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Unglück bei der Loveparade 20102010년 7월 24일 독일 뒤스부르크에서 열린 음악 행사 '러브 퍼레이드' 에서 일어난 압사 참사.
2. 러브 퍼레이드
러브 퍼레이드는 1989년 동독에서 동독 출신 DJ 닥터 모테(DR. Motte)의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150명의 사람이 모여 레이브 파티를 벌인 것에서 시작되어 매년 7월 첫째 주 토요일에 열렸던 행사로, 한 번 열릴 때마다 많게는 1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여하는 행사다. 원래 열리던 곳은 베를린으로, 에른스트 로이터 광장과 브라덴부르크 성문, 그리고 전승기념탑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 퍼레이드를 즐겼다. 단 하루의 축제로 2천만 유로에 달하는 수익이 생길 정도로 큰 축제였다.
하지만 그렇게 사람이 많이 모이는 만큼 우려도 많았는데 사람이 많은 틈을 타 크고 작은 범죄들이 있었고 모인 사람들에게 몰래 마약을 판매하는 사람들도 나오는 등 문제가 생겼다. 사람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 처리 비용 역시 큰 문제였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2001년엔 퍼레이드를 한 주 연기했고 청소비용을 시에서 부담하기로 했다. 2002년부터는 행사가 시민집회가 아닌 상업적 행사로 판결받아 주최측에서도 비용을 부담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계속해서 일어난 문제와 재정 부족 문제 때문에 베를린은 결국 러브 퍼레이드 행사를 거절했고 2007년부터 장소를 옮겨 2007년에 에센, 2008년에 도르트문트에서 열렸다. 2009년엔 보훔에서 열릴 뻔했으나 보훔 측에서 안전 문제를 이유로 취소했다. 에센에서 120만명, 도르트문트에서 160만명이 모이면서 행사가 크게 성공했고 이 성공에 힘입어 2010년엔 뒤스부르크에서 열리게 되었다. 당시 뒤스부르크 시장 아돌프 자우어란트(Adolf Sauerland)는 사상 최고의 러브 퍼레이드를 열겠다고 약속했다.
3. 사고 현장
러브 퍼레이드가 열릴 장소는 과거 화물열차역이었던 곳을 개조해 만든 공연장으로 결정됐다. 공연장은 큰 건물 2개와 몇몇 터널로 이뤄진 곳이었다. 문제는 100,000m² 넓이에 불과한 이곳은 140만명의 사람을 수용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공연장 내부에는 20만명의 사람만 수용하기로 결정했으며 공연장 외부에도 일정 거리 이상으로는 사람이 나갈 수 없도록 울타리를 쳐서 관리하기로 했다. 또한 인근 도로는 혹시 몰라 퍼레이드가 열리는 동안 폐쇄했다.
문제는 하나 더 있었는데, 공연장이 과거 화물열차역이었던 만큼 터널이 있었다. 사진 기준으로 메인 출입구, 그리고 그 출입구를 관통하는 터널, 그리고 옆에 작은 출입구 하나가 있어 이곳으로도 사람들이 오고갔다. 문제는 출입구로 사용되는 메인 출입구와 작은 출입구 둘 다 출구와 입구가 정확히 나뉘지 않고 그냥 지나는 사람 맘대로였기에 사람이 오고가다 부딪히는 일이 잦았다. 더군다나 메인 출입구는 경사가 있어 출입구가 공연장보다 낮았다.
이에 뒤스부르크측에선 전문가 후버트 클루펠(Hubert Kluepfel)을 고용해 평상시 공연이 열릴 때 사람의 이동을 관찰하고 이를 토대로 퍼레이드가 열릴 때 사람들의 수와 이동을 예측, 계산했으며 경찰 1천여명을 투입했다. 이를 통해 최대한 위험한 사태는 막으려 했다.
