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2-12 18:44:02

로랑 보키에

파일:공화당 반전.png 공화당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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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니콜라 사르코지
대행 · 제2대
로랑 보키에
대행
장 레옹네티
제3대
크리스티앙 자콥
대행
아니 제네바르
제4대
에리크 시오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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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대 공화당 총재
로랑 티모테 마리 보키에
Laurent Timothée Marie Wauquiez
파일:로랑_보키에.jpg
<colbgcolor=#004078><colcolor=#fff> 출생 1975년 4월 12일 ([age(1975-04-12)]세)

[[프랑스|]][[틀:국기|]][[틀:국기|]] 오베르뉴론알프 리옹
학력 파리 고등사범학교
파리 제1대학교 팡테옹 소르본
시앙스포
국립행정학교
종교 가톨릭
재임기간 프랑스 고등교육부장관
2011년 6월 29일 ~ 2012년 5월 10일
프랑스 유럽외교부 유럽부문 국무차관
2010년 11월 14일 ~ 2011년 6월 29일
의원 선수 3
의원 대수 12, 13, 14
지역구 오드루아르 1구
정당

현직 오베르뉴론알프 레지옹 의회 의장
약력 제12, 14대 국회의원 (오드루아르 1구)
유럽외교부 유럽부문 국무차관 (피용 행정부)
고등교육부 장관 (피용 행정부)
정부 대변인 (사르코지 정부)
공화당 제2대 총재
1. 개요2. 생애3. 선거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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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의 정치인으로, 중도우파 공화당의 前 대표로 현재는 오베르뉴론알프 레지옹 의회의 의장으로 재임 중이다. 예전부터 공화당의 대표적인 강경우파 정치인으로 유명했으며, 2018년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면서 대통령의 제1라이벌로 급부상했으나 지금은 정치적 생명이 거의 끝난 상황.

정치적 계보상으로는 니콜라 사르코지의 후계자로 여겨진다.

2. 생애

리옹 출신으로, 파리의 명문고인 앙리4세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파리 고등사범학교파리 제1대학교 팡테옹 소르본을 거쳤다. 이후 파리 정치대학에서 DEA학위[1]를 취득한 후 프랑스 정치 엘리트들의 산실인 국립행정학교에 입학했다.[2] 프랑스 최고 엘리트들만 모여있다는 국립행정학교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내며 수석으로 졸업했다. 2001년 프랑스 3대 관청 중 하나인 국사원의 감사관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했으며 2004년에는 소원심사관이 되었다.

2004년 집권 여당 대중운동연합(UMP)의 자크 바로 하원 원내대표가 유럽연합 집행부에 합류하기 위해 의원직을 사퇴하면서 바로의 지역구인 오트루아르 1구에서 보궐 선거가 열렸다. 보키에는 공직에서 사퇴한 후 UMP소속으로 보궐 선거에 출마해 29세에 하원의원에 당선되면서 정치인 커리어를 시작했다. 정치 경력 초반에는 자크 바로를 멘토로 삼아 중도파를 표방했으나 그 해 11월 UMP의 당권을 장악한 니콜라 사르코지의 최측근으로 자리잡으면서 우파 성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2007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 사르코지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보키에는 정부 대변인에 기용되었다. 2008년 3월 지방선거에서는 오트루아르의 주도인 르 퓌앙블레의 시장직에 출마해 당선되었다.[3] 지방선거 패배 이후 사르코지 대통령이 개각을 단행하면서 고용담당 국무장관에 기용되었다. 2010년 연금개혁 후폭풍으로 UMP가 레지옹 선거에서 참패하자 단행된 개각에서 유럽담당 차관으로 기용되었다. 2011년 크리스틴 라가르드 재무장관의 IMF 총재 출마로 단행된 소폭 개각에서는 고등교육 장관이 되었다. 보키에가 사르코지의 최측근이고 이념을 공유하고 있는 만큼 2012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사르코지의 선거캠프 대변인에 임명되리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그러나 이 무렵 보키에와 사르코지의 사이가 약간 벌어지면서 사르코지는 자신의 대변인으로 나탈리 코쉬스코모리제 환경 장관을 선택했다. 그러나 코쉬스코모리제는 중도우파 성향의 정치인으로 국민전선을 의식해 우클릭하고 있던 사르코지와 맞지 않았던 데다가 지하철 요금을 모르는 등 구설수에 올랐다. 결국 사르코지는 대선에서 패배했다.

