 도쿄 항구와 오사카를 오가는 노선에 이 영국제 항공기를 투입하고 싶어했으며, 미국에서 도시와 도시를 헬리콥터로 오가는 지역 항공사인 뉴욕 항공(New York Airways)이 15대의 구입을 희망했는데, 페어리 측은 3,000만 달러의 가격을 불렀지만 미국인들은 기꺼이 이에 응했을 정도로 그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또한 국산 항공기만 고집하던 미 육군도 파리 에어쇼의 시범을 보곤 로터다인의 범용성에 큰 매력을 느꼈다. 미 육군은 일단 200대의 로터다인을 필요로 했지만 이 수량은 전부 구입하는 것이 아니고 미국내 헬기 메이커인 카만 헬리콥터를 통해 면허생산을 하는 방안에 관해 논의가 있었다고 한다.

6. 높으신 분들

1957년에 영국 국방장관에 취임한 던컨 샌디스는 항공성 장관도 겸임하게 되면서 국내 항공업계의 대지각 변동을 일으킬 1957 국방백서를 발표하게 되는데, 이 새로운 행정 명령에 따르면 영국 공군은 전투기 보다 미사일이 요격 임무를 주로 맡게 될 것이며, 폭격기의 공습 임무도 지대지 미사일로 대체할 것이라면서 미사일 만능주의에 입각한 정책을 시종일관 밀고 나갈 것을 밝히고 있었다. 또한 현재 개발 중인 모든 항공기를 종류를 막론하고 전부 새롭게 타당성 평가를 하여 기준에 미달되는 기종은 개발과 생산이 중지될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영국의 여러 군소 항공업체들을 대형 메이커들에게 흡수 통합시킨다는 내용도 포함되었는데, 여기에는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페어리 사도 그 대상이었다. 이 정책에 의거하여, 1960년까지 영국 항공업체들은 다음과 같이 이합집산을 명령받았다.

잉글리쉬 일렉트릭(English Electric)과 브리스톨(Bristol Aeroplane Company), 빅커스-암스트롱(Vickers-Armstrong), 그리고 헌팅(Hunting Aircraft) 사는 영국 항공기 제작사(British Aircraft Corporation : BAC)라는 하나의 법인 아래 뭉치게 되었다. 대기업으로 성장해 있던 호커 사는 이미 암스트롱 위트워스(Armstrong Whitworth)와 애브로(Avro), 글로스터(Gloster) 사를 집어삼킨 후였지만 드 해빌랜드(de Havilland)와 블랙번(Blackburn Aircraft), 폴랜드(Folland)를 흡수해 호커 시들리(Hawker Siddeley)로 재편성되었다.

반면 헬리콥터 제작사들은 웨스트랜드(Westland Aircraft) 사가 중심이 되어 손더스-로우(Saunders-Roe)와 브리스톨 헬리콥터(Bristol helicopter), 그리고 페어리 사가 하나의 기업으로 뭉쳤다. 단, 이 시기에 호버크래프트라는 새로운 발명품을 내놓은 손더스-로우는 빅커스 수퍼마린(Vickers Supermarine)을 인수하여 영국 호버크래프트(British Hovercraft Corporation)라는 기업으로 일부 독립하게 된다.

샌디스의 항공업계 재편성은 무자비했다. 한때 영국 최대의 항공기 제작사였던 핸들리 페이지(Handley Page)나 볼튼 폴(Boulton Paul), 독특한 기술력을 선보이던 마일즈(Miles Aircraft)는 물론이고 비행정 분야에서 돋보이던 쇼트(Short Brothers) 사도 용서없이 흡수되었다. 이런 마당에 오스터(Auster)나 스코티쉬 항공(Scottish Aviation) 같은 눈에 잘 띄이지도 않던 소규모 제작사들이 제 자리를 지킬 수 있을가 만무했다.

엄청나게 투입된 제작비를 감안하면 매우 많이 들어갈 것이 분명한 생산 비용을 정당화시킬 만한 가성비 문제를 지적받은 로터다인도 정리 대상 기종에 올랐다. 던컨 샌디스는 새로 취임한 해럴드 맥밀런(Harold Macmillan) 수상과 함께 로터다인의 추가 개발을 중지시켜려고 했으나, 조달청 장관을 맡고 있던 오브리 존스(Aubrey Jones)는 이 신기술의 총아는 반드시 완성되어야만 한다며 버티고 있었다.
"다른건 몰라도, 이 프로젝트를 취소하는 것만큼은 결단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우린 지금 돈방석 위에 한발을 올려놓고 있단 말이오"

일단 연명을 하게 된 로터다인은 계속 시험 비행을 진행하게 된다.

7. 관련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