2009년 10월, 뒤스부르크 시장에게 "러브 퍼레이드가 열릴 장소는 사람 수백만명이 모이기에 공간이 충분치 않다." 는 경고가 담긴 공문이 도착했으나 뒤스부르크 시장은 이를 무시했다.
4. 사고 당시
사고 당일 러브 퍼레이드가 열렸고 인구 50만명에 불과한 뒤스부르크에 140만명에 달하는 관광객들이 모여들었다. 그런데 시작부터 문제가 생겼고 공사 지연 문제로 11시에 오픈하기로 했던 공연장이 정오가 되어서야 오픈했다.오후 2시에 드디어 퍼레이드가 열렸는데 유럽 각지에서 모여든 DJ의 공연에 맞춰 수많은 참가자들이 춤과 노래를 즐겼다. DJ들은 이 공연을 위해 특별히 개조된 트럭에서 공연을 펼쳤는데 원래 이런 트럭들이 공연장을 천천히 한 바퀴 돌고 그 DJ를 보러 온 사람들도 천천히 트럭을 따라 같이 돌게 만들 계획이었다.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사람들은 트럭을 따라다니지 않고 머무르기만 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의 이동이 더 느려졌고 차량의 이동도 느려졌다. 2시 42분에 공연장과 입구가 아예 꽉 차 버렸고 공연장 직원과 관계자들 만으로는 감당이 불가능해졌다. 이에 인근 경찰에 협조 요청을 구하려 했으나 무전기는커녕 핸드폰도 들고 오지 않아 연락이 닿지 않았고 3시 30분이 되어서야 경찰이 와 협조하기로 했다. 경찰은 메인 출입구에 몰린 사람들을 밀어붙여 앞으로 보내 최대한 분산시키기로 했다. 동시에 사람들이 메인 출입구에 또 몰려오지 않도록 공연장에서 나오는 다른 길목은 저지선을 쳐서 막기로 했다. 하지만 사람이 너무 많은 데다 터널 안쪽에선 경찰 무전기가 잘 터지지 않아 이 작전은 실패했다. 3시 50분에는 위의 사진 기준으로 왼쪽 고속도로에서 오는 길목을 막아 사람들이 너무 몰려드는 걸 막으려 했다. 하지만 사람이 워낙 몰려서 저지선이 점점 움직이더니 터널에서 밀려났다.
오후 4시 6분엔 사람이 너무 많아 터널에 사람이 낑기는 지경에 이르렀다. 경찰은 터널 양측에 저지선을 쳐서 막고 메인 입구에도 저지선을 쳐서 막았다. 하지만 저지선으로만 막기엔 사람들이 너무 많았고 터널에서 메인 출입구로 들어가려는 사람과 나가려는 사람들이 뒤엉키기 시작했다. 결국 저지선이 무너지고 사람들이 끝없이 들어오면서 좁은 공간에 사람들이 끝없이 몰아닥쳐 사람들이 사람들에 끼어 움직이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몇몇 사람들은 터널 옆의 작은 계단으로 빠져나갔고 비상용 사다리, 가로등, 공연장 내에 설치된 임시 사무실 위, 심지어 터널에 붙은 간판 위로까지 대피했다. 경찰은 확성기로 더 이상 사람을 들여보낼 수 없다고 말했으나 소용없었다. 사람들이 점점 모여들자 직원용 자동차 위에까지 올라가면서 압사의 위기를 피해야 할 정도였다. 점점 몰려드는 사람을 이기지 못한 계단 난간이 무너지기까지 했다. 이 와중에 공연 진행자였던 레이너 샬러(Rainer Schaller)는 이 공연이 성공적이라며 인터뷰에 응하고 있었다.