2012년 프랑스 국민의회 선거에서는 무난히 3선에 성공했다. 총선 이후 UMP에서는 프랑수아 피용 전 총리와 장프랑수아 코페 당 사무총장이 대표직을 놓고 격돌했다. 보키에는 피용과 러닝메이트를 이뤄 출마했지만[4] 근소한 차이로 코페에게 패배했다. 피용은 이에 반발해 자신을 지지하는 의원들을 이끌고 별도의 원내교섭단체인 R-UMP(대중운동연합 결집)을 구성했으며 보키에도 여기에 합류했다. 2012년 12월 장피에르 라파랭 전 총리의 중재로 피용과 코페가 재선거 일정에 합의함에 따라 R-UMP는 2013년 1월 부로 해체되었으며 당에 복귀한 보키에는 UMP의 공동 부대표를 맡았다. 이후에는 적극적으로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과 사회당 정부를 비판하는 저격수로 활약했다.

2014년 3월 지방선거에서 르 퓌앙블레 시장 재선에 성공했다. 베탕쿠르 스캔들에서 최종적으로 무혐의를 받은 사르코지가 정계 복귀를 선언하자 그를 적극적으로 지지했으며 11월 사르코지가 UMP 당대표에 당선되어 화려하게 복귀하자 당의 3인자인 사무총장에 임명되었다. 이 때 사르코지는 당 중도파를 포섭하기 위해 나탈리 코쉬스코모리제 의원을 당 부대표에 임명했는데 보키에와 코쉬스코모리제는 이념의 차이로 오랜 기간 정적이었던 만큼 UMP 지도부 내에서 끊임없이 갈등을 빚었다. 2015년 오베르뉴론알프[5] 의회 의장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했으며 우파의 거물인 미셸 바르니에 전 농업장관을 제치고 UMP 후보로 확정되었다. UMP가 공화당으로 당명을 바꾸면서 공화당의 초대 사무총장이 되었다. 12월 레지옹 선거에서 공화당, 민주독립연합(UDI), 민주운동당 등의 중도우파 단일 후보로 출마해 1차 투표에서 31%로 국민전선 후보를 제치고 1위를 기록했으며 결선 투표에서 40%를 득표해 현직 론알프 의회 의장인 사회당 후보를 물리치고 당선되었다. 나탈리 코쉬스코모리제 부대표가 지방선거 전략을 놓고 사르코지와 갈등을 빚자[6] 사르코지는 지방선거가 끝난 후 코쉬스코모리제를 당 지도부에서 축출하고 대신 보키에를 부대표에 임명했다. 2016년 1월 행정구역 합병이 공식적으로 완료되면서 르 퓌앙블레 시장직을 사임하고 오베르뉴론알프 레지옹 의회 의장으로 취임했다.

2016년 8월 사르코지가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하기 위해 대표직을 사퇴하자 당의 임시 대표를 맡았다. 경선에서는 당연히 사르코지를 지지했으나 사르코지는 오픈 프라이머리 시스템 때문에 3위로 떨어져 결선투표 진출에도 실패했다. 결선투표에서는 프랑수아 피용 전 총리를 지지했다. 대선후보로 선출된 피용이 베르나르 아코예 전 하원의장을 당 사무총장에 임명하고 당권을 일임하면서 보키에는 다시 부대표로 복귀했다. 2017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 1차 투표 결과 피용이 3위로 떨어지고 마크롱과 르펜의 대결이 되었으나 보키에는 보수의 패배가 아니라며 마크롱에게 투표하기를 거부하였다.[7][8]

