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31 09:23:03

레샤 우크라인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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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레샤 우크라인카
Леся Українка
파일:Lesya_Ukrainka_portrait.jpg

1. 개요2. 생애3.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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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871 ~ 1913

본명 : 라리사 페트리우나 코사치크빗카(Лариса Петрівна Косач-Квітка)

우크라이나의 시인, 작가.

2. 생애

1871년 작가인 올하 페트리우나 코사치의 딸로 태어났다. 우크라이나어 외에 영어독일어프랑스어이탈리아어그리스어라틴어폴란드어러시아어불가리아어10개(!) 국어를 이해할 줄 알았으며 8세(!) 때에 첫 시를 발표했다. 

1879년 가족과 루츠크로 이주했으며 1884년 리비우에서 발행된 문학 잡지에 <은방울꽃>이라는 제목의 시를 게재하면서 문학계에 등단했다.

그녀의 초기 작품들은 타라스 셰우첸코이반 프란코의 영향을 받았으며 시인의 외로움, 사회적 소외감, 우크라이나 민족의 자유에 대한 동경이 담겨 있다.

또 우크라인카는 러시아 제국 차르 전제 정치 체제에 반대하는 우크라이나의 마르크스주의 단체에서 활동했으며 1902년에는 《공산당 선언》을 우크라이나어로 번역했다. 

결국 1907년에 러시아 경찰에 체포되었고 석방된 뒤에도 러시아 경찰의 감시를 계속 받았으며 5년 후 휴양지였던 조지아의 수라미에서 질병으로 사망했다.

시집, 서사시, 희곡 등의 작품을 남겼다.

3. 기타

우크라이나 200흐리우냐 지폐의 인물이다.

사회주의 활동을 했었기 때문에 소련 시절에도 우크라이나의 문학위인으로 알아주었던지라 러시아 곳곳에도 레샤 우크라인카의 기념비들이 세워져 있는데, 드니프로 아파트 미사일 공격이 벌어져 다수의 민간인들이 사망하자, 익명의 러시아인들이 몰래 이 기념비에 꽃을 놓아 추모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물론 러시아 경찰들은 미리 그 주변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기념비에 꽃을 놓는 순간을 기다려 이 사람들을 체포하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