압사 신고가 구조대에 전해졌고 구조대가 들어오려 했으나 사람이 너무 많아 막혔다. 4시 50분에 경찰차가 도착했지만 사람들이 경찰차를 따라다니면서 오히려 사람들이 더 꼬였다. 결국 17시 2분에 첫 사망자가 나왔다. 이를 시작으로 부상자와 사망자가 계속해서 나오던 가운데 사람이 너무 많아 구조헬기와 구급차는 아예 오지 못했다. 사태를 파악하고 빠져나가려는 사람들도 너무 많아 계단에서 사람이 사람에 밀려 밑의 사람들한테 떨어지기까지 했다. 사람들이 점점 더 꼬여 사람이 사람에 눌려 아예 움직이지 못했고 인근 나무가 사람의 무게를 못 이겨 부러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17시 16분, 사태가 겨우 진정됐다. 메인 출입구에서 사람들이 물러났고 구조대는 의식을 잃은 사람들을 그 자리에서 응급처치를 시도했다. 주최측에서는 이 상황에서 공연을 중단하면 사람들이 빠져나가면서 더 큰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공연을 계속해서 열었다. 상황이 정리됐을 땐 사람들이 흘리고 간 신발과 선글라스들이 가득했다. 사방에서 눕혀진 채 부상자들은 긴급 치료를 받았다. 한 경찰은 힘겨운 상황에 흐느껴 울기도 했다.
결국 사고로 21명이 사망하고 650명이 부상을 입었다. 15명은 현장에서, 6명은 부상으로 사망했다. 사망자는 독일인이 14명, 스페인인 2명, 그리고 네덜란드, 오스트레일리아, 중국, 이탈리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서 각각 1명씩이었다. 13명은 여성, 8명은 남성이었다. 부상자 중에는 사람들에게 너무 눌려 뼈가 부러지거나 관절에 큰 충격을 받아 장애를 입은 사람도 나왔다. 사고를 목격하고 큰 충격을 받아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도 있었다.
5. 사고 원인
처음부터 열릴 장소를 잘못 정한 것이 문제로 지적됐다. 러브 퍼레이드가 열린 곳은 양 옆으로 고속도로와 아직 열차가 다니는 선로가 있어 양 옆으로 나아갔다간 사고가 일어날 수 있었는데 이러한 사고를 막기 위해 양 옆에 울타리를 쳐서 사람들을 막았다. 하지만 이 때문에 안그래도 좁은 장소에 사람들이 더 밀려드는 부작용이 일어났다.또한 메인 출입구의 경우 입구 전에는 양 옆 간격이 26m 가량 되었지만 공연장으로 가면서 좁아져 11m로 줄었다. 더군다나 앞서 서술했듯이 나가는 사람과 들어오는 사람을 나누지 않았다. 더군다나 유럽 문화도시# 선정 캠페인을 위해 이 행사가 열리도록 밀어붙인 것으로 드러났다.
6. 사고 이후
한네로레 크라프트 당시 노르트라인 베스트발렌 주지사는 현장을 방문했다가 오열했다.이 사고로 결국 러브 퍼레이드는 영원히 취소됐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2022년 8월에 Rave the Planet이라는 이름의 러브 퍼레이드를 이어받은 퍼레이드가 새로 열렸다.#
사고와 관련해 공연 주최측과 경찰, 시장이 법정에 섰다. 공연 진행자 레이너 샬러는 사고 당시 보냈던 메세지를 삭제한 것이 드러나기도 했다. 하지만 10년간 재판이 지속되면서 처벌받은 사람은 없었다. 마지막에 터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사태로 인해 이에 대한 관심이 식었기 때문이다.
2012년 2월, 뒤스부르크 시장은 탄핵당했다.
행사 주최자였던 레이너 샬러는 이후에도 호의호식하면서 잘 살다가 2022년 10월 21일 자가용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했다.
공연장은 일부 철거되었고 다시는 공연에 쓰이는 일이 없었다. 사고가 일어났던 메인 출입구에는 희생자를 기리는 추모 명패가 설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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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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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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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0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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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0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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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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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blewidth=100%><tablebgcolor=#fff,#1f2023><width=33%>발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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