공화당은 대선총선에서 역대 최악의 성적을 거두면서 정권 탈환에 실패했고 에두아르 필리프 총리, 브뤼노 르메르 재정경제 장관, 제랄드 다르마냉 예산장관, 세바스티앵 르코르뉘 환경담당 국무장관 등은 마크롱의 정부에 합류하고 프랑크 리에스테 의원, 티에리 솔레르 의원 등을 필두로 한 공화당 의원 12명이 별도의 원내교섭단체에 합류하는 등 당은 내부 분열에 휩싸였다. 12월 치러질 새로운 당대표 경선이 중요해진 가운데 보키에는 가장 유력한 차기 당권 주자로 거론되었다. 또 프랑수아 바루앵 전 재무장관, 그자비에 베르트랑 오드프랑스 레지옹 의회 의장, 발레리 페크레스 일드프랑스 레지옹 의회 의장 등이 출마하지 않기로 함에 따라 당선 가능성은 더욱 높아졌으며 결국 2017년 8월 31일 공식적으로 당대표 선거에 출마했다.

알랭 쥐페 전 총리의 최측근인 비르지니 칼멜 보르도 부시장과 선거 연대를 하면서 보수 성향이 강한 자신에 대한 중도파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전략을 취했다. 이미 오베르뉴론알프 의회 의장으로 마크롱 대통령의 이민 정책 등 여러 정책에 반대하며 존재감을 부각시켰던 보키에는 마크롱의 안보 정책과 경제 정책을 문제 삼으며 안보에 무능한 부자들의 대통령이라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또한 유럽 회의주의, 이슬람 반대, 난민 수용과 이민 반대, 프랑스 본연의 가톨릭 정체성 회복, 동성 결혼 반대, 복지축소, 보호무역주의를 내세우며 공화당에서 국민전선 지지층으로 옮겨 간 우파 유권자들의 표심을 자극했다. 그러면서도 국민전선 마린 르펜 대표의 연대 제안은 단호히 거부했다.[9] 결국 2017년 12월 10일 당대표 경선 1차 투표에서 74.64%의 득표율로 당대표에 당선되었다. 당대표 취임 후 우파의 혁신과 단결을 호소하며 여당에 맞설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러나 출당된 프랑크 리에스테 의원 등 공화당 인사 일부가 새로운 중도우파 정당 아지르를 창당한데다 자비에 베르트랑 오드프랑스 레지옹 의회 의장, 알랭 쥐페 전 총리 등이 보키에에게 반대해 탈당하고 당 내 중도파 인사들이 보키에의 우클릭이 국민전선에 이용당할거라고 우려를 표하는 등 우파 통합 작업이 쉽지는 않아 보인다.

일단 대표 취임 후 처음으로 가진 선거인 2개 선거구에서의 보궐선거에서 승리하였고 지지율도 41%로 상승하면서 산뜻한 출발을 보이고 있다고 보였지만 상당히 고전 중이다. 우선 2018년 4월에 있었던 가상 대선 여론조사에서 겨우 8%의 지지율을 기록하며 마크롱(36%)은 물론이고 르펜(23%), 장뤼크 멜랑숑(16.5%) 등에게 크게 밀렸을 뿐 아니라 1년 전 피용이 얻었던 득표율(20%)에도 크게 미치지 못했다. 이는 보키에가 취하고 있는 정치적 스탠스와 포지션의 문제이다. 그는 마크롱 정부의 정책 대부분에 대해 반대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는데[10] 이민, 난민, 대테러 정책에 대해서 강경한 입장을 취하다 보니 중도 성향 우파 유권자들을 포섭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또한 위의 여론조사에서 알 수 있듯이 강경 우익 성향 유권자들의 르펜에 대한 지지도는 견고하다. 보키에의 보수 정책은 마크롱 정부의 친시장적 경제정책에 반대하지 못해 제1야당으로서의 존재감을 각인시키지 못하고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던 공화당의 우파 정체성을 회복하고 국민전선을 대체해 우파 통합을 이루려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러나 정작 중도, 우파 양쪽에서 모두 외면받으며 어정쩡한 입장이 되어버렸다. 최근에는 여러 사안에서 상원 지도부와 엇박자가 나는 등 당내에서 그의 지도력에 대한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후 2019년 유럽의회 선거에서 참패하자 결국 선거결과에 책임을 지고 당대표 자리를 사임하였다.

3.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1차 득표 (득표율) 2차 득표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04 프랑스 국민의회 보궐 선거 오트루아르 1구 [[대중운동연합|
대중운동연합
]]
22,703 (62.40%) - 당선 (1위) 초선
2007 제13대 프랑스 국민의회 선거 34,563 (58.13%) - 당선 (1위) 재선
2008 프랑스 지방 선거 르퓌앙블레 시장 4,965 (56.45%) - 당선 (1위) 초선
2012 제13대 프랑스 국민의회 선거 오트루아르 1구 30,916 (49.74%) 36,651 (63.95%) 당선 (1위) 3선
2014 프랑스 지방 선거 르퓌앙블레 시장 5,121 (69.77%) - 당선 (1위) 재선
2015 프랑스 레지옹 선거 오베르뉴론알프 도지사

795,661 (31.73%) 1,201,597 (40.62%) 당선 (1위) 초선
2021 프랑스 레지옹 선거 751,375 (43,85%) 960,785 (55.20%) 당선 (1위) 재선

[1] 프랑스식 학제에만 존재하는 학위로 박사준비학위 정도로 번역된다.[2] 재미있는 점은 현재 최대 정적 관계인 마크롱 대통령과 고등학교, 파리 정치대학, 국립행정학교 동문이며 마크롱은 고등학교 시절 파리 고등사범학교를 지망했다는 점이다. 다만 안타깝게도(?) 마크롱은 재수까지 하고도 파리 고등사범학교 입학에 실패해 파리 낭테르 대학교에 편입했다.[3] 프랑스 정치의 특징 중 하나로 하원/상원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 지방의원을 겸직하는게 가능하다. 단, 지방자치단체장을 2개 이상 겸직하거나 내각 각료와 의원을 겸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현역 의원이 각료직을 맡기 위해서는 선거에 같이 출마한 의원대리인에게 의정활동을 위임해야 한다. 2014년 행정법 개정으로 의원과 자치단체장을 겸직하는 것은 법적으로 금지되었으며 겸직 중인 선출직 공직자들은 2017년 총선/상원의원 선거까지 의원직과 자치단체장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했다.[4] 이 때 피용이 당대표, 보키에가 부대표, 발레리 페크레스 전 예산장관이 사무총장 후보로 출마했다.[5] 원래는 오베르뉴와 론알프라는 별도의 레지옹이지만 2016년 1월부터 행정구역을 합병하기로 하면서 2015년 프랑스 레지옹 선거부터 합병할 행정구역으로 선거를 치르게 되었다.[6] 코쉬스코모리제는 지방선거 1차 투표 이전부터 사르코지에게 사회당과 후보를 단일화해야 한다고 건의했지만 사르코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1차 투표에서 국민전선은 본토 13개 지역 중 6곳에서 1위에 올랐다. 하지만 사르코지는 결선투표를 앞두고도 사회당 후보와 단일화하기를 거부했고 사회당이 대승적 차원에서 마린 르펜이 출마한 노르파드칼레피카르디와 조카인 마리옹 마레샬르펜이 출마한 프로방스알프코트다쥐르의 후보를 사퇴시키면서 공화당은 이들 지역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지방선거가 끝난 이후 코쉬스코모리제는 사르코지의 선거전략이 완전히 잘못되었다고 비판했다.[7] 공화당은 당 차원에서 의원들에게 마크롱 공개지지를 금지하며 이를 어긴 의원은 출당시키겠다고 경고했다. 페넬로페 게이트로 2월부터 피용의 지지도가 추락하자 공화당은 일찌감치 대선 승리에 대한 기대감을 접고 총선 승리에 사활을 걸었기 때문이다.[8] 실제로 대선 2차 투표를 앞두고 피용, 쥐페, 사르코지 등은 마크롱 지지를 선언했지만, 현직에 앉아있는 당내 유력 인사들은 지지 선언을 삼갔다.[9] 당연한게 결국 보키에의 공약들은 국민전선 표를 먹기 위함인데 정책 연대를 할 이유가 없다.[10] 예외적으로 프랑스 국영철도공사(SNCF) 개혁안에는 